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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지의 세계를 정복한 탐험가,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의 모험(마지막 이야기)

구름위 2012. 10. 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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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마의 성당에 보관되어있는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미라

 

 

 

오레야나의 위대한 모험뒤에 곤살로 피사로의 운명이 궁금하지 않은가?  그는 1541년 에스파냐인 350명(기병 200기), 원주민 짐꾼 4000여명, 사나운 군견 2000마리, 야마 2000마리를 동원하여 엘도라도의 황금을 꿈꾸었으나

 

1542년 8월 모진 고생으로 키토로 돌아온 원정대의 인원수는 곤살로를 포함한 21명의 에스파냐인 뿐이었다. 물론 군견 2000여마리, 야마 2000마리는 모두 원정대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키토에서 돌아온 곤살로 피사로는 청천벽

 

력같은 소식을 듣는다. 바로 그의 이복형이자 잉카정복자인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정적 디에고 데 알마그로 일파들에게 암살당한것이다!

 

 

곤살로 피사로의 동상

 

 

그는 오레야나가 살아남았다는 소식을 듣기 전부터 이미 오레야나가 자신을 버린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오레야나는 -어느 누구도 감히 탐험하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 아마존 탐험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뒤 눈부

 

신 속도로 배를 달려 2주가 조금 지난 9월 11일에 쿠비과에 도착했다. 그러나 곤살로 피사로는 오레야나가 아직 항해중이던 1542년 9월 3일, 에콰도르의 쿠엥카에서 국왕에게 평가서를 보냈다. 그러니까 곤살로는 오레야나가 살

 

아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상태였다.

 

 

 

다음 몇 달 동안 오레야나가 살아 있다는 소식이 에스파냐에 들어갔고, 그 소식은 파나마와 페루에도 전해졌다. 그해가 가기 전에 곤살로 피사로는 -가증스러운 배신자-오레야나가 분명히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오레

 

야나에게 이를 갈고 있었음에 불구하고 그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의 이복형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애써 가꾸었던 페루를 되찾을 계획으로 마음이 바빴던 것이다.

 

 

곤살로 피사로는 1544년 10월 페루로 쳐들어가 국왕이 임명한 첫 번째 총독을 축출했다. 이 내란은 1546년 아나키토 전투에서 총독의 군대에 맞서 승리를 거둔 그가  1547년 10월 블라스코 누녜스 벨라 총독을 살해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잠시동안 곤살로는 페루의 지배자로 군림하였으나 1548년 새로 페루 총독으로 임명된 페드로 라 가스카에게 패배하여 1548년 4월 9일 체포된뒤 목이 잘리고 말았다.

 

 

 

 

 

 

고국으로 돌아온 오레야나는 1543년 6월 7일, 서인도 제도 의회에서 곤살로 피사로에게 행한 배신행위를 변호했다. 세비야 당국은 오레야나의 '반역'을 눈감아주었으며 그가 탐험한 미지의 강을 '뉴 안달루시아'라고 명명하였다.

 

 

오레야나의 모습이 담겨진 우표

 

 

여기서 오레야나가 에르난 코르테스와 친척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같은 정복자로 돌변하는 모습을 볼수 있는데, 그는 국왕에게 청하여 '뉴 안달루시아' 즉, 아마존 지역을 정복할 권한을 달라는 것이었다.  국왕 카를로스 5세는 이

 

를 승낙하였고 기병 100명, 보병 200명의 병력을 주었다. 오레야나의 이 행위에 대해서 이전의 잉카 정복자 프린시스코 피사로의 행위와 매우 비슷한걸 느낄수 있다. 피사로는 13명의 용감한 부하들과 함께 이슬라 델 갈요섬에서

 

갖혀 지낸체 황금제국에 대한 정보를 모았고, 결국 잉카제국의 항구 툼베스로 가는데 성공하였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국왕에게 황금의 나라를 발견했으니 그 곳을 정복할 권한과 군대를 달라고 하였다.

 

 

 

 

유복한 가정 출신의 아름다운 십대 소녀 아나 데 아얄라(Ana de Ayalla)와 혼약을 맺은 오레야나는 큰 기대를 품고 2차 아마존 원정을 강행하였지만, 용기와 노련한 솜씨를 발휘했던 1차 때와 달리 재앙이 그치질 않았다. 오레야

 

나가 세비야를 떠나기 전부터 사람들은 그가 지도자감이 되지 못한다고 수군거렸다. 그런 원정을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도 모르며 진정한 통솔력도 없다면서, 이러한 구구한 소문에 정부 안도국에서는 원정대에 잊혀지지 않은 표

 

현대로'너무나 다정한 영혼'을 지닌 한 사람과 염탐꾼을 딸려 보냈다. 그 염탐꾼은 오레야나 원정대의 관리 상태가 엉망이라고 보고했다.

 

 

 

 

오레야나는 왕궁에서 내린 '뉴 안달루시아' 통치 칙허장과 대원 400여명을 이끌고 카나리아 제도를 향해 출발했다. 그들은 브라질의 해안에서 재난을 맞았다. 선박 한 척이 난파 당하고 나머지는 좌초했다. 굶주린 생존자들은 밤

 

낮 없이 배에 고인 물을 퍼내야 했다. 오레야나는 그들을 이끌고 본해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오레야나는 1차 원정 때 그 해협을 통해 아마존 하류의 비옥한 땅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 무슨 얄궃은 운명의 장난인지, 다

 

른 방향에서 들어가려니 전에 왔던 그 강을 찾을 수 없었다!

 

 

 

 

 

혼란 속에 몇 달을 허비한 그는 무수한 군도와 강어귀의 해협 사이에서 "바깥 세상이 우리에 관해 어떤 소식도 듣게 되리라고 희망을 품어 볼 수 없이.... 꼼짝없이 길을 잃었다."  원정대 대부분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고, 오레야나는

 

전에 자신이 정복했던 미지의 강에서 거대한 자연앞에 정복당했다.

 

 

 

 

원정이 실패했음을 파악하여 고국으로 돌아갈려던 그는 배가 전복되어 익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일에 관해서는 베네수엘라의 마르가리타 섬에서 오레야나를 애타게 기다린 -그의 어린 아내- 아나 데 아얄라를 만난 생존자들이 전했다.

 

 

 

"그가 주류로 진입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알려준 것은 그의 아내였다. 이렇게 된 결과, 그리고 특히나 병이 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본국의 영토로 철수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먹을 것을 찾아 나섰을 때 원주민들이 화살로 대원 열 일

 

곱 명을 명중시켰다. 원래 병이 들어 있는데다 부하들의 몰살 소식으로 크게 상심한 사령관은 그 강 위쪽 어딘가에서 사망했다."

 

 

 

 

한편 1차 아마존 원정때 오레야나와 함께하여 원정일지를 썼던 가스파르 데 카르바할 신부는 8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때 까지 장수하며 잘 살았다. 하지만 그가 쓴 원정일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의문을 남겨주었다. 마치 그리스

 

아마존 신화와 같은 벌거 벗은 여전사,수많은 식인종, 거대한 뱀(아나콘다)등... 에르난 코르테스의 멕시코 정복및 서인도 제도 역사를 지필한 역사가 프란시스코 로페스 데 고마라(Francisco Lopez de Gomara)는 카르바할 신

 

부의 일지를 읽은 후 이렇게 평했다.

 

 

 

"이건 개구라뿐이다."

 

프란시스코 로페스 데 고마라의 동상

 

 

카르바할 신부가 전하는 아마존 여전사는 거짓일지 모른다. 하지만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가 행한 아마존 탐험은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여정이었다. 그는 왜 -미지의 세계-아마존에 목숨을 걸고 뛰어든걸까?

 

 

곤살로 피사로처럼 엘도라도의 환상때문에?

 

곤살로 피사로의 원정대처럼 계속 머물러 있다간 전부 다 죽음뿐이란 걸 알고 이판사판으로 뛰어든 걸까?

 

아니면 단지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에콰도르의 오레야나 동상

 

 

오레야나의 위대한 탐험에 어떤이는 곤살로 피사로를 펌하기도 하지만, 곤살로의 엘도라도 원정덕분에 오레야나의 탐험이 이루어 졌으며 그 덕분에 당시 미지의 세계였던 아마존 지역의 존재에 대해 파악할수 있었다. 현재

 

오레야나가 탐험했던 곳곳의 국가들엔 그의 동상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그는 중남미 국가에서 영웅취급을 받는다. 그는 영웅이었지만 코르테스나 피사로와 같은 정복자와 같은 면모도 보여주었다. 그의 탐험에서는 -

 

어쩔수가 없지만- 그들과 같은 학살, 파괴등을 보여주기도 한다. 오레야나는 이전 정복자(콩퀴스타도르)와 다른 정복자일뿐 그가 정복자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오레야나를 기려 한때 아마존 강을 '오레야나 강'으로 부른 적도 있었다. 그러다 여전사 부족의 신화가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의 모험을 밋밋한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면서 아마존 강이 되었고, 오늘날에도 그 강은 아마존이다.

 

 

 

 

 

 

 

 

 

Stamp- Gonzalo Pizarro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곤살로 피사로(왼쪽)과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오른쪽) 이처럼 한쪽은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로 악인이 되버리고 한쪽은 위대한 영웅이 된 사례는 드물다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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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를 정복한 탐험가,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의 모험 연재가 완료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글에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꼐 감사드립니다. 다음엔 '카베사 데 바카, 그 고단하고 아름다운 8년간의 조난생활'을 연재할 생각입니

 

다.

 

 

 

 

 

 

출처 : THIS IS TOTAL WAR
글쓴이 : 다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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