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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스텍 정복이야기

구름위 2012. 10. 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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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스텍 제국을 정복할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당연히 무기의 차이, 전염병을 말할것이다. 물론 이 둘은 아스텍 멸망에 가장 큰 이유라 할수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 필자가 말할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내분'이다. 필자는 아스텍 제국의 멸망의 어려 요소중, '내분'과 코르테스 일행의 '단결'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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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텍 제국은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코르도바가 이끄는 1차 원정대가 유카탄 반도에 도착하기 전, 이미 불안전했던 제국이라고 말할수 있겠다. 제국의 9대 황제 몬테수마2세는 활발한 정복 전쟁으로 아스텍 제국 역사상 가

 

장 거대한 영토를 손에 넣었지만 그것은 잔혹한 학살과 파괴로 얻었던 산물이었다. 몬테수마2세의 막강한 군대 앞에 틀락스칼라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들이 무릎을 꿇었으며, 반항하는 도시는 깡그리 파괴되었다. 결국 그의

 

이러한 정책은 코르테스가 아스텍 제국에게 맞서 싸울 원주민 동맹국을 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몬테수마2세는 테노치티틀란과 함께 아스텍 제국을 이루었던 타쿠바, 텍스코코를 자신에게 완벽히 복중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조카 카카마트신을 텍스코코 영주로 채택하도록 압력을 불어놓았다. 이러한 조치는 몬

 

테수마2세의 커다란 실수였다. 이는 훗날 카카마트신이 에스파냐 정복자들에게 목졸려 죽고 코르테스 일행이 테노치티틀란 공방전을 나설때, 아스텍 제국의 기반 역할을 했던 텍스코코가 배신을 때리게 되는 원인이 된다.

 

 




 

 

슬픔의 밤이 일어나기 바로 전, 코르테스는 반란을 일으킨 아스텍인들을 중재하기 위해 -감금시켜 놓았던- 몬테수마2세를 내세웠으나 분노한 시민들의 돌과 화살에 맞고 몬테수마2세는 세상을 떠난다. 아스텍 인들 스스로가

 

옳은 결정을 한건지는 몰라도 몬테수마2세가 죽은뒤 왕위 계승 문제는 크게 흔들려 졌다.

 

 



 

 

비록 동생이었던 쿠아틀라우악이 황제자리에 등극했지만, 그는 얼마 되지 않아 천연두로 요절하게 되고 몬테수마2세의 조카였던 쿠아우테목이 황제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는 황제자리에 등극하면서 큰 실수를 하게 된다. 그

 

는 등극하자마자 -전에 죽은- 몬테수마2세의 두 아들을 살해하도록 명했다. 쿠아우테목의 이러한 조치는 - 아직도 몬테수마2세를 위대한 황제로 생각하는- 여러 전사들에게 큰 충격이 아닐수 없었다. 아까 언급했지만 텍스코

 

코의 왕 익스틀리소치틀은 쿠아우테목의 부당한 왕위 즉위식에 반대하여 코르테스에게 투항해 버린다.

 

 

 

텍스코코의 항복으로 인해, 코르테스는 테노치티틀란을 감싸고 있는 텍스코코 호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수 있었다. 상황은 코르테스에게 점점 유리해 지는 반면, 테노치티틀란의 상황은 쿠아우테목의 부당한 왕위 즉위에 대

 

한 전사들의 내분으로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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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라텔롤코의 아스텍 연대기들은 멕시카인들이 자중자란을 일으키고 있었다고 전한다. 에스파냐인들에게 옥수수, 닭, 달걀 따위를 가져다 주도록 권유했다는 이유로 귀족 서넛이 살해당했다. 그들은 사제와 장군과 형의 손에

 

살해되었다. 그러자 대족장들은 이런 처사에 매우 분노했다. 그들은 -귀족들을 살해한 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젠 우리 모두가 살인마가 되어버리고 만 것인가? 축제가 열리던 톡스카틀에서 불과 육십 일전에 학살을 당했는데."

 

 

 

아스텍인인들은 심지어 전투에 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지휘관을 살해하는 일까지 있었다. 서로간의 비난과 반격은 막판까지 이어졌다. 한때 독자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던 섬(테노치티틀란) 북부의 틀라텔롤코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이렇게 주장했다.

 

 

 

"테노치티틀란의 전사는 아무데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꽁무니를 빼기에 급급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우리들은 가장 낮은 전사들조차 마치 대장처럼 용감히 싸우다 죽었다."

 

 

 

트살라카트신, 타쿠바의 왕 과티모신등 용감한 장군들이 있었지만, 아스텍인들은 -단결해도 막기 힘든- 테노치티틀란을 내분으로 하여금 스스로 붕괴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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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코르테스 일행은 달랐다. 그들은 비록 황금을 꿈꾸며 모인 히달고(에스파냐 하급귀족)이었지만 아스텍 정복동안 놀랄만큼의 단결력을 보여주었다. 코르테스 일행은 다양한 출신으로 구성되었는데 나르바에스(코르테

 

스의 정적)의 일원으로 있다가 투항한 에스테반 데 보르고나(Esteban de Borgona)와 알론소 베나비데스(Alonso Benavides)는 프랑스인이었고 1519년 쿠바에서 부터 따라온 에스테반 데 아폰테( Esteban de Aponte)와

 

산타렘 알바레(Santarem Alvarez)는 포르투갈인이었다.

 

 

 



 

 

심지어 코르테스의 원정단에는 9명의 여성도 있었는데 이들 역시 남자들과 함께 전투에 나섰다. 그녀들은 스스로를 여성 콩퀴스타도르(Conquistadora, 콩퀴스타도라. 여성 콩퀴스타도르를 일컬는 단어가 되었다)라 불렀다고

 

한다. 코르테스의 콩퀴스타도라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마리아 데 에스트라다(Maria de Estrada)라 할수 있겠다. 그녀는 자신의 오빠인 프란시스코 에스트라다와 함께 나르바에스의 코르테스 토벌대에 참가했다가 코르테스에

 

게 투항하였다. 디아스 델 카스티요에 따르면 그녀는 "어느 남성들보다도 용맹스러운 전사 였다"고 언급한다.

 


 

 

코르테스 일행에게는 프랑스인, 포르투갈인 심지어 여자들까지 전투에 임했지만, 그들을 차별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신분을 막론하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말을 타고, 창을 휘두를수도 있었다. 이것은 아스텍인들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아스텍인들이 테노치티틀란 공방전때 황제와 같이 논의했다고 해도, 5명이상 포로를 잡지 못한 하급전사가 직접 황제를 대면하고 말을 거는것은 불가능했다(일반 백성들은 황제를 살아있는 신으로 생각하여

 

그의 얼굴조차 똑바로 쳐다볼수 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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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테스의 부하들은 테노치티틀란 공방전때 각자의 생각을 사령관에게 논의할수 있었다. 어떤 부하는 거대한 쇠뇌를 만들자고 하였고 또 다른이는 거대한 투석기를 만들어 돌을 쏘아 올리자고 했다. 쇠뇌를 만들기는 했으나

 

효과는 없었고, 거대한 투석기에서 돌을 쏘아 올렸으나 아군 진영앞으로 바로 떨어져 무산되고 말았지만, 앞서 언급한 아스텍인들과 대조적인 면을 보인다고 할수 있겠다.

 

 



 

 

코르테스의 원정군이 이토록 단결될수 있었던 또 하나의 비결은 같이 원정을 참가 했던 친척들을 예로 들수 있겠다.코르테스는 자신의 친가쪽 친척 프란시스코 코르테스(Fransisco Cortes)와 -슬픔의 밤때 전사자중 한명이

 

되는-외가쪽 친척 파블로 피사로(Pablo Pizarro, 잉카 침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 또한 코르테스의 외가쪽 친척이다)를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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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테스의 용맹스러운 부관 페드로 데 알바라도(Pedro de Alvarado)는 호르헤 데 알바라도(페드로의 2번째 동생), 곤살로 데 알바라도(페드로의 3번째 동생), 고메즈 데 알바라도(페드로의 4번째 동생), 후안 데 알바라도(페드

 

로의 5번째 동생)과 다른 형제들과 달리 배다른 부모에게 태어난 가르시아 데 알바라도를 포함하여 5형제를 아스텍 정복에 참가시켰다(이들은 아스텍 정복에서 모두 살아남았다)

 

 




 

 

코르테스의 부관들외 원정단들은 자신과 자신이 데리고 온 형제들을 지키기 위해 불굴의 투지로 싸웠다. 베라크루스에서 테노치티틀란으로 갈때까지 또 슬픔의 밤에서 100배나 되는 아스텍 대군과 맞써 싸웠던 오툼바, 다시

 

테노치티틀란 공방전때 까지 코르테스와 처음부터 함꼐 했던 원정단은 엄청난 결단력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자기자신과 함꼐 싸웠던 원정단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코르테스의 부관 크리스토발 데 올레아(Cristonal de Olea)

 

는 슬픔의 밤(코르테스의 대패)때 투석병의 돌에 맞고 기절한 코르테스를 가까스로 구해내고선 훗날 테노치티틀란 공방전때는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채 아스텍 전사에게 끌러가는 코르테스를 구해내고 대신 최후를 맞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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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밤때 저마다 한명씩 큰 부상을 지녔던 코르테스 일행이 오툼바 평원에서 100배나 되는 아스텍 대군과 맞써 싸울때, 그들은 도망치지 않고 불굴의 투지로 승리했다는 것은 그들의 단결력을 가장 잘 말해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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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퀴스타도르들의 단결력, 아스텍인들의 내분은 아스텍 제국의 몰락의 또하나의 원인이라 할수 있겠다.

출처 : THIS IS TOTAL WAR
글쓴이 : 다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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