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특선우 (흉노 BC 209~174 재위)
한왕 신이 투항하자 묵돌은 그의 인도를 받아 한나라의 땅을 공격해 들어갔고,
현재의 산서성 동쪽의 평성에 이르렀다. 한고조 역시 대군을 일으켜 이에 맞섰으나,
묵돌은 이를 무찌르고, 한나라 군대를 백등산에 몰아 넣어 7일 간 포위하였다.
이후 한고조는 묵돌의 왕비에게 선물을 주어 포위를 풀고 장안으로 도망쳤다.
이후 한고조는 묵돌에게 황실의 여인을 선물하고, 매년 조공을 바치기로 하였다.
한왕 신 이후에도 노관이 유방을 배신하고 흉노로 들어간 바 있다.
이후 한고조가 죽고, 효혜제가 즉위하였다. 묵돌은 고조의 왕비인 여태후에게
"나도 독신이고 그대도 독신이니 잘해보자"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여태후는 크게 노하여 흉노를 토벌하고자 하였으나, 주변에서 모두 그녀를 만류하였다.
묵돌 시절 월지는 흉노의 서방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당시 서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당시 우현왕이 한나라와 소규모 전쟁을 벌인 뒤, 묵돌과 효문제가 편지를 교환하였다.
묵돌이 보낸 다음의 편지에는 월지 토벌의 내용이 나타난다.
"지금 작은 관리들이 약속을 깨트렸기 때문에 그 죄를 물어 이번에 우현황에게
그 벌로써 서쪽으로 월지를 토벌하게 하였소. 다행히 하늘의 가호로 단련된 정예병사와
강건한 말로써 월지를 쳐부수어 이를 모조리 죽이거나 항복시키고
누란, 오손, 호게 및 그 인접 26개국을 평정하여 이들을 모두 흉노에 병합하였소.
이리하여 각 유목민족은 합하여 한 집안이 되었고, 북쪽은 이미 안정을 찾았소."
여기에서 알 수 있듯 묵돌은 월지는 물론, 서역의 여러 나라를 점령하여
북방 유목민족을 하나로 통합했던 것이다. 이후 월지는 대월지와 소월지로 나뉜다.
위 편지를 받은 효문제는 답장을 통해 우현왕을 책망하지 말 것을 당부했으며,
선우에게 옷 수십 필을 선물로 주었다. 편지를 교환한 지 얼마 못 되어 묵돌은 죽고,
아들인 계육이 즉위하여 노상선우라 칭하였다.
[출처]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22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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