전쟁...../해군이야기

수병의 눈으로 본 전쟁

구름위 2012. 12. 2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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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하나의 "역사"로... 흘러간 옛일로써 책이나 여러 자료를 통해서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우리들 후세 사람들은, 전투의 결과나 병기같은 굵직굵직한 주제에만 주목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그보다 중요한건  바로 전쟁을 몸으로 체험했던 여러 사람들이 그 전쟁을 어떻게 헤쳐나갔고 어떻게 생각했는지 등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전투의 결과로 ~명이 전사했다."라는 기록을 보아도 그것은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 그 이상의 어떤 감정을 갖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이, 또는 내가 아는 누군가가 그런 식으로 전장에 서서 부상을 입거나 전사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전쟁을 겪은 당사자들이 그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있었나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우리 세대로서는 당시의 참전자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전쟁에 임했는지 막연한 짐작조차도 감이 잘 오지 않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그나마 접할 수 있는 자료들도 대부분 "그들은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는 애국주의적 묘사나 "그들은 전쟁의 참상을 겪고 회의에 빠졌다"는 식의 단편적인 반전주의적 서술에 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사람의 목소리가 담겨있지 않습니다. 저런 거시적 서술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란 통계 숫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죠. 오늘날의 우리조차도 한두 가지 단어로 설명하기 힘들만큼 많은 생각을 안고 살아가는데 더 험난한 삶을 살았던 과거인들의 생각이 저런 식으로 단순화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개개 수병의 입장에서 그들이 전쟁중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전쟁과 군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료의 선택

한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일겁니다. 그러나 또한 당사자의 증언이 진실을 담고 있다고만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기억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윤색되기 쉬우며 현재의 참전자가 전쟁을 겪던 당시의 그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법도 없으니까요. 또 한편으로 택할 수 있는 자료는 일기나 편지 등이 있습니다. 그런 기록들에는 군복무를 하던 당시의 감정과 생각이 잘 나타나 있고 그것들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으니까요. 다만 편지 역시 100% 진실을 말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편지란 누군가가 본다는 것을 전제로 한 기록물이며 따라서 남에게 보이고싶지 않은 부분은 쓰지 않게 되죠. 게다가 당시 군에서 보내는 편지는 모두 검열을 거치게 돼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편지를 쓰는 군인은 무의식적으로 어두운 부분이나 미묘한 문제를 억압하고 언급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사료로서 가장 좋은 것은 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기란 누구에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검열을 받지도 않으니까요.

그런데... 실제 참전자들의 일기를 찾는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우선, 당시 해군에서는 일기나 메모 작성이 일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만약의 경우 어떤 기록이 적에게 넘어가면 숨겨야할 작전 내용이나 기밀들이 고스란히 넘어가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실제 과달카날에서도 일본군들이 개인적으로 쓰던 수첩 등등이 미군에게 입수되어 정보로 이용된 경우도 있으니 이것이 괜한 기우는 아니었지만 덕분에 당시의 일기를 입수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찾아낸 대부분의 일기들이 사료로서의 가치가 없었습니다. 일기에 대한 인식이 틀리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거의 모든 일기들이 몇날 몇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만 적혀있고 정작 당사자가 그것을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한줄도 적혀있지 않았기 때문이죠.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다소의 문제점을 감수하고 그냥 당시의 편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드 존스와 동료들 : 우측 맨 끝이 에드 존스]

제가 택한 것은 중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에서 근무하던 에드 존스와 얼튼 필립스라는 수병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대전 말기에 미국의 중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가 원폭 수송임무후 일본의 잠수함에게 뇌격당해 격침당한 이야기는 아마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입니다. 이 글의 주인공 에드 존스는 인디애나폴리스에 승함하던 수병이었으며, 당시 20세인 테네시주 출신 청년이었습니다. 에드는 1944년 초반즈음에 해군에 징집되었고, 이후 그의 누나들에게 약 6통가량의 편지를 남겼습니다. 에드의 편지는 당시의 일반 수병들이 전쟁에 대해, 군복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해주는 좋은 사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원문 출처 : http://members.tripod.com/IndyMaru/indymaru8.htm


2. 에드 존스의 편지

1) 첫번째 편지 : 에드가 그의 누나 크리스틴 퍼키에게 (1944년 6월 24일)

안녕, 누나.
오늘 누나의 편지를 받았어. 누나와 모두가 잘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얼마나 기뻤던지 몰라. 내 자신에 관해서는, 난 지금 병실 안에 있지만 며칠 안에 좋아질거라고 생각해. 이건 내가 (입대 후) 처음으로 받아본 편지고, 또한 처음으로 답장을 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

우린 여기서 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우리 동료들은 언젠가 다시 집에 돌아가기 위해 뭐라도 할 수 있고, 또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어. 음.. 모든 시각에서 보건대, 아마도 그게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꺼야. 누나에게 말하고싶은 것들이 산더미 같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이야기할 수가 없어. 그건 군사기밀이거든. 내가 편지에 쓰는 모든 것은 이 배를 떠나기 전에 검열돼.

여기엔 테네시 주에서 온 친구들이 많이 있어.
Carver Purkey(매형)에게 안부전해주고 내가 그를 보고싶어한다는 이야기도 해줘. 하하!
난 그가 여기 오길 원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지만, 난 잘지내고 있고 내가 여기에 오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것들이 예상보다 좋은 편이야.

모두들 사랑해.  

-동생이-


1944년 6월 24일은 마리아나 해전이 미국의 승리로 끝나고 인디애나폴리스가 사이판 해변의 화력지원에 참여하던 시점입니다. 당시 에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함내 의무실에 있었는데 당시 인디애나폴리스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으므로 전투로 인한 부상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군복무라는건 어느 나라, 어느 시대건 다 비슷한건지 의외로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야기하고도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편지의 어조는 담담하고 밝은 편으로써 군복무가 생각보단 괜찮다는 얘기도 하고 잘 지내고 있다는 얘기도 하고 있죠. 하지만 이것이 사실 그대로를 얘기하고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글에서 검열의 존재를 언급하고 있듯이 실제로 쓰고싶었던 내용을 쓸 수 없었을지도 모르니까요. 군대에 다녀오신 분들은 다들 잘 아시겠지만 군대에 있는 사람이 "잘 지내고 있어"라고 하는 말은 사실 많은 것들을 담고 있으니까요. 물론 정말로 잘 지내고 있었을 수도 있구요.


2) 두번째 편지 : 에드가 그의 누나 크리스틴 퍼키에게 (1944년 12월 25일)

안녕 누나. 메리크리스마스∼

모두에게 내가 크리스마스 잘보내라고 한다고 전해줘. 난 아마도 오늘 모든 사람들이 집에서 대단한 크리스마스 만찬을 먹을꺼라고 생각해. 그리고 우리들도 오늘 아주 좋은 크리스마스 메뉴가 나오겠지.

음.. 라디오에선 "꿈같은 평화 속에서 잠들어요"라는 노래가 나오고 있어. 몇몇 친구들은 주변에 앉아서 편지를 쓰고 있지만 아마 그들의 마음은 전부 자기 집에 가있을꺼야. 그리고 지금 모든 사람들이 태평양 전쟁 뉴스를 듣고 있어. 뭐 그것도 꽤 괜찮은 내용인 것 같아.

아마 어머니와 아버지도 오늘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계실꺼야. 두분이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길 바래.

Carver Purkey(매형)와 Fred Purkey(조카)에게 "메리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전해줘. 나는 Fred를 보고싶어. 아마도 지난 밤에 그 아이에게 산타클로스가 다녀갔겠지. 그리고 나한테도 지난 밤에 산타가 찾아왔고. 산타는 나한테 연하장과 4통의 편지를 선물로 가져다줬어.

이제 저녁먹을 시간이라 그만 줄일게. 오늘은 대체 뭐가 나올까?
사랑해.

-동생이-



3) 세번째 편지 : 에드가 그의 둘째 누나 밀드레드 핀리에게 (1944년 12월 25일)

친애하는 누나.
누나에게 편지를 쓰게 돼서 기뻐. 좀더 일찍 편지 보내지 않아서 미안해. 하지만 단지 시간이 없어서 그랬던거니까 이해해주길 바래. 난 어젯밤과 오늘 아침에 10통의 편지를 썼어. 아마도 편지해야 하는 사람들이 한 다발은 될꺼야. 나는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편지를 받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마 그들 모두 그런 문제에는 관심을 쏟지 않을거라는걸 알아. 오늘은 성탄절이고 내 마음은 집에 가있어. 그래서 나는 편지를 쓰는 동안에 그것에 매여버릴 것만 같아.

주변에 있는 모든 동료들은 전부 향수병에 걸려서 편지를 쓰고 있지.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있는 나 역시 그렇다는건 누나도 잘 알꺼야.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소박하지만 푸짐한 크리스마스 정찬을 먹겠지. 우리한테도 오늘 좋은 저녁이 나올테고 아마 나도 그걸 먹게될꺼야. 하지만, 난 내가 지금 집에 있었더라면 식사를 좀더 즐거운 기분으로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언제 Ernest Finley(고향친구이자 밀드레드의 남편)의 소식을 들었어? 그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보냈는지 궁금한걸? 난 누나와 Glen Finley (Ernest의 아버지)가 그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을꺼라 확신해. 난 그로부터 한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으니까 혹시 누나가 그에게 편지를 쓴다면, 그녀석한테 "친구를 잊지 말라"고 전해줘. 아마도 난 곧 그를 보게될지도 모르지만.

어머니와 모두가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겠지. Ernest와 나에 대해서는 걱정하지마. 우리들은 괜찮을꺼야. 이 전쟁이 끝난다면, 그건 어느 순간에 갑자기 끝날 것이고 그러면 우리들은 누나와 다른 사람들이 알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돌아갈꺼야. 알았지?

그리고 어젯밤에 나한테도 산타가 찾아와서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온 연하장을 선물로 받았고 다른 사람들이 보낸 편지도 4통이나 왔어.

이제 그만 줄일게. 모두에게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전해줘.

사랑해.

-동생이-


2번째와 3번째 편지는 1944년의 크리스마스에 쓰인 편지입니다. 에드는 가족을 많이 보고싶어 하고 똑같이 군대에 간 친구의 안부를 묻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한 에드는 군대의 식사에 대해서도 불만을 갖고 있는 듯 하군요. 사실 이 글이 쓰여질 당시의 저녁식사 메뉴는 육상 기지나 사회에 비해서도 뒤떨어지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역시 사람의 마음은 꼭 원칙대로 돌아가진 않나봅니다.


4) 네번째 편지 : 에드가 그의 둘째 누나 밀드레드 핀리에게 (1945년 3월 22일)

친애하는 누나.
시간이 있었으면 누나의 편지에 답장을 하려고 노력했어. 음... 누나한테서 소식을 들어서 기뻤어. 누나한테서 편지를 받아본지 꽤 오래됐었거든. 아무튼 모두들 잘지내고 있다니 기뻐. 아니, Ernest에 대해서는 한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지. 확실하게 그로부터 직접 소식을 듣고싶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그는 잘지내고 있을거라 믿어.

아 맞다, 누나는 자기가 불행하다고 말했었지. 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아마도 누나는 Ernest가 돌아오면 그를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할꺼고, 그는 승리를 위한 부분에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 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뭐... 내 경우에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의 경우보다 훨씬 많이 가버렸으니까. 어쨌든, 아마도 우리가 다시 집에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거고 우리는 다시 행복하게 같이 살 수 있을꺼야. 난 결코 내가 누나, 그리고 Ernie와 함께 머무르곤 했던 때를 잊지 못할거야. 집에 있었을 때는 정말로 즐겁고 편안했었지.

아, Doris가 결혼한다는건 나한테도 놀라운 소식이었어. 그래, 나는 Guy를 잘 알지. 음.. 내가 멀리 떨어져있는 동안에 모두들 결혼하는 것처럼 느껴져. 하지만 누나도 알다시피, 내가 집에 돌아가면 그동안 잃어버렸던 시간들을 벌충하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할꺼야. 하! 일반인들은 난폭하고 무뚝뚝한 수병들이 짐을 떠맡는 동안 훨씬 더 나은 일들을 하고 있지. 아 그래, Delma에게 내 편지에 답장하라고 하고 나한테 사진을 좀 보내라고 전해줘. 난 그녀가 내가 마지막으로 보냈던 편지에 답장할 때까지 그녀에게 편지를 쓰지 않을거야.

그리고 나는 이제 누나한테 말하는 것이 허락됐어. 우리 배는 2월 16∼17일쯤에 도쿄 공습과 이오지마 상륙작전에 참가할거야. 아마 누나도 신문들을 읽어서 알고있겠지. 어쨌든 누나는 이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게된거야.

모든 사람들, 그리고 주변의 예쁜 여자들에게도 내가 안부전한다고 해줘. 누나는 내가 예쁜 여자들을 무지하게 좋아한다는걸 잘 알테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난 수병이 되진 않았을거야. 아 그래, 난 지금 내 캠페인 바 위에 별 5개를 달고있어.

그럼 누나, 이제 그만 편지를 끝내고 자야할 것 같아.
모두들 사랑해.

-동생이-

p.s. Kathleen Shirley에게 편지 좀 보내라고 전해줘. 그녀는 2달동안 내게 편지를 보내더니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오지않기 시작했지. 그렇지만 내가 그것들을 다시 받을 수 있다면 난 그녀에게 정말 감사할꺼야.


에드도 말하고 있듯이 1945년 2월에 접어들면 전쟁이 종반에 접어들면서 편지에 대한 검열이 대폭 완화되었습니다. 이제 에드가 하는 말들은 자신의 속내를 전보다는 더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이 글에서 에드는 누나를 위로하기 위해 그녀가 군대에 간 남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될꺼라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조금 입장이 다르다고 이야기하고 있죠. 또한 "일반인들은 난폭하고 무뚝뚝한 수병들이 짐을 떠맡는 동안 훨씬 더 나은 일들을 하고 있지." 라는 말에서 보듯 군복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군복무에 대한 그의 입장은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건 그렇고 다음 부분을 살펴보면.. 저 시대의 군인들도 여자에게 관심이 많은건 똑같네요.^^;;


5) 다섯번째 편지 : 에드가 그의 누나 크리스틴 퍼키에게 (1945년 5월 9일)

친애하는 누나.
누나한테 안부를 묻고 내가 잘지내고 있다는 말을 아주 짧게밖에는 못쓰겠어. 음.. 최근 2달동안 누나한테 소식을 듣지 못했네? 왜 편지를 받지 못했는지 모르겠어. 음.. 아마 누나는 나한테서 편지를 받고 무척 놀랄꺼라고 생각해. 내가 얼마동안 누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었으니까. 하지만 난 결코 누나를 잊은건 아니야. 어떻게 내가 그럴 수가 있겠어?

나는 누나와 Carver Purkey(매형)와 함께 머무르는동안 정말로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었다고 확신해. 그리고 누나가 항상 잘지내고 건강하기를 바래.

지금쯤은 Fred(조카)도 꽤 많이 컸겠지? 걔한테 에드삼촌이 안부전한다고, 그리고 그를 보러 금방 집에 올꺼라고 전해줘. 그리고 그 애에게 좀더 좋은 아이가 되라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를 보러오지 않을거라고 얘기해줘. Carver에게도 안부전해주고. 그에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전쟁에서 벗어나 있으라고 전해줘. 우리가 있었던 곳은 지옥이나 다를 바가 없어.

나는 그 누구도 내가 겪은 길을 가길 원하지 않아. 난 다시 그것을 통과하기를 원치 않지만
그들이 다시 그곳에 가라고 명령한다면.... 나는 다시 그렇게 할꺼라고 생각해. 내가 다시 그곳에 갈지, 가지 않을지 잘 모르겠어. 내 신경들은 거기서 있었던 일들 때문에 모두 멎어버렸지만, 이 일에 대해서는 어머니에게 절대 아무것도 이야기하지마.

나는 수없이 많은 대포들이 울부짖고, 머리 위의 비행기들이 폭탄을 떨어뜨리고 지나가고, 여러 배들이 다른 배들과 그 승조원들을 죽이려고 서로 난투를 벌여대는 일들을 겪어왔어. 이제는 우리들에게 "다음번"이라는게 있을까 하고 궁금해하곤 해. 이런 경험들은 나로 하여금 아무 것도 들을 수 없고 누구도 볼 수 없는 그런 곳으로 가고싶도록 만들지만 그래도 난 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

요즘은 상륙했을 때는 함장님의 기사 노릇을 하고있어. "42 Pontiac형 스테이션 왜건"을 몰고있는데 나는 그게 반짝반짝 빛을 내도록 닦곤 하지. 나는 대략 6월 중순까지 그걸 몰고, 그리고나서 15일 후까지는 집으로 돌아갈꺼야. 음... 내가 다시 집에 돌아가게 되다니 정말 기뻐.

나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고 내가 곧 집에 돌아갈꺼라고 말했어. 그녀가 편지를 읽었을 때 어떻게 보였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지. 아마 어머니는 굉장히 기뻐하셨을꺼야. 그녀는 며칠동안 아팠다고 말했었는데 아마도 지금은 내가 곧 집에 돌아간다는 것 때문에 다 나으셨을거야. 어머니는 내 생각을 너무 많이 하셔서 병이 나셨겠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누나까지 모두들 나에 대해 걱정했겠지만 나는 무사히 전장에서 벗어났고 지금은 안전하게 잘 지내고 있어.

정말로 글을 끝내기 싫지만 그렇게 해야할거 같아.
모두들 사랑해.

-동생이-

p.s. 빨리 답장하길.


이 편지에서 주목할 점은 전쟁에 대한 에드의 생각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 편지에서 에드는 매형인 Caver에게 군대도 괜찮은 곳이니까 빨리 오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었지만 이번 편지에서는 최대한 전쟁에서 벗어나 있으라고 경고합니다. 아마 참혹한 전장을 겪고 전쟁의 실상을 경험한 후에는 전과 같을 수는 없었겠지요.

1945년 2월∼3월간 인디애나폴리스는 항모 기동부대의 일본 본토공습작전 호위 및 오키나와 침공시 화력지원 작전 등에 참가했습니다. 그중 1945년 3월 31일에는 일본의 가미가제 공격기가 함에 날아드는 바람에 함의 취사장, 승조원 거주구, 기관실 등이 피해를 입고 함은 좌현으로 크게 기울어 자력항해가 어려운 상태에까지 빠진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의 공습으로 인해 약 9명의 승무원이 사망했고, 그중에는 에드의 절친한 동료도 끼어있었다고 합니다. 그날의 참혹한 체험에 대한 생각이 이 편지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런 얘기들을 편지에 털어놨을 것입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끔찍한 체험을 하고있다고 가족들에게 그대로 이야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런 얘기들을 했다는 것은 에드가 그만큼 가족에게라도 감정을 털어놓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있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 어머니에게만은 그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머니에게 별도의 편지를 보내서 곧 집에 갈 수 있다고 안심시키기까지 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걱정이 아주 각별함을 알 수 있군요.


6) 여섯번째 편지 : 에드가 그의 누나 크리스틴 퍼키에게 (1945년 7월 4일)

친애하는 누나.
내가 잘지내고 있고 내 배에 시간에 맞춰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비록 기차가 약간 늦긴 했지만-을 알리기 위해 누나에게 몇 줄의 글을 쓰는 것말고는 아무 것도 할게 없어. Fred와 Carver, 그리고 다른 모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 아마 다들 잘지내고 있길 기대해. 어머니와 아버지도 보통 때처럼 평안히 계시겠지? Fredie에게 에드 삼촌이 안부전하고, 그가 좋은 소년이 되길 바라고, 전쟁이 끝나면 다시 보러가겠다고 얘기해줘.

어제밤과 그저께 밤에는 동료들과 아주 재미있는 일을 벌였었어. 우리 배의 바로 맞은편에 펜사콜라가 있었거든. 그건 우리 배와 거의 비슷한 중순양함이야. 하하! 우린 배끼리 서로 감자와 양파를 던지면서 어느쪽이 상대편 수병들을 더 많이 나가떨어지게 할 수 있나 시합을 했었지. 우리는 펜사콜라의 9명을 쓰러뜨렸지만 그들은 우리들 중 누구도 쓰러뜨리지 못했어. 그들은 우리 동료들 중 몇 명 정도를 맞추긴했지만 우리들은 그렇게 많이 다치진 않았어. 마침내는 아무 것도 던질게 없어졌고, 그래서 우리들은 식기실에 들어가서 컵과 그릇들을 운반하기 시작했지. 그것은 각 배의 수병들이 부두 바깥에서 만날 때까지 계속됐고,
그리고....

사랑해.

-동생이-


에드는 이 편지를 쓰기 전에 휴가를 다녀온 모양입니다. 아마 사랑하는 가족들과 집을 다시 볼 수 있었으니 정말 즐겁고 아쉬운 시간을 보냈겠죠. 한편 펜사콜라와의 감자던지기 싸움은 전시의 군인들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재밌는 에피소드입니다. 아마 말줄임표 이하의 부분에서는 부두에서 쌍방의 승조원 사이에 가벼운 난투극이라도 벌어졌겠죠.


[카툰 : 당시의 군인에게 휴가란....]


3. 다른 시각 : 얼튼 필립스의 편지

에드의 생각만이 당시 수병들 전부를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와는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죠. 여기서 소개하는 얼튼 필립스는 에드와 마찬가지로 인디애나폴리스에서 근무하던 기관과 수병입니다. 당시 나이 23세로써 동부 출신의 기혼자였죠. 그의 편지는 에드의 다섯 번째 편지와 비슷한 시기에 쓰여졌고 비슷한 체험을 말하고 있지만 그 어조는 에드와 사뭇 다른 생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얼튼 필립스와 그의 아내, 그리고 아들]

1) 얼튼 필립스가 그의 누나와 가족들에게 (1945년 5월 19일)

친애하는 누나, 그리고 우리 가족들에게.
우린 다시 마레 아일랜드(뉴욕)의 해군공창으로 돌아왔어. 에일렌(아내)은 전에 있었던 곳에 방을 하나 얻었지. 돌아오느라고 꽤 시간이 많이 걸렸어. 오는동안 기차를 3번 갈아타고 2번 정도 도중하차를 해야했거든. 한번은 리틀록, 그 다음은 아마릴로(텍사스주)에서 말야. 멤피스에서는 휴가증을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별 탈은 없었어.

우린 어떤 면에서는 꽤 운이 좋았고 또 한편으로는 운이 나빴던거 같아. 누나가 우리가 받았던 피해에 대해 상당히 궁금해하는걸 알고있는데, 이제 내가 집에 가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줄게. 우린 처음에 이오지마에 갔었어. 거기선 우리 해군들은 별일 없었지만 상륙한 해병대 친구들은 누나도 신문에서 봤다시피 꽤나 힘든 일들을 겪어야만 했지. 그다음에 우린 2월 16일부터 17일까지 도쿄를 폭격한 항모부대와 같이 있었어. 정확히 3월 몇 일인진 모르겠지만 최소한 4월 1일까지는 계속 그랬던거 같아.

우리 배가 피해를 입었을 때는 오키나와에 있었어. 3월 31일에 저 미친 일본 자살기 1대가 우리 배를 강타했지. 그 비행기는 250kg 폭탄 2발을 달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격돌시에 폭탄이 터지지 않았어.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 난 오늘 이렇게 편지를 쓰지도 못했을꺼야. 오웬즈비(동료)와 난 그게 떨어졌을 때 8m밖에 떨어져있지 않았었거든. 아무튼 2발중 1발은 갑판 2개를 뚫고 연료탱크 안에서 폭발했고 나머지 하나는 함저까지 도달한 다음 불발돼버렸어. 내 사물함이 있던 격실이 침수됐고 내 옷도 다 물에 잠겨버렸지. (비록 해군이 나중에 다시 보급해주긴 했지만)

음.... 이게 지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사건들이야. 난 누나나 식구들이 이걸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걱정스럽게 만들지 않길 바래. 우린 그때 방심하고 있었고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폭탄에 맞진 않았을꺼야. 승조원 1,400명 중에 9명이 죽었어. 그러니까 아마 누나도 우리가 운이 좋다고 생각할꺼야. 음... 아마 내가 써서는 안될 얘기들을 여기 써버린 것 같아. 그렇지만 난 누나가 이 사건들을 남들에게 퍼뜨리지 않을거라 믿어.

그건 그렇고 에반스(다른 함대에 복무중인 동생), 네가 거기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그렇게 해. 해군에 있는 사람이라면 복무를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꺼야. 난 여기 있는 많은 친구들이 복무연장을 원한다고 생각해. 나도 그렇게 하고싶었지만 차이를 실감하는건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지. 네가 새로운 배에 타거나 상위 계급이 좀더 필요한 배로 옮기지 않는 이상 진급기회는 흔치 않아. 나도 지금 제법 진급속도가 빠르다고 여겨지는 배에 속해 있지만 여기서 더 진급할 수 있을거 같진 않아. 벌써 예전에 부사관 진급시험에 통과했지만 지금 이 배에 있는 하사들 몇 명이 전속되지 않는 이상은 실제로 진급이 되긴 어려울 것 같구나. 현재로써는 그렇게 될 전망은 거의 없어보여. 그러니까 넌 지금 있는 곳에 계속 머무르도록 해. (후략)


이 편지는 에드의 다섯 번째 편지와 마찬가지로 3월 31일의 가미가제 공격을 겪은 후에 쓰여진 편지입니다. 그러나 에드가 그 사건을 "지옥이나 다를 바가 없어"라고 표현했던 것과는 달리 얼튼은 이 편지에서 그 사건을 마치 대수롭지 않았던 일인양 묘사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사건에 대해 에드가 그의 감정을 (최소한 누나에게만은) 여과 없이 드러냈던 반면 얼튼은 좀더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이것은 그가 전쟁에 대해 그다지 두려움이 없었거나 혹은 좀더 저항력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단서입니다.

이런 태도는 군복무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에드가 군복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들을 내비쳤던 반면, 얼튼은 진급과 장기복무를 고려하고 있으며 이는 그가 군복무에 대해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아마 기혼자였기 때문에 직업군인의 길을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4. 맺음말

개인적으로는 이 소재를 살려서 더욱 완성된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만, 제 역량으로는 아직 무리인 듯 합니다. 아직 좀더 정진해야될 것 같군요.

어쨌거나... 에드의 편지에 나타난 다양한 사례와 생각들은 - 가족에 대한 그리움, 군대 밥에 대한 불신, 여성에 대한 관심 등 - 오늘날의 군인들이 늘상 하는 생각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군복무와 전쟁은 힘들고 고된 일이었으며 생활하면서 겪는 다양한 일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죠. 과거의 일들이 화석화된 기록이나 거대한 통계에 묻히지 않고 이렇게 현재의 우리와 공유될 수 있는 부분으로 여겨질 때에 역사와 밀리터리는 더욱 더 재밌고 의미있는 것으로 다가오는게 아닐까요. 한편으로 에드와 얼튼, 두 수병간의 입장 차이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란게 "그들은 ∼했다"라고 일률적으로 정의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같은 시기에 같은 함정에서 근무했던 비슷한 계급의 두 사람조차 그러할진대 세계 곳곳에 퍼져있던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단 한마디의 말로 결정짓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일일런지요.


p.s. 이 글의 두 주인공들은 그뒤 어떻게 됐냐면.... 두 사람 모두 곧 전쟁이 끝나서 집에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왔지만, 아시다시피 인디애나폴리스는 1945년 7월 30일에 티니안섬 근해에서 일본 잠수함의 어뢰에 피격되어 침몰되고 말았습니다. 피격직후의 사망자도 많았고 며칠간의 표류기간동안 지쳐 쓰러지고 상어에게 당하는 등 큰 인명피해로 인해 생존자는 총 승무원 1,199명중 겨우 316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에드와 얼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돌아가고싶어 했음에도, 그들은 결국 돌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전쟁은... 보통 사람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때로는 그것만으로 넘겨버리기엔 사람들에게서 너무나도 많은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가곤 합니다. 각자의 인생, 각자의 사랑하는 사람, 각자의..... 전장에서 숨져간 모든 이에게 평안과 안식이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곽차섭, 『미시사란 무엇인가 : 역사학의 새로운 가능성』, 2000, 푸른역사
- http://members.tripod.com/IndyMaru/indymaru8.htm
- http://www.history.navy.m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