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와 일기예보가뭘까?
뭔 말이지하며 좀 궁금해할수있읍니다.
연세가 많으신분들이라면 이북방송중에 밤새 지겹도록 암호를 방송으로 내보내는
"동해바다17호 323726975" 이런 숫자방송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암호방송용 목소리는 톤이 카랑하고 알아듣기쉬운 여자요원들이합니다.
암호방송이라도 상대측 암호해독에 혼란을주려고 헛된 숫자방송이많고 그중 자신의암호가 공작원암호명과 함께
두번씩 반복적으로나옵니다.
남북한 암호해독반들이 상당수있는데 해독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항상 철야로 근무하고있읍니다.
암호는 수학계산방법으로 풀수있는것도있지만 도피시 주로 사용하는 암호는
방송자와 청취수신자만이 아는것으로 해독반이 수백명이붙어도 해독불가능한것이있읍니다.
암호전담반들이 각군마다있지만 공작암호는 필요에의하여 대낮에도 더러 일반방송으로
아무도 못알아듣게 방송되기도하고 주로 야간특정시간에 암호를 대량으로보냅니다.
은문법이던 조합식이던 여러종류가있지만 연연하지않고 공작원들이 다급하게 도피시
방송하는 일기예보암호가있는데 조심스럽게 약간의 혼동을드리면서 올리겠읍니다.
간첩이라불리는 고정에가까운 장기숙박자는 일일이 기억을 다 못하기에
난수표-숫자로 0~9번까지 조합해서 숫자로 지령을 받고 숫자로 보고하는데
그것을 자신만이 해독하는 수첩을가지고있지만 침투공작원들은 침투전에 암호를 완벽하게 외워야합니다.
누구라도 알아듣지못하도록 약간 변형해서 말씀드리겠읍니다.
공작원은 다음 방문예정지가 설정되면, 축소된 입체지형지물표본을놓고 암기교육을받읍니다.
작지만 아주 세밀해서 지형이 한눈에들어오고 현지에가보면 정말 똑같을정도로 정교한표본인데
공중촬영을 토대로 입체감을살려 만드는것으로 낙하산부대에서 사용하는것과는 품질이 다른것입니다.
이것을 수일동안 세세한지형까지 지도와함께 비교하면서 암기를 시작합니다,
1차 침투예정지, 2차 침투예정지, 3차 침투예정지 등 예비로 준비하고 상황에따라 예정지를 변경도하는데
이와 더불어 일기예보를 청취문제로 교육담당이 준비한 지형들을 전부 익혀야합니다.
침투목적지(이북)의 침투와 도피가 예상되는 지역곳곳을 뒤바꿔서 이름을 붙여놓는데
묘향산을 개마고원이라하고 금강산지역을 청천강으로 부르기도하는데
모든것을 완벽할때까지 외워야하고 틀리지않아야합니다.
이북에 침투한 공작원이 발각되어 도피가시작되면 공중정보로(우주 정찰?) 이후에 도피를 돕는 일기예보가
흘러나오는데 북한군의 공작원보다 우리측공작들의 안전이 좀 나은것은 요것이 결정적으로다릅니다.
공작원이 포착되어 신속,은밀한 도피가시작되면 해당기관서는 거의 같은시간대에 공작원이 추적당하는것을알게됩니다
남북한고정들이 즉각 군대의이동을 감지하는데 북한에있는 남한고정은 열악하고 남한의 북한첩자들은
숫자도많고 행동자유가많아서 북한이 훨씬 유리하지만 우리는 하늘위에 뭐를 사용할수있어서 서로 장단점이많읍니다
공작원은 임무에따라 다르겠지만 발신하는무전기를 저는 지녀본적이 없고 그게 필요하지도않고
작은수신기하나에 의지해서 긴급시 이어폰을끼고서 튀면 되는것입니다
60년대에는 남침간첩들이 무식하게 모르스무전기로 소리내다가 걸리기도하고
탐전반에포착되어 체포되고하였지만 그런건 좀 무식한방법입니다.
수신기에서 들려주는 일기예보를들으면서 세세하게 구분되어진 이름들중 개마고원쪽으로 비구름이 몰려오고
비구름이 벽산지점으로 이동한다고 방송이나오면 북수색조들이 개마고원이라고 명명된지역으로 오는것이고
공작원은 도피방향을 가짜로 이름붙인 벽산으로알고 그리로 튀어야하는것입니다.
(지금은 다른것이 개발되었겠지만 거리를 알려주는방법과 어디로 튀고 이런건 생략하겠읍니다)
이때 반드시 상관없는 거짓방송이나오지만 내가 암기한것만듣고 모르는것은 그들을 속이느라 나오는것으로
그냥 지나버리면되고, 끊임없이 연속적으로 방송을하며 어떤상황에선 다급하면 일반방송에서 느닷없이
임시방송처럼 일기예보를하면 그게 그거라고 이해하시면됩니다.
장거리 전문 공작원들은 반드시 암기해야하는 일기예보를 만약에 기억못하면
적발시 도주중에 죽을확률이 많아지기때문에 필사적으로 달달외워야합니다.
공작원들 교육수준이부족하고 흉폭한자들로구성되고 어쩌고 낭설이많지만
일반인들이말하는 새머리와 닭머리들은 절대 공작원을못합니다.
과거의 실미도처럼 김일성궁전을 침투하여폭파하고 전원 옥쇄한다는 정해진수순이라면모르지만
장거리전문공작원은 교육수준과 두뇌가 체력과더불어 수준이상이어야만 할수있읍니다.
언젠가 제가 어린시절에 형들과도망치던 글쓴걸 기억하시는분계실겁니다.
그때 묘향산(개마고원)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방향을틀고 달리던시절에 조장형이 일기예보들으며 앞서달리고
저는 항상 가운데, 다른형이 뒤에서 사주경계하며 달리던시절에 있었던일입니다.
(공작원중에 앞사람은 지리를 잘알아서 안내역이고 뒤에 서는사람은 흔적이 생기면 흔적없애는전문가이며
가운데가 기밀중 기밀을요하는요원이됩니다)
세세하게 뒤죽박죽으로 지형지물에 이름을붙이고 일기예보를들으면서 튀기에 어느 암호해독가도 풀수없읍니다.
이북 어느곳에서 공작원이발각되어 도망을하게되고 북한군이 추적에동원되면
이게 금새 남한에 정보가들어오고 불과 얼마후부터 일기예보가 흘러나오게됩니다.
요즘은 이북일기예보를 하는지는모르지만 과거엔 방송으로 이북일기예보가나오면
북한군도 추적당하는 공작들의 도피안내가 시작된걸 감잡는겁니다.
이북의 하늘이멀쩡한데도 황당하게 비구름을동반한 폭풍이 어디서와서 어디로 간다는데 그들이 모를리있나요...
이북의 일기에보가나오면 숨바꼭질이 결사적으로 벌어지는것임을 공작원출신들은압니다.
해당부서의 기간병들 완전히 비상걸리고 휴전선지역이 긴장으로 숨넘어가고
무사히 도피가완료되어 안전해질때까지 그렇게 지내야합니다.
잠수함좌초로 도피하던 북한공작들이 자신들위치가 노출되는 발신기를 왜 사용한건지 이해가안되는데
자신들위치를 보고하고 방송으로 도피위치를 지령받느라그런것같지만 남한의 탐전능력을 잘몰라 그런게아닌가합니다
아주 미세한 0.5초의 전파발신도 포착되는건데, 도피하며 자신들을 노출시키며 도망한것이 너무 이상했는데
잠수함사건때 북한방송도 일기예보 아니면 그들의 암호체계로 계속 도피안내방송을 내보냈을겁니다.
안들어봐서 모르지만...
일반국민들은 그시간 친구들과어울려 술잔도 기울이겠지만 관련자들에겐 다들 안타까운순간들입니다.
목숨이 경각에달린 그한순간 실수와 방심과 부상이따르면 최후에는 자결해야하고
혹은 동료를 적지에서살해하고 도망해야하는 절대절명의순간들이 너무 많은데
그걸 다 지혜롭게넘기고 지금까지사는걸생각하면 목숨이란게 끈질긴것이라 생각도듭니다.
특수부대의 시간당 구보력의신뢰성은?
저의 경험담에기준해서 쓰는것이니 그냥 편하게 보시기바랍니다.
전에 김신조124부대 청와대습격사건때 한국군수뇌부들이 북한남파공작들의 기동력을간파못하고
한국군의 구보력에기준해서 시속 삼사킬로로계산하고 포위선을구축하느라
뒷북만치고 청와대까지 진출하게만들었읍니다.
당시 김신조가 붙잡히고 티비에나와서 피곤한모습으로 현장서 잠시 중계가 됐었읍니다.
청와대를까러오고 박정희목을 자르러왔다고 담담하게 말하던 그모습이 지금도 기억에남아있읍니다.
이때 남파된 124군 북괴특수부대원들이 훈련시 완전군장으로 시속 10키로미터를달렸다해서
국군수뇌부들이 아연실색했었읍니다.
이유는 불가능한일이었는데 실제로 그들이 휴전선침투후 야간돌파한시간대를재어보니 맞았다는것이지요...
토벌이 완료된이후에 이들의 구보력을 따라잡는다고 낙하산부대가 완전군장에 산악훈련으로
불과 얼마후 공식발표로나온것이 시속12킬로가 발표되었읍니다.
당시 대략 4키로미터정도가 국군의 구보력인데 이것을 3배의속도로 진전시켰다고
구보하는군인들 사진과함께 국민들 사기진작을위한 기사가 크게 나왔었읍니다.
지난 2주전 어느분이 하루 얼마나뛰냐고 물어보시길래 30킬로 군장메고 100킬로뛴적있다햇읍니다.
연속적으로도 가능하다했는데 오늘은 따져가며 구보력에관해 글을 좀 쓸까합니다.
잘뛰는 국가대표급 육상선수가 몇십년전 팬티바람으로 10키로미터를 31분에뛰던것이 한국기록이었읍니다.
요즘은 제가 관심을 덜 가져서모르지만 대략 27분대정도나올겁니다.
42키로 마라톤 풀코스는 당시 국가대표급선수가 2시간30분대였으면 요즘은 2시간10분대정도 뛰더군요...
그런데 낙하산부대가 완전군장을하고 워카신고 군복에 총에 다들고
국가대표 육상선수의 절반속도인 시속 10키로미터로돌파했다 이렇게 나왔읍니다.
아마 10키로미터만 아스팔트길에서 실시한다면 거의 가능할수있을겁니다만 연속적으론 절대 될수가없는겁니다.
공작원들이 죽기살기로 모래주머니에 쪼끼에 입고 배낭메고서 기본훈련이 주야로뛰는것만하는데
정확한 거리계산은없었고 대략 시간당10키로정도 뛴다이런겁니다.
우월감을갖기위해서 항상 과장된발표가 나오는건데 실제로 산길서는 이런 기록이나올수는없읍니다
오르막 내리막길에서 군장을다하고 평지에서달리는 육상선수의 절반속도가나온다는것은 분명히 거짓이지만
그만큼 많이뛴다고 발표가됩니다.
일반 아스팔트도아니고 완전군장하고 산악구보가 그런속도로는 이뤄질수없는겁니다
한창 훈련받을땐 모래주머니 조끼 다벗고 배낭만 메고뛰면 거의 그정도 속도가붙기는합니다.
독종만든다고 하루에 100키로뛰고 다음날 또 뛴적은 있읍니다. 이런날은 온몸이 너무아파서 잠을못잡니다.
그런데 북파되면 속도를 많이 줄이는것은, 오로지 야간 은밀기동으로 돌파를하고
밤시간부터 비트구축하는 새벽3시정도까지만 뛰기때문에 훈련때만큼 계속적으로 뛸수가없고
유사시 힘을 비축해야하니까 항상 적게 달립니다.
발소리적게하고 가볍게 달리기위해 운동화를 많이신습니다.
보통 하루밤에 오십이나 육십키로쯤 달린다보면되고 그리고 새벽에 은신장소물색해서 위장하는것을
새벽동트기전에 다 끝내야해서 3시정도에 정지하고 주변을 샅샅이뒤져본뒤
적격지를찾아 은신지를구축하는겁니다.
새벽까지많을땐 일곱여덟시간 거의 달리기만하는데 이때 거리가 상황에 따라다르긴하지만
대략 50킬로에서 70키로정도잡지만 보통 50키로정도될겁니다.
밤길에 익숙한사람들이라 엄청 잘뛰고 인간의한계를넘어선 사람들의 구보라서 야생동물같은 민첩함이나옵니다만
만약 산악구보라도, 길아닌 수풀로돌파한다면 속도는 현저히떨어집니다.
산길로 주로 뛰는데 산길은 사람이 다니며 만들어진 자연길이라서 아무리 깊은산이라도 험한길은 많지않다보면맞습니다
그리고 제경험으로 시속10키로던 12키로던 이런것이 부질없는게
정해진 코스가아니라서 환경에따라 다른속도가 나오는겁니다
급하게 도망할땐 배낭버리고 총하고실탄 이런것만 챙겨서뛰는데 이땐 나르듯 뛰어서
속도가 얼마나왔는진 모르지만 엄청나게 뛴적이있읍니다.
하여간 오늘은 군장하고 얼마나뛸수있나에대해서 조금 생각해봤읍니다.
북파공작원은 일반군인들과는 너무나 다른훈련을하기에 괴력이생기지만
군인들은 불가할텐데 발표는 항상 시속12키로의 속도로 달린다해서 저의의견을 좀 적어보았읍니다
낙하산부대던 일반보병들이건 완전군장으로 산악구보하면 실제로 시속5킬로정도일걸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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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대포 생포공작원들이 서울까지 삼일에 돌파한다는것은 육로를 지칭한듯하지만
군장을메고는 산악돌파가 절대 불가능하지만 국로를 달렸던 어디를달렸던
자료가 있다하니 그냥 넘어가고, 참고로 비포장과 들길을이용한다해도 삼일은 불가합니다.
공작원이 인적이 있을 도로와 들길의 구보로 이동하지않는것은 기본이고
낮시간 행동정지와 반잠을자기때문에 위의 자료에 의한것은 그들말 그대로 믿고
우리측 병사들만 힘들게한것으로 보입니다.
공작원들이 말하는 시간당주파는 평균적 산길뛰기를말합니다.
또한 임진강을 80키로 수영해왔다는것은 수영이아니고 그냥 물에잠겨서 물 흐르는대로 내려와서그렇읍니다
우리 장거리공작들이 경우에따라서 배낭을 부유물로사용해 강의 중간지점을이용해서 내려오고
하류에이르러 아군측에 귀환하는방법이있으나, 유영탈출이 육상탈출과 장단점이 있어 대부분 육상귀환을선호합니다
민물에서 80키로수영은 말이안되고 위의 설명을 참조하면 도움이되실겁니다.
유영에 의한 도착지점은 ** 부터 ** 지역까지의 귀환이가능하지만 이하 생략합니다.
참고로 인간은 하루에 60키로이상을 연속으로 뛰게되면 전투를 하지못하고 이후 맨몸도주도 불가능해집니다
식량의 수급이 원활한? 여름에는 무리해서 단축돌파가 불필요하며 위급시상황을타개하기위해 무리하지않게 돌파를합니다
김신조그룹은 단거리 폭파공작조의특성이라 삼일만에 서울로 침투했지만
장거리공작조의 경우는 40키로군장으로 지속적인 침투는불가하며 배낭과 총기휴대는 20키로를 넘지않게합니다
김신조경우는 대전차지뢰등 대량의무기를 소유하고 폭파와 살해를 목표로넘어온, 지척으로 침투한 단거리공작조이고
다대포의 경우와 그외 이삼인으로 준동하는 공작원은 폭파무기를 소지하지않는 경장비공작원(안내원)입니다.
안내와 침투공작원의 기본장비는 소총, 실탄, 수류탄 두개, 구급약, 단도,마른식량 이외 속옷과 양말하나씩 여벌정도로
약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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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년초인지 겨울 서부전선의 **부대 관할지역 모기지에서 각군 별들이 참관한가운데
공세훈련하는 야전훈련의 본격전이벌어지는데, 그전에 뭔시범을 보인다고가본적이있읍니다.
작전에참가하는 육군보병들의 돌파에비교하여 우리공작조가 차출되어 측정시범을하게되었다
우리의 기록과 비교하여 자체적으로 일반보병들의 돌파전투력을 평가해보기위한일에
우리가 먼저 시범을보이게된것으로 이런 강아지같은경우가 전에 없었는데
보통정도의 산정상을뛰는일에 어이 우리를 부려먹는건지...
각군의 대규모훈련에 더러 참관한경험자인데, 이때 초저녁 전투훈련장전체를 살펴보니
얕은야산을 뒤로하고 전차들이 줄지어있어 참가한 동료들과함께 개울뚝방으로 차를몰아 돌아보는데
평생 이렇게 많은 전차가 밀집한것을 처음보았다.
대충 육안으로 들어온 전차의숫자만 150대가량으로보이고 보병장갑차가 대거 참여하여 진용을갖췄는데
모습은 방어개념아닌 돌격전투대형의 웅장한모습으로 굉음들을내며 전, 후퇴의 훈련이
소,중대 단위별로 실시되고있었다.
아군측에서 돌파해들어가야 할 목표지점을 쌍안경으로 관측하는데 별다른장애는없고
논두렁밭두렁을 지나 개울건너 거리 대략직선으로 3킬로남짓,
험하지도않은 뽀족한 300고지상까지의 산세는 가파르기가 보통이아니었다..
군인들이 정상탈환훈련이라서 그들을 독려하기 위한것이겠지만 돌파에부려먹고
일만하다 죽으려나부다 궁시렁거리면서 별로 힘든건아니라서 희희낙락 잡담으로
시간때우면서보내고 한바퀴 빙 돌아 구경하고돌아오며 면소재지로 차를돌려
일찍 저녁식사마치고 돌아와 차안에서 대기하는데 시간은 우리 편한대로하고
돌파예정지와 산정상에 군인들을 곳곳에 보내겠단다.
이 사람들이 우리가 헬리콥터타고 올라갈까봐 의심하나 어쩌고 한바탕웃으면서
이제 퇴사말년인데 끝까지 우려먹으려는군 우스개소리하며 23시에출발하기로 결정하고
군인들이 길목곳곳에 측정을위한 배치되었다.
공작부대가왔다는 소문이들기만하면 군인들은 뭐가 신기한지 근처서 구경거리가 되기시작하는 것은
어제오늘일이아니었다. 장교들이나 사병이나 말은 부치지않고 좀 떨어져서 구경을한다.
(우리 무서운사람이아닌데 애들은 늘 저렇더라)
몸을 가볍게 하기위하여 작업복에 특유의 운동화를신고 양말속에 아대끼워넣고
작은배낭을 어깨에 바짝메고 카빈총을들고 초반부터 빠른속도로 뛰기시작하며
작은 논길을따라 4인조가 뛰고있었다.
얼마안돼 큰 개울이 나오는데 이게 문산천일 것이다. 개울은 뛰면서도 밤에 비치는
물결과 물의폭을보면 깊이가나오니 그대로 뛰어들어가 백미터는 될 개울을 통과해
논두렁으로 타고 올라보니 주변에 군부대들어가는 야전도로도 보였으나
원래 길이 체질이아니라서 그대로 논과 밭으로 미끄러지며 뛰었다.
시골동네가 나오고 마을뒷편으로뛰는데 산아래턱에 군부대사격장이 나온다.
편편한 사격장을 지나 바로 쳐오르며 산을 오르는데 단거리지만 이렇게 힘들기는
정말 드물었는데 그 가파르기가 산짐승도 당연히 거부할 정도였다.
(이런 급경사의 야산특징은 짐승이없고 먹을게없으며 누울자리가 없읍니다)
이거 수풀이 우거져도 산자락을달리는게 기본인데 오늘은 일직선으로 뾰족한 정상을
다 올라가보고 별 고생한다며 가는데 중턱에이르자 기운이빠지는데 대충 3키로뛰며
이렇게 힘들어보기가 그때 처음이었던것같다.
어차피 시범이라서 최선을다해서 뛰어오르긴했는데 산정상에서 군인들이건네주는
물을 마시는데 이거 자존심있어서 누워버릴수도없고 그때 난감했던생각을하면...
우리는 땀범벅이되어 산아래를향해 널부러져 앉아있는데 군장교들 저들끼리하는말이
이거 엄청난 속도네요 32분 나왔읍니다~ 무전으로 들려오는 소리 수고하셨읍니다~
이어서 한마디씩하는 소리들이... 대단하네요.
(이넘들 저들은 시계나 들여다보며 오르지도 못할것들이 병사들 엄청 고생시키겠구나
생각하면서 내려왔지만 일반보병들이 군화에배낭메고 오르려면 한시간안에 못올라가고
중간에 쉬면서 물마시지않고는 오르지못합니다)
산은 높은데 얼마나 뾰족한지 정상이라야 불과 너댓평정도되는, 고지로서는 용도가없는 산이었는데
왜 그곳을 작전목표의 고지탈환목표로정한건지 이해를못한채 내려온적이있었다.
그때 군단장교들이 길목을지키고 손에 클립보드를들고 기록을재느라 서있고
힘은들지 눕지는못하지 이런 황당한기억이있는데, 올라가며 뒤꿈치가 땅에 닿지않아서
산을 직선으로올라가며 인대가 늘어나서 좀 고생한 그런추억이었읍니다.
(이런 수정합니다. 글을 다쓰고 며칠지나면서 생각해보니 돌파시범 했던 산높이가 300고지였네요
사격장 아래에 175mm인지 8인치 자주포부대있는곳인데...
하도 오래전이라서 지역이 혼동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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