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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다노 브루노 사형 선고

구름위 2014. 2. 2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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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 2월 8일 지오다노 브루노 사형 선고 

사람은 누구나 다른 생각을 합니다. 그 눈코입매가 다 다르듯 모든 생각이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는 없겠죠. 그런데 사람들이 가진 여러 단점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도 나같이 생각할 것이다”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매우 많고 또 다른 생각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다는 점이죠. 거기서 오해가 일어나고 다툼이 생기고 배신이 벌어지고 드물게는 죽고 죽이는 놀음까지도 벌어져 왔음을 인류의 역사가 증언하고 있으니까요. 

1600년 2월 8일 그 이름부터 확실한 이탈리아 사람인 지오다노 브루노가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그는 무려 8년 동안 감금되어 자신의 생각을 철회할 것을 강요받았지만 거부했고 결국 불태워 죽여 버리라는 선고를 받습니다. 나이 쉰 둘 삶의 최후를 대중의 구경꺼리로 불 잘 먹는 불쏘시개로 내줘야 했던 그는 감금된 방 안에서 촛불에 손을 댔다 뺐다 하면서 고뇌했다고 합니다. 왜 그라고 갈등이 없었겠어요. 저 괴팍한 갈릴레이도 굴복하여 목숨을 건졌고 브루노 자신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준 코페르니쿠스도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폭로함이 두려워서 전전긍긍했던 걸 아는데 말이죠. 하지만 브루노는 그의 사형선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런 당당한 말을 남깁니다. “화형대에 선 나보다 판결을 내리는 당신들이 더 공포에 떨고 있다.” 


 

쉰 둘의 인생 동안 그는 그야말로 부평초같은 인생이었죠. 도미니크회 사제 교육을 받긴 했지만 그의 머리 속은 너무나도 자유로왔고 복잡해서 단순하기를 강요하는 세상과 불화할 수 밖에 없었죠. 그가 생존했을 때부터도 천 이백년 전의 니케아 종교 회의 때 이단으로 정죄받고 사멸되다시피 한 아리우스 파의 가르침을 다시 들고 나오는가 하면 무려 130여 회나 교회법을 어겼다고 고발된 정도로 독특한 주장을 펼쳤죠. 

부평초같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는 요즘의 국경으로 치면 스위스에서 영국까지 몇 나라 도시를 드나들면서 살아가야 했죠. 생판 엉뚱한 소리를 일삼는 그가 한 곳에서 정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죠.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는 고사하고 생명의 위협을 받은 것도 여러 번이었으니까요. 카톨릭 사제 서품을 받았지만 몇 번 이단으로 몰리고 심지어 살인자로까지 고발되는 가운데 개신교를 수용하게 되지만 이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는 개신교와도 맞지 않았습니다. 

지동설을 주장하면서도 일종의 제한된 천구, 유한한 우주를 조심스레 설정했던 코페르니쿠스를 훌쩍 넘어서서 “태양과 지구 또한 많은 항성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는 브루노는 개신교도의 눈에도 가시였겠죠. “너는 태양아 여호수아 위에 머무르라 하신 말씀을 듣지 못하였느냐?”고 코페르니쿠스를 바보라고 부른 루터나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힐난한 캘빈이나 브루노가 이쁘게 보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결코. 하지만 이 괴짜 신학박사는 유럽 각국을 누비며 자유인으로 살아갑니다. 한때 영국에 잠입한 프랑스 스파이 노릇도 했고,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신하들과 어울려 살기도 했고 기억술의 대가 흉내를 내며 귀족들을 농락하는가 하면 희극을 써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으니까요. 

그런 그에게도 아픈 추억은 있습니다. 성질을 참지 못하고 캘빈파 교수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가한 뒤 생명의 위협에 시달린 끝에 그 비판을 철회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났던 겁니다. 천하의 미스터 꼬장꼬장 브루노로서는 매우 회복되기 힘든 트라우마가 아니었을까요. “신앙으로서만 구원받는다는 캘빈의 주장은 틀렸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존엄하다.”고 주장했던 위협에 못이겨 스스로의 주장을 철회했으니 말입니다. 

그의 후원자로 행세하던 귀족이 그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자 되레 그를 이단으로 고발했고 브루노는 기나긴 감금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는 캘빈파에게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온갖 협박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은 거죠.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거둬들이지 않은 죄로 생명을 내줘야 했던, 근대의 첫 순교자이거나 중세 시대의 마지막 희생자가 된 거죠.

그로부터 수백년 후 그의 이름은 미국의 노동운동가 스파이스에 의해 다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집니다. 그는 최후 진술을 통해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진리를 외치다 죽은 선인들이여. 소크라테스여 예수여 ..... 그들은 죽었으되 진리는 살아 있다. 나 또한 그들을 따를 것이다. 자 준비는 끝났다. 어서 사형 집행인을 불러라!” 그에게 브루노는 예수와 같은 반열에 올라 설 만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형 집행을 받는 나보다 판결문을 읽는 당신들이 더 공포에 질려 있다”고 조소한 그 배짱을 본받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스파이스도 죽는 순간만큼은 브루노의 결연함을 따르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브루노의 몸뚱이가 불태워지던 날 로마의 신문 하나는 이런 기사를 싣습니다. 

“목요일 날 아침에 꽃의 광장에서 나폴리 놀라 출신의 그 흉악무도한 도미니코 수도사가 산 채로 불에 태워졌다. 그 매우 고집 센 이단자는 우리의 신앙을, 특히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에 반대하는 여러 가지 다른 교리들을 기분에 따라 제 멋대로 만들어 냈다. 이 흉악무도한 자는 고집스럽게 자신이 만든 교리들을 위해 죽기 원했다. 그는 자신은 순교자로서 죽으며, 그렇게 죽기를 원하며, 자신의 영혼은 화염 속에서 천국으로 올라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이 말한 진리가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실제로 브루노는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누군가 내민 십자가를 의연하게 외면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교리, 즉 인간은 존엄하고 우주는 무한하며 지구는 태양을 돌고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라는 강요를 거절함으로써 또 하나의 순교자가 되었던 그가 1600년ㅁ 2월 8일 의연하게 사형 선고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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