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를 바꾼 3대 전투 - 나가시노 전투 (2) 다케다 가쓰요리가 배후를 포위당할 위협 속에서, 막대한 전력손실을 입어가며 나가시노 성에 집착한 이유에 대해서는 지난 이야기에서 설명했습니다. 다케다 가문을 배신한 나가시노 성의 지휘관 사다마사를 잡아 가문에서 자신의 입지를 높이려는 개인적인 욕심과 산악지대의 영지에.. 역사 ,세계사/일본이야기 2012.12.25
일본의 역사를 바꾼 3대 전투 - 나가시노 전투 (1) 일본의 역사를 바꾼 3대 전투로는 나가시노 전투, 세키가하라 전투, 오사카 성 전투를 꼽는데, 특히 나가시노 전투는 유럽에서 기사의 시대가 저물었듯이, 일본에서도 무사가 아닌 일반 보병의 시대로 바뀐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역사를 바꾼 3대 전투 - 나가시노 전투 (1) 일본 전국시.. 역사 ,세계사/일본이야기 2012.12.25
전국시대의 개막 - 응인의 난 중세의 일본은 천왕과 귀족의 정치가 끝나고, 무사들이 막부를 열어 통치를 했다. 일본 두 번째 막부인 아시카가家의 무로마치 막부는 말기적 증상으로 이미 쇼군의 힘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국고를 축내었고, 여러차례 덕정령(德政令)을 발표했으나 별 실효를.. 역사 ,세계사/일본이야기 2012.12.13
樂市樂座를 통한 정보망의 완비 연금술사 노부나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삶의 방식은 명쾌했다. 자신에게 부여된 운명으로 오직 천하평정을 목표로 한 삶을 살았다. 한편 그의 생애는 수많은 수수께끼들이 숨겨져 있다. 그 한 예로 자금에 관한 것이 있다. 노부나가가 20세에 장인 사이토 도산(齋藤道三)과의 대면.. 역사 ,세계사/일본이야기 2012.12.13
코쿠다카(石高)制와 직할지 히데요시는 타이코켄치(太閤檢地:토지조사)를 실시하여 코쿠다카(石高:쌀 생산량)制에 의한 근세적인 토지소유 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 다이묘에게 영지를 나누어 주었다. 히데요시의 직할지는 전국의 코쿠다카 약 1800만석 중 200만석에 이르고 기나이(畿內)를 중심으로 전국.. 역사 ,세계사/일본이야기 2012.12.13
난반무역(南蠻貿易) 당시의 일본에서는 포루투갈인이나 스페인인을 난반진(南蠻人)이라고 불렀으며 그들과의 무역을 난반무역이라 했다. 수입품으로는 철포, 화약, 모직물 등의 유럽의 산물을 비롯하여 중국산의 생사, 견직물 등이었다. 일본으로부터는 금, 은, 검도류, 유황, 칠기가 수출되었다. ※난반(南.. 역사 ,세계사/일본이야기 2012.12.13
장자 이외의 아들이 계승한 경우 가이의 호랑이라 불리웠던 일세의 효웅 다케다 신겐은 장자인 요시노부보다 사남인 가쓰요리를 더 총애합니다. 하지만 장자계승 문제도 있었고 가쓰요리가 출생상 문제가 있었기에 계승이 쉽지 않았습니다. 신겐은 젊은 시절 스와가문을 멸망시키고 그 영주의 딸을 아내로 맞은 적이 있.. 역사 ,세계사/일본이야기 2012.12.13
선교사 추방령 오다 노부나가는 엔랴쿠사, 혼간사를 비롯한 사원 세력을 타도하기 위해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보호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처음에는 이를 답습하여 기독교를 널리 보급했다. 더구나 도오툐미 정권의 유력한 지주였던 교토, 오사카, 사카이의 상인들이 해외 진출을 열망하고 있었고, .. 역사 ,세계사/일본이야기 2012.12.13
최초의 사무라이 정권 가마쿠라 막부 타이라(平)씨 일족정치에 대한 반감이 무사단·귀족·사원사이에서 커지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는 타이라씨타도의 병 을 일으켰다. 요리토모는 1183년 동국의 행정권을 장악, 카마쿠라(鎌倉)를 거점으로 하여 세력을 확대해 나간다. 1185년 단노우라(壇の浦)의 싸움으로 타이라씨.. 역사 ,세계사/일본이야기 2012.12.13
天下布武를 향한 대전략 외교가 노부나가 일찍이 “천하포무의”의 의지를 가진 노부나가는 다른 다이묘와가가 상상도 못할 정도의 구상을 했다. 군사만이 아닌 여러 가지 정치적, 외교적 수단도 종횡으로 구사하고 있다. 특히 외교전략에서는 능숙한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노부나가는 오케하자마(桶狹間)전투.. 역사 ,세계사/일본이야기 2012.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