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오스만 터키 군대 병사들의 야전 전투식량

구름위 2017. 1. 12.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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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터키 군대 병사들의 야전 전투식량

케밥


사막·초원에서 활동하는 유목민들의 안성맞춤 요리로  연료 절약·신속한 조리·기동성 향상 등 일석삼조 효과

기사사진과 설명

한 음식점 직원이 수직으로 세워 구운 고기에서 익은 바깥 부분을 썰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터키풍 되네르 케밥은 빨리 조리할 수 있고 맛이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필자제공


사람들은 현대 도시인의 일상을 전쟁터에 비유한다. 그만큼 생존경쟁이 치열하다는 의미다. 실제 도시인들의 음식을 보면 그 자체가 전쟁과 관련이 깊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장인의 하루 식사를 가정해 보자.

 직장인 A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에게 분유를 타 먹인 후 자신은 시리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출근했다. 사무실에 도착한 후에는 비스킷 하나와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마신 후 업무를 시작한다. 점심시간에는 터키식 패스트푸드인 꼬치구이 케밥(Kebab)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퇴근 후에는 칭기즈칸 전골로 저녁을 먹는다. 바로 집에 들어가기 아쉬운 마음에 이어진 술자리에서는 육포를 안주로 생맥주를 마신 후 집에 가는 길에 야식으로 순대를 사 들고 갔다.

 여기서 A씨가 하루 동안 먹은 음식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평범한 음식일 것 같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전부 전쟁터에서 먹었던 음식들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쟁터에서 먹었거나 전쟁으로 인해 발달한 음식이다.

 우리에게는 비교적 낯설지만 최근 들어 인기를 얻고 있는 터키의 전통음식 케밥 역시 고대 중동 유목민의 전투식량에서 발달했다.

 케밥은 양고기나 쇠고기, 혹은 닭고기를 얇게 썰어 각종 양념을 한 후 꼬챙이에 수직으로 감아 회전시켜 가며 굽거나 각종 야채와 함께 꼬챙이에 꽂아 구워서 먹는 음식이다. 보통은 화덕에 구운 고기를 얇게 썰어 야채와 함께 빵에다 싸서 먹지만, 사실 종류가 너무나 다양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흔히 알려진 종류만 300가지가 넘는다는데 케밥이라는 요리 이름 자체가 중세 터키어로 ‘고기를 굽는다’라는 뜻에서 비롯됐다고 하니까 구운 고기는 모두 케밥이 되는 셈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꼬치구이도 사실은 케밥 종류고, 빵에다 구운 고등어를 싸먹으면 고등어 케밥, 채소인 가지에다 양고기를 끼워 먹으면 터키 별미의 요리가 된다. 케밥이 이렇게 다양하게 발달한 까닭은 옛날 오스만 터키 제국에서 술탄의 식탁에는 동일한 음식이 두 번 다시 올라와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술탄의 막강한 권력과 터키 요리의 풍부함 그리고 다양성을 자랑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겠지만 17세기 무렵의 술탄은 진짜 같은 요리를 두 번 다시 먹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술탄의 궁전에는 약 300명의 요리사가 있어 서로 경쟁적으로 최고급 요리를 만들어 술탄에게 바쳤다고 하니 술탄은 같은 요리를 또 먹고 싶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제 먹은 요리가 생각났다가도 바로 눈앞에서 더 맛있어 보이는 새로운 요리가 유혹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케밥은 어떻게 발달한 음식일까. 케밥의 뿌리는 옛날 오스만 터키의 병사들이 초원에서 고기를 잡아 얇게 썰어 칼에 꽂은 후 불에 돌려가며 먹었던 전투식량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요리의 간편성 때문이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먹지 않고는 싸울 수 없다. 하지만 고기를 통째로 구우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고기가 다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싸울 수 있도록 적군이 참아주지를 않는다. 그래서 고기를 여러 조각으로 얇게 썰어 검에 꽂아 구우면 통째로 구울 때보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오스만 병사들의 전투 음식은 사막과 초원에서 사는 유목민들에게도 적합한 요리법이었다. 나무가 풍부한 곳에서는 통구이가 발달한 반면, 사막이나 초원처럼 땔감 구하기가 쉽지 않은 지역에서는 연료 절약을 위해 고기를 얇게, 여러 조각으로 썰어서 구워야 한다. 꼬치에 꽂은 고기는 빨리 익어 땔감도 아낄 수 있고, 요리시간도 줄일 수 있으니 이동이 잦은 유목민들에게는 안성맞춤의 패스트푸드 요리였다. 초원과 사막에서 자원 절약, 기동성 향상, 보존성 증대의 일석삼조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음식이 바로 케밥이었던 것이다.

 케밥 중에서도 터키풍으로 유명한 것은 되네르(Doner) 케밥이다. 요즘 유행하는 케밥으로 꼬챙이에 고기 조각을 엇갈리게 꽂아 쌓아 올린 후 기둥처럼 세로로 세운 화덕 옆에서 서서히 돌리며 겉에서부터 고기를 익히는 요리법이다. 고기를 가로로 눕혀 굽는 일반적인 통구이와는 달리 수직으로 세워 굽는 방식을 고안한 것이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과 비슷하다.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된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되네르 케밥은 19세기 무렵, 터키의 옛 수도인 부르사(Bursa)에서 만들어진 요리법이라고 한다. 바깥쪽의 익은 부분만 썰어내니까 더 빨리 조리할 수 있고, 세운 채로 조금씩 익히기 때문에 기름이 빠져나가 맛은 더 담백해진다.

 흥미로운 사실은 케밥이나 햄버거처럼 서양 패스트푸드는 주로 유목민의 음식, 초원의 전투식량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케밥이 터키 유목민, 오스만 병사의 음식에서 기원한 것처럼, 햄버거 패티 역시 타타르 병사가 말안장에 넣고 다닌 생고기에서 기원을 찾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최소의 연료로 요리하고 조리시간도 최대한 단축하는 초원의 요리법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한 빠르게 살아가려는 현대인의 생활방식과 통하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