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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시대부터 굴은 생명·열정의 상징

구름위 2017. 1. 1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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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시대부터 굴은 생명·열정의 상징

장군의 식도락 ‘굴’


나폴레옹 시대 장군 주노 원수 하루 300개씩 꿀꺽  미국의 아이젠하워 장군 굴로 연합군 사기 북돋아

 

기사사진과 설명
굴을 정열의 상징으로 여긴 18세기 유럽인들은 엄청난 양의 굴을 먹었다. 그림은 ‘굴 먹는 점심’, 18세기 프랑스 화가 장 프랑스와 트로이 작품이다. 
필자제공

굴을 정열의 상징으로 여긴 18세기 유럽인들은 엄청난 양의 굴을 먹었다. 그림은 ‘굴 먹는 점심’, 18세기 프랑스 화가 장 프랑스와 트로이 작품이다. 필자제공



    굴이 맛있는 계절이다. 시원하고 상큼한 바다 맛 때문에 굴이 좋다는 사람도 많은 반면, 굴 특유의 향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굴은 역사적으로 장군들이 좋아했던 해산물이다. 조금 더 확대해 말하자면 지도자들이 즐겨 먹은 음식이고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많이 먹는 식품이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을 남긴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는 엄청난 굴 애호가였다. 절대 군주라는 비판만큼 절대 권력을 장악하기까지 열정적으로 일했던 인물이다. 이런 루이 14세가 굴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영불해협에서 채취한 굴을 마차에 싣고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에까지 날라 파티를 열었다. 무리하면 사고가 나기 마련으로 루이 14세의 주방장 프랑스와 바텔이 자살을 했는데 이유가 굴 때문이다. 파티 시간에 맞춰 신선한 굴이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감과 자존심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 정도면 자존심이 아니라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럽전선을 이끌었던 미국의 아이젠하워 장군도 굴을 좋아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선에서 장군들을 초청해 회식하는 자리에는 미국에서 공수해 온 굴이 빠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굴 마니아의 압권은 나폴레옹 시대의 장군 주노 원수다. 프랑스군 사령관을 지낸 주노 원수는 하루에 굴을 300개씩 먹었다. 이 정도로 굴을 좋아했으니 입맛을 떠나 병적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의심하는 의사도 있었다. 어쨌든 굴을 좋아한 유명 인물 중에는 이렇게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왜 열정적인 사람들이 굴을 좋아할까? 굴과 정열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굴에 생명의 힘과 에너지가 넘치는 열정이 담겨 있다고 믿었는데 그리스 신화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트로이 전쟁은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해 심술을 부리며 남긴 황금 사과가 발단이 됐다. 제일 예쁜 여자가 이 사과를 차지하려다 일어난 전쟁인데, 신들의 결혼식 피로연을 묘사한 수많은 서양의 그림을 보면 하나같이 식탁 위에 굴이 가득 놓여 있다.

 결혼식 피로연에 뜬금없이 왜 굴이 등장한 것일까? 서양 사람들을 굴을 사랑의 묘약으로, 또 생명력의 원천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굴에서 태어났다고 믿었고, 굴이 특별한 날 이슬을 머금으면 품속에 사랑의 결실인 진주가 맺어진다고 생각했다. 굴에는 생명의 힘이, 그리고 열정과 에너지가 담겨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증거가 이탈리아 출신의 바람둥이 카사노바로 아침에 일어나면 생굴을 50개씩 까먹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카사노바 정력의 비결이 바로 굴에 있다고 믿었는데 과연 사실일까? 사실 아침마다 굴을 먹은 이는 비단 카사노바뿐만이 아니었는데, 18세기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한 아침식사법이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그리스 로마시대 이후 오랜 세월 굴을 정력의 원천으로 믿었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은 굴 맛의 매력에 푹 빠졌는데, 특히 로마인들은 굴을 열광적으로 좋아했다. 지나치게 파티와 향락을 즐기다 즉위 여덟 달 만에 왕좌에서 쫓겨난 1세기 때 로마황제 아울루스 비텔리우스는 굴을 한 번에 100개씩이나 먹으면서 멀리 영국에서 이탈리아 로마까지 배를 타고 말을 달려 신선한 생굴을 가져다 먹었다.

 황제뿐만 아니라 보통의 로마인들도 굴 맛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로마의 속지였던 갈리아 지방은 지금의 영국, 프랑스로 유럽의 주요 굴 생산지다. 그런데 갈리아에 주둔한 로마병사들은 월급날이면 현지인들이 따온 굴을 사서 요새로 돌아와 굴 잔치를 벌였다. 고대 로마 병사들은 소금으로 월급을 받았는데, 영어로 월급을 뜻하는 셀러리의 어원이 바로 소금이다. 군인이라는 뜻의 솔저(soldier) 역시 소금을 지급받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월급으로 받은 소금으로 굴을 사서 회식하는 로마 병정들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우리말에도 “남양 원님 굴회 마시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음식을 먹어치우거나 어떤 일을 막힘없이 단숨에 처리할 때 쓰는 말이다.

 남양은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부근인데, 옛날 남양도호부에 부임하는 원님마다 이 지방 특산물인 굴을 씹지도 않고 훌훌 마셨다고 해서 생긴 속담이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이 생겼을까?

 무엇보다 남양만에서 나는 굴이 특별히 맛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바닷가 마을이 아니면 생굴 먹기가 쉽지 않았으니 그만큼 굴을 씹지도 않고 마셨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남양 원님들 일 처리 방식이 무척 시원시원했던 모양이다. 굴회 마시듯 한다는 말이 원님의 식탐을 흉보는 말이 아니라 생굴이 목으로 술술 넘어가듯 막힘없이 일 처리를 잘한다는 뜻으로도 쓰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원님들이 열정적으로 일했던 것은 아닐까?

 긴 세월, 사람들은 굴을 열정의 상징으로 믿었다. 역사적으로 발자취를 남겼던 장군들 역시 굴을 좋아했다는 사실이 시사적이다. 굳이 굴이 아니더라도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어떤 음식이 됐건 그만큼 열정을 먹었다는 뜻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