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우리 역사 이야기

[스크랩] 영국 헨리8세와 6명의 아내들 !!!

구름위 2012. 10. 8. 22:20
728x90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헨리 8세

 

아들을 너무나 원했던 왕이였죠 -_-

6명의 부인과 결혼해서 2명을 참수시킨 바람둥이

죽었을때 매독으로 인해 죽었다는 말이 있음. 아이들과 왕비에게까지 성병이 옮아

아이들이 태어나 바로 죽거나, 머리카락이랑 눈썹이 빠진 모습으로 살기도 했답니다.

헌데 열혈완소미남에 슈퍼만능스포츠맨이였다는데 -_-사진은...흠

뭐 저땐 저게 미남이였을수 있죠 -_-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첫번째 여왕 캐서린 - 이혼

 

캐서린은 원래 헨리8세의 형과 결혼한 사이인데 첫날밤도 치르기전에 형이 죽고맙니다.

그런 그녀를 헨리8세는 정치적 이유로 인해 결혼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왜냐면 그녀는 그시대 가장 강력한 나라였던 스페인의 왕 페르난도의 딸이였기 때문입니다.

강대국의 덕을 보기 위해 결혼한것이지만 헨리8세와 그녀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헌데 계속되는 유산과 아들을 낳았음에도 이틀만에 죽고

겨우 아이를 낳는데 딸인 메리 1세를 출산하기에 헨리의 실망감은 극에 달합니다.

 

그러던중 눈에띈 캐서린의 시녀 앤불린.

아름다운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만 그는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과 결혼하려고 합니다;

헨리는 로마교황에게 이혼을 신청하지만 캐서린의 친정 !!!!! 인 스페인의 왕이

교황에게 압력을 넣어 교황은 이를 인정치 않고 헨리는 카톨릭을 버리고 영국 국교회를 설립합니다.

여자 한명 때문에 종교를 확 바꿔버리죠

 

거기다가 원래는 형의 아내였기에 이 결혼은 무효라고 선언하고 딸 메리를 사생아 취급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두번째 여왕 앤 불린 - 사형

 

캐서린을 쫓아낸 이유중 가장 큰것이 아들을 못낳은 죄였기에 헨리는

이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의 후계자를 낳아줄꺼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딸인 엘리자베스1세를 낳고, 몇번의 유산을 거듭하며

결국 헨리가 원하는 아들을 안겨주지 못합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오빠와 몇몇 귀족들과의 간통죄로 몰려 참수대의 이슬로 사라지고맙니다.

(뒷이야기로는 종교까지 바꿔가면서 왕비에 자리에 앉혔는데 아들을 낳지 못한 앤불린에게

분노한 왕이 그녀를 죽이기 위해 간통죄로 몰았다는 설도 있고

앤불린이 아들을 얻기 위해 자기오빠와 성관계를 갖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독점욕과 소유욕이 강한 여자였습니다.

어느날 왕의 무릎에 정부가 앉아있었는데 당장 달려가서 정부의 뺨을 후려치곤 했다합니다.

또한 첫번째왕비 캐서린이 죽었을 때 헨리8세와 앤은 노란 옷을 입고 축배를 들며 즐거워했다고 하며
앤은 이제 노골적으로 진짜 왕비가 되었다고 즐거워하며 뻐기고 다녔다
앤은 열등감이었는지 자격지심이었는지 첫째왕비 캐서린의 딸 메리를 사생아로 떨어뜨린것도 

모자라 자기 곁에 두고 시녀가 하는 온갖 궃은 일을 시키며 자기 딸 엘리자베스의 시녀로 삼아 

기저귀를 갈게 하고 감옥같은 맨바닥에서 자게 했으며 온갖 모욕과 모진 학대를 가했습니다.  
심지어 앤은 캐서린의 어머니 이사벨라 여왕이 만들어준 그녀의 유아세례복을

캐서린에게서 빼앗아 자기 딸 엘리자베스에게 입히려고까지 했을 정도였다 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세번째 왕비 제인 시모어 - 사망

 

처음에는 캐서린왕비의 시녀였습니다. 왕비 캐서린의 인품과 정숙한 행동에 감명받은

그녀는 앤 불린이 왕비가 되자 계속 시녀를 하다가 헨리의 눈에 띄게 됩니다 .

캐서린왕비의 정숙하고 품위있는 행동을 몸에 익히려고 노력한 그녀는 앤 불린의 드센 성격에 질려,

자신에게 순종하던 캐서린 왕비의 행동을 기억하던 왕에게 매력적으로 비춰지게 되죠 .

왕은 그녀에게 많은 선물과 편지를 보냈으나 그녀는 앤 불린이 하던 것 처럼 자신은 미혼이니

아내가 있는 남자에게서는 아무것도 받을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결국 앤 불린의 사형으로 인해 왕비가 되고나자 더욱 캐서린을 모범삼아 그 행동을 따라하려 합니다.

제인 시머는 캐서린 왕비의 딸 메리를 불러들여 정중하게 공주로 대해주고 헨리의 노여움에서 지켜줍니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헨리가 염원하던 아들 에드워드 6세를 안겨주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제인 시모어는 아들을 낳고 곧 죽고 맙니다.

 

헨리8세는 아들은 낳아준 그녀를 유일한 자신의 아내로 생각했고 -_-;

죽어서는 둘이 나란히 묻히게 됩니다 -_-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네번째 왕비 클리브스의 앤 - 이혼

 

독일 클리브스의 지방의 공주입니다. 

화가인 한스 홀베인이 그려온 저 위의 초상화를 보고 한눈에 OK한 헨리.

허나 그녀가 영국에 도착했을때 헨리의 환상을 깨져버립니다. 기다리다 못해 그녀를

직접 맞이하러 나갔다가 실물을 마주한 순간 헨리는 인사를 마치자마자 도망쳤다고 합니다.

어쩔수 없이 1월에 결혼을 하였으나 말상에 영어도 한마디 못하며 무뚝뚝하고 재미도 없는

그녀에게 헨리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그해 7월에 이혼을 합니다. ㄷㄷㄷ 결혼한지 6개월만에;  

그녀는 처음에는 이혼을 강력히 반대했지만 첫번째왕비인 캐서린이 이혼을 반대하다 비참한 생을

끝낸걸 생각했고 또한 이혼후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 놀림감으로 살 자신이 없었기에

영국에 영원히 지내도 좋다는 허가와 영토, 재물을 받는 조건으로 이혼에 응하게 됩니다.

헨리는 그런 그녀를 왕의 부인이 아닌 왕의 누이로 인정했으며 ; 마땅한 대접을 합니다 .

그 후의 왕비들과도 사이좋게 지냈고 왕가의 결혼식 때는 가장 상석에 앉은 대우를 누렸다고 하죠.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다섯번째 왕비 캐서린 하워드 - 사형

 

헨리8세는 클리브스 앤과 이혼하는 과정에 앤의 시녀로 있던 어린 소녀 캐서린에게 매혹당합니다.

헨리는 7월9일 이혼하고 28일에 캐서린과 비밀리에 결혼을 하죠 -_-

그녀가 열아홉이였는데 두사람은 서른살 가까이 나이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헨리는 그의 사랑스런 아내에게 매일 아낌없이 선물을 주고 엄청 이뻐했다고 하더군요.

또한 그녀를 '가시없는 장미' 또는 '보석같이 가장 귀한 여성'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헌데 결혼한지 1년만에 왕비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들이 떠돌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사실 헨리와의 결혼전부터 음악교사등 프랜시스 더럼과 결혼을 전제로 문란한 행동을 했으며

외사촌과도 약혼을 하며 육체적인 관계를 나누었던 사이였습니다.

 

어리석은 그녀는 헨리와 결혼한 후에도 음악선생을 궁중 음악가로 불러들이고

더럼을 자신의 비서로 삼았습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왕도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자 격노하게 됩니다.

결국 그녀는 런던 탑에서 참수 당하고 말죠 .

 

그리그 그녀는 두번째 왕비 앤 불린과 외사촌 관계라고 하네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여섯번째 왕비 캐서린 파 - 마지막 왕비

 

왕과 결혼하기 전에 두명의 남편을 먼저 보낸 미망인이였습니다.

말년에 헨리8세의 휴식이 되어준 여인으로 헨리의 자식들인 메리, 엘리자베스, 에드워드를

다 같이 궁에 불러들여 지내게 합니다. 말년에 헤리가 매독과 관절염으로 고생할때 간호를 해주었죠

후에 그녀는 아이를 갖고 여자 아이를 출산하나 불행히도 출산 후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

 

헨리8세가 죽고난후 !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에드워드 6세

 

헨리8세가 죽고 아들인 에드워드 6세가 즉위를 하지만 아버지에게서 유전된

매독으로 인해 골골 거리다가 15살에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제인 그레이

 

헨리7세의 외증손녀입니다. 신교도인 에드워드 6세가 후사 없이 죽자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열여섯살 밖에 안된 제인을 여왕으로 선포합니다. 왕자에 욕심도 없는 조용하고 사색적인 소녀가

얼떨결에 여왕이 되버린것 입니다. 허나 에드워드 6세의 배다른 누이인 메리는 이를 용납할수 없었습니다.

제인보다 좀 더 우세한 세력과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없고 메리는 9일만에 권좌를 빼앗습니다.

졸지에 여왕에서 반역자로 전락한 제인은 다음해 런던탑에서 참수를 당하고 맙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메리 1세 여왕

 

그녀는 헨리8세와 첫번째 아내인 캐서린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입니다.

허나 앤 볼린에게 반한 헤라8세가 캐서린과 이혼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댑니다.

"그녀는 내 형의 아내였으므로 그녀와 결혼하는 것은 근친상간이다."

졸지에 메리 1세는 근친상간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로 취급되었으며 헨리 8세의 새 아내인

앤 볼린에게 심하게 구박 받았다고 합니다. 메리는 아름답지는 않지만 천성은 고운 여자였습니다.

메리는 왕위에 오르자 자신의 아버지가 바꾼 영국의 종교를 다시 카톨릭으로 바꾸려 합니다.

그녀는 카톨릭의 부활에 힘썼고 신교도들을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무자비한 방법으로 그들을 죽였으며 탄압하였고 그렇게 죽은 사람들의 인원만 3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때 잔인한 그녀를 '피의 메리' 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1588년 11월 17일에 사망하는데 그녀의 죽음을 모두가 즐거워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복동생들이나 가족들 앞에선 절대 웃지 않았습니다.

헨리8세가 메리에게 농담을 해도 웃지 않고 싸늘함만 돌았으며 그녀의 차가움과 서늘함에

엘리자베스도 자신의 일기에 메리가 웃지 않는다고 적어놨습니다.

어찌보면 불쌍한 여인이죠.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헨리8세와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는 영국의 역사에서도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세계를 점령한 대영제국을 건설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허나 그런 그녀에게도 가슴아픈 기억이 있으니, 그녀의 어머니인 앤 불린이 무려 다섯 남자와

간통을 하여 사형을 당했다는 사실이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창녀'나 '매춘부', '마녀'로 불리는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린 엘리자베스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로 다가왔을까요-_-;

여왕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도 아주 험난하기 그지 없습니다.

자신의 이복언니인 메리여왕이 즉위했을때도 그녀는 반역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2개월이나

런던 탑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6명의 아내를 둔 아버지와 5명의 남자와 간통을 한 어머니..

그것의 영향때문인지 왕위에 오른 그녀가 무엇보다도 강조한것은 바로 '처녀성'입니다.

자신은 국가와 결혼했다는 뜻을 밝히며 처녀성을 강조한 엘리자베스

아마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그녀에게는 영원한 콤플렉스로 남아있었던듯 싶네요.

 

또한 엘리자베스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을 사형대로 보내기도 합니다.

이유인즉, 자신의 어머니인 앤 불린을 여왕에 앉히기 위해 헨리8세가 만든 신교도가 아닌

구교도(카톨릭)를 믿는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사형시킨것입니다.

허나 이같은 일도 그녀가 정치를 잘 펼쳐 신임받는 여왕이였기에 국회와 백성들은 딴지를 걸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녀가 남긴 명언

"그대들은 나보다 좋은 리더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나,

 나보다 그대들을 더 사랑하는 리더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출처 : 이종격투기
글쓴이 : 제시카알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