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나가는 엔랴쿠사, 혼간사를 비롯한 사원 세력을 타도하기 위해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보호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처음에는 이를 답습하여 기독교를 널리 보급했다. 더구나 도오툐미 정권의 유력한 지주였던 교토, 오사카, 사카이의 상인들이 해외 진출을 열망하고 있었고, 히데요시는 해외 무역의 이익을 수중에 넣어 통일 정권의 위세를 확대하려 했으므로 적극적인 대외 방침을 펼쳤다. 1588년 해적 정지령을 공포한 히데요시는 나가사키, 교토, 사카이의 상인들에게 주인장을 내려 무역 발전을 기대하는 조치를 취했다.
히데요시와 기독교 정책은 처음에는 선교사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선교사의 요청에 따라 오사카의 성하 도시에 토지를 주어 교회 건립을 허가하고, 또 가신인 고니시 유키나가나 구로다 요시타카가 기독교를 믿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런데 1587년 규슈 정벌을 마치고 돌아오던 히데요시는 하카타에서 갑자기 선교사 추방령을 내렸다. 선교사는 모두 20일 이내에 국외로 퇴거하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규슈 북부에서는 포교를 둘러싼 여러 가지 분쟁이 있었다. 영주에게 신자들이 복종하지 않고 포르투갈선은 일본인을 노예로 남방에 매매하는 등의 사정이 있었다. 히데요시는 규슈에서 기독교 포교 실정을 견문하고 기독교가 자신의 통일 지배에 큰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여 이 명령을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히데요시의 기독교 금지 정책은 철저하지 못했다. 남만 무역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포교와 무역이 불가분의 관계인 기독교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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