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는 미국 독립전쟁의 부산물
- 아메리카노 커피
식민지 통제 영국산 홍차 대신 값싼 연한 커피로 대체 이름 자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래
미국 독립전쟁의 계기가 된 보스톤 차 사건. 미국식 커피 아메리카노 역시 이 사건을 계기로 탄생했다. 필자제공 |
아메리카노는 진한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는 커피다. 왜 에스프레소에 물을 부어 희석시켰을까? 에스프레소가 너무 진하고 쓰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렇지만 아메리카노 커피 속에는 미국의 전쟁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미국이 겪은 각종 전쟁의 산물이 바로
아메리카노다.
알려진 것처럼 아메리카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에 진출한 미군 병사들이 진한 에스프레소가 입맛에 맞지 않아
끓는 물을 섞어 연하게 마신 것에서 비롯됐다. 커피에 물을 타서 마시는 촌스러운(?) 미군 병사를 보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미국인들이 마시는
커피라는 뜻에서 아메리카노라고 불렀다.
물론 아메리카노가 세계적으로 퍼진 이유는 커피가 그저 연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같은 연한
커피라도 원두에 뜨거운 물을 통과시킨 드립 커피와는 맛이 또 다르다. 미세한 커피가루에 강한 압력으로 수증기를 통과시켜 원액을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희석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아메리카노는 깊은 맛, 드립 커피는 깔끔한 맛이 차이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왜 유럽과 다르게 커피를 연하게 마시게 됐을까? 발단은 엉뚱하지만 멀리 미국의 독립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계기가 된 것이 보스톤 차 사건이다. 1773년 12월 16일, 미국 식민지 주민이 보스톤 항구에 정박 중이던 영국 동인도
회사의 선박을 습격해 선적한 차 상자를 모두 바다에 던져버렸다. 보스톤 차 사건의 배경은 영국 정부가 식민지 상인들의 차 무역을 금지시키고
동인도 회사에 독점권을 부여했기 때문이었다. 차에 대해 높은 세율의 세금을 매기며 식민지를 통제하려 한 것이고 이에 식민지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불매운동을 전개했다. 일부에서는 영국산 차를 구입한 사람들을 비애국자라고 몰아세우고 협박했을 정도로 거세게 저항했다.
영국과
미국 식민지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차 값이 치솟았고 차를 마신다는 것 자체가 애국적이지 못한 행동으로 여겨졌다. 이런 틈새를 노리고 프랑스와
네덜란드 커피 무역상들이 다량의 값싼 커피 원두를 미국시장에 들여왔다.
그러자 미국 식민지 주민들은 턱없이 비싸진 데다,
비애국적이라고 눈총까지 받게 된 영국산 홍차 대신 값싼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다만 홍차에 길들여진 입맛을 쉽게 바꿀 수 없기에 홍차를 마시는
것처럼 연한 커피를 마셨다. 미국식 커피인 아메리카노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아메리카노’라는 이름 자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에서 얻어졌지만 미국식 커피 자체는 미국의 독립전쟁을 전후로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영국식 티타임(Tea Time) 대신에 미국식 커피
브레이크(Coffee Break)가 생겨났다.
사실, 미국에 커피가 퍼진 것은 군대의 영향이 적지 않다. 1832년 앤드류 잭슨
미국 대통령이 병사들에게 지급하는 전투식량에 커피와 설탕을 필수품으로 지정했는데 이전까지는 커피 대신에 럼주와 같은 알코올을 지급했다. 이 무렵
의무감이었던 존 콜혼 장군이 알코올의 부작용을 지적하며 비알코올성 음료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의회의 반대에 부딪쳐 성사되지 못했다.
10년이 넘게 논쟁을 벌인 끝에 결국에는 잭슨 대통령이 의회의 반대를 뿌리치고 알코올을 빼고 커피를 포함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어 1861년에 일어난 남북전쟁 때 커피는 남군과 북군 병사의 사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 커피에 익숙해진 북군 병사들은
야전에서 늘 커피를 마시며 긴장과 피로를 풀었는데, 미처 물을 끓일 시간이 없을 때는 아예 커피 원두를 씹으며 행군을 했다. 반면 남군 병사들은
커피 때문에 사기가 떨어졌을 정도였다. 북군의 해안봉쇄로 전쟁 물자를 수입하지 못한 남부에서는 커피 역시 품귀 현상을 빚었다. 그러자
남군병사들은 고구마를 엷게 썰어 갈아서 물에 타 마시거나 태운 옥수수를 우려 낸 물로 커피를 대신했다. 심지어 남군 병사들이 북군에게 담배를 줄
테니 커피를 달라며 서로 물물 교환했다는 기록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약 200만 명의 미군이 유럽전선에 참전했다. 이들이
전선에서 마실 수 있었던 음료는 보급품인 커피뿐이었다. 그래서 종전 후 고향에 돌아와서도 주로 커피를 마셨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군이 마시는
커피 양이 더욱 늘어 일인당 일 년에 약 15㎏의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아메리카노 커피가 미국에 널리 퍼지고 또 세계적으로 유행을 하게 된
배경에는 이렇게 미국의 전쟁사와 관련이 있다.
미군은 왜 이렇게 커피에 집착했을까? 남북전쟁 당시인 1865년 남부의 깃발(The
Southern Banner)이라는 신문기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커피는 지친 몸과 가라앉은 기분을 일으켜 세워주는데 안타깝게도 지금
커피가 떨어졌다. 그러니 대용품으로 그저 입을 속일 뿐이다.”
사소한 커피 한 잔이지만 이렇게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메리카노 커피의 전쟁사에서 작은 것이 큰 결과를 만든다는 말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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