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우리 역사 이야기

[스크랩] 여성콩퀴

구름위 2012. 10. 7.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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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대륙을 침탈했던 스페인 정복자를 생각해 보면, 흔히 잔인하고 황금탐욕에 눈이 어두운 남성이 생각난다. 대부분 잔혹

 

하고 유명한 스페인 정복자 -데 소토, 알바라도, 코르테스, 피사로등-들은 남성이었지만, 여성 스페인 정복자들도 존재했으며, 아

 

메리카 정복 역사상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하기도 하였다.

 

 

흔히 모두들 콜럼버스라 알고 있는 크리스토발 콜론은 2차 항해당시 남성 10명당 1명씩 여성 승선을 허용하였지만, 여성들은 이

 

항해에 한명도 참가하지 않았다. 콜론의 2차 항해 이후 신대륙에 대한 소문의 소문이 부풀러 지면서 곧이어 용감무쌍한? 여성들도

 

신세계로 발을 딛게 된다.

 

 

 

초기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온 스페인 모험가들은 대부분 남성이었지만, 곧이어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여성들도 많이 건너

 

게 된다. 이들 여성들은 에스파냐 종교재판-잘못 걸리면 화형당하기 일쑤였다-을 피하기 위해서,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들

 

과 싸우다 행방이 묘연한 남편을 찾기 위해서, 또는 다른 남성 정복자들과 같이 황금 탐욕에 눈이 어두워서 였다.

 

 

 

 

 

아즈텍 정복으로 유명한 에르난 코르테스의 라이벌 정복자 판필로 데 나르바에스는 쿠바 총독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명을 받고, 코

 

르테스의 군대를 토벌하기 위해 900명의 스페인인들을 모집했는데 그중 9명은 여성이었다. 최초의 스페인 여성 정복자를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나르바에스 휘하의 9명의 여성이 최초의 여성정복자라는 것에 반론의 여지는 없다. 그녀들은 스스로를 여성 정복

 

자라는 의미로 콩퀴스타도라(Conquistadora, 남성 스페인 정복자는 Conquistador)라 칭했으니 말이다.

 

 

 

 

나르바에스의 부관이었던 바르톨로메 포라스의 부인 세르라나 누녜스 만체노집시 출신 여성 마리아 데 에스트라다가 전해지지

 

만, 단연 돋보이는 것은 마리아 데 에스트라다이다. 왜냐당시 연대기 기록자들에 의해 그녀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

 

이다.

 

어린이용책 ;; 집시 여성 정복자 마리아 데 에스트라다

 

 

마리아 데 에스트라다는 세비야 출신으로 스페인 종교박해를 피해 오빠인 프란시스코 에스트라다와 함께 신대륙으로 간걸로 보인

 

다. 에스트라다 남매는 코르테스 토벌을 계획했던 정복자 나르바에스 휘하로 오게 되었으며 1520년 4월 20일, 나르바에스 군대 휘

 

하로 멕시코로 상륙하게 된다. 나르바에스의 군대는 숫적으로 코르테스보다 활씬 우세하였지만, 교활하면서도 천재적인 책략가인

 

코르테스는 나르바에스의 부관들을 황금으로 매수하여 총공격하였다. 그 결과로 에스트라다 남매는 코르테스 휘하로 오면서, 그

 

의 아즈텍 켐페인에 동참하게 된다.

 

                                                         

 

 

 곧이어 이어지는 슬픔의 밤(Noche Triste, 아즈텍인들의 기습으로 코르테스의 병사 3분의 2가 죽은 사건)에서 마리아 데 에스트

 

라다는 가히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당시 28세의 종군 역사가였던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나 틀스칼라 연대기 작가 프란시

 

스코 세르반테스 데 살라사는 슬픔의 밤때 퇴군을 가로막는 아즈전사들을 어느 남성 못지 않게 베었다면서 그녀의 용맹함을 칭

 

송한다.

 

 

 

코르테스의 부관 페드로 산체스 데 파르판과 결혼한 그녀는 어느 남성이라도 살아남기 어려운- 오바, 테노치티틀란 공방전에서

 

도 살아남았으며 용맹함을 과시했다. 아즈텍 역사를 기록했던 스페인 역사가 디에고 두란은 그녀는 인디오 군대와 전투를 시작할

 

때에 산티아고(Santiago, 성야곱 스페인 전쟁수호성인)을 외쳐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았다고 전한다. 아즈텍 정복이후 에스트라다

 

는 크리스트교 포교에 앞서면서 인디오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애썼다.

 

 

이네스  후아네스

 

 

마리아 데 에스트라다 외 유명한 여성 스페인 정복자는 단연, 이네스 후아네스일것이다. 그녀는 데 소토, 피사로, 코르테스, 알바

 

라도, 발보아와 같이 유명한 스페인 정복자들을 배출한 엑스트레마두라 출신으로써, 남편의 뒤를 쫓아 베네수엘라까지 왔지만, 정

 

작 남편을 찾을수 없었다. 그녀는 페루까지 찾아갔지만, 그곳에서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후아네스는 정복자 페드

 

로 데 발디비아가 추진하는 칠레 정복과 신 스페인(아메리카 대륙)의 최남단의 수도, 산티아고 델 누에보 에스트레모 건설에 그와

 

같이 행동했다. 후아네스는 처음엔 병사들을 치료하는 역활을 맡았지만, 칠레 인디오들과의 전투에서 용감히 맞서싸우기도 하였

 

다. 발디비아는 후아네스의 공로를 인정하여 엔코미엔다을 그녀에게 주기도 하였다.

 

 

File:Pedro de Valdivia.jpg

페드로 데 발디비아

 

 

후아네스는 발디비아의 보좌관으로써 또는 애인으로써 일했지만, 발디비아의 본처가 오자 둘은 헤어저야 되는 상황에 오게 된다.

 

본처가 오기전에 남아메리카 남단의 아라우코 부족들과의 전투중 발디비아는 살해당하고 만다.

 

 

 

 

여성 스페인 정복자들은 그외 1536년 페드로 데 멘도사를 도와 부에노스 아이레스(현재 아르헨티나의 수도)의 극적인 건설에서

 

중요한 역활을 담당했다. 황금 탐욕에 사로잡힌 페드로 데 멘도사는 남쪽의 원주민들을 몰아내기 위해 원정길에 나서는데, 멘도사

 

의 원정군 다수는 남장을 한 여성들이었다.

 

  eduardo.delabarra님이 촬영한 CONQUISTADORA.

 

여성 스페인 정복자들은 남성들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았었다. 멘도사의 원정대에 합류한 한 여성은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음식량

 

이 적었다"고 회고한다.

출처 : THIS IS TOTAL WAR
글쓴이 : 다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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