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싸고 맛 좋고 고열량 2차 대전 때 고기대용품
- 땅콩버터
2세기 전 노예들의 음식 ‘땅콩’ 남미→아프리카→북미로 전파
19세기 죽처럼 갈아 만들어 고기 못 씹는 환자들에게 공급
열량 소고기의 2배 고영양식 야전 병사들에 안성맞춤
미군, 1941년 전투식량 채택
정월 대보름에는 부럼을 깨무는 풍습이 있다. 조상들은 땅콩·호두·잣 등의 부럼을 깨물면 부스럼을 예방하고 액땜을 할 수 있으며 치아도
튼튼해진다고 믿었다. 미신 같지만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주술적인 효과와 함께 견과류에 풍부한 영양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정월 대보름이다. 부럼으로 자주 쓰이는 땅콩의 역사를 살펴보면 상식을 뛰어넘는 뜻밖의 사실이 가득하다.
고기보다 열량이 높은 땅콩버터는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전투식량에 포함됐다. 사진은 베트남 전쟁 당시의 미군 C레이션. 출처=전쟁기념관 |
군용 땅콩버터 통조림. |
땅콩버터를 바른 식빵. |
땅콩. |
먼저, 땅콩은 노예의 음식이었다. 지금은 영양 간식으로, 맥주 안주나 요리 재료로 인기가 높지만 예전에는 주로 노예들이 먹었다.
땅콩이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부터 철저하게 노예와 관련이 있다.
땅콩의 원산지는 남미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일대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탐험 이후 그곳에 간 포르투갈 상인들이 현지 원주민들이 땅콩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모습을 보고 종자를 아프리카에 가져가 심었다.
땅콩을 아프리카에 전한 포르투갈 상인들은 노예 무역상이었다. 흑인을 잡아 중남미에 노예로 공급했는데 이들에게 줄 음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종자
값이 안 들어가는 남미 원산의 옥수수와 땅콩을 아프리카에 심어 흑인의 식량으로 삼은 것이다.
남미에서 아프리카로 전해진 땅콩은
18세기,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북미로 전해졌다. 농업이 발달한 미국 남부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흑인 노예를 들여오면서 땅콩도 따라서
들어왔다.
백인 농장주가 노예에게 줄 음식으로 땅콩을 심으면서 19세기부터 대량 재배가 시작됐다. 이런 배경이 있었던 만큼
미국에서 땅콩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사랑받는 인기 식품은 아니었다. 주로 흑인들이 먹는 싸구려 식품이었을 뿐이다.
땅콩
자체가 노예의 음식이었다면 땅콩버터는 환자용 식품이었다. 치아가 부실해 고기를 씹을 수 없는 환자들이 고기 대신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대용식이다.
19세기 후반, 땅콩의 영양가에 주목한 일련의 미국 의사와 발명가들이 땅콩을 가공한 새로운 식품 개발에 몰두했다.
지금의 땅콩버터다. 세인트루이스에서 개업한 외과의사 스트라우브 박사가 땅콩을 갈아 죽처럼 만든 음식을 처음 만들었다. 나이가 들어 고기를 씹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한 영양식이었다. 스트라우브 박사의 특허를 사들인 조지 바이어라는 식품업자가 땅콩 죽을 발전시켜 땅콩버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치아가 나빠 고기를 씹을 수 없는 사람을 위한 고기 대체품이라고 선전했다.
1897년 또 한 명의 의사가 환자들이 먹는 음식으로
땅콩버터를 개발했다. 미시간에서 요양 병원을 운영하던 켈로그(J. H. Kellogg) 박사였다.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던 켈로그 박사는
환자들에게도 채식을 권유했다. 그 때문에 환자들이 고기 대신 먹을 수 있는 고열량 음식이 필요했는데 이때 고기 대용품으로 만든 것이
땅콩버터였다. 참고로 의사인 켈로그 박사가 요양원 환자를 위해 만든 채식 중심의 식품을 그의 동생이 사업화해 지금의 세계적인 식품회사 켈로그가
탄생했다.
땅콩버터는 초기에는 대중화되지 못했다. 일단 환자식으로 만들어진 데다 대량생산이 이뤄진 이후에도 주로 찻집에서 차와
함께 먹는 땅콩 샌드위치 형태로 팔았다. 땅콩과 달리 초창기의 가공식품인 땅콩버터는 값이 비쌌다.
그러다 미국 국방부에서
땅콩버터를 주목하게 됐다. 땅콩버터가 전쟁터에서 고기를 쉽게 먹을 수 없는 야전의 병사들에게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땅콩은 에너지 소모가 많은
병사들에게 충분한 열량을 공급할 수 있었다. 실제 열량만 놓고 따져보면 땅콩은 100g당 569kcal이지만 소고기는 218kcal, 돼지고기는
236kcal다. 고기보다도 열량이 두 배가량 높다.
미군 병참사령부에서 땅콩버터를 전투식량 메뉴로 채택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1932년 기병대의 비상식량으로 시험적으로 채택했다가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직전인 1941년 6월, 미군 비상식인
D레이션에 땅콩버터를 포함시켰다. 병사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고기 대체품을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군수업체는 땅콩버터가
비상식량에 포함된 첫해인 1941년 월 20만 개를 생산했고,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이듬해부터는 월 100만 개씩을
생산했다.
식빵에 땅콩버터와 과일 잼을 발라 먹는 메뉴는 병사들 사이에 큰 인기였다. 병사들은 제대하거나 혹은 휴가를 나와서도
식빵에 땅콩버터를 바른 샌드위치를 찾았다. 그러자 민간 가정에서도 땅콩버터가 널리 퍼졌다. 전쟁 중 귀한 고기 대신 먹을 수 있는 고열량 식품인
데다 값이 싸고 맛도 좋으면서 무엇보다 샌드위치를 만들기에 편했기 때문이다.
윤덕노 음식문화 평론가
19세기 이전까지 땅콩은 주로 노예들의 식량으로 재배됐다. 사진은 미국의 땅콩 밭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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