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추어탕은 韓·中·日 공통의 서민 보양식

구름위 2017. 1. 12. 21:15
728x90

추어탕은 韓·中·日 공통의 서민 보양식

>추어탕


관도대전 때 군량 떨어진 조조軍 미꾸라지 먹으며 원소軍 격파  소설 금병매에서 서문경의 정력 묘사할 때 상징물로 자주 등장

역사가 됐건 소설이 됐건 삼국지의 최종 승자는 조조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조조가 승리하는 데 보이지 않게 기여한 것이 바로 미꾸라지 추어탕이라고 믿는다. 무슨 뚱딴지같은 믿음이며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조조가 권력을 장악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관도(官渡) 전투의 승리 때문이다. 조조와 원소가 싸운 관도대전은 유비·손권의 연합군과 조조가 전투를 벌인 적벽대전, 그리고 유비가 관우와 장비의 원수를 갚고 형주를 수복하기 위해 손권과 벌인 이릉(夷陵) 대전과 함께 삼국지의 3대 전투로 꼽힌다. 그런데 관도대전에서 조조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작은 미꾸라지 덕분이라는 것이다.

 서기 199년 3월에 시작해 200년 10월에 끝난 관도대전은 당시로서는 첨단 무기들이 동원된 기술전이었다. 원소군이 공병기술을 동원해 성안에 흙으로 산을 쌓아 소나기처럼 화살을 퍼붓자 조조군이 크게 혼이 났다. 이에 대항해 조조군은 요즘의 대포처럼 커다란 돌을 쏠 수 있는 발석거(發石)라는 장비로 원소군에 맞서면서 일진일퇴를 거듭한다. 그만큼 치열했다는 뜻이다.

 소설 삼국지에서는 관우가 원소의 장군인 문추와 안량의 목을 손쉽게 베고 승리를 거듭하니까 조조군이 유리한 싸움을 벌였던 것처럼 그렸지만 사실 관도대전은 조조에게 불리했던 전투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당시 원소의 군대는 10만 대군, 조조 군은 1만에 불과했다고 한다.

 병력, 장비와 기술 모두 원소에 비해 열악했지만, 조조의 진짜 고민은 병참에 있었다. 결정적으로 병사들이 먹고 싸울 군량이 부족했다. 식량이 떨어져 할 수 없이 조조가 부대를 철수시키려고 하자 참모인 순욱이 조금만 더 참고 견디자며 반대했을 정도다.

 이때 조조 군대의 식량부족을 해결해 준 것이 바로 미꾸라지 추어탕이다. 군량이 떨어져 배가 고픈 병사들이 진흙 속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구워 먹었다. 하지만 아무것이나 함부로 먹지 말라는 조조의 명령을 위반했기 때문에 그 죄로 처벌을 받기 직전이었는데 조조가 병사들이 먹었던 것처럼 직접 미꾸라지를 먹어보니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그리하여 명령을 어기고 함부로 미꾸라지를 먹은 병사들을 처벌하는 대신 미꾸라지를 잡아 양식으로 삼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간단하게 식량문제를 해결한 조조군은 관도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다. 그리고 조조는 처음 미꾸라지를 잡아먹은 병사들을 불러 상을 내리고 미꾸라지 요리의 이름을 직접 관도니추(官渡泥鰍)라고 지었다.

 우리가 추어탕을 즐겨 먹는 것처럼 지금 중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미꾸라지 요리, 관도니추가 생긴 유래라고 하는데 정사(正史)인 삼국지는 물론 소설 삼국지연의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다. 중국 민간에서 속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인데 중국인들은 2000년 전의 전투를 놓고 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까?

 일반적으로 추어탕은 우리나라에서만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우리는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도 즐겨 먹는 서민들의 음식이다. 우리에게 남원·원주·그리고 경상도 추어탕이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일본은 도쿄의 미꾸라지 요리가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야나가와 나베(柳川鍋)라는 요리가 많이 알려져 있는데 냄비에다 우엉을 깔고, 그 위에 손질한 미꾸라지를 얹어 끓인 후에 계란을 풀어서 먹는 일종의 미꾸라지 스키야키 요리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처럼 미꾸라지 튀김도 즐겨 먹고, 미꾸라지 간장 조림도 인기다.

 중국에도 관도니추를 비롯해 다양한 미꾸라지 음식이 있다. 중국 농민들은 흔히 “하늘에는 비둘기, 땅에는 미꾸라지가 있다”고 말하는데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 재료 중에서 가장 영양이 풍부한 것이 비둘기와 미꾸라지라는 뜻이다. 그만큼 미꾸라지와 친숙한데 한국과 중국·일본 모두 미꾸라지 음식은 철저히 서민음식이다. 사실 세 나라 모두 양반들, 귀족들은 적어도 겉으로는 거들떠보지 않은 음식이다. 남의 눈에 뜨일까 조심스럽게 먹었다. 이유는 한·중·일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미꾸라지를 보양식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도쿄 토박이 중에는 아직도 복날이면 장어 대신 미꾸라지를 먹으며 여름철 더위를 이겨낸다고 한다. 중국도 미꾸라지는 보양식으로 취급하는데 소설 금병매에서 서문경의 정력을 묘사할 때 미꾸라지가 상징물로 자주 등장한다. 중국인들이 미꾸라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인 만큼 양반집 안방마님이 한밤중에 사랑채에 머무는 서방님께 은근하게 야식으로 내보냈던 음식이 바로 추어탕이다.

 조조가 거둔 관도대전 승리의 요인 중에 미꾸라지가 있다는 말이 만들어진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배고픈 병사들이 먹고 싸움에 이길 정도로 미꾸라지의 영양분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지만 전투의 승리에는 이름 없는 병사, 그리고 그들이 먹었던 음식이 다급한 순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다.

 인간적으로 좋고 싫음을 떠나서 조조는 용병술이 뛰어난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지배계층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음식, 미꾸라지를 관도전투 승리의 동력으로 삼은 지혜, 진흙 속에서 보물을 찾는 능력이 조조 용병술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