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차우체스쿠 (루마니아 1974~1989 재임)
차우체스쿠는 루마니아의 전설적인 독재자이다.
1933년 공산주의 청년동맹에 가입하여 두 차례에 걸쳐 투옥되었다.
루마니아가 공산화된 뒤 그는 정치국원을 거쳐 1967년, 대통령에 올랐다.
체아우셰스쿠는 외교면에서는 자유주의적이고 독자적인 정책을 추구한 반면
국내 정치에서는 공산당에 의한 권위적인 중앙집권화 정책을 더욱더 엄격하게 고수했다.
그는 비밀경찰조직을 통해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언론매체들을 엄격하게 통제했으며,
국내의 어떠한 불만세력이나 반대세력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특히 경찰이나 보안군보다 더 강력한 '세쿠리타트'라는 친위대를 거느렸다.
이들은 가난한 고아들만 따로 선발하여 특수 훈련을 시킨 무장조직이었는데,
국민들은 이들의 이름만 들어도 오금을 저릴정도로 무서워했다.
또 루마니아의 도청장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인구 2천만 명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된 도청기가 무려 300만개나 되었다.
국민들은 비밀경찰, 보안군, 세쿠리타트, 도청이라는 4대 족쇄에 신음했다.
1970년대에 그의 잘못된 경제정책 때문에 생겨난 엄청난 부채를 청산하기 위해
1982년 단 한마디로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물건을 다 팔아버려!"
그리하여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산물과 공산물이 강제로 외국으로 수출되었다.
그동안 그럭저럭 살림을 꾸려나갔던 루마니아는 이때부터 곤두박질쳤다.
식품. 연료. 의약품을 비롯한 각종 생필품이 극도로 부족하게 되었고,
루마니아 국민들은 아사 일보직전의 상황까지 내몰렸다.
반면, 차우체스쿠의 주머니는 벌써 10억 달러 이상 채워졌다.
차우체스쿠는 김일성 보다 더 황당한 정책들을 쏟아냈다.
멀쩡한 집들을 몽땅 불도저로 박살내고 새 아파트로 강제 이주시키는 계획도 세웠다.
이 외에도 수많은 황당한 계획들이 해외 전시용으로 발표되었다.
그는 자신이 암살될까봐 늘 두려워했고, 특히 독살당할 것이라는 피해망상에 시달렸다.
그래서 늘 자신만 입고 다니는 소독된 의상만을 입었고,
자신의 가족, 애완견이 먹는 모든 음식물까지 다른 사람에게 먹어보게 하였으며,
심지어 몸에 독을 묻혀 독살할까봐 악수와 스킨십도 아주 싫어했다.
영국 방문시 그가 보여줬던 에피소드도 아주 흥미롭다.
영국 방문시, 비행기에서 내린 그는 마중나온 엘리자베스 여왕과 악수한 뒤,
여왕이 보는 앞에서 곧바로 소독한 수건으로 자신의 손을 닦았다고 한다.
게다가 영국 정부에서 대접한 모든 음식도 믿을 수 없다고 하여
영국 국빈들이 보는 앞에서 시종들에게 미리 먹어보게 하였고
영국의 국빈호텔의 가구와 침구들도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고 하여
루마니아에서 전용 소독가구를 공수까지 하는 생쇼를 벌였다.
그는 김일성의 절친한 친구로, 항상 김일성을 자신의 정치적 선배로 생각했다.
김일성의 세습체제를 아주 동경하여, 자신의 아내인 엘레나를 비롯한
온 가족들에게 루마니아의 모든 요직을 차지하게 만들었다.
또한 자신이 죽으면 국가원수 자리는 누구한테 물려주고,
또 그가 죽으면 누구한테 물려줄지 모든 계획을 짜 놓기까지 했다.
게다가 평양 방문시 거대한 주석궁을 보고 이에 감탄한 나머지 귀국하자마자
1만 7천개가 넘는 방을 가진 거대한 '인민의 궁전'을 건설하게 하여 전국민의 고혈을 짜냈다.
1989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그도 결국 종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폴란드와 헝가리 등 동구권이 하나씩 개혁의 바람을 타고 무너져가자
그는 친위대인 세쿠리타트를 모아 놓고 이렇게 큰소리쳤다.
"다른데는 몰라도 루마니아는 절대 안 무너져!"
하지만 그해 12월, 루마니아 국민들은 개혁의 깃발을 들고 일어섰다.
한 도시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격렬해지자 체아우셰스쿠는 강경진압을 명령했다.
보안군은 무장트럭과 전투헬기까지 동원해 국민들에게 무차별로 총격을 가했다.
그러자 이에 격분한 국민들은 곧바로 무장투쟁에 들어갔다.
분노의 불길은 삽시간에 수도 부쿠레슈티까지 번졌고, 군대는 국민편으로 돌아섰다.
그래도 차우체스쿠의 충견 역할을 한 세쿠리타트는 끝까지 저항했다.
그래도 이미 국민과 군대가 한 편이 된 시민군은 승리를 쟁취하고 말았다.
12월 22일, 차우체스쿠는 부인과 함께 헬기를 타고 수도를 탈출했다.
그는 조종사에게 북한으로 갈 것을 요구했고, 조종사는 갈등하기 시작했다.
조국 루마니아를 배신하기 싫었던 조종사는 결국 고장을 핑계로 한적한 시골에 내렸다.
그리고 차우체스쿠 부부가 헬기에서 내려 방심하는 사이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당황한 두 부부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숲속으로 들어가 길을 헤메였다.
그리고 마침 그곳에 있는 삼림보호소 건물로 들어갔다.
보호소 직원들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정중하게 이들을 맞아 들이고
커피를 대접한 다음, 밖으로 나와서 문을 잠가버렸다.
꼼짝없이 갇히게 된 두 부부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곧바로 수도로 호송된 이들은 그날 오후 4시에 군사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두 부부는 벌벌 떨면서 쉴 틈도 없이 사형장으로 끌려갓다.
그날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이었다. 시간은 오후 5시 30분.
사형장에서 집행관이 지원병을 뽑으려하자 원한에 사무친 수십명의 병사가 나섰다.
두 부부는 눈도 가려지지 않은채 무려 160여 발의 총탄 세례를 받고 죽었다.
그의 24년에 걸친 피의 독재가 막을 내린 것이다.
[출처] http://blog.daum.net/nhhbear/17949001
[출처] http://blog.daum.net/xinxing7/1587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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