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우리 역사 이야기

로마의 3대 망한 전쟁

구름위 2012. 12. 1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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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전, 고대사에서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운 나라는 당연히 로마였다.

로마는 당시 최고의 덩치들을 지중해에 가라앉히고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병사들의 함성은 하늘을 찔렀고, 수 억 리터의 피가 지중해를 적셨다.

 

하지만, 로마사에서도 흥행에 참패한 전쟁이 있었다.

그렇게 많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이 울리기도 전에 끝난 전쟁!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말 한 마디로 끝난 전쟁' 혹은

'로마의 3대 망한 전쟁'이라고 부른다.

 

1. 마크리누스 반란

 

서기 215년, 로마의 황제는 삽 질이 특기인 카라칼라였다.

그는 '카라칼라 칙령'으로 시민권을 남발하였고 국고마저 바닥내고 있었다.

황제는 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파르티아로 원정을 떠났다.

 

황제는 전쟁의 명분을 위해 파르티아에 무리한 요구들을 쏟아냈다.

평상시 같았으면 파르티아도 이 요구를 무시하고 당장에 달려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파르티아는 극심한 내분으로 군사력이 약화된 상태였다.

그들은 할 수 없이 로마의 요구를 120% 만족시켜 주었다.

 

"어어~ 이러면 곤란한데"

황제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알렉산드리아로 휴가를 떠났다.

그런데 그곳의 청년들이 황제를 가리켜 '삽질만 해댄다'며 비난하였다.

이에 열받은 황제는 이들을 모두 체육관에 몰아 넣고 학살해 버렸다.

 

그러자 흥분한 시민들이 모두 들고 일어났다.

카라칼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단호한 진압을 명령했다.

순식간에 수 천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거리는 붉게 물들었다.

병사들과 시민들은 그런 황제를 점점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때 파르티아에 쿠데타가 일어났다.

저자세를 보인 형을 죽이고 동생이 왕좌에 오른 것이다.

카라칼라는 이것을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다. "앗싸~ 신나는 전쟁이다~"

 

군사력이 형편없었던 파르티아군은 후퇴를 거듭했다.

카라칼라는 승리에 도취되어 계속 'GO'를 외쳤다. "전진 또 전진~!!"

그렇게 한 참을 전진하다 보니 어디가 어딘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너무 깊숙이 들어왔나?"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보급로는 끊겼고 안전한 귀환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아~ 이를 어쩌면 좋아~" 황제는 안절부절했다.

 

카라칼라는 급한김에 파르티아에 강화를 제의했다.

"이왕이면 파르티아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염!"

파르티아의 사위가 되고 싶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 와중에서도 황제의 삽질은 계속되었다.

숙영지에서 문제를 일으킨 병사들을 발가벗기고 심한 모욕까지 준 것이다.

이렇게되자 병사들은 이제 황제의 얼굴만 봐도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결국 병사들은 근위대장인 '마크리누스'에게 쿠데타를 제의했다. 

그리고 다음 해, 행군중에 황제를 에워싼 호위병들이 그를 살해했다.

병사들은 황제의 죽음을 사고사로 위장하고 마크리누스를 황제로 추대하였다.

(마크리누스 : 이하 마크리)

 

마크리는 파르티아 대군을 맞아 두 번의 전투를 치렀다.

첫 번째는 패배했지만, 두 번째는 대등한 상태에서 무승부를 찍었다.

결정적 승패를 가르지 못한 양측은 겨울이 다가오자 숙영지로 돌아갔다.

 

이 상황에서 마크리는 빨리 로마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곳에서 시간을 끌다가는 또 누가 황제를 자처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크리는 은밀히 파르티아와 접촉했다.

 

마크리의 의도를 간파한 파르티아는 이 기회에 많은 것을 요구하였다.

다급해진 마크리는 병사들 몰래 이 조약에 싸인해 버렸다.

이로써 로마는 필요 이상의 영토와 배상금을 물어주게 되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병사들의 불만이 들끓기 시작했다.

"뭐야! 저 자식도 카라쿨라와 똑같잖아!"

"괜히 황제로 추대했어, 이거 물릴 수 없을까?"

 

병사들의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마크리는 발이 묶여 버렸다.

"아~ 이거 어떡하지? 자칫하면 나도 죽게 생겼어~"

마크리는 이제 로마로 돌아가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이 사실을 시리아에서 알게 된 마이사는 복수를 결심한다.

그녀는 카라칼라의 이모였는데, 총명하고 리더십이 강한 여자였다.

게다가 시리아에 주둔한 병사들이 마크리에게 가장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상황은 마이사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그녀는 주둔군의 지휘관들을 자신의 저택에 초청하여

자신의 외손자를 왕실의 적통이라 칭하고 접촉을 활발히 벌였다.

황제의 핏줄이 살아있다는 소문은 오리엔트 전역에 퍼졌고

마크리에 대한 반감에 비례하여 외손자의 인기는 점점 높아갔다.

 

드디어 주둔군에서 외손자 엘라가발루스를 황제로 추대했다.

이 소식을 들은 마크리 진영의 병사들도 이에 호응하였다.

당황한 마크리는 자파 병사들만 이끌고 황급히 도망쳤다.

(엘라가발루스 : 이하 엘라가)

 

비록 도망은 쳤지만 아직까지 그는 공식 황제였다.

마크리는 황제의 이름으로 오리엔트 전역에 반란 진압을 명령했다.

하지만 지지층의 분열로 토벌군 편성에 시간이 걸리게 되었고

이 사이 마이사측은 더 많은 지지자들을 모을 수 있었다.

 

마이사는 군사적인 우위가 확실해지자 진격을 명령했다.

마크리도 병력을 재정비하고 최후의 결전을 다짐했다.

양측의 군대가 포진을 마치고 서로를 노려보며 공격 명령을 기다렸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독자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때 어린 엘라가가 의연한 표정으로 언덕위로 올라섰다.

양측의 병사들은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모두 주목했다.

 

엘라가는 마이사가 일러준 대로 행동했다. 

그는 병사들을 내려다 보며 여유있고 위엄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카라칼라의 아들이며 진정한 후계자다~!!"

 

이 한 마디로 승패는 갈리고 말았다.

마리크편에 서 있던 병사들이 모두 무기를 버린 것이다. (????)

그리고 양측은 같은 동족끼리 싸우지 않게 됨을 축하하며 서로를 얼싸 안았다.

이어서 마리크의 심복을 그 자리에서 살해했다.

 

솔직히 전투가 이렇게 끝나 버리면 곤란하다.

손에 땀을 쥐고 여기까지 페이지를 넘긴 독자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제작진은 서둘러 대본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간신히 살아난 마리크는 측근들과 함께 도망쳤다.

그리고 자파 원로원과 연합하기 위해 로마로 향했다.

병사로 위장한 마리크는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독자들은 다시 흥미진진하게 이 광경을 지켜봤다.

 

그런데 젠장! 소아시아에서 그 놈이 덜컥 걸려버린 것이다.

경계병 중에 눈치 빠른 놈이 있었다. 마리크는 서둘러 대본을 보여주었다.

"아직 2회분이 더 남았음. 생포해서 제작진에 보고할 것!"

 

그러나 그 경계병은 흥분을 잘하는 성격이었다.

"로마를 파르티아에 팔아먹은 놈을 살려두라고??"

경계병은 대본이고 뭐고 일단 마리크의 목을 댕강 잘라버렸다.

 

아 ㅠㅠ 결국 마리크의 내란은 이렇게 끝나버렸다.

"뭐 이딴 전쟁이 다 있어!" 흥행에 실패한 투자자들은 의자를 집어 던졌다.

이로써 마크리누스의 1년 통치는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이것이 독자들을 실망시킨 첫 번째로 망한 전쟁이다.

 

2. 막시미누스 황제

 

서기 235년, 로마는 흥망의 기로에 서 있었다.

게르만족의 침입과 사산조 페르시아의 발흥으로 국경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이런 때 전선에 나와 있던 알렉산데르 황제가 병사들에게 살해되었다.

게르만족에게 경제원조를 대가로 평화조약을 맺은게 화근이었다.

 

병사들은 자신들이 모시고 있던 막시미누스를 황제로 추대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군인들은 원로원을 무시하는 무소불위의 시대를 열게 된다.

나중에 이것은 로마의 쇠퇴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막시미누스 : 이하 막시)

 

막시는 62세의 나이로 황제에 즉위했다.

그는 불가리아 출신으로 아버지는 양치기였다고 한다.

막시는 건장한 체격과 강한 정신력으로 병사들을 압도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밑바닥 시절에 검투시합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고

황제의 눈에 들어 황제 막사의 경호원으로까지 승진하였다.

또한 전쟁에서도 항상 맨 앞에서 적진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에

병사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고 존경까지 받았다.

 

하지만 쿠데타로 황제가 네 번 바뀌면서 좌절을 겪었으며

또 기회가 왔음에도 옛 황제와의 신의 때문에 군복을 벗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 마크리가 살해되고 엘라가가 다섯 번째 황제로 즉위하자 그를 찾아갔다.

 

그때 이 철없고 멍청한 황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대가 30명의 병사와 시합을 벌여 숨도 헐떡이지 않았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여자들과도 서른 번을 계속 할 수 있느냐?"

 

이 말에 실망한 막시가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현명한 마이사가 '로마군의 유명인사이니 소홀히 하지말라'고 충고하여

황제는 마지못해 그를 대대장으로 임명하고 전방으로 내보냈다.

이후 막시는 그와 만날 자리를 극도로 피하게 된다.

 

이후 엘라가는 근위대의 칼에 죽고 4년 후, 알렉산데르가 즉위한다.

황제는 익히 그의 명성을 알고 있었으므로 신병 훈련대장으로 임명했다.

막시는 그곳에서 신병들을 마치 자식처럼 여기며 자애롭게 대해줬다.

그러다 결국 병사들의 쿠데타로 황제에 오른 것이다.

 

그의 즉위를 원로원들은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승인했다.

이들의 홀대에 실망한 막시는 전장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기로 했다.

아무리 정력가라지만 62세의 나이로 무엇을 보여준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화려한 성공을 거둔다.

그의 과감한 군사작전은 속전속결의 연속이었고 연승가도를 달렸다.

모처럼 임자를 만난 게르만족들은 궁지에 몰린 쥐처럼 도망치기에 바빴다.

로마군은 그들의 영토 깊숙히 들어가 초토화 작전까지 폈다.

 

3년 동안의 눈부신 전과로 라인강의 국경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렇게 우글거렸던 게르만족들은 이제 막시의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를 쳤다.

이것은 마치 왜군을 쓸어버린 이순신 장군의 모습과 흡사했다.

 

막시는 라인 전선에 만족하고 다음 목표를 도나우강으로 정했다.

전선을 이동하는 황제는 로마의 새로운 중흥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들뜬 병사들에 비해 원로원의 반응은 아직도 시큰둥했다.

 

서기 238년, 막시는 결국 이순신의 운명을 그대로 닮게 된다.

북아프리카 총독인 고르디아누스가 황제로 추대되어 원로원의 지지를 받은 것이다.

이 중요한 시기에 또 다시 반란이라니, 독자들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고르디아누스 : 이하 고르디)

 

당시 북아프리카를 다스리던 총독은 공명정대한 통치로 인망이 높았다.

온화한 귀족 출신이었던 그는 그 해 속주민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었는데,

이를 고맙게 여긴 속주민 대표들이 그를 황제로 추대한 것이다.

 

당시 그는 80이 넘은 고령이었는데도 이 제의를 선뜻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내용을 정중하게 편지로 써서 로마의 원로원에게 알렸다.

그러자 멍청한 원로원들이 앞 뒤 가리지도 않고 이를 승인해 버렸다.

"야만스럽고 품위에 떨어지는 막시는 황제에 어울리지 않아!"

원로원들은 이어서 막시를 '국가의 적'으로 선포했다.

 

고르디는 원로원 출신으로 사회 공헌도도 높은데다가

상당한 재력가였기 때문에 원로원의 구미에 딱 맞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고르디와 원로원의 명백한 실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막시는 크게 분노하였고  로마 진군을 명령했다.

이로써 도나우 전선의 게르만 전투는 개전 직전에 중단되었다.

결정적 순간에 철수라니! 도나우강의 게르만족은 쾌재를 불렀다.

 

한편, 북아프리카의 주둔군은 고르디를 인정할 수 없었다.

"존경하는 황제가 엄연히 살아있는데, 왜 니들 맘대로 바꾸는거야!!"

주둔군은 곧바로 6천의 병사들을 동원하여 총독 관저를 공격하였다.

 

총독을 지키는 1천의 수비대가 곧바로 격퇴되었다.

이어서 저항하던 고르디의 아들이 성 밖으로 내던져졌다.

순식간에 아들을 잃은 고르디도 후회할 틈도 없이 살해되고 말았다.

 

그러자 원로원은 경악하였고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원로원 중에 두 사람을 뽑아 공동 황제로 임명했다.

그리고 13세 밖에 안된 고르디의 손자까지 황제로 추가했다.

 

원로원은 이에 그치지 않고 로마 전역에 막시에 대한 악선전을 쏟아 부었다.

조직적이고 반복된 선전은 로마인들에게 제대로 먹혔다.

"막시가 황위를 찬탈했다메?"

 

결국 이 선전의 효과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나타났다.

진군하는 막시의 군대에게 주민들이 성문을 열어주지 않은 것이다

이 결과 막시는 식량 조달까지 어려워지게 되었다.

 

로마를 신속히 장악할 것으로 예상했던 막시는 발이 묶였다.

식량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병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고

거기다 새로운 소문들이 퍼지면서 병사들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뭐? 반역자의 가족들이 인질로 잡혀 있다고?"

이 한 마디로 모든 상황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다급해진 병사들이 막시에게 달려들어 그를 살해한 것이다.

 

강적이 사라지자 공동 황제로 추대된 두 사람이 싸우기 시작했다.

이에 원로원들마저 여기에 휩쓸려 양측으로 분열되었다.

관심 밖으로 밀려난 고르디의 손자는 집으로 돌아갔다.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본 군단병들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이거 대체 뭐하자는 짓들인지??"

군단병들은 그제서야 막시를 살해한 것을 후회하고 두 황제를 죽여 버렸다.

그러자 난장판으로 싸우던 원로원들이 집으로 숨어버렸다.

 

군부는 할 수 없이 고르디의 손자를 새 황제로 옹립했다.

어린 황제는 충직한 근위대장과 함께 무난하게 국정을 이끌었다.

이후 로마에는 6년간의 평화가 찾아온다. 

 

막시의 죽음은 로마의 마지막 카드를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로마는 게르만족들에게 또 다시 휘둘리며 정신줄을 놓게 된다.

그리고 다시 안정을 찾았을 때는 이미 지축이 갈라지고 있었다.

 

3. 길도 전쟁

 

서기 397년, 로마는 동,서로 나뉘어 분할 통치시대에 있었다.

이때 서로마의 지배를 받던 북아프리카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당시 북아프리카는 3개의 민족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는데,

토착민 베르베르, 사막민족 베두인 그리고 통상 민족인 무어인이었다.

이 중 유럽인의 피가 섞인 무어인이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의 중심지였던 마우레타리아에는 두 개의 기독교 세력이 있었다.

1. 삼위일체파 : 현 가톨릭의 모태가 되는 다수의 종파. (이하 온건파)

2. 원리주의파 : 당시 기독교 3개 파벌 중 가장 엄격했던 종파 (이하 강경파)

 

이들이 대립하는 이유는 '배교자에 대한 처리' 문제였다.

온건파는 과거 탄압에 못이겨 기독교를 버렸던 사람들의 복귀를 허용했지만,

강경파는 그런 사람들의 복귀조차 일체 허용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로마에서 온건파의 지위를 '공식 종파'로 인정하자,

강경파들이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 상황에서 총독의 전횡이 갈수록 심해지자 그 임계점이 폭발하였다.

반란은 강경파가 주도했지만 온건파도 이에 합세했다.

 

당시 이 지역의 가장 유력한 집안에는 세 형제가 있었다.

첫째 피르무스는 반란의 원인이 된 문제의 총독이었으며,

둘째 길도와 셋째 마스케젤은 그의 휘하에서 근무하는 장교였다.

 

반란이 일어나자 총독은 즉각 군대를 동원하여 진압을 명령했는데,

이때 길도가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반란군에 합류해버렸다.

"형은 총독으로서 자격이 없어!!"

 

하지만 셋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큰 형처럼 시류에 적당히 편승하는 것이 출세의 정석이라 믿었다.

"작은 형은 괜히 쓸데없는데 끼고 난리야!!"

 

마침내 길도가 이끄는 반란군과 마스케젤이 맞붙었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여기에서 승리한 길도는 총독을 처형시켰다.

로마로 도망친 마스케젤은 길도에게 원한을 품었다.

"내 두 아들까지 죽이다니!!"

 

북아프리카를 장악한 길도는 스스로 총사령관직에 올랐다.

그리고 종파를 탄압하는 서로마 황제 대신, 동로마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또한 로마로 향하는 식량에 금수조치를 내리고 강경파들의 확실한 지지를 얻어냈다.

당시 북아프리카는 서로마의 관할이었으므로 이건 명백한 반역이었다.

 

그러자 스틸리코는 길도를 '국가의 적'으로 선포하고

망명해 온 마스케젤을 토벌군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병력은 겨우 5천이었지만, 모두가 순수 기독교도로 구성되었다.

스틸리코는 이 전략적인 소부대로 길도의 진영을 분열시키고자 했다.

 

진압군이 지중해를 건너 북아프리카에 상륙했다.

길도는 7만 대군을 거느리고 여유롭게 그들을 기다렸다.

"겨우 5천이라니, 마스케젤이 미친거 아냐?"

 

그래도 마스케젤은 태연했다.

드디어 긴장된 고요를 깨고 마스케젤이 앞으로 나와 외쳤다.

"이 전투는 정통 기독교와 이단의 싸움이다!!"

 

이 한 마디로 승패가 갈리고 말았다.

길도 진영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온건파들이 동요한 것이다.

"같은 종파끼리 싸울 필요가 없잖아!"

 

어느새 전쟁의 명분은 '자유'에서 '종교'로 바뀌었다.

길도측의 온건파들은 전의를 상실하여 무기를 버리고 흩어져 버렸다.

진영이 흐트러지자 남아 있던 병사들도 뿔뿔이 도망쳐 버렸다.

 

당황한 길도는 황급히 도망쳤으나 곧바로 붙잡혀 동생이 보는 앞에서 처형되었다.

이로써 6개월만에 강경파의 반란은 '말 한 마디'로 진압되고 말았다.

흥행을 노리고 관중석을 채웠던 독자들은 술병을 던지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너무 시시하잖아!"

 

제작진은 거센 항의에 당황했는지 엔딩을 서둘러 수정했다.

승리를 거둔 마스케젤이 병사들과 함께 행군하던 중 갑자기 폭우를 만났다.

"아씨~ 왜 갑자기 비가오고 그래, 3D 티난다 정말!!"

그리고 불어난 강물속으로 그가 빨려 들어갔다.

 

참으로 궁색한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왜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해 놓고도 이렇게 전쟁을 망칠 수 있단 말인가?

그 중요한 순간을 위해 안구의 뻑뻑함과 오십견을 감내해가며

모니터를 뚜러져라 바라보았던 우리 독자들은 어쩌라구.

 

[출처] 시오노 나나미 - 로마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