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과거인들의 바다에 대한 관념이란 대체로 이와 같았습니다]
과거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바다란 도무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12세기 이전까지는 먼 바다에는 거대한 괴물과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가 있다는 믿음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고, 대항해시대가 열리며 대양 항해가 일반화된 후에도 바다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죠. 항해에 있어서 자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시절에는 악천후나 무풍으로 배가 전멸하는 경우도 많았고 자연히 뱃사람들은 바다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으로 여러 가지 금기와 미신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물론 과학의 발달로 인해 오늘날 그런 금기와 미신들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지만 어떤 것들은 이미 본래의 의미는 상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의례"로써 살아남기도 했습니다. (적도제 등) 오늘은 그런 미신/금기들중 조금 흥미있는 것들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2. 해군과 고양이
고대로부터 고양이는 높은 곳으로부터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는 능력, 어둠 속에서 빛나는 눈, 털끝에서 발하는 빛(실은 정전기) 등 고대인의 관점에서 볼 때 신비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때문에 일종의 마력을 가진 동물로 여겨져왔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BAST'라는 여신으로 숭배하고 있었는데 이 여신은 9개의 생명이 있다고 여겨졌고, 그때문에 이집트인들은 고양이를 죽이면 9년간의 불행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북유럽 전설에서는 주신 오딘의 아내 프리가 (천국의 여신 겸, 사랑과 가정의 신)는 2마리의 고양이가 끄는 전차를 타고 지옥의 신 헬을 이기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유럽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프리가는 마녀로 전락했고 그녀의 고양이들 역시 악마적 존재로 변모했죠. 전차를 끄는 2마리의 고양이는 7년간의 역할을 끝내고 밤이 되면 검은 말이 되어 마녀를 실어 달렸다고 여겨졌던 것이죠. 이때부터 검은 고양이는 마녀의 변신이며 앞을 횡단했을 때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는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고대의 선원은 고양이를 신비적 존재로 여겨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고양이를 죽이면 비극이 일어난다고 여겨졌고, 누군가가 죽거나 다리가 부러지거나 마스트에서 떨어지는 등의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그 전날에 고양이가 죽었다든가 바다에 빠졌다든가 하는 '징조'가 있다고 믿었죠. 한편 고양이의 행동은 항해중 해상의 변화를 나타내는 다양한 징조로 해석되는 일도 많았습니다. 갑자기 혼자서 울 때는 마녀를 부르는 것, 카페트나 가구 주변에서 놀 때는 바람이 강해지는 것, 홋줄을 타고 노는 것은 폭풍이 오는 것, 재채기를 하면 비가 내리는 것, 기지개를 켤 때 앞발이 교차하거나 난로에 꼬리를 향할 때는 거친 날씨의 징조, 털고르기를 할 때는 배에 병이 유행하는 것, 리깅에 오를 때는 배가 가라앉는 징조,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자고 있을 때는 온화한 바람이 불 징조 등등이었죠.
[채찍질을 당하는 수병. 저기서 사용되는 것이 고양이 채찍입니다.]
[(좌)고양이 채찍 / (우)닻의 각 부분에 붙은 cat- 이라는 명칭들]
이처럼 범선시대에 있어서 고양이는 반드시 환영받는 친근한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신비적 힘을 갖고 있다고 여겨졌지만 그것이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만 작용하는건 아니었으니까요. 때문에 후대와 같이 고양이가 배의 마스코트가 된다던지 하는 일도 없었고, 오히려 배에서 미움받는 장비나 행위에 고양이와 관련된 단어가 붙는 일이 많았습니다. 범선 시대에는 죄를 지은 선원에 대한 처벌중 채찍으로 등을 사정없이 때리는 것이 있었는데 이때 사용하는 채찍이 통칭 "고양이 채찍(The cat-o'-nine tail)이라고 불리는 물건이었습니다. 이것은 고양이가 9개의 생명을 가졌다는 전설을 따라 9갈래의 줄이 붙어있었고, 각각의 줄에 3개의 매듭이 붙어서 고통을 부가시키는 형태의 채찍도 있었죠. 이 채찍질에 대해서는 일전에 「한 전함을 통해 본 오스트리아 사회사」에서도 짧게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20대 이상을 맞으면 건장한 남자라도 널부러지기 시작하고 40대 이상을 맞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가혹한 형벌이었습니다. 그만큼 이 형벌에 대한 선원들의 증오는 대단했고 그런 형벌의 도구에 고양이의 이름이 붙은 것을 보면 고양이에 대한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닻을 올리는 힘든 작업과 관련하여 Cathead, Catfall, Catblock, Catdavid 등의 명칭이 붙기도 하였고 고양이한테나 주기 알맞은 싱거운 홍차나 음료라는 의미로 Catlap이란 단어가 쓰이기도 했으며, Catnap은 불충분한 잠, Cat'spaw은 미풍 또는 무풍이라는 의미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주 : 닻을 한자로 표현한 단어중 "묘(錨)"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의 어원은, 닻의 갈고리가 고양이의 발톱처럼 물밑을 잘 헤집었기 때문에 닻을 목묘(木猫)라고 하다가 그 후 쇠로 만든 닻이 쓰이자 목묘는 철묘(鐵猫)가 되고, 철(鐵)자와 묘(猫)자가 하나로 합쳐져서 묘(錨)라는 글자가 생겼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서구에서와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동양권에서도 닻을 고양이와 관련하여 생각했다는건 재미있군요.)
[마스코트가 된 고양이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고 항해에 대한 지식이 발달하면서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은 점차 엷어져 갔습니다. 고양이는 이제 두려움의 대상이기보다는 본래 목적인 쥐잡기용의 실용적 수단으로써 대해지거나 행운과 상징성을 위해 함의 마스코트로써 이용되는 일이 더 많아지게 되었죠. 게다가 과거와는 달리 검은 고양이를 태우는 것도 상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런 마스코트들중 유명한 것이 "Fred Wunpound" 라는 이름의 검은 고양이입니다. (1파운드로 샀으므로 Wunpound.^^;;) 최초에는 HMS Hecate에 임시로 탑승했지만, 최종적으로는 400,000km 이상의 장거리 항해 기록을 갖게 된 베테랑 고양이가 되었고 이 기록에 의해 정식 보직(Mouser : 쥐잡기병?? -_-;;)과 관리자 배지를 지급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 프레드가 생선가게에서 물고기를 훔치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 때문에 Hecate호의 마스코트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했다고 하여 "강제예편"당한 다음, 해군이 운영하는 육상의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1976년에 편하게 죽었다고 하는군요.
물론 마스코트로서의 고양이 못지않게 전통적인 두려움도 "전설"이라는 형태로 살아남았습니다. 1955년, 사모아 제도에서 Joyita라는 연락선 1척이 출항 후 행방불명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뉴질랜드 공군과 인근 구조대에 의해 즉각 수색이 실시됐지만 배는 발견되지 않다가 사건 발생후 2개월이 지나서야 사모아 제도에서 북으로 멀리 떨어진 어느 섬에서 난파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발견 당시 배는 완전히 폐선이 되어 있었고 승무원 및 승객의 흔적은 단 1명도 발견되지 않았죠. 이후 출항 직전에 배의 마스코트인 고양이가 돌연 미친듯이 울다가 배를 뛰쳐나와 마을 쪽으로 도망쳐 버리는걸 봤다는 소문이 돌면서 Joyita의 사고를 고양이와 관련짓게 되었죠.
[(좌)폐선으로 발견된 Joyita호 / (우) 코사크에게 구출될 당시의 오스카]
또한 전함 비스마르크의 마스코트 고양이 "오스카"에 대한 전설도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비스마르크가 침몰한 직후 수많은 독일인 생존자들이 영국 함대에 의해 구조되던 가운데 구축함 코사크가 비스마르크의 부유물에 타고 있던 검은 고양이 한 마리(오스카)를 건져올린데서 시작합니다. 코사크는 고양이가 행운을 가져온다는 믿음에서 이 고양이를 배의 마스코트로 삼았으나 5달후 코사크는 독일 잠수함에 의해 격침되었습니다. 물론 오스카는 또다시 살아남아서 항모 아크로얄의 마스코트가 되었죠. 하지만 3주 후에 아크로얄도 격침되었고 오스카는 이번에도 살아남았으며, 영국해군은 이제 이 고양이를 어떤 배의 마스코트로도 삼는 것을 금지하고 고양이를 육상의 요양원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오스카는 그곳에서 편안한 여생을 살다가 1955년에 죽었다고 하나 일부 수병들은 고양이가 9개의 생명을 갖는다는 믿음에 따라 오스카가 어딘가에서 아직도 살아있을꺼라고 믿는다고 합니다.
이상의 전설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제가 다룰 문제가 아닙니다.(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부정적입니다만.) 그러나 저런 전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여전히 즐겨 회자된다는 것은 전설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고양이의 신비적 능력에 대한 "관념·믿음"이 아직도 일부분이나마 살아있다는 것이겠죠.
(*주 : 전설에 대한 관념이 살아남은 것과는 달리, 마스코트로서의 관습은 1978년에 국제법이 질병 전파 등의 이유로 동물의 승선을 금지하면서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3. 예포와 홀수
해군에서 가장 정중하게 경의를 표하는 예법으로서 예포를 발사하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예포는 내빈이나 상급자에 대한 예의를 나타내는 표시로써 사용되나, 과거 해군에서는 예포를 발사함으로써 이쪽에 무기나 상대방을 해칠 의사가 없음을 표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과거의 악수가 칼이 없음을 보여주는 표시였던 것처럼) 예포가 시작된 것은 대략 포탄 1발을 쏘는데 20분 이상이 되는 시기였다고 하며 장전된 포를 모두 발사함으로써 그동안에 이쪽이 상대방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의사표현을 했던 것이죠. 이러한 예포는 최대 21발을 기준으로 하며 예포를 받는 대상의 지위에 따라 발사수를 조정합니다. 보통은 국가원수급이 21발, 장관이나 대장이 19발, 차관·중장이 17발... 이라는 식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중요한 점은 (아마 눈치채셨을지도 모르지만) 예포는 무조건 홀수 단위로 발사한다는 것입니다.
[(좌)19세기 말의 예포 / (우)현용의 예포를 사격중인 모습]
이것은 짝수를 기피하는 고대로부터의 관념에서 비롯된 것인데 배에서 의식 때와 예포시에 홀수를 준수치 않으면 배에서 중요한 인물인 선장, 항해장 또는 포술장 중에서 누구든지 1명이 항해중에 사망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21발 이상의 많은 예포를 그것도 짝수로 쏜적이 있긴 했습니다. 1937년, 영국 국왕 죠지 6세의 대관식 때 62발의 예포를 쏘았는데 그것은 당시 황제의 연령 41세를 나타낸 41발과 기존의 예포 21발을 합하여 62발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전통적인 짝수의 예포 금기를 범한 것으로써 해군 일각에서 논란이 되었는데 당시 런던 타임즈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평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짝수 예포에 대한 미신이 산 사람에 대하여 불길하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대한 의식에 있어서 고대로부터의 관습을 무시한다는 것은 유감된 일이다."
위 논평의 어조에서 보이듯 이미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더 이상 짝수 예포의 저주 따위는 믿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홀수 예포의 관행은 범해지지 않을거라고도 예상할 수 있겠죠. 내부엔 담긴 의미는 벌써 사멸했지만 그 행위 자체는 이제 관습이 되어 자체의 생명력을 지니게 됐으니까요.
4. 그 외의 금기 및 미신
위에 언급한 것들 외에도 여러 가지 금기나 미신들은 많습니다. 이를테면 배에 여자를 태우는 것을 금지하는 것 등이 그렇죠. 그러나 현대에는 많은 나라에서 상선이나 어선, 심지어 군함에까지 여성을 승선시키고 있고 우리 해군에서도 작년에 최초로 여군 부사관들이 함정에 승선하는 등, 여성에 대한 금기는 공식적으로는 완전히 사멸해버렸습니다. 그러나 잠수함에 여성을 태운 후 불길한 일들이 일어나는 사건 등을 묘사한 영화가 제작되는 등 저런 관념은 아직도 어느 정도 남아있다고도 할 수 있겠죠.
[(좌)한국 해군의 여성 부사관들 /(우)영화 「Below」의 한 장면]
또한 숫자에 대한 금기도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한자의 죽을 사(死)와 연관하여 숫자 4를 금기시하고 있으며 우리 해군에서도 숫자에 대한 금기사항이 나름대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즉, 함정번호를 매길 때 4자는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건물 층수를 포함해 숫자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사물에도 4자를 피하고 있다고 합니다. 해군 창설 초기에는 함정번호에 이러한 금기사항이 없었으나 6·25전쟁을 거치면서 4자가 함정번호로 들어간 함정들이 작전 임무 수행 중 침몰하는 불운이 겹치게 되자 이것이 우리의 전통관습인 4자 기피현상과 맞물려 해군에서도 점차 4자를 함정 번호로 사용하지 않는 관습으로 굳어지게 됐다고 하더군요.
항해 중에 휘파람을 부는 것을 금하는 것 또한 오랜 관행입니다. 과거의 선원들은 폭풍우를 바다의 신이 노해 바람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했고, 따라서 배 위에서 바다의 신이 부르는 바람 소리와 비슷한 휘파람 소리를 내는 것은 바다의 신에게 불경하는 것이고 이 소리를 들은 바다의 신이 노해 바람을 일으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 더해 영국해군에서는 휘파람 소리가 함내의 주요 명령 전달 수단으로 이용되는 휘슬 소리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휘파람 불기를 금하기도 했습니다. (휘파람 소리를 사관 집합을 의미하는 휘슬 소리로 착각하여 갑자기 장교들이 상갑판에 몰려온 해프닝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다만, 승조원중 가장 어린 사람과 조리장만은 제한적이나마 휘파람을 불 권리가 있었습니다.
여하튼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면 해군 내에서 여러 종류의 금기나 미신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함정 명명시에 의도적으로 불운한 이름을 피하는 경향은 아직도 남아있고 (덕분에 후드나 블뤼허, 무쓰 같은 이름은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군요-_-;;) 취역시부터 불행을 타고나는 "불운함"에 대한 믿음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첨단장비와 과학기술로 무장한 시대의 해군 속에서 과거 시대의 흔적을 여전히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은, 문화란 그것을 낳은 토대가 사라져도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한편으론 참 황당하기도 하군요.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해군 관습과 예법』, 1991, 해군본부
- http://www.cffc.navy.mil/customs.htm
- http://www.hms.org.uk/nelsonsnavycat.htm
- http://battleshipbismarck.hypermart.net/cat_oscar.htm
- http://www.history.navy.mil/faqs/faq40-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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