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야나는 바다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의 직감은 들어맞았는지 아마존강과 대서양을 이어주는 '관문'은 얼마 남지 않았다. 문제는 드 넓은 대서양을 항해하여 트리니다드에서 멀지 않은 쿠바괴 섬과 마르가
리타 섬으로 어떻게 가느냐였다. 원정대는 포르투갈인의 파라 정착지가 바로 우현에 있다는 것을 모른채 방향을 틀어 작은 섬 사이의 미로를 해쳐나갔다. 섬에 사는 무시무시한 카리브 원주민들이 줄기차게 괴롭혔기 때문에 그들
은 쉬지 않고 계속 달려야 했다. 그러다가 오레야나의 쌍돛범선중 하나인 빅토리아호가 그루터기를 들이받아 침몰하고 말았다.
빅토리아호는 물속에 쳐박혀 있었고 산 페드로 호는 오랜 여정으로 여기저기 널빤지 이음매가 다 벌어져 있었다. 이런 배를 이끌고 카리브 해안에서 가까운 에스파냐인 거주지에 갈수 없었다. 따라서 원정대의 첫 번째 임무는 널
빤지 이음매가 다 벌어진 산페드로에 널빤지를 새로 대 완전히 재건하는 것이었다. 이 작업을 위하여 대원들은 임시대장간과 석탄을 이용해 쓸 만한 금속 조각으로 쇠목을 제작했다. 그들의 수완에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
다. 배에 새 널빤지를 대고 금속부품을 만들어 장착하는 데 18일이 걸렸다. 그들은 누더기 헝겊조각과 기름을 사용하여 뱃밥(배에 물이 새어 들지 못하도록 틈을 매우는 물건)도 만들었다
8월 초, 바다가 가까워 졌다고 여긴 오레야나는 쌍돛범선을 바다로 보내기 위한 장소를 물색했다. 어떤 큰 섬의 해안에서 그는 빅토리아 호를 물로 끌어낼 자리를 찾아냈다. 두 척 다 장기간의 항해와 바다의 거친 날씨에 버텨줄 튼
튼한 삭구가 필요했다. 이 작업은 8월 6일에서 20일 사이에 이루어졌다. 나무덩굴과 야자수 섬유질 밧줄로 삭구를 제작하고 적당한 돛과 돛대, 키를 만들고 화살막이 참호를 걷어내고 갑판에 널빤지를 대 뱃널 틈을 새로 메웠다.
기름과 가죽으로 봉하여 흡인기를 만들어 나무 몸통의 빈 부분에 부착하여 뱃바닥에 고인 물을 뽑아내는 펌프를 제작했다. 이 2주 동안 그들은 식량이 극도로 부족했다. 오레야나는 밀물 때만 나오는 불그스름한 게와 식용달팽이
만 먹었기 때문에 이 곳을 굶주림의 섬이라고 불렀다.
그리하여 그들은 항해에 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항해 준비를 마쳤다. 카르바할 신부는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에게 무엇이 없었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할 생각은 없다. 항해에 없어서는 안 될 항해사나 선원, 나침반 같은 것이 없었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의지가 아니라 우연에 의해서 이 길고 험한 여행을 해야 했던 우리말고
는 아무리 상식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그 중 어느 하나만 없어도 감히 먼 바다로 배를 띄울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1542년 8월 26일 토요일, 오레야나는 마침내 강을 떠났다. 그가 강을 떠난 지점은 아마도 마라조 군도의 북부였을 것이다. 강에서 8개월을 보낸 오레야나 원정대가 마침내 바다로 들어간 것이다! 아마존 여전사의 전설을 뒤로 해
도 그들의 모험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이제 그들이 직접 만든 배로 2000km에 달하는 바다 여행을 앞두고 있었다. 사흘 뒤 그들은 악천후에 거친 파도를 만나, 산페드로 호와 빅토리아 호는 헤어지고 말았다. 두 배의 대
원들은 서로 상대 배가 끝장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먼 바다로 휩쓸려 들어간 산페드로 호는 트리니다드를 일주한 뒤 9월 9일 쿠바과 섬에 도착했다. 살아남았다고 안도할 수만은 없었다. 그 오랜 세월 함께 아마존에서 온갖 역경을 겪었던 원정대장 오레야나와 동료들이 탄 배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레야나와 빅토리아 호는 트리니다드 뒤의 파리아 만에서 표류한 끝에 9월 1일, 비틀거리며 뉴카디스 항구로 들어갔다. 아마존 강을 뒤로하고 바다로 나갈때 함께했던 47명의 원정대원 전원이 건재한
것이다! 서로 죽은 줄만 알았던 그들은 서로 감싸 안으며 "하나님께서 원정대를 제대로 인도해 주셨기 때문이라" 찬양했다. 오레야나 원정대원중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서로의 배를 보고 우리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마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실종됐다고 믿었고 우리도 그들이
실종됐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여행이라기보다 ..... 기적이었다."
살아돌아온 원정대 다수를 만났던 역사가 곤살로 페르난데스 데 오비에도(Gononzalo Fernandez de Oviedo Y Valdes)은 오레야나의 아마존 강 탐험에 이렇게 평했다.
"예기치 않게 시작되었으나 인류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꼽히는 탐험..."
오레야나는 인류 탐험사에 한획을 긋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1542년 오레야나의 아마존 강 탐험은 그후 444년간 깨지지 않는 기록을 달성했다.
그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견뎌내고 돌아왔지만 에스파냐에서 보여준 반응은 이상하게도 어느 모로 보나 영웅 대접이 아니었다. 우선 그의 발견이 쓸모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토르테시야스 조약에 따르면 그 강의 어
귀가 포르투갈의 영역이었다. 그러니 어마어마한 강을 발견했다고 해서 국가에 무슨 이득이 있겠냐는 것이다.
또 곤살로 피사로와의 지긋지긋한 인연도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피사로 가문은 -잉카제국을 정복함으로써- 권력층과 교분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곤살로 피사로의 눈에 오레야나는 자신의 상관(곤살로)을 밀림이 빽빽한 미지의
강에서 죽도록 내버린 '더없이 흉악한 배신자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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