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공격 우선순위
1. 프랑스의 파괴 : 히틀러가 가장 목표로 하는 것은 프랑스의 몰락이었다.
1차 대전 이후 베르사유조약으로 빼앗긴 영토와 자존심 회복은 독일인의 숙원이었다.
2. 공산주의 전멸 : 유럽에서 가장 극심한 독일내 공산주의 세력을 일소하고
그 숙주역할을 하는 소련을 전멸시킨다. 파시스트의 주적은 공산주의였다.
3. 유대인의 축출 : 히틀러는 유대인이 독일에 기생하며 국민의 고혈을 짜낸다고 여겼다.
그래서 유대인 전체를 동유럽 또는 아프리카의 한 섬으로 이주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전황이 불리하게 전개 될 경우 차선책으로 전쟁을 선동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
1. 군비확장 : 히틀러는 재군비를 선언하고 군수공장들을 확대시켰다.
이것은 대량의 실업사태를 해결하는 미국판 뉴딜정책이나 다름없었다.
독일 국민은 기뻐했다. 약간의 자유를 제한 받더라도 일자리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외로부터 들여오는 원자재를 외상으로 들여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배가 불렀지만, 정작 국고는 바닥나고 있었다.
탱크와 탄약을 산처럼 쌓아 놨으니 이것을 소비할 곳이 필요했다.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 이후
1. 소련과의 전선밀착 : 주적 소련을 치기 위해서는 전선이 가까워질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폴란드를 동서로 분할하여, 소련과의 전선을 최대한 끌어당긴 것이다.
2. 프랑스의 도발 : 히틀러는 폴란드 점령까지를 1차 계획의 완성으로 보고 숨고르기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겁쟁이로 알았던 영국과 프랑스가 예상을 뒤업고 선전포고를 했다.
히틀러는 가슴이 두근거렸고, 프랑스가 40개 사단으로 밀고 들어오자 깜짝 놀랐다.
당시 독일군의 주력은 동부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25개 사단만 서부로 투입하였다.
이때 서부 전선의 독일군 장교는 개미떼 같이 몰려든 프랑스군을 보고 잔뜩 겁을 먹었다.
3. 프랑스의 헛발질 : 프랑스는 전쟁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농부들을 징집하여 병사 두 명당 소총 한 자루와 탄약 열 발씩을 주었다.
그리고 과감히 독일로 진격하여 8km까지 전진한 뒤 그 자리서 방어선을 구축했다.
프랑스 군부는 그것이 독일군의 침공을 미리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4. 드골의 적극전 주장 : 보병전력의 한계를 절감한 드골은 전차전을 요구했다.
대규모의 전차를 생산하여 적극적인 공세를 가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드골의 요구를 묵살했다.
▶전쟁의 볼모가 된 유대인
1. 히틀러는 전황이 불리해지자 유대인을 말살하기로 했다.
독일 뿐만 아니라 동유럽의 유대인들까지 무차별로 수용소로 끌고 왔다.
하루가 멀다하고 수 천명의 유대인들이 죽고 새로운 유대인들이 보충됐다.
2. 반격에 성공한 연합군이 폴란드의 독일군 시설들을 폭격했다.
하지만 연합군은 수용소와 연결된 철로는 절대 폭격하지 말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것은 자칫 연합군이 유대인을 위해 싸운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연합군은 독일의 빠른 항복을 바랬기 때문에 그들의 결사항전을 염려했다.
결과적으로 연합군의 과잉해석으로 유대인의 불행은 더욱 격화되었다.
▶히틀러와 핵폭탄
1. 히틀러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원자탄의 효용가치를 깨달았다.
그는 이것을 개발하기 위해 유능한 과학자들을 모두 끌어 모았다.
하지만 4대 핵심 과학자들 중 아인슈타인, 페르미, 보어가 미국으로 건너갔고
마지막 남은 기대주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에 머물면서도 히틀러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2. 히틀러는 결국 나머지 2류 과학자들에게 지하비밀 공장을 만들어주고
원자탄 개발에 박차를 가하라고 했다. 또 이 계획을 위해 노르웨이까지 침공했다.
원자탄 개발에 필수적이었던 최고 품질의 '중수'가 이곳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노르웨이를 점령하자 마자 중수시설을 두 배로 확장하고 생산량을 대폭 늘렸다.
▶영국과 미국의 반응
1. 미국보다 영국이 원자탄 개발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영국의 헛발질에 비해 미국이 실제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2. 원자탄 개발에 아무 관심이 없던 루즈벨트는 아인슈타인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경계를 늦춰서는 안됩니다. 필요하다면 바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제서야 겁을 먹은 루즈벨트는 서둘러 '원자탄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에게 참여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한다.
3. 영국은 미국의 원자탄 개발에 공동으로 참여하면서도
독일의 원자탄 개발을 막으려고 모든 정보력을 총동원했다.
그리고 노르웨이에서 독일로 운반되는 중수 수송선을 파괴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그들이 찾아낸 독일의 지하 원자로 시설은 겨우 초보 수준이었다.
▶히틀러는 미친 것일까?
1. 히틀러는 혼자 미친게 아니었다. 독일인들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독일인들이 불황을 타개하고 세계를 정복해가는 그에게 열광하기 시작하자
그는 마치 루이 14세처럼 자신이 곧 독일이라는 망상에 빠지게 되었다.
2. 히틀러는 자신이 죽으면 게르만인도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 믿었다.
1차 대전에서 선고받은 집행유예가 이번 전쟁의 패배로 소급적용 된다면
독일이라는 나라는 석기시대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게 그의 판단이었다.
따라서 그는 이왕에 망할바엔 아예 자신과 게르만인 전체가 증발하길 바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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