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우리 역사 이야기

[스크랩]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아이

구름위 2012. 10. 7.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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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노치티틀란의 쿨루아테쿠틀리이자 아스텍 제국의 우에이 틀라토아니(거룩한 대변자, 황제)인 아우이트소틀 치세 14년

 

 

  Image from Portion of Page 107r of Codex Ixtlilxochitl

익스틀릴소치틀의 증조할아버지 익스틀릴소치틀1세

 

 

즉 서기 1500년, 테노치티틀란, 타쿠바와 함께 아스텍 제국을 이루는 도시 텍스코코에서 한 왕자가 태어났다. 텍스코코의 통치자

 

인 네사우알피이는 태어난 자신의 아들의 미래를 보기 위해 점성술사를 불러들었다. 훗날 스페인 역사가들이 악마와 계약을 맺었

 

다고 주장하듯이 네사우알피이는 텍스코코의 통치자이면서 위대한 마법사 혹은 제사장이기도 하였다. 그에겐 2000여명이나 되는

 

후궁과 144명의 자식이 있었기 때문에 올해 태어난 아기가 대수롭지 않게 보일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점성술사들이 한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되도록이면 아기를 당장 죽이라 충고했다. 그 아기가 장차 성년이 되면 아스텍 제국뿐만이 아니라 그

 

관습, 종교 모두다 말살시킬거라고...

 

 

 

 

 

 

서기 1500년은 아스텍 제국의 절정을 보여주는 해이기도 하였다. 아우이트소틀의 치세에 아스텍은 아나우악땅 대부분을 차지하

 

였고, 제국의 지배하 300여개의 도시의  수많은 조공품이 수도 테노치티틀란에 들어왔다. 그들의 세계관으로 보았을땐  아스텍은

 

가히 몽골제국에 버금갔을것이다.

 

 

 

 

 

 

 북쪽엔 타라스칸 왕국과 치치멕 야만인, 동쪽 변두리엔 틀락스칼라 4지방이 아스텍에게 번번히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그들은 제

 

국의 큰 위협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위대한 제사장이자 마법사였던 네사우알피이는 곧 갈대의 해-켓살코아틀의 도래하는 날이

 

다가온다는 것을 예견하였다. 그리고 올해 태어난 아기에 대한 불행한 예언은 이상하게도 켓살코아틀의 도래와 우연히 맞아 떨어

 

졌다.  네사우알피이는 장차 켓살코아틀이 아나우악 땅(멕시코)로 돌아올때 그 아기를 택할것이라 생각하였다.

 

 

 

 

 불행한 예언을 담고 뭍힌 채 태어난 이 아기는 증조 할아버지이자 옛 텍스코코의 통치자였던 익스틀릴소치틀 1세의 이름을 따

 

'익스틀릴소치틀 2세'라 불렀다.  익스틀릴소치틀이 12세가 되었을때, 그는 자신의 아버지 네사우알피이의 사제들이 자신을 부정

 

적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에 회의감을 느꼈다. 사제들은 익스틀릴소치틀이 태어난 해 점성술사들이 예견했던 불행한 예언을 반복하

 

였던 것이다. 이에 익스틀릴소치틀은 전사들을 모집, 사제들의 집에 쳐들어가 그들을 앞으로 끌어내어 죽여버렸다

 

 

 

.

 

네사우알피이(익스틀릴소치틀의 아버지)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아버지 네사우알피이 앞으로 끌려갔지만 네사우알피이는 훈계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아우이트소틀

 

의 뒤를 이은 황제 모테쿠소마2세(몬테수마2세)는 1515년 틀락스칼라 4지방 연합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따라서 테노치티틀란과

 

함께 아스텍 제국을 이루는 텍스코코 역시 전쟁에 참가하였고, 익스틀릴소치틀은 이 전쟁에서 수많은 공을 세웠다.

 

네사우알코요틀(익스틀릴소치틀의 할아버지)

 

 

하지만 1516년, 텍스코코의 위대한 통치자 네사우알피이가 죽으면서, 텍스코코에 혼란의 분위기가 찾아온다. 앞서 말했듯이 네사

 

우알피이에게는 144명이나 되는 자식이 있었기에 자식들은 어떻해서든 아버지의 뒤를 잇고 싶었다. 이는 익스틀릴소치틀도 마찬

 

가지였으나 불행하게도 아스텍 황제 모테쿠소마2세는 자신의 조카이자 익스틀릴소치틀의 이복형인 카카마트신의 편을 들었다.

 

이에 익스틀릴소치틀은 자신을 따라는 무리를 선동, 모테쿠소마2세와 카카마트신에게 반기를 들었으며 이는 내전으로 확대되었

 

다.

 

 

 

결국 둘은 틀락스칼라와 테노치티틀란 사이의 오툼바 평원을 경계로 텍스코코 영토를 양분하면서 타협하였고, 익스틀릴소치틀의

 

이복형 코아나코치트신은 카카마트신의 인질로 붙잡히게 되었다. 하지만 텍스코코가 카카마트신 소유로 들어갔기 때문에 익스틀

 

릴소치틀에게 나은 것은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아스텍 황제 모테쿠소마 2세는 익스틀릴소치틀을 '제국의 적'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나서 3년후,  1519년 4월 갈대의 해.  켓살코아틀의 도래 전설과 맞아떨어지듯이 흰피부에 덥수룩한 수염을 지닌 한 남자

 

들이 아나우악(멕시코)땅에 상륙하였다.  그 이름하여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끄는 6백명의 정복자들이 우연히 때를 맞춰 상륙했던

 

것이다! 

 

 

 

 

 

 

코르테스의 원정대는 아스텍 제국의 신민이었던 타바스코 족과 토토낙 족을 격파한 뒤 틀락스칼라로 거침없이 행군하였다. 아스

 

텍 제국과 대립하고 있었던 익스틀릴소치틀은 코르테스와 연합하면 제국의 위협을 벗어날수 있다 생각하였고, 그는 코르테스에

 

게 사절을 보내 동맹을 약속받았다. 코르테스의 원정대는 아스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에 입성하게 되었고, 코르테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환영해준 모테쿠소마2세를 감금시켜버렸다. 이에 반기를 든 텍스코코의 통치자 카카마트신은 코르테스의 부

 

하들에게 모진 고문을 받다가 슬픔의 밤(코르테스의 대패) 바로 전 목졸려 죽었다.

 

 

 

 

이에 익스틀릴소치틀은 텍스코코의 계승권을 주장했으나, 카카마트신의 포로로 있었던 익스틀릴소치틀의 이복형 코아나코치트

 

신이 사제들의 지지하에 텍스코코의 통치자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슬픔의 밤과 오툼바 전투이후 재기한 코르테스의 압도적인 힘

 

에, 코아나코치트신은 그의 포로가 되었고 익스틀릴소치틀은 코르테스의 보장아래 텍스코코의 통치자가 될수 있었다.

 

익스틀릴소치틀은 코르테스가 아스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 포위당시 1만 6천개의 카누를 지원해주었으며, 스페인 정복자들

 

과 함께 아스텍 전사들과 맞서 싸웠다.

 

 

  Tenochtitlán

 

결국 8월 13일 아스텍의 마지막 황제 쿠아우테목은 코르테스에게 항복하였으며 익스틀릴소치틀 역시 승리의 영광을 만끽하게 되

 

었다.  그는 이후 기독교 보급에 관심을 가졌으며,코르테스의 종군신부 바르톨로메 올메도에게 '페르난도 데 코르테스'라는 세례

 

명을 받았다.익스틀릴소치틀은 옛 테노치티틀란-멕시코에 성 프란시스코 수도원을 건설하는 데 공헌했으며, 자신이 다스리는 텍

 

스코코 백성들을 어떻게서든 기독교로 개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인 요코트신에게 기독교로 개종하

 

도록 강요했으며 백성들이 개종을 거부할 경우,종교재판소에 밀고하여 화형시키도록 명하였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익스틀릴소치틀이 태어날 당시 점성술사들이 충고했던 불길한 예언이 현실화 되는 순간이었다. 예언 그대

 

로 그는 켓살코아틀-코르테스?와 연합하여 아스텍 제국과 문화, 관습, 종교 모두다 스스로 말살시키도록 추진하였다.

 

익스틀릴소치틀2세

 

 

익스틀릴소치틀이 나쁘게 보일수 있으나 그는 후손하나는 잘 뒀다. 그의 적자인 페르난도 알바 익스틀릴소치틀은 텍스코코및 아

 

스텍 제국의 역사를 기록한 위대한 역사가이기 때문이다. 알바 익스틀릴소치틀은 자신의 아버지가 테노치티틀란 함락당시의 심

 

정이 어떠했는지 잘 말해준다. 다음은 그의 기록중 일부이다.

 

 

 

 

『 테노치티틀란이 함락되는 날, 스페인군은 이땅의 그 어떤 불운한 사람도 당해 본적이 없는 야만적인 만행을 자행했다. 속수무

 

책으로 당하고 있는 여자와 아이들의 울부짖음을 듣는 것은 가슴이 찟어질 듯한 일이었다. 틀락스칼라족을 포함한 아스텍의 적들

 

은 오랜 원한을 풀기 위해 무자비한 보복을 가하며 눈에 띄는 것은 무엇이건 약탈했다. 코르테스와 동맹을 맺은 텍스코코의 왕자

 

익스틀릴소치틀만이 아스텍인들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들과 고향이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부하들에게 여자와 어린이들을 코르

 

테스와 스페인군이 하는 것처럼 학대하지 못하게 했다.』

 

 

 

 

다음 전해져 오는 설화는 위의 내용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 테노치티틀란이 무너지고, 스페인인들은 대신전으로 들어와 닥치는 대로 약탈을 자행했다. 대신전에 안치된 우이칠로포치틀

 

리 신상(아스텍의 주신)의 황금가면을 코르테스가 가져가는 동시에 익스틀릴소치틀은 신상을 쇠몽둥이로 때려부셨다.』

출처 : THIS IS TOTAL WAR
글쓴이 : 다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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