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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왕 웅어愛, 군침 삼키다 왕위 토했다

구름위 2017. 1. 1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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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왕 웅어愛, 군침 삼키다 왕위 토했다

<13>웅어
2013. 03. 27   15:29 입력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싶은가? 와신상담의 각오가 필요하다. 괴로움을 견디며 기회가 올 때까지 실력을 닦아야 한다. 마음은 독하게 먹는다 하더라도 실력은 어떻게 쌓아야 할까? 치밀하게 기획하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방법을 잘 모르겠으면 웅어라는 생선을 먹으며 생각해 보라. 춘추시대 오왕 합려가 어떻게 왕이 됐는지, 웅어 속에 답이 있다.

 거친 섶 더미에서 잠자고 쓴 쓸개를 핥으며 복수의 칼을 갈았다는 와신상담의 고사는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의 이야기지만 그 뿌리까지 캐보면 사실, 오왕 합려와 웅어라는 생선에서 비롯된다.

사촌 동생에 왕위 빼앗긴 합려  생선 속에 비수 숨겨 오왕 살해

기사사진과 설명
봄철의 별미로 알려진 웅어구이.

봄철의 별미로 알려진 웅어구이.


 

기사사진과 설명
웅어 속에 감췄다는 어장검.

웅어 속에 감췄다는 어장검.



 기원전 496년, 합려가 구천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목숨을 잃는다. 죽기 전, 아들 부차에게 “원수를 절대 잊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겼고 부차는 섶에서 잠자며 복수를 다짐한 것이 와신(臥薪)이다. 이런 부차에게 패한 후 구천이 치욕을 갚겠다고 맹세하며 쓸개를 핥은 것이 상담(嘗膽)이다.

 와신상담의 빌미가 된 합려는 어렵게 왕이 된 인물로 사촌 동생의 왕 자리를 빼앗았다. 비난받아 마땅한 인물일까? 사정을 알고 나면 판단이 쉽지 않다.

 합려는 오나라 왕 제번의 장남이다. 당연히 왕이 됐어야 하지만 부친이 인품이 뛰어난 숙부에게 먼저 왕권을 물려주겠다고 해서 기다렸다. 그런데 숙부가 죽은 후 왕위가 아들인 사촌 동생 요에게 넘어갔다. 합려는 졸지에 왕위를 빼앗긴 꼴이 됐지만 요는 합법적으로 왕권을 물려받았다. 합려는 호시탐탐 왕권을 되찾을 기회를 노렸고 오왕 요는 이런 사촌 형을 극도로 경계했다.

 노심초사하던 합려가 뜻이 맞는 동지로 검객, 전제를 만났다. 두 사람은 의기를 투합해 오왕 요를 암살하기로 의견을 모았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효성 깊은 전제에게는 늙은 홀어머니가 있었다. 자신이 죽으면 노모를 돌볼 사람이 없어 전제가 거사를 망설이자 합려가 “공과 나는 한 몸과 다름없으니 훗날 일은 걱정 말라”며 전제를 안심시킨다.

 사기(史記) 자객열전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리더는 부하를 진정으로 아끼고 돌보며 부하는 자신을 알아주는 상사에게 목숨 바쳐 충성한다는 것이 주제다.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하고,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합려와 전제는 오왕 요의 암살을 준비하는데 기획과 준비과정이 치밀하기 짝이 없다. 왕이 생선구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전제가 중국 장쑤성에 있는 태호(太湖)로 가서 생선 굽는 법을 배운다. 열성을 다해 삼 년 동안 배우니 생선구이 달인으로 소문이 났다. 합려가 전제를 요리사로 고용해 수시로 오왕에게 생선구이를 바쳤다. “전제가 구운 생선이 아니면 오왕이 먹지를 않았다”는 기록까지 전해진다.

 기원전 514년 봄, 합려가 태호의 웅어구이가 한참 맛있을 때라며 오왕 요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항상 합려를 경계한 왕이지만 전제가 굽는 웅어구이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경계는 철저히 해 궁궐에서 합려의 집까지 호위병을 일렬로 배치하는 한편 요리상 주변에도 심복들을 세워 사람으로 장막을 쳤다. 자객이 뛰어들 여지를 철저히 봉쇄했다.

 의심 많은 오왕 요의 성격을 잘 아는 합려와 전제가 그런 허점을 찔렀다. 웅어구이를 준비한 이유다. 왕에게 매화나무 장작 구이를 대접하겠다는 것이었는데 매화는 겨울에 꽃 피는 나무다. 그리고 웅어는 봄에 한참 맛이 오르는 생선이니 마른 매화나무 장작으로 불을 피우면 매화향이 웅어에 배면서 겨울과 봄의 맛과 향기가 어우러져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맛이 나온다.

 또 웅어는 작은 생선으로 길이가 20~30㎝에 불과하다. 큰 물고기는 혹시 비수를 숨길 수도 있어 생선 속살까지 파헤치겠지만 웅어는 면도칼 정도라면 모를까, 비수를 감추기에 적당치 않다. 의심조차 할 필요가 없는 작은 생선인 웅어의 배 속에 전제는 한 뼘 크기에 불과한 어장검(魚腸劍)을 숨긴다. 크기는 작지만 단칼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명검으로 물고기 창자에 넣을 수 있다고 해서 얻은 별명이다. 그리고 어장검을 품은 웅어구이를 담은 접시를 왕 앞에까지 갖고 가 한칼에 오왕 요를 베어 죽인 후 자신도 호위병에게 죽임을 당한다.

 웅어가 도대체 얼마나 맛있기에 오왕 요는 초대를 거부하지 못했을까? 지금은 웅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한때 한강에서 많이 잡혀 조선 시대 임금님께 진상했던 생선이다. 지금도 낙동강·영산강·금강 하구 지역에서는 많이 먹는다. 웅어 맛을 아는 사람은 가을 전어와 대비되는 맛으로 봄철 웅어를 떠올린다. 회나 구이 모두 씹을수록 고소하고 감칠맛이 도는데 전어처럼 머리부터 통째로 먹어야 맛있다. 웅어·전어·준치·청어가 모두 비슷한 청어목 생선이기 때문이다.

 혹시 웅어 먹을 기회가 있다면 오왕 합려가 왕이 되는 과정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그 정도의 준비와 노력이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