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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황실의 검은피 3 - 大아그리피나

구름위 2012. 10. 8.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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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등장하는 검은피는 大아그리피나(Agrippina)다.

그녀는 스크리보니아, 율리아에 이어 세 번째 독을 물려받았다.

검은피의 손녀. 그녀의 혈통 분포는 다음과 같다.

 

1. 어머니 율리아  (50%)

2. 아버지 아그리파  (20%)

3. 할머니 스크리니보아  (20%)

4. 할아버지 옥타비아누스  (5%)

5. 외할아버지 가문  (5%)

 

그녀는 로마 황실의 공신 아그리파의 피를 물려 받았으나

어머니 율리아의 검은피를 혈액속에 더 많이 담고 태어났다.

 

유전의 원칙상 세대가 이어질수록 그 특징은 더욱 강화되기 마련이다.

혈통의 바다에 떨어진 먹물 한 방울이 어느새 선홍빛을 밀어내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검은피는 더욱 진보했고 정치적인 술수까지 부리게 된다.

 

리비아의 둘째 아들인 大드루수스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큰 아이는 자신감 넘치는 게르마니쿠스였고 둘째는 그 반대의 클라우디우스였다.

게르마니쿠스는 가장 이상적인 혈통을 타고 났는데, 그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아버지 大드루수스  (35%)

2. 어머니 안토니아  (25%)

3. 할머니 리비아  (15%)

4. 할아버지 티베리우스 네로  (10%)

5. 외할머니 옥타비아   (10%)

6. 외할아버지 마르켈루스  (5%)

 

리비아와 율리우스 가문이 결합했으니 그 피가 얼마나 깨끗했겠는가.

그런데 이런 제길~ 大아그리피나와 결혼할 줄이야.

황제는 게르마니쿠스가 황실의 피를 이어받았음을 고려하여

그를 양자로 받아들이고 손녀 아그리피나와 맺어주었다.

 

황제의 혈통에 대한 집착은 황실을 더욱 불행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그리파에 이어 이제 게르마니쿠스의 자손마저 검은피에 물든 것이다.

두 사람의 결합, 그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아그리피나는 게르마니쿠스를 숙주로 9명의 자녀를 낳았다.

이 중 소아그리피나와 칼리굴라가 가장 어둡고 탁한 피를 물려받는다.

역시 게르마니쿠스도 검은피의 저주를 피해갈 순 없었던 것이다.

 

다음은 소아그리피나와 칼리굴라의 혈통 분포도이다.

1. 어머니 대아그리피나  (40%)

2. 아버지 게르마니쿠스  (20%)

3. 외할머니 율리아  (15%)

4. 할머니 안토니아  (10%)

5. 할아버지 大드루수스  (8%)

6. 외할아버지 아그리파  (5%)

7. 황제 아우구스투스  (2%)

 

게르마니쿠스는 일찍 죽지 않았다면 황제가 되었을 만큼 대단히 인기있는 장군이었다.

그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명령을 받고 게르만 전선에서 티베리우스를 위해 일했다.

그는 황제가 죽은 뒤 자신의 군대에서 일어난 폭동을 개인적인 인기 덕분에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 뒤 부하들로부터 황제에 오르도록 요청을 받았으나 계속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충성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아그리피나는 남편을 '멍청이'라며 원망했을 것이다.

 

만약, 게르마니쿠스가 황제제의를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1. 백전노장 티베리우스에게 진압되었을 것이다.

2. 이탈리아를 일시 점령하지만 전방위적 압박에 시달려 자결했을 것이다.

3. 오히려 티베리우스가 기다렸다는듯이 자리를 내주고 로도스 섬으로 떠났을 것이다.

4. 집권에 성공했다면 정치적 능력 부족으로 또 다른 반란을 맞았을 것이다.

5. 쿠데타라는 채무를 안고 군부에 끌려 다녔을 것이다.

 

얼마 후 티베리우스는 게르마니쿠스를 로마로 불러들였다.

겉으로는 소모적인 전쟁을 중단하고 내치에 전념하겠다는 뜻이었지만,

그 안에는 게르마니쿠스의 인기에 대한 질투와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티베리우스는 그를 오리엔트의 최고 통수권자로 내보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황실에 독을 주입하는 사보타지.

그곳엔 게르마니쿠스를 기다리는 독사가 음모의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그 독사는 시리아 총독을 맡고 있는 피소였다.

피소는 사사건건 게르마니쿠스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이 와중에서도 게르마니쿠스는 어려운 문제들을 착실히 해결해냈다.

대체 피소는 무엇 때문에 하극상을 자처한 것일까.

그 이유는 다음 보기 중 하나일 것이다.

 

1. 티베리우스가 그를 게르마니쿠스의 대항마로 띄웠다.

2. 공화정 부활을 꿈꾸는 원로원들의 조종이 있었다.

3. 나이 어린 상관을 처음부터 우습게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이집트를 방문한 문제로 티베리우스에게 호된 질책을 받았다.

이것은 황제의 과민반응이었고 게르마니쿠스의 부인 아그리파나의 짜증을 증가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피소는 더욱 신이난듯 게르마니쿠스에게 개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둘 사이의 갈등이 더욱 심각해졌고 결국 피소는 시리아를 떠났다.

 

바로 그후 게르마니쿠스가 의문을 죽음을 맞게 된다.

사람들은 피소가 자기 아내 플랑키나를 시켜 그를 독살했다고 수군거렸다.

피소는 분노한 로마인들에게 고발당했으나 곧 자살하여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황제가 살인을 부추겼다는 증거는 없지만 적어도 둘 사이의 반목을 부채질한 것만은 틀림없다.

이후 아그리피나는 황제에 대해 원한을 품게 된다.

 

남편이 죽자 아그리피나는 피눈물을 흘리며 로마로 돌아왔다.

여기서 그는 티베리우스가 아들 드루수스와 함께 함께 권력을 독점해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 광경을 바라보며 '그 독을 되돌려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로써 검은피가 권력에 개입하는 1라운드 공이 울렸다.

 

여기서 티베리우스의 아들 드루수스에 대해 알아보자.

드루수스는 티베리우스와 빕사니아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이다.

그가 태어난지 1년 만에 어머니 빕사니아는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였다.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티베리우스가 이혼을 당한 것이다.

이때문에 티베리우스에게는 드루수스가 둘도 없는 혈육이자 희망이었다.

 

다음은 드루수스에 대한 혈통 분포도이다.

1. 아버지 티베리우스  (35%)

2. 어머니 빕사니아  (30%)

3. 할머니 리비아  (15%)

4. 할아버지 티베리우스 네로  (10%)

5. 외할머니 마르켈라  (5%)

6. 외할아버지 아그리파  (5%)

 

드루수스는 게르마니쿠스가 죽은 뒤 황태자의 지위에 올랐다.

그는 깨끗한 혈통에 비해 다소 난폭하고 방탕하다는 평을 들었으나

도나우 전선의 반란을 진압하고 게르만족의 일파를 몰락시키는 등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한편, 아그리피나는 반티베리우스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식들이 황위 계승권에서 멀어져가자 점점 불안해하고 초조해했다.

그녀에게 티베리우스는 남편을 독살한 원수이자 자식들의 앞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티베리우스는 아그리피나의 행동을 묵인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의지가 투철했으며 겸손했고 빕사니아를 그리워하며 재혼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드루수스가 원인모를 병으로 사망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티베리우스는 곧바로 아그리피나의 두 아들에게 승계권을 물려주었다.

그러자 오만해진 아그리피나는 자파 확대에 더욱 열을 올리게 된다.

 

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티베리우스는 그녀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그러다 감찰반에 의해 아그리피나의 한 측근이 간통으로 고발되었다.

아그리피나는 이를 자신에 대한 표적수사로 보고 강력히 항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지나친 권력욕'에 대한 질책이었다.

 

티베리우스는 카프리 은둔을 통해 다소 강경한 통치로 전환한다.

그가 황궁을 비운 사이 아그리피나의 당파활동이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측근 세야누스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아그리피나당(黨)에 대한 숙청을 지시했다.

결국 그녀의 측근들은 반역죄와 간통죄로 하나씩 처형되거나 유배되었다.

 

아그리피나는 자신의 세력이 해체 될 위기에 처하자 극단의 조치를 취했다.

첫째 아들과 반란을 꾸미고 게르만 군단과 모종의 합의를 끌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이 세야누스에게 발각되어 두 사람은 판다테리아 섬으로 유배되었다.

이어서 둘째 아들까지 유배형에 처해지고 잔존세력까지 모두 소탕된다.

 

그러자 이번에는 세야누스가 불온한 움직임을 보였다.

전권을 위임하고 리모컨으로 활용되었던 그가 황위를 넘 본 것이다.

티베리우스는 근위대와 비밀경찰을 이용하여 그를 체포하였다.

 

아들과 함께 체포된 세야누스는 모든 것을 포기한채 황제에게 편지를 썼다.

자신이 드루수스의 아내와 함께 드루수스를 독살했다는 고백이었다.

어차피 죽을 목숨, 황제에게 자식 잃은 고통을 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편지를 읽는 순간, 티베리우스는 이성을 잃어버렸다.

그는 이때부터 모든 인간을 불신하게 되는 공포정치를 시작한다.

곧바로 세야누스 일가족이 처형되었고 며느리 리빌라에 대한 자결명령이 내려졌다.

또한 세야누스의 지지의원들과 그에 속한 일파와 노예들까지 모두 처형되었다.

 

리빌라와 세야누스가 드루수스를 독살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1. 세야누스는 리빌라의 前시아버지였다.

2. 리빌라는 세야누스와 내연의 관계였다.

3. 리빌라는 난폭하고 방탕한 남편을 싫어하였다.

 

티베리우스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유배된 아그리피나에게 반역죄를 물어 처형을 내린 것이다.

이로써 검은피 3기가 막을 내리고 제4기가 벤치에서 일어난다.

 

모든 몰락은 마지막에 가장 화려운 불꽃을 태운다고 했다.

이제 악의 유전자를 모두 동원한 소아그리피나가 검은 교향곡을 지휘할 것이다.

여기에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의 핏빛 3중주가 펼쳐진다.

 

이 글은 아래의 출처들을 참고하였습니다. 

[출처] http://moduru76.egloos.com/4434362

[출처] http://dontnomuch.egloos.com/2544867

[출처] http://timeline.britannica.co.kr/bol/topic.asp?mtt_id=3033

[출처] 위키백과/ 두산백과

출처 : 역사를 창조한 문학
글쓴이 : 임용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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