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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딸기 종자는 세상에 나온 지 200년?

구름위 2017. 1. 1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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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딸기 종자는 세상에 나온 지 200년?

<14>스파이가 사랑한 ‘딸기’


식물학자로 위장한 프랑스 간첩 정보도 수집하고 새 품종도 찾고

기사사진과 설명

딸기는 18세기 초, 프랑스 육군 중령 프레지어가 식물학자로 위장해 스파이 활동을 하며 찾아낸 야생 딸기의 인공 교배로 만들어진 품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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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데 프랑수와 프레지어 육군중령.

아메데 프랑수와 프레지어 육군중령.



봄철 딸기가 한창 맛있을 때다. 그런데 인류는 언제부터 딸기를 먹었을까? 대부분의 대답은 이렇다. “딸기는 인공적인 발명품이 아니라 자연의 식물이니 당연히 옛날부터 먹었을 것이다.”

 옳으면서 동시에 틀린 답이다. 딸기는 먼 옛날부터 지구 곳곳에서 자랐다. 다만, 지금 먹는 딸기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모조리 산딸기, 멍석딸기, 뱀 딸기와 같은 야생 딸기 종류다.

지금 우리가 먹는 딸기 종자는 세상에 나온 지 2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의 딸기는 쉽게 말해 자연산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딸기를 만들었을까? 주인공은 프랑스 스파이다. 지금 우리가 맛있게 먹는 딸기는 프랑스 간첩이 열심히 스파이 활동을 한 결과다.

 1712년 어느 날,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남미 칠레의 해안가 숲에서 프랑스의 식물학자가 야생 딸기를 관찰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쉬지 않고 해안가를 뒤지며 야생 딸기 종자를 채집하며 기록했다. 수첩에는 칠레 야생 딸기와 관련된 각종 기록과 숫자가 마치 암호문처럼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프랑스 식물학자의 이름은 아메데 프랑수와 프레지어(A. Frezier)였다. 지금 우리가 먹는 딸기가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이다. 그의 직업은 교수나 학자가 아니었다. 프랑스 육군 정보국 소속 현역 중령으로 아마추어 식물학자였다. 그가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칠레의 야생 딸기 관련 기록은 딸기에 관한 기록인 동시에 군사정보를 적은 암호였다. 칠레 해안가에 설치된 요새와 주둔 병력, 대포의 수와 병참공급 현황 같은 군사정보는 물론이고 독립 전 칠레를 통치했던 스페인 총독의 근황과 원주민의 움직임까지 정치, 경제, 사회와 관련한 모든 정보가 함께 적혀 있었다.

 딸기의 탄생은 유럽 열강이 세력 다툼을 벌이며 싸운 결과였다. 엔지니어이자 수학자이며 현역 군인인 프레지어 중령을 남미에 파견한 사람은 당시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였다. 프랑스가 멀리 떨어진 남미에 간첩을 보낸 것은 유럽의 국제정치 판도 때문이다. 이때의 스페인 국왕 필리페 5세는 루이 14세의 손자로 필리페 5세의 왕권을 유지하고 스페인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스페인과 식민지의 정보를 수집했던 것이다. 반대파들이 필리페 5세를 몰아내려고 할 경우 즉각적인 무력개입을 하려는 의도였다.

 그 때문에 멀리 페루와 칠레까지 간첩을 보내 군사정보를 수집했던 것인데 프레지어 중령이 야생 딸기 종자를 관찰하고 채집한 것은 스파이 활동을 들키지 않기 위한 위장이었다. 프레지어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후 1714년 프랑스로 귀국했다. 그리고 칠레의 해안가 방어진지를 포함한 군사정보가 담긴 지도를 제작해 루이 14세에게 제출했다. 프레지어 중령에게 금화 1000냥을 상금으로 내린 것을 보면 그가 그린 군사지도에 루이 14세가 아주 만족했던 모양이다.

 스파이 활동을 완수한 프레지어 중령은 파리에서 그동안 칠레에서 꼼꼼히 관찰하고 스케치한 바닷가의 토종 딸기에 관련한 책을 출판한다. 그리고 파리에다 귀국할 때 함께 가져온 토종 딸기 종자를 심었다. 토종 칠레 딸기는 빨갛고 예쁜 계란 크기의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지만 먹을 수는 없는 종자였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풍토가 맞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예 열매조차 맺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프레지어를 포함한 유럽의 여러 식물학자가 칠레 딸기와 다른 야생 딸기 종자를 교배시켜 열매를 맺게 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는데 마침내 영국의 필립 밀러가 남미 칠레의 야생 딸기와 북미 버지니아의 야생 딸기를 교배시켜 새로운 종자를 얻는 데 성공한다. 이 딸기가 지금 우리가 먹는 재배용 딸기의 원조다. 그리고 품종이 우수한 묘목을 선별해 대량으로 재배를 시작한 것이 1806년 전후다. 그러니 자연에서 자라는 산딸기가 아닌 재배해서 먹는 딸기의 역사는 기껏해야 200년에 불과하다.

 인공적으로 만든 품종인 서양 딸기, 즉 양딸기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1920~30년대 무렵으로 추정된다. 딸기가 처음으로 동양에 전해진 것은 19세기 말, 네덜란드를 통해 일본에 관상용으로 처음 전해졌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딸기를 먹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이다.

 지금까지 별생각 없이 먹는 딸기였지만 따져보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과일이 딸기다. 먹음직스러운 과일에 불과했던 딸기지만 우리의 입속으로 들어오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사실이 숨겨져 있었다. 18세기, 유럽의 국제정세와 프랑스의 국력을 강화하려는 루이 14세의 대외정책, 남미에 파견된 프랑스 간첩 프레지어 중령과 그의 활동까지 딸기 한 알에 담긴 역사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탐스러운 딸기 종자를 발견하면서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한 프레지어 중령이 맛있게 딸기를 먹는 우리에게 전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