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독일군 사기 ‘들었다 놓았다’한 특수 초콜릿

구름위 2017. 1. 14.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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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사기 ‘들었다 놓았다’한 특수 초콜릿

쇼카콜라


초콜릿·커피·콜라 열매 합친 각성 에너지 식품

패색 짙어지면서 최후의 항전 절망의 식품으로

 

 

 

기사사진과 설명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공군의 런던 폭격 모습. 독일군은 폭격기 승무원의 각성 효과를 높이려고 초콜릿과 커피, 콜라 열매로 만든 쇼카콜라를 지급했다.  필자 제공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공군의 런던 폭격 모습. 독일군은 폭격기 승무원의 각성 효과를 높이려고 초콜릿과 커피, 콜라 열매로 만든 쇼카콜라를 지급했다. 필자 제공



 

 

기사사진과 설명
제2차 세계대전 때 지급한 쇼카콜라. 나치의 철십자 문양이 보인다. 필자 제공

제2차 세계대전 때 지급한 쇼카콜라. 나치의 철십자 문양이 보인다. 필자 제공




 

 제2차 세계대전이 치열해지면서 독일 공군은 영국의 주요 도시를 대상으로 대규모 폭격을 감행했다. 1940년 9월 7일부터 이듬해 5월 21일까지 런던·리버풀 등 16개 도시에 엄청난 양의 폭탄을 쏟아부었다. 폭격은 267일 동안 계속됐다. 주된 목표는 물론 수도 런던이었다. 모두 71차례의 공습이 있었고 57일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한밤중에 독일군 폭격기가 날아와 폭탄을 떨어뜨리고 돌아갔다. 공습 초기 한 달간 독일군은 목표물이 분명하게 보이는 한낮에 폭격을 했다. 하지만 공습 효과 못지않게 폭격기 피해도 컸기에 10월 7일부터는 모든 폭격이 야간공습으로 바뀌었다.

 폭격기 승무원들은 격무에 시달렸다. 격추당하지 않고 무사 귀환해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다시 폭탄을 싣고 공습에 나서야 했다. 계속되는 출격에 지친 승무원들은 졸기 일쑤였다. 한밤중 칠흑 같이 어두운 영불해협을 건너서 비행할 때면 쏟아지는 졸음을 참기 어려웠다.

 대책 마련이 필요했다. 보통 졸음이 밀려오면 진한 커피를 한잔 마시지만, 비행 중 커피를 끓이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진짜 졸음이 쏟아지면 커피도 소용없었다. 그래서 독일 공군은 피로에 지친 폭격기 승무원을 정신 차리게 할 음식을 제공했다. 커피와 초콜릿, 그리고 콜라를 합쳐 놓은 식품이었다. 카페인이 풍부해 각성 효과가 높은 이 식품으로 승무원들은 졸음을 확 날려 보낼 수 있었다.

 그 식품의 이름은 쇼카콜라(Schokakola)였다. 미국 청량음료 코카콜라와 비슷하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전혀 관계없는, 초콜릿의 한 종류였다. 다만 일반적인 초콜릿과는 달리 초콜릿에 커피와 콜라의 성분이 합쳐졌다는 것이 차이였다. 쇼카콜라라는 이름 역시 주성분인 초콜릿의 독일어인 쇼콜라데(Schokolade)와 커피를 뜻하는 카페(Kaffee), 그리고 열매 이름인 콜라(Kola)를 합쳐 만든 것이다.

 쇼카콜라는 구두약 통처럼 생긴 용기에 담아 병사들에게 지급됐는데 카페인이 풍부해 잠을 쫓는 것은 물론 정신적·육체적으로 어느 정도 긴장감을 높일 수 있고, 맛까지 좋았기 때문에 전투를 앞둔 장병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주로 폭격기 승무원들에게 지급됐다. 그 때문에 ‘조종사용 비상식량’이라는 부러움 섞인 별명을 얻었다. 이후 전쟁이 확대되면서 공수부대원과 탱크병 등 특수작전에 투입되는 병사들에게도 보급이 이뤄졌다. 이처럼 전쟁 초기 쇼카콜라는 특수작전에 투입되는 병사들에게 특별히 지급되는 식품이었기에 일반 병사들한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쇼카콜라가 전쟁 당시 독일군 병사들에게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전투식량으로 개발된 식품은 아니었다. 전쟁이 나기 4년 전인 1935년 처음 만들어져 이듬해 베를린 올림픽에서 스포츠 초콜릿으로 인기를 끌었다. 카카오 함량이 60% 정도인 데다 커피 2.6%, 콜라 열매 1.6%가 들어 있어 에너지 바이면서 진한 커피를 마시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포츠 선수들은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또 공부하는 학생들은 졸음을 쫓으려고 이것을 먹었다.

 쇼카콜라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독일군의 효과적인 전투식량으로 탈바꿈했다. 병사들 사이에서 쇼카콜라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보급 범위도 넓어졌다. 처음엔 공군과 특수부대에만 지급했지만 이후 독일군은 대규모 전투를 앞둔 보병들에게도 쇼카콜라를 보급했다. 전투에 지친 병사들이나 공격을 준비하는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독일군 병사들의 회고록에 쇼카콜라가 자주 언급됐을 만큼 독일 병사들에게 기억에 남는 식품이었다. 심지어 전쟁 말기, 치열했던 벌지 전투에서 포로가 된 미군 병사들에게 독일군이 자랑하면서 쇼카콜라를 나눠주었다는 기록까지 있다. 하지만 쇼카콜라의 생산량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독일군 모두에게 지급하지는 못하고 일반 병사들에게는 평소 쇼카콜라와 비슷한 일반 초콜릿이 지급됐다.

 이렇게 인기 높은 쇼카콜라였지만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점차 절망의 식품으로 바뀌었다. 최후의 항전을 벌여야 할 때 마지막 식품으로 쇼카콜라를 지급했기 때문이다. 종전 무렵 러시아군의 공격을 앞두고 핀란드 주둔 히틀러 친위부대인 SS 산악유격대원들에게 마지막으로 쇼카콜라를 나누어 준 것이 그런 사례다. 그러니 쇼카콜라 지급은 곧 패배가 뻔한 대규모 전투가 시작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상황이 바뀌면서 초콜릿이 오히려 사기를 떨어뜨리는 촉매제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