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무기 이야기

반응장갑 블레이저(Blazer

구름위 2017. 1. 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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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장갑 블레이저(Blazer)

전차 표면 폭발 적 전차탄 무력화
2006. 07. 10   00:00 입력 | 2013. 01. 05   02:24 수정


레바논 분쟁 당시 이스라엘 전차를 상대하던 시리아군 병사들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게릴라들은 전혀 생소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예전 같으면 쉽게 격파할 수 있었던 이스라엘군 전차들이 RPG-7이나 AT-3 같은 대전차 화기의 공격에도 전혀 파괴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성냥갑 같은 작은 상자를 전차 곳곳에 촘촘히 붙인 이스라엘 전차들은 대전차 화기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화염에 휩싸였지만 파괴되기는커녕 무시무시한 기세로 반격했다. 이처럼 이스라엘군 전차들이 ‘근거리에서 대전차 로켓 공격을 받을 경우 이를 방어할 수 있는 전차는 없다’는 통념을 깰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블레이저(Blazer) 덕분이었다.
1970년대 들어 다종 다양한 대전차 미사일과 대전차 로켓의 등장은 전차에 대한 보병들의 저지 능력을 배가시켰다. 반대로 전차의 중요성은 점점 위축됐다. 이에 맞대응하기 위해 영국을 비롯한 서방세계 국가를 중심으로 복합장갑 기술이 개발됐으나 워낙 가격이 비싸 쉽게 보편화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에 걸쳐 로켓무기 만능론과 ‘전차 무용론’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특히 주변 국가들과의 불편한 외교관계로 인해 항시 준 전시 상태에 놓여 있는 것과 다름없는 이스라엘로서는 대전차 무기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었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 속에 기존 전차를 크게 개조하지 않으면서도 방호력과 전투력을 동시에 배가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이스라엘은 블레이저를 실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레바논 분쟁을 통해 성능을 검증받은 블레이저는 폭발반응장갑(ERA : Explosive Reactive Armor)의 일종이다. 폭발반응장갑은 2매의 강판 사이에 폭약을 가득 채운 것으로 보통 상자 형태로 돼 있으며 장갑판 위에 덧붙여 보조 장갑으로 사용된다. 폭발반응장갑은 운동에너지탄(APFSDS)이나 성형작약탄(HEAT)의 메탈제트가 표면 강판을 뚫고 들어오는 순간 폭발해 외부 강판을 날려버리게 되고 이때의 폭발력이 운동에너지와 메탈제트를 상쇄시킨다는 원리다.
레바논 분쟁을 통해 RPG-7 대전차로켓은 100%, AT-3 대전차 미사일은 70% 이상 무력화시키는 위력을 발휘해 전 세계 군사전문가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원래 반응장갑을 최초로 개발해 특허권을 획득한 것은 이스라엘이 아닌 서독의 방산업체였다. 그러나 서독 정부와 군의 반응은 냉담했고 자칫 사장될 뻔했던 이 기술은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에서 실용화됐다. 보조 장갑판의 일종인 블레이저를 공격 무기로 분류할 수는 없다. 그러나 블레이저의 등장과 그 파급력은 여느 전투무기체계의 등장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기존의 일반 장갑형 전차도 간단한 개수를 통해 폭발반응장갑을 장착하는 순간 대전차무기 방호 능력은 두 배 이상 향상된다는 점은 이 무기체계의 가장 큰 미덕이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이 선보인 반응장갑은 일반 장갑에서 복합 장갑으로의 발전 단계상 과도기적 형태로 평가받지만 그 유효성은 여전히 뛰어나며 이후 기갑무기체계 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T-54·55 전차

2006. 07. 24   00:00 입력 | 2013. 01. 05   02:25 수정


역사상 가장 많이 생산된 전차가 바로 구소련의 T-54·55 전차(사진)다. T-54·55는 T-54가 등장한 1946년부터 70년대 말까지 도합 10만 대에 가까운 수가 생산돼 역사상 가장 많이 생산된 전차로도 기록되고 있다.

T-54·55 전차는 56구경장 100㎜ 전차포 D-10T의 운용이 가능하며 보다 방어력이 개선된 포탑을 장착한 중형전차 T-54와 T-54의 구성 요소를 개량, 58년에 등장한 T-55 전차를 총칭한다.

41년 독소전 개전 당시 소련 기갑부대는 숫자만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독일이 42년 중반부터 티거·판터 같은 우수한 전차를 쏟아내자 소련군의 질적 우세는 사라진다. 열세를 상쇄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수단은 T-34 전차의 화력을 강화하는 것이지만 T-34 는 구조적 한계로 85㎜ 이상의 전차포를 장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중형전차 T-44의 개발이 시작된다. T-44의 주포로는 SU-100 자주포의 주포로 쓰이던 전차포 56구경장 100㎜ 전차포, D-10T를 탑재할 예정이었는데 포탑의 구조적인 한계로 탑재가 불가능했다.하지만 100㎜ 대신 탑재 후보로 오른 85㎜ 전차포로는 냉전 구도 이후 새롭게 부상한 적 미국의 퍼싱 전차를 상대하기는 어려웠다. 마침내 46년 모로조프 설계국은 T-44를 기초로 100㎜ 전차포 D-10T의 운용이 가능하며 보다 방어력이 개선된 새로운 포탑을 장착한 T-54의 개발에 성공한다.

T-54는 100㎜ 주포와 최대 190㎜의 장갑, 전투중량 36.5톤으로 미국의 퍼싱에 비해 10톤 이상 가벼우면서 거의 대등한 수준의 교전이 가능해졌다. 특히나 서방 각국의 주력 전차가 장비하던 90㎜ 전차포보다 대구경인 100㎜ 전차포를 탑재했다는 점에서 서방에 쇼크를 주었다.하지만 50년대 중반 미국이, 50년대 후반 소련이 전술핵을 개발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돌파구를 형성하고 적의 중점을 제압하는 중전차가 무의미해지고 대신 핵병기 사용 하에서도 부대 전체의 전력을 유지해 적을 제압할 수 있도록 방어력을 희생하고라도 화력과 기동성에 중점을 둔 다수의 전차, 즉 주력전차(MBT)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이 새로운 전장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T-55다. T-55는 T-54를 기반으로 엔진을 580마력 출력의 V-54-6 디젤엔진으로 교체, 기동력을 높였으며 주포의 교환은 없었지만 신형 탄 채용, 화력을 높였으며, 전차용 방사능 방호시스템 PAZ를 채용, 핵전 상황에서의 대응 능력을 갖게 됐다.

T-54·55는 1세대 전차 개념의 마지막으로 개발됐지만 MBT의 개념에 가장 적합한 전차로 60년대 중반 서방 각국이 105㎜ 전차포를 장착한 MBT들을 내놓을 때까지 소련군 기갑부대의 주력 전차로 활약했다.이후에도 동유럽과 제3세계의 친소 각국에서 70년대 말까지 생산돼 대전 이후 세계 각국의 분쟁에 빠지지 않고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에도 현대화 개수를 받고 살아남아 러시아나 구 사회주의, 친소 국가들의 전차 전력에 일단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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