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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깃발의 유래

구름위 2012. 12. 1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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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북부에 톨텍족의 도시가 세워진 것은 950년경의 일이다.

톨텍족은 일찍이 마야인들이 고도문명을 이룩하고 있던 유카탄 반도에 침입하자마자

마야의 도시를 점령하고 그곳을 주변 일대의 근거지로 삼았다.

 

호전적이었던 툴텍족은 마야의 자비롭고 온건한 신들을 내쫓고 피에 굶주린 신을 섬겼다.

그리고 마야의 장인들에게 자신들이 섬기는 무서운 형상의 신들을 조각하도록 명령했다.

 

  

 
11세기가 되자 마야인과 톨텍인들의 문화는 차츰 혼합되었으나 잔인한 경향만은 그대로 남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오늘날 해적깃발의 기원이 된 엑스자 모양의 뼈다귀와 해골 무늬였다.

톨텍족은 신전내부를 불길한 무늬로 장식했는데, 해골은 공포 분위기 조성을 위해 자주 사용되던 소재였다.

훗날 카리브해에 출몰한 해적은 이 신전 장식에서 힌트를 얻어 해골무늬를 깃발에 그려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해적선에서 해골무늬 깃발이 유행 되었을까?

본래 버커니어는 짐승을 잡아 그 고기를 훈제하여 생계를 꾸리는 인디오들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스페인 침략자에게 박해를 받던 인디오들이 할 수 없이 해적이 되자 해적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이들과 유럽계 해적들이 다투어 해적질을 함에 따라 종종 해적간에도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했지만,

카리브해 일대에는 스페인의 영토가 많았으므로 스페인 선박들이 주된 약탈 대상이 되었다.

돛대를 눕혀 난파선으로 가장하거나 초라한 어선으로 꾸며 스페인 상선에 접근한 다음,

상대의 허를 찔러 습격하는 것이 버커니어의 상투적인 수단이었다.

 

 

 
17세기에는 해적들의 전성기로 이 시기에 행해진 약탈은 매우 심각했다고 한다.

이후 18세기 초에는 공포 분위기 조성을 위해 해골이 그려진 해적 깃발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인디오 출신으로 추정되는 해적이 툴텍족 신전 무늬에서 힌트를 얻어 불길한 느낌을 주는 깃발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 해골깃발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나타내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이미 해적에 진저리를 치고 있던 상황에서 불길한 해적 깃발을 본 사람들은

지레 질겁을 하고 우왕좌왕하였기 때문에 해적은 더욱 손쉽게 약탈할 수 있었다.

그러자 해적선마다 앞 다투어 해골 깃발을 내거는 것이 유행이 되었으며,

뒷날 해적을 묘사한 소설이나 영화에서 해적선의 상징으로 해골 깃발이 쓰이게 되었다.

 

이 외에 다른 가설들도 많았지만 가장 설득력이 있는 내용중에서 골랐습니다.

 

  


[출처 : http://hokisimbox.co.kr/tech1/read.cgi?board=h-sample&y_nu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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