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그까짓 양파가 뭐길래?

구름위 2017. 1. 14.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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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까짓 양파가 뭐길래?

 양파


북군 사령관 그랜트 장군 양파 없이는 못 싸운다버텼다는데?

남북전쟁 당시 북군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준 양파

서양에선 식재료이자 감기 치료제로 쓰인 소울 푸드

 

 


기사사진과 설명

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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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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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은 북군의 그랜트 장군이 아포매톡스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끝났다. 그림은 아포매톡스에서 거행된 항복 조인식 장면.  출처=위키피디아

남북전쟁은 북군의 그랜트 장군이 아포매톡스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끝났다. 그림은 아포매톡스에서 거행된 항복 조인식 장면. 출처=위키피디아



 

 

 “양파 보급이 없으면 더는 군대를 움직이지 않겠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 북군의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이 연방정부 대통령보좌관에게 긴급전보를 쳤다. 양파를 보급해주지 않으면 더는 싸우지 않겠다는 소리였다.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이 누구인가? 1864년 북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됐고 이듬해인 1865년 마지막 전투인 아포매톡스 전투에서 승리해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에게 항복을 받아내면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다. 북군의 전쟁영웅이었기에 미국 제18대 대통령에도 당선됐다.

 이런 그랜트 장군이 그까짓(?) 양파 때문에 대통령보좌관을 윽박지르고, 더군다나 양파 보급 없이는 싸우지 않겠다고 했으니 막중한 위치에 있는 장군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니었다.

 그랜트 장군의 요구는 바로 해결됐다. 이튿날 화물열차 석 대 분량의 양파가 그랜트 장군이 지휘하는 부대에 제공됐다. 양파가 무엇이기에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었을까도 싶지만 어쨌든 당시 병사들에게 양파가 얼마나 중요한 음식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동시에 필요한 물자는 바로 제공되는 북군의 보급 체계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1864년, 남군 총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의 참모가 남긴 기록도 있다. “남군 병사들은 전쟁터에서 굶주리고 있는데 의회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땅콩과 씹는 잎담배 외에는 없다.”



   양파 확보 안되면 장기 항해 거부한 탐험가

 개별적으로 보면 음식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양파 보급에서 나타나는 남군과 북군의 이런 차이가 결국 리 장군이 그랜트 장군을 상대로 항복문서에 서명해야 하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양파 보급을 놓고 문제를 제기했던 지휘관은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 말고도 또 있다. 18세기 영국의 탐험가로 하와이 섬을 재발견하고 태평양을 개척한 제임스 쿡 선장이다. 태평양 먼바다로 장기 항해를 떠나기 전, 선원들이 먹을 양파를 제공해주지 않으면 항해를 하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도대체 양파가 무엇이기에 18, 19세기 서양 지휘관들은 양파를 확보하려고 이렇게 애를 썼을까?

 먼저 그랜트 장군이 요구한 양파가 도착하자 북군 병사들은 양파를 이용해 맛없는 야전 음식을 맛있게 조리해 먹을 수 있었고, 사격할 때 화약 등으로 입은 화상을 양파를 문질러 치료하기도 했다.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 양파를 요구한 것은 장기 항해 때 비타민 부족으로 생기는 괴혈병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직 괴혈병의 원인이 밝혀지기 전이었지만 양파가 괴혈병 발생을 막아준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약방의 감초처럼 어느 음식에나 빠지지 않고 들어가기에 딱히 주목할 것도 없는 채소이지만 서양에서 양파는 역사적으로 또 민속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가 옛날 감기 몸살에 걸렸을 때 할머니가 민간요법으로 뜨겁게 끓인 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넣어 먹으면 낫는다고 했던 것처럼 서양 할머니들은 몸살 기운이 있을 때면 뜨거운 양파 수프를 먹였다. 서양에서 양파 수프는 감기 몸살과 추위를 떨쳐버리는 치료제였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할머니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영혼의 음식, 소울푸드(soul food)였던 것이다.

 어머니가 추위와 몸살 기운을 물리치라며 끓여주시던 따듯한 양파 수프 한 접시를 마실 수 있는 북군 병사와 땅콩과 잎담배를 씹으며 추위와 굶주림을 견뎌야 하는 남군 병사가 느끼는 전쟁의 고통, 그리고 사기는 하늘과 땅 차이였을 것이다.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들의 특식으로 제공

 역사적으로 서양에서 양파는 보통 채소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 노동자들에게 제공한 특식이 양파였다. 피라미드는 절대 권력자인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이다.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노동자들에게 양파를 먹인 이유는 그것을 먹으면 힘이 솟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 민수기에 출애급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사막에서 방황할 때 이집트에서 먹었던 양파를 그리워했다고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파를 일종의 자양강장 식품으로 여긴 것인데 양파에 대한 고대 이집트인의 인식은 그리스 로마시대를 거쳐 중세 유럽까지 이어진다. 그리스에서는 고대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시합 전에 힘을 내기 위해 양파를 먹고 양파 주스를 마셨다고 하며 로마의 검투사들도 싸우기 전에 몸에 양파를 문질렀는데 이유는 근육이 강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남북전쟁 기간에도 북군 의사들은 의약품이 부족할 경우 야전에서 총상을 치료할 때 양파 주스를 먹였다고 하는데 양파에 대한 오랜 전통과 믿음에서 비롯된 처방이었다.

 유능한 지휘관으로 북군 총사령관이 된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이 양파를 가지고 대통령보좌관을 윽박질렀던 것도 양파가 ‘그까짓’ 채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랜트 장군의 요구에 따라 열차를 급파해 양파를 보급한 것 역시 양파의 의미를 북군 지휘부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