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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 미그 앨리 (Hidden Menace) |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2. 9. 15 * 새로운 위협 미그앨리에서 공중전이 시작된 이래 1951년 4월까지 미공군은 F-86 조종사들이 미그-15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으며 조종사들도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물론 실제로도 세이버들은 압록강 상공에서 미그-15의 위협을 서서히 제거하는 듯 했다. 그러나 미공군이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던 바로 그때 미그앨리를 둘러싼 공중전에는 새로운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1951년 4월이 되면서 소련공군은 자국의 미그-15 조종사들이 막강한 미공군에 맞서서 고군분투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전반적으로 미공군에게 밀리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소련공군은 미공군과의 대결에서 절대로 패배해서는 안된다는 스탈린의 지시를 받고 있었으므로 자국내에서 2차대전에서 전투경험을 쌓았던 베테랑 조종사들을 선발하여 파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계획에 따라서 소련공군의 최정예 비행단인 제324 항공사단이 중국으로 이동할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 부대의 지휘관은 2차대전에서 무려 64기의 격추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소련의 영웅칭호를 3번이나 수여 받았던 최고 전투조종사 출신의 이반 코제더프 대령이 이끌고 있었다. 그는 부대의 구성에 전권을 이양 받아 휘하의 부하 장교들을 모두 자신이 선택했고 만일 전투가 벌어지면 자신은 직접 날아올라 항상 하늘에서 부하들과 함께 싸우겠다고 공언을 했던 맹장이었다. 제324 항공사단은 크게 196 연대와 176 연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의 믿음직한 동료이면서 우수한 전투기 조종사였던 예프게니 파펠라예프 대령이 196 연대를 지휘하고 있었으며 176 연대는 역시 우수한 조종사였던 세르게이 비시냐코프 중령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이 두 지휘관은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부터 휘하의 조종사들을 맹훈련 시켰으며 한국전쟁에 투입된다는 결정이 내려지자 미공군과의 대결이 이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이 장비한 전투기들에는 기존의 미그-15에 더불어 기존의 클리보프 RD-45엔진을 더욱 강력한 신형 KV-1 엔진으로 교체한 신형기인 미그-15bis가 섞여있었다. 이 새로운 엔진을 가진 미그-15bis는 기존의 미그-15보다 더욱 비행성능이 향상되어 F-86A에 대해서 명백한 성능상의 우위를 가지고 있는 신형 기체였다. 제324 항공사단의 조종사들은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기존에 파견되어있던 조종사들과 합류한 후 함께 미군기 요격 작전에 투입되어 압록강의 하늘로 날아올랐으며 곧 성과를 올리기 시작했다. 1951년 4월 7일, F-84E 썬더제트 48기의 호위를 받는 일군의 B-29 편대가 압록강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레이더 경보를 받은 30기의 미그-15 요격기들이 즉시 날아올라 이들을 요격했던 것이다. 이날 미그-15기들은 고속 일격이탈 전술로 F-84를 쉽게 따돌리면서 B-29를 공격했다. 곧 몇기의 B-29가 피탄되어 연기를 뿜었고 그중 한 대는 엔진에서 온통 불길을 뿜으면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다행히 B-29 폭격기들이 기수를 돌리는 것을 목격한 미그-15기들이 단시간의 요격후에 모두 귀환해버려 더 큰 피해는 없었다. 이날 F-84 전투기의 손실은 없었으며 F-84 조종사들은 1기의 미그-15가 격추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날 호위임무에서 돌아온 한 F-84 조종사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그 미그 조종사들은 이전과는 다른 전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사실상 우리 F-84 조종사들로서는 미그기들이 고속으로 돌진해 들어올 때는 폭격기에 밀착해서 위협사격을 하는 정도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러시아어로 싸우게 해주시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소련 조종사들은 세이버기들과의 대결에서는 계속 밀리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4월 3일의 전투에서 세이버 편대와 맞붙은 제324 항공사단의 미그-15기들이 세이버 1기를 격추시켰으나 미그-15 3기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미공군의 기록에는 세이버 1기가 피격되었으나 무사히 돌아온 것으로 되어 있음) 이 사실을 보고 받은 196 연대장 예프게니 파펠라예프 대령은 부하들의 손실에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이날의 손실이 자신과 부하들이 받은 말도 안되는 명령 - 교신은 반드시 한국어나 중국어로 하라는 - 때문이라면서 크게 분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즉시 이반 코제더프를 찾아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시 이 말도 안되는 명령을 취소시켜야 합니다. 도대체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전투 중에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언어로 교신을 하라니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지금 우리 조종사들은 상부의 명령으로 인해서 적기와 공중전이 시작될 때 우군끼리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해서 주도권을 빼았기고 있습니다. 물론 전투가 시작되면 러시아어로 소리지르게 마련이지만 그 명령 때문에 공중전 중에 교신을 머뭇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긴박한 전투상황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은 우리 조종사들보고 죽으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러는 동안 미군기들이 우리 조종사들의 뒤통수에 기관총탄을 날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에이스 출신인 이반 코제더프도 상당부분 동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즉시 소련공군 사령부에 이 명령의 취소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그는 이 명령이 위대한 스탈린 동지가 내린 명령이므로 전격적인 취소는 곤란하더라도 조종사들이 이 명령을 어겼을 때 받을지도 모르는 불행한 처분을 없애달라고 했다. 사실 이 당시 소련의 분위기는 스탈린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곧 죽음 (처형)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므로 조종사들이 적지 않게 부담을 느끼고 있던 것이 틀림없었다.
소련 공군사령부의 장성들은 코제더프의 의견이 스탈린의 비위를 건드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적지 않게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미국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코제더프의 주장을 전달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지자 크렘린을 찾아가 스탈린에게 사정을 알렸다. 모두들 스탈린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우려하면서 긴장하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다행하게도 스탈린은 독소전쟁의 영웅 이반 코제더프를 매우 신뢰하고 있었으므로 혼쾌히 이를 허락했다고 한다. "뭐, 그 명령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전쟁에 개입하고 있지 않다는 상징적인 의미의 것이었다. 우리 소련민중의 조종사들이 그것 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하고있다면 당연히 풀어줘야 하지 않겠나..." 결국 소련 조종사들은 그들의 발목을 잡고있던 언어의 장벽에서 해방되었고 사기가 크게 올랐으며 앞으로 벌어질 미공군과의 전투에서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1951년 4월 12일 미그앨리에서 벌어진 대규모 공중전에서 그들의 존재를 과시하게 된다. 미그의 세력이 많이 약해졌다고 판단한 미공군은 이날 신의주 지역의 교량들을 완전히 끝장내버리라는 리지웨이 장군의 명령으로 무려 48기의 B-29를 출격시키는 대규모 공습을 결행했다. 그리고 완벽한 호위를 위해서 36기의 F-84E 썬더제트기들이 B-29를 밀착해서 호위하도록 했으며, 이에 더해서 18기의 F-86A 세이버 전투기들로 하여금 미그-15기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2중의 엄호를 붙였는데, 미공군은 이 정도의 호위라면 미그-15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소련공군은 대규모 요격작전을 준비해 놓고 미군기들이 접근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공군 조종사들은 그들이 신의주 상공에 다다를 무렵 갑자기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수 십개의 검은 점들을 볼 수 있었다. 이날 소련공군은 미군이 예상하고 있던 것보다 2배는 많은 36기의 미그-15 전투기들을 출격시켰으며 이중에는 제324 항공사단의 정예 조종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상공으로 솟아오르자마자 일사분란하게 미공군 전투기들의 호위망을 뚫고 공격해 들어왔다. 양측의 항공기들이 섞이기 시작면서 전투가 시작되었고, 세이버들의 총구에서 기관총탄이 날아가는가 싶으면 미그-15의 기관포탄이 날아오는 어지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미군의 예상과 달리 상대는 만만치 않아서 혼잡한 공중전이 벌어지는 동안 B-29 3기가 명중탄을 맞아 불길에 휩쌓여 격추되었다. 그리고 7기의 B-29기들이 온통 구멍투성이가 되어 임무를 중단하고 귀환해야 했다. [ B-29를 격추시키고 있는 미그-15, 이날의 전투는 B-29 폭격기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았다. ] 미공군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은 B-29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너무 느려서 고속의 미그-15기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호위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세이버들이 미그-15와 교전을 하는 동안 B-29 폭격기들이 교전지역에서 멀리 달아나야 하는데 이것이 여의치 않아서 미그-15 조종사들은 세이버와 교전을 벌이다가도 기회만 있으면 B-29를 추격하여 사격을 퍼부었다. 이날 전투에서 돌아온 B-29 조종사들은 모두들 공포에 질려있었으며 세이버 조종사들도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미군 조종사들은 이날 그들을 공격한 미그기들이 대략 70기 이상의 엄청난 숫자였다고 보고했다. F-86 조종사들은 4기의 미그-15를 격추했다고 진술했고 B-29의 방어 기총수들은 최소한 6기의 미그기들을 명중시켜 연기를 끌면서 강하하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했지만 소련공군의 기록에 따르면 이날 출격한 미그-15는 실제로 36기였으며 전투에서 돌아오지 못한 미그-15는 1기에 불과하다고 되어 있어 미공군 조종사들이 적기들의 규모에 대해서 적지않은 충격을 받은 것을 알수있으며 전과도 상당히 과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것은 소련 조종사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은 10기의 B-29를 격추시키고 4기의 F-80과 1기의 F-86 세이버를 격추시켰다고 주장했지만, 이날 돌아오지 못한 B-29는 3기였고 F-86은 모두 무사히 돌아왔으며 F-80은 출격도 하지 않았으므로 소련측도 전과를 상당부분 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자세한 전과야 어떻든 간에 미공군의 B-29 폭격기 부대가 이날 매우 큰 피해를 입은 것은 틀림이 없으며 이날 미공군은 상당한 충격을 받아 B-29의 미그앨리 지역으로의 주간 출격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로서 미그앨리를 둘러싼 미공군과 소련공군의 대결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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