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베트남전 당시 미육군 5특전단
직속 정찰부대 프로젝트 델타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나 프로젝트 델타는 엄밀히 말하면
오끼나와에 있는 미 육군 제1특전단 소속이다.
그리고 델타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부류로
만들어진, 오메가, 감마 등은 SOG로 통폐합
되었지만, 델타만은 끝까지 단독으로 작전했다.
이 글은 최신으로 읽게 된 글인데, 조금 길기는
하지만, 이전 글보다 자세하게 모든 것을 설명
하고 있다. 특히 중반부부터의 전투 내용은 이전
델타의 글보다 매우 자세하게 나와 있다.
급하게 읽기보다 시간을 내서 천천히 읽으면
더 쏠쏠한 재미를 느낄만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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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rong Valley
돈 J. 테일러, 미 육군 특전단 상사 전역.
1968년 7월 - 1970년 7월
미 육군 특전단 프로젝트 델타 정찰팀장.
<어떻게든 감지해보려는 미국>
프로젝트 델타는 1969년 4월 3주차 주말에,
미 101공수사단의 지원 아래 CASS PARK I이란
작전을 수행했다. 그러나 101사단의 지원은 원활
하지 못했다.
이 때 델타는 악명 높은
어 샤우(A Shau) 계곡에 대한 3주간의 정찰을 완수했다.
그러나 어느 정찰팀도 101사단이 원하던 성공적인 정보 획득은
하지 못했다. 폭격효과관측소대(BDA Platoon)와 남베트남군
81레인저대대는 계곡에서 정보를 획득하기 힘들었고 오히려
살아남는 것이 과제였다.
그리고 델타 6인 정찰대와 로드러너(Road Runner) 팀도
재난 혹은 재난과 비슷한 일들을 겪으면서 모두 정찰을 끝냈다.
한 정찰팀 3명의 그린베레 대원과 3명과
남베트남 특전대원 3명은 모두 실종됐고,
한 개의 로더러너(Road Runner)도 실종됐다.
(정찰작전에서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는 '로드러너' 팀 대원. 이들은 군복 속에
월맹군 복장이나 베트콩 복장을 하고, 퇴출시에는 오사격을 피하기 위하여
겉에 다시 베트남군 복장을 착용하고, 사진처럼 컬러색 스카프를 헬기 조종사
에게 보여준다... )
281헬기중대는 3대의 휴이 헬기를 잃었다.
작전은 일주일 간 더 진행되고 종료되었다.
(1969년, 마이 록 발진기지에서 작전을 출발하는 델타 정찰 3팀)
3주간의 정찰작전으로, 델타는 그 지역의 적이 계곡에서 힘을 쓰기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월맹군은 6인정찰팀을 발견하면 적어도 소대급
추적대를 보냈고, BDA소대의 작전에는 중대를 급편성에서 대항했다. 만약 델타가
중대급을 보냈다면 그들은 바로 대대급으로 대항시킨다. 델타의 전형적인 정찰
작전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무언가 다른 방향으로 전술을 바꾸어야 했다. 101사단은
델타 정찰팀에 무인 지상센서(UGS)와 전화기를 주었다. 돌연한 하이 테크 장비였다.
나는 당시 3인의 정찰대를 운영했고, 어 샤우 계곡에 대한 정찰을 끝내고 3인
으로는 힘들다고 판단한고 잠깐 중단한 상태였다. 난 보충대원이 필요했다.
우리 팀은 나와 두 명의 남베트남 특전대원이 있었는데, 이후 그린베레 두 명과
남베트남군 1명을 더 받아서 6인 정찰팀이 완성되었다. 데이빗 랜지 병장과 윌리엄
포메로이 병장이 딱 1회의 무인센서 설치 작전에 투입되었다. 우리는 단 하루 동안
장비를 받고 리허설을 걸쳐서 침투되었다.
101사단은 병기 장교인 한 소위와 무인센서 5개를 보냈고, 그에게서 센서의
설치와 작동에 관하여 교육을 받았다. 우리는 전방 발진기지의 한 야산에서
설치를 시험했다. 소위는 카키색 군복에 야구모자를 쓰고 선그래스를 쓰고
왔고 컬러에는 butter bar를 달고 있었다.
(butter bar: 위관급 계급장에 대한 슬랭으로, 철제 계급장을 의미함.
천으로 된 것은 브라운 바. 위의 표현은 완곡하게 썼지만, 거만했다는 뜻이 된다.)
우리는 101사단에서 온 다섯 개의 무인센서장비를 받았고,
그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었다. 그들은 4-5개 조로
나누어서 장비교육을 시켰다.
미 무인센서(UGS) 장치는
50기관총 탄약통과 비슷한 크기의 검은색 금속박스였다.
무게는 25파운드(11킬로그램) 정도 나갔다. 그러나 내부 밧데리로 인해서
무게는 좀 더 무거웠다. 이 장치는 두 개의 검은색 전선으로 된 센서가
양쪽으로 결합이 되었고, 한 쪽의 길이만 7.5미터였다. 또한 발신용 안테나가
7.5미터로 수풀에 위장되게 되어 있었다. 센서 케이블은 두께가 1인치 정도
였다. 이를 다 합한 무게는 20킬로그램 정도였다. 센서 케이블은 무겁지 않았
으나 부피가 매우 컸다. 101사단의 정찰팀(레인저 중대)는 이 무인센서 작전이
우리 특전단에게 넘어가자 기뻐했다는 소리를 나중에 들었다.
이 101사단의 소위는 우리가 이 장비를 설치하면, 이를 통해서 어 샤우 계곡의
적 이동상황을 모니터 하게 되어 있었다. 장비 본체는 땅에 6인치 크기와 깊이로
파서 묻어야 했다. 그리고 케이블도 지상에 가깝게 묻어야 했다. 이 센서의 정보는
항공기로 부근 상공을 날면 데이타가 업로드 되는 시스템이었다.
나에게는 실용적이지 않게 들렸고, 또한 우리 정찰팀이 적이 잘 사용하는 이동로
에서 한 시간을 소모하면서 장치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한 시간이면
정찰팀이 장비를 설치하다가 간파될 위험이 매우 높았다. 델타 정찰팀은 이러한
이동로에 발을 딛지 않고 수풀에서 접근해서 정보를 취득하고 증거 인멸 후에
수풀로 들어갔었다. 추적자를 피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적의 주
이동로에서 한 시간을 땅을 파고 작업을 한 후에, 증거를 없애고 나와야 했다.
그 소위의 강의에서, 이 장비는 진동과 자기력으로 기록이 된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이 장비가 설치가 되고 땅에 묻은 센서 케이블을 적군 병사가 밟고
지나가면, 무게에 따라서 무장한 사람인지도 알 수 있다고 했다. 자기력으로
총기의 금속을 파악한다고 했다. 좋은 장비이기는 했다.
소위는 말했다.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리 와서 보십시오. 묻기 직전에 키를 꼽고
스위치를 시계방향으로 끝까지 돌립니다. 그리고 다시 조심스럽게 열쇠를
뺍니다. 만약 키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분해하려고 하면 내부에 자체 폭약
으로 바로 폭발하여 자신을 파괴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그 폭발을 해제
하려면 다시 키를 꼽고 반대방향으로 완전히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소위는 각자 팀장들이 나와서 실제로 그 장비를 작동시켰다. 키를 꼽고
작동상태로 시계방향으로 돌리고, 작동을 확인한 다음, 다시 키를 꼽고 작동을
해제시키는 실습이었다. 우리는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키기 싫어서 그 소위의
통제와 교육에 철저하게 순응했고, 그렇게 신기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그는
즐기는 것 같았다. 안에 자동 폭파를 위한 폭약이 들어있다는 것이 우리를 세심
하게 만들었다.
이어서 소위가 말했다. “이제, 다음 훈련은, 기기의 센서와 안테나를
결합하는 실습입니다. 자신들 앞에 있는 장비를 모두 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저를 따라 오십시오.” 그리고 그는 장비를 집었다.
그리고 그때 그 장비가 폭발했다.
그것이 터질 때, 우리는 모두 재빨리 엄폐했다. 그리고 발로 차거나 손으로
짚어서 모두 그 장비들을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 장비들은 아래로 굴러 내려가
모두 폭발했다. 난 소위가 오작동을 시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장비를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할 필요도 없이, 소위는 즉각적으로 피하지 못했다. 모두가 놀랐다. 내가
걸어가서 보니 의무병이 그의 화상을 치료해주고 있었고, 101사단에서 가져
온 그 무인센서 다섯 개는 모두 불타버렸다. 난 소위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화상뿐만이 아니라, 그가 돌아가서 그의 상관에게 다섯 개의 고가 장비가
어떻게 소실되었는지 설명할 것이 아득해 보였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어 샤우 계곡의 월맹군이 자주 사용하는 이동로에 그것을 삽으로 묻는 일
따위는 사실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곳이 어떤 곳인 줄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결국 우리 팀의 무인센서 임무는 취소되었고,
대신 유선도청임무로 전환되었다.
우리는 아주 간단한 일본 쏘니 사의 작은 유선레코딩 기기를 받았다. 그냥
전선만 두개 나와 있었다. 그 전선 끝의 단자들을 전화선에 하나씩 집어주면
그뿐이었다. 계곡의 유선전화선은 중국제 유선전화기였고 미 육군의 WD-1
야전 전화기와 매우 유사했다. 전선이 들어가고 나오는 방향만 좌우로 틀렸다.
그러나 그 레코딩 기기는 밧데리로 되어 있었고 방수처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방수처리한 가운데 전선을 물리고 기기 자체는 눈에 안보이게 숨겨
놓아야 했다.
그 유선도청 녹음기에 관해서 30분간 조작훈련을 받고, 전술지휘소로 가서
프로젝트 델타의 참모들로부터 작전 브리핑을 받았다. 참모는 우리 작전
구역에 반드시 적의 유선통신선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우리
임무는 그 유선통신선을 찾고 도청기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24시간
동안 놔둔 다음 다시 녹음장치를 해제하여 다시 가지고 복귀하는 것이었다.
그 녹음된 분량이나 내용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었다.
난 전날 실습받았던 무인센서장비처럼 항공기에서 업로드하면 얼마나 좋을까
했다. 통과했던 장소를 다시 가는 것은 정찰대원들에게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는 유선도청 녹음기가 설치된 일대에서 24시간 동안 은익하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장비를 회수한 뒤에 퇴출요청을 해야 했다.
<어샤우 계곡>
(북쪽에서 남향으로 본 어 샤우 계곡. 베트남전 미군이라면 치를 떠는 곳이다.
이 글의 작전지역은 맨 아래 계곡의 가장 좁은 지역이다. )
나는 우리 델타 프로젝트의 참모들조차 어 샤우 계곡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한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어 샤우 계곡에는 적이 우글거렸고, 그 계곡에서 정찰임무 동안 적을 한 번도
보지 않고 나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말이었다. 한번 간파되면 월맹군은
전문 추적자들을 붙인다. 그들은 미묘한 물체 하나라도 알아보고 따라온다.
만약 추적자들이 그 장치를 발견하면, 작전은 그것을 되찾아오는 것으로 바뀔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 이전에 교육받은 무선센서장치보다 보다 나쁜 상황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날 오후, 나는 O-2 스카이 마스터 정찰기를 타고 우리 정찰임무 지역 위를
날았다. 나는 침투 랜딩존과 예비 랜딩존, 그리고 가능한 퇴출 랜딩존도 설정
하려고 했다. 작전지역은 어 샤우 계곡의 최남단이었다. 이는 계곡의 시작점
이면서 중부고원지대의 가장 높은 고지군들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아 삽 강이
흐르고 있었고 시냇물들이 흘렀다. 이는 어 샤우 계곡 남쪽에서 시작하여
라오스까지 흘러가는 물이다.
어 샤우 계곡은 남동에서 북서로 흐르는 깔때기 모양의 계곡이다. 북쪽은
계곡이 매우 넓고 남쪽은 계곡의 폭이 매우 좁다. 우리 작전지역은 남쪽의
이 좁은 계곡이었으며, 이는 후에와 푸 바이로 가는 호치민 루트를 통해서
들어오는 월맹군의 모든 부대가 통과하는 곳이었다. 1년 전 테트 공세에서
후에를 공격한 월맹군이 이 루트를 따라서 들어왔었다.
이 어 샤우 계곡의 고지들은 정말로 웅장한 신의 창조물들이다. 남지나해
에서는 계속 비구름이 산악으로 몰려들었고, 이러한 억수 같은 비로 인해서
능선을 미로로 만들었고, 계곡, 협곡, 골짜기 배수로와 시냇물이 수시로
바뀌었다. 그래서 참고점을 만나도 나침반으로 방위각를 항상 계산해서
확인해야 했다. 그 산악은 대부분이 토질이었고 가끔 바위나 농작물 지대가
있었다. 비가 내리면 이들 지형은 뜨거운 칼로 버터를 도려내는 것처럼 파이고
변형되었다.
그곳은 베트남의 장거리 정찰팀이 일하기에는 가장 터프한 지역이다. 그러므로
베트콩과 월맹군에게는 역설적으로 안전한 곳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 곳에 우글
댔다. 남베트남 영토 중에서 그렇게 안전한 곳이 없었으리라. 높은 고도의 고지
군으로 인해서 헬기들이 기동하기 매우 힘들었고, 계곡을 관통해서 날기는 더욱
위험했다.
누구나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산들은 능선으로 잘려 있었고 그 옆의 계곡은
매우 가파렀다. 정상과 능선들은 면도칼 넓이로 좁았기 때문에 그 능선으로
이동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주 예전에, 야생동물들만이 다녔던 곳이었다.
그러므로 첫 번으로 들어서는 인간들은 조심해야 했다.
그 나머지 하단의 계곡은 열대 우림숲의 다양한 나무들과 수풀로 뒤덮여 있었다.
계곡의 중간은 나무들이 없고 평탄하고 수풀만 있었다. 수풀은 소음을 줄이고
천천히 이동해야 했다. 그러므로 간파되기 쉬운 계곡 중간의 평탄지를 버리고
적들은 능선의 소로길을 매우 조용히 다녔다. 그러므로 정찰팀원들도 이동에
정말 신중하고 조용히 다녀야 했다.
강이나 시냇가를 따라서 이동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한번 들어서면 물길이 계속
이어지고 시간이 지체되어 위험했다. 결국 정찰팀들은 능선과 계곡의 평탄지를
제외한 산으로만 다녀야 했다. 능선 쪽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곳은 역시 적의 이동로와 가까웠다. 정찰팀은 적의 이동로로 이동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베트남의 몬순 기간에 우기가 다가오면 이 산들에는 매일 구름이 둘러싸고 있고,
이 구름이 걷혀지기 전에는 헬기들이 작전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몬순 기간의
정찰팀들은 며칠간 어떤 공중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태로 작전해야 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 누구도 정찰팀을 도와줄 수 없었다.
날씨와 베트콩과 월맹군을 피해간다고 하더라도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몽타냐드라고 불리는 어 샤우 계곡의 산악족들이다. 1966년 1월 그린베레
어 샤우 캠프가 버려졌을 때, 당시 3만 명의 파코 족 몽타냐드들이 근처에 살고
있었다. 그린베레 캠프가 없어지자 일부는 다른 곳으로 떠났으나 여전히 많은
산악족들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베트콩들에 의해 통제되었다. 그들에게 협조
해서 계곡에서 살거나 아니면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들 산악족들은 매우 훌륭한 사냥꾼들이었다. 그 누구보다 계곡을 잘 알고
있었고, 베트콩들은 그들을 트랙커(미군 정찰팀 추적자)로 이용했다. 6개월
전에 나와 제리 닐슨은 베트콩들과 함께 있던 산악족 추적자들을 목격했었다.
우리 뒤를 쫓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들이 우리를 쫓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사냥감을 찾고 있었는데 우리 흔적을 그것으로 생각한
것 같았다.
그들은 다양한 종류의 사냥감을 사냥했고 그들은 어릴 적부터 해오던 일이었다.
그들은 모든 고지들을 알고 있었고, 냇가, 나무, 수풀, 칼풀(살이 베이는 풀.
브레이드 그래스) 지역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들은 우리를 향해 조용히 다가
왔고, 거꾸로 우리들이 그들을 사냥해서 모두 죽였다. 우리가 누군가 깨닫기도
전이었을 것이다.
<작전 준비>
(정찰팀의 눈과 귀, 그리고 생명을 보장해주는 전방 정찰기. 세 종류 정도 있는데,
그림에 보이는 정찰기는 표적 마킹이 가능한 로켓을 장착한 중형 정찰기다..)
30분 간 공중정찰로 침투랜딩존을 정했다. 어느 능선의 개활지로 월맹군의 유선
전화선이 발견된 곳 부근이었다. 눈에 띠게 능선 8부에 이동로가 공중에서도 보였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서 전화선이 보였다. 침투 랜딩존은 그 위쪽이었다. 폭격으로
인한 구멍이 보였다. 우리 작전지역에서 15킬로미터 정도 거리였다.
그런데 내가 점찍은 그 계곡은, 멀리서 보면 7개에서 12개 정도 거의 똑같은
형태와 크기의 작은 계곡이 연달아 있었다. 우리 hole bird 헬리콥터 조종사는
강에서 방향을 바꾸어 그 작은 계곡의 끝의 랜딩존으로 접근하는 계획을 세웠다.
물론, 적어도 계획이다.
(hole bird: 침투 헬기를 보통 이렇게 불렀다. 발로 하는 랜딩이었기 때문에,
보통 폭격으로 생긴, 헬기 딱 한대가 들어갈 정도의 구멍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
작전 명령을 받은 다음날, 우리는 박모 침투로 정해졌다. 헬기는 우리 작전지역
에서 15킬로미터 지점에 우리를 침투시키는데, 이를 적절하게 유도시켜 주는
것은 FAC 정찰기였다. 우리는 로프 사다리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물론 내
의사는 아니었다. 나는 그냥 발로 뛰어내리는 랜딩을 계획했었다. 그 랜딩존이
공중정찰 당시 충분히 크기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침투>
해가 질 무렵,
우리는 랜딩존에 랜딩했고, 하자마자 가파른 고지 옆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북서로 이동해서 정상으로 가는 능선으로 향했다. 그리고 낮에 본
유선통신선 쪽으로 가고 있다고 믿었다.
빛은 완전히 사라졌고, 보기에 약간의 실수가 있는 듯이 보였다. 전날의
공중정찰의 기억으로 볼 때, 우리가 가고 있는 고지 측면은 분명히 두터운
정글림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가보니 작은 나무들과 수풀 밖에 없었다.
일종의 수풀이 많은 개활지가 나온 것이다.
우리 팀은 고지 주변으로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 이동했다. 그리고 팀장인
나는 야간 은거 장소를 결정했다. 우리는 수풀이 무성한 협곡의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숨어야 했다. 그중에서 방어에 유리한 곳을 선택해야 했다. 일단
멈추고 주변을 보았다. 작은 나무들이 모여 있고 우리가 온 길을 관찰하기
좋은 장소가 하나 있었다.
우리가 온 길은 무릎 높이의 풀이 난 약간의 개활지였다. 위로는 작은
능선이 있고 양쪽이 모두 가파렀다. 매복과 모니터링에 적합한 장소였다.
사방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나온 길을 볼 수
있다는 것. 추적자가 있다면 곧 알아챌 위치였다.
우리는 표준 야간방어에 들어갔다.
서로가 손으로 닿을 거리에 밤을 보내게 되었다.
난 내 팀의 지침에 따라서 우리가 지나온 길에 나무들을
이용해서 크레모어를 깔았다. 야간 방어는 매복의 형태로 한다.
어두워지자 우리는 우리 위 능선 50미터 거리에서 움직임을 포착했다. 능선에서
무언가 삽으로 파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메아리 소리로 들렸으나,
점차 그것이 바로 우리 위의 능선에서 파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나는 잠에
들면서 무언가 흥분되는 일이 벌어질 것이란 예감을 받았다.
더욱 나쁘게,
차가운 이슬비가 한밤중에 떨어지기 시작했고 밤새 내렸다.
아침이 오자, 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비가 오는 중에 이동하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었으나, 날씨로 인해서 공중지원이 안 되어 할 수 없었다.
그 야간 방어 장소는 해가 뜨면 금방 발각될 것 같았다. 그러나 내 결정에 부정
적인 요소도 있었다. 일단 그 장소에 있기로 했다. 날이 밝으면 기상이 좋아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능선 상에 적이 참호를 팠다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나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공중지원을 요청한다고
해도 그들과 뒤섞여서 있다는 것이 싫었다.
해가 뜨고 두 시간이 지나자, 비가 그쳤다. 나는 그리트(Grit)에게 크레모어를
걷으라고 했고, 이동을 준비했다. 난 북쪽으로 틀어서 가다가 고지 옆을 돌아서
목표 능선으로 가려고 했다. 무언가 파는 소리가 나는 능선으로 올라갈 생각이
없었다.
우리는 작은 나무들이 모인 끝에서 360도 전방위 경계대형으로 엎드려 있었다.
그리트는 원형 경계에서 나와 크레모어를 회수하러 천천히 나갔다. 데이브 레인지
와 한 명의 남베트남 대원이 그리트의 크레모어 회수를 엄호하면서 후미를 감시
했다. 두 명의 남베트남 대원은 양쪽 측면을 감시했고 그리트는 크레모어를 잘
회수했다. 그리고 바로 내 뒤로 복귀했다. 그리고 군장을 열어 크레모어를 집어
넣었다.
그리트의 크레모어 회수를 기다리면서, 우리 세 명(데이브, 나, 남베트남대원)은
우리가 밤에 이동해 온 백 트랙을 감시하고 있었다. 꽤 가파른 고지 측면이었다.
30미터 폭에 무릎 높이로 수풀이 자라 있었다. 만약 추척자들이 있다면 그리로
등장할 것 같았다. 만약 그들이 있어 우리 뒤를 밟고 있다면, 30미터 밖의 나무
에서 나올 것으로 나는 예상했다.
나는 우리로부터 30미터 떨어진 나무들이 있는 곳을 엎드려서 관찰했다. 그때
내 말초적인 시각에, 수풀 밑의 작은 그림자가 눈에 띠였다. 우리로부터 15미터
거리였고, 천천히 색깔이 변하고 있었다. 점차 검은색에서 회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에서 머즐 플래쉬(총구 화염)가 보였다.
“빵~~~!!”
갑자기, 그곳에서 6-7개의 총구 화염이 수풀 속에서 폭발했다. 우리 전면
15미터 거리였다. 그 거리에서는 윙! 하는 총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직
머즐 플래쉬만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총알이 주변을 때리기 시작했다.
데이브 레인지는 내 왼편에 있었고 남베트남군 통역관은 내 오른쪽에 있었다.
우리는 그 사격 섬광에 대고 4-5발 씩 쏘았다. 그리트와 두 명의 남베트남
특전단(LLDB) 대원은 우리 뒤 높은 곳에서 측면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앞의 세 명 때문에 총을 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내 머리를 통과해서 수류탄을 던졌다. 그리고 아무도 경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근에 배속된 두 명의 남베트남 대원이 우리 뒤에서
M-34 백린 수류탄을 우리 머리 위로 던졌다. 나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다.
“이거 정말로 죽겠구나...” 눈에 보이는 수류탄은 경사면 아래로 굴러 내려
갔고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백린 수류탄은 적의 총구 화염이
보이는 정확한 중간에서 폭발했다. 우리 팀원 중에서 화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팀의 매복 룰에 따르면, 탄창 세 개를 사격하고 수류탄을 던진 후에 일단
사격을 중단하게 되어 있다. 내 앞에서부터 사격을 중단하자, 들리는
소리는 오직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죽음을 향해 가는 베트콩의 깊은
고통의 숨소리였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우리가 유리 했던 것은, 오직
더 높은 곳에서 총을 쏘며 수류탄을 던졌다는 것뿐이다. 그러자 베트콩
들이 갑자기 일어나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우리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이들은 매우 우수했다. 난 그들이 나무들에서 걸어 나올 것이라고 예상
했으나, 이들은 그 대신에 포복으로 나왔다.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
해서 아주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15미터 부근까지 접근한 것이다. 소리도
나지 않았고 수풀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매우 낮게 행동했고, 크레모어
지뢰는 거기 있었으나 지나쳐 버렸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들은 사실상,
우리 매복형태의 중간으로, 킬 존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 값을 치렀다. 그들의 생명으로...
난 빨리 돌아보면서 우리 팀의 부상자가 없다는 것을 파악했다.
많은 총알이 날아왔지만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었다. 교전이 일어나면
이후 수칙이 있었다. 먼저 땅을 파서 륙색을 군장을 묻어버린다. 그 전에
탄약과 수류탄의 경우 교전에서 최대한 소비하는 것이 수칙이다. 그리트의
경우 M-26 파열 수류탄을 여덟발 가지고 있었는데, 네 발은 군장에 네
발은 수통피에 담아서 오른쪽에 걸고 있었다. 네 발의 수류탄을 다 던지고
나면 군장의 수류탄을 다시 수통피에 채워 넣는다.
보통 가까이에 있는 대원이 총에 맞으면 냄새로 알 수 있었다. 우리 대원이
이상이 없었는데 그 냄새가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도 15미터 앞에서 죽은
베트콩의 냄새인 것 같았다. 바람이 그렇게 불고 있었다. 그 냄새는 총알이
강한 운동역학에 의해서 인간의 살에 출동할 때 생기는 냄새다. 탄도의
운동역학으로 살갗이 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내 팀에서 나는 냄새가
아닌가 주목해 보았다.
그런데, 난 데이브 레인지의 타이거 스트라이프 군복의 상의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데이브는 내 왼쪽에 있었고 나보다 약간 아래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등을 볼 수 있었다. 군복에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그 구멍은 완벽한 원형이었고 7.62밀리와 크기가 비슷했다. 나는 관통된
완전한 총알구멍을 보았다. 그렇게 정확히 총알의 출구를 본 일이 전에
없었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 피가 군복의 그 위치를 어둡고 적시고 있었다.
난 데이브가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난 속삭였다. “데이브!”
그가 속삭임으로 대답했다. “예!”
등에 구멍이 났음에도 난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 “괜찮아?”
그는 바로 대답했다. “괜찮아요. 팀장님은?”
그의 대답은 놀라웠다. “나는 괜찮아. 그런데, 자네 맞은 것 같애.”
그가 맞았다는 것을 알고 질문을 했다. “예, 어딥니까?”
데이지 레인지는 오직 적을 죽이는데 집중하고 있었고, 상대가 거의 대부분
죽었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총상을 바로 깨닫지 못한 것도
특이했다. 총알은 왼쪽 가슴으로 들어와서 관통했는데, 다행히 총알은 그의
갈비뼈나 폐를 건드리지 않았다. 관통한 총알은 7.62밀리였다.
내가 총에 맞은 것을 말해주었지만, 그는 여전히 CAR-15으로 전방을 조준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왼팔에서 가슴까지 훑었다. 물론, 그의 손
에는 피가 묻어 있었고, 그는 속삭였다. “Oh, Shit!” 그래서 나는 뒤로 빠져서
그리트에게 응급조치를 받으라고 했고, 그 자리의 경계는 내가 맡았다. 그는
그러겠다고 하고 뒤로 슬슬 빠져나갔다. 데이브는 놀랄만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는 총상에 재빠르게 대처했다.
데이브 레인지 놀라운 직관을 가지고 있었고, 근처에 다른 사람이 들어온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전장에서 적을 죽이는데 온 신경을 기울
인다고 말했었다. 정신을 집중하면 작은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은 수백 미터에서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를 알 수 있다고 했고, 어떤
종류의 나무인지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은 적의 숨을 냄새로 맡을
수 있다고 했고,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육체적 힘을 세 배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
어떤 병사는 심장을 관통당했는데, 계속 총을 쏘고, 탄창을 비우고, 다시
탄창을 갈아 끼우고, 수류탄을 던지고 그 다음에 쓰러진다. 그리고 죽었
다고 한다. 아드레날린이 집중력을 강화시켜준 것이다. 일부는 오히려
총을 맞고도 광폭한 상태가 되도 한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존재
한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그때, 우리는 포위된 것이 아닌가 조금 의심이 들었다. 그들은 능선의
정상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밑에서도 더 많은 고함소리가 들렸다.
아래나 위의 병력 모두 상황보고를 받은 부대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보고를 받지 못했다. 추적자들이 모두 죽었으므로. 혹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답을 줄 수 있는 것은 M-79 유탄발사기의 40밀리
고폭탄이었다.
대부분의 델타 정찰팀은 적어도 한 정의 M-79 유탄발사기를 휴대했고,
나도 종종 내 자신이 가지고 가곤 했다. 당시 내 M-79는 내 팔뚝 중간에
걸려 있었다. 당시 각도로 눈을 돌려도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포열은
7인치로 줄인 상태였다. 조준기는 제거되어 있었고 유탄발사기 자체는
바로 앞 지근거리에서 사용하는 것이 사실 아니었다. 40밀리 박격포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산악 지형의 경우 높은 고지에 아주 훌륭한 전술로 사용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근접전에서 문제가 있었으니 14인치 총열을 7인치인 반으로
잘라내야 했다는 것이다. 유탄은 포구를 나간 뒤의 거리가 있어야 폭발한다.
표준 총열인 14인치로는 고폭탄을 발사해도 30미터 거리가 넘어야 탄이 터졌
으나, 만약 유탄발사기 총열을 7인치로 자르면, 유탄이 약 5미터 앞에서도 폭발
했다. 이것은 해보기 전에는 각자 믿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 이론을
실행에 옮겨본 적은 없었다. 결국 나는 한 발을 넣고 그들을 향해 쏘았다. 분명히
10미터를 더 넘어서 유탄이 포열을 나가서 폭발했다. 하여간 이 일은 다른 글
에서 써보도록 하겠다... (안 터질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
1969년 9월, 나는 정찰팀으로써 DMZ 서쪽 끝의 지역에서 침투헬기에서
뛰어내려 랜딩했었다. 난 땅에 떨어져서 굴러버렸다. 내가 구를 때, 장전해
놓은 유탄이 하나 떨어져 나와 헬리콥터 4미터 부근으로 흘렀다. 그러나
폭발하지 않았다. 황금색 칠이 된 조종사 출입구 바로 옆으로 굴러갔다.
조종사는 아마도 이 장면을 보고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그래서 281헬기
조종사들은 M-79 유탄발사기를 허용은 하지만, 헬기 안에서 약실에 유탄을
넣고 있지 말라는 조건을 달았다.
보통 M-79를 훈련에서 사격하면 일정한 반동을 받게 된다. 그러나 전투의
와중에 그것을 한손으로 쏘아도 반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중에,
그러나 그렇게 마구 쏘면 나중에 어깨나 손가락은 물론 머리에 충격의
후유증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무선중계를 통해서 전방정찰기가 필요하다는 인폼을 상부에 보냈고,
미군 1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긴급 퇴출을 요청했다. 몇 분후, 정찰기가
무전기에 등장했고, 난 내 위치를 알려주었고, 그는 나에게 연막탄을
터트릴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O-2 정찰기의 엔진음을 들을 수 있었다.
(공격무기가 없는 O-2 소형 정찰기, 조종사는 대위나 소령으로 지상의
정찰팀을 보호하고 작전을 조력한다. 속도가 낮아 피탄을 많이 받았고
정찰대원만큼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다.. 가끔 미력하나마 수류탄을
창 밖으로 던져준 예도 있다...)
그러나 산 전체에 메아리가 울렸기 때문에, 그 소리만 듣고 내 쪽으로
유도할 수는 없었다. 난 개활지에 연막탄을 까서 던지고 식별이 되냐고
물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했고 하나를 더 던지라고 했다. 나는
mini-smoke 하나를 더 던졌으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나는 풀
사이즈의 M18 연막탄을 까서 던졌고, 1-2분 후에, 정찰기는 현재
우리 정찰팀이 잘못된 장소에 있다고 통보했다. 난 내 작전구역 안에
있지 않았다.
그 시간, 나는 이 정찰기의 통보가 정말로 잘못된 지역에 있다는 뜻인 줄
몰랐다. 나는 나중에야 우리가 다른 계곡에 침투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난 상공을 돌고 있는 정찰기와 계속 교신을 했고, 결국 우리의 정확한
좌표를 불러주었다. 1만 피트 상공의 팬텀기는 연막을 보지 못한다.
어쩐지, 우리가 박모로 침투할 당시 정찰기는 우리가 가야 할 계곡에 대한
독도법을 실수했다. 그러므로 정찰기의 유도를 받은 헬기 조종사도 결국
우리를 다른 계곡에 침투시킨 것이다. 왜 어제 내가 본 지형이, 공중정찰
때 본 지형과 달랐는데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런 일은 그 지역에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로써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어 샤우 계곡 남쪽은 산들과, 계곡, 강, 시내가 미로처럼
엮여 있다. 보기에 다 비슷비슷했다. 특별히 현저한 참고점이 없었다.
부가적으로 말하면, 박모 침투라고 해도, 이미 지상의 계곡들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완전한 잉크-블랙의 그림자들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런 박모 침투에서 조종사들은 거의 칠흙에 가까운 곳을 날다가
10-12킬로미터를 벗어나고만 것이다.
이런 날, 델타의 정찰기는 보통 혼자 타고 작전을 돕는다. 가끔은 우리
상공을 돌다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 반 어둠을 경험하기도 한다. 고지를
홱 하고 피해가는 일도 있었고, 지상 사격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난 일종의 경외심을 그들에게 가지고 있었다.
정찰기가 내 연막을 실별하지마자 나는 우리 바로 위의 능선에 공중
폭격을 요청했다. 퇴출 항공기가 도착하기 전에 능선의 적은 큰 위협
이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퇴출되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정찰기에 포병의 화기와 공중지원 항공기의 종류를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Snake and Nape (500파운드 고폭탄과 네이팜 탄) F-4 팬텀. 1만 피트.”
우리는 상공에 팬텀기가 있다는 좋은 뉴스를 들었다.
당시 베트남전에서 팬텀기만큼 최고의 폭격 조준기를 가진 것이 없었다.
팬텀이 뜨면 25미터 곱하기 25미터 구간을 정확하게 폭격할 수 있다. 그
옆으로 벗어난 적이 거의 없었다. 벗어나봐야 2-3미터였다. 난 우리 위의
50미터 높이의 능선에 네이팜을 때려달라고 하고 싶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 중에 하나였다. 그러면 능선에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
에게 다가오던 적들도 팬텀을 보면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결국 팬텀이 능선에 여러 개의 네이팜을 투하했다.
우리는 극단적인 열기를 느껴야 했다.
나무들 사이로 거대한 화염이 보였다.
우리는 그런 위험에 직면한 적이 없었다.
나는 150미터 거리의 능선에 500파운드 폭탄을 다시 요청했다. 그러나
첫 발이 터지고 나서 나는 네이팜으로 수정을 요청했다. 고폭탄은 일대로
엄청난 파편을 날렸다. 500파운드 폭탄 테일핀 부분의 거대한 강철파편이
우리 정찰팀이 있는 곳 중앙까지 날아왔다.
정찰기는 퇴출 랜딩존을 찾아보라고 했다. 약 30분에 걸친 폭격으로 능선
위에는 죽은 자 외에는 아무런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능선으로 올라
가서 랜딩존을 찾기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계곡의 하부로 내려가 평탄지를
택하고 싶지도 않았다. 고지 바로 아래 한 곳이 교전은 일어나겠지만 맥과이어
릭으로 탈출하기 좋은 장소였다.
만약 데이브 레인지가 크게 부상을 당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면, 우리는 그
자리에서 맥과이어 릭 탈출을 요청해야 했다. 그는 당시 많은 피를 흘렸지만
여전히 정신이 온전하고 잘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트가 데이브의 군장을
짊어졌다. 우리는 고지 옆을 원형을 그리면서 북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얼마 후 약간의 노력 끝에 비상탈출 랜딩존을 하나 찾았다.
찾은 비상퇴출 랜딩존은 얇은 나무들이 있었고 일부 큰 나무들을
크레모어로 날리고 작은 다섯 개의 나무는 소총으로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맥과이어 릭으로 탈출하면 될 것 같았다.
1.5 파운드의 C-4 폭약이 장착된 크레모어는 직영 20인치의 나무도
쓰러트릴 수 있었다. 여러모로 훌륭한 것이었다. 그리고 M-16을
완전 자동으로 놓고 나무에 갈기면 직경 10인치 정도의 나무를
전기톱보다 빨리 쓰러트릴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작업을 했다. 그래서 마지막 나무를 쓰러트릴 즈음에 어렴풋한
휴이 헬기의 소리가 산악에 에코되는 것을 들었다. 비상탈출을 위한 281헬기
중대임은 분명했다. 난 랜딩존에 연막탄을 까고 정찰기에게 보이냐고 물었다.
그는 보인다고 했고 첫 번째 퇴출헬기를 준비하라고 그는 말했다. 랜딩존은
두 대의 헬기가 상공에 떠 있을 수 없었다. 정찰기는 퇴출헬기가 로프 사다리를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데이브의 총상으로 인해서 올라가기 힘들었고,
나는 맥과이어 릭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SOG나 델타의 퇴출헬기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싣고 다닌다.) 6명의 대원이 3명씩 두 대에 나뉘어 퇴출해야 했다.
두 대의 건쉽이 같이 도착했고, 정찰기는 랜딩존 위의 두 개 능선에 대하여
로켓과 미니건의 사격을 유도했다. 지휘통제 헬기가 뒤이어 도착했다. 난
지휘통제 헬기와 교신을 해서 첫 번째 헬기는 맥과이어 릭으로 부상자
데이브를 퇴출시킬 것이며, 뒤에 나를 포함한 세 명은 로프 사다리로 퇴출
하겠다고 말했다.
(로프 사다리는 힘들어도, 일단 조금이라도 올라가서
스냅링을 걸어버리면 된다. 즉, 시간이 맥과이어 릭보다
훨씬 빠르다.)
(맥과이어 릭. 이것을 훈련장면이고 실제 완전군장
상태에서는 군장 세 개를 고리로 묶어 시트 아래
깔고 앉는다... 델타의 맥과이어 상사가 고안한 장비로
이후, 베트남전 전 미군 정찰대에 퍼진다....)
내 계획은 데이브, 그리트, 그리고 남베트남 대원 1명이 맥과이어로
먼저 탈출하고, 그리트는 출혈이 많은 데이브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주었다. 난 두 명의 남베트남 대원과 남아 있다가 두 번째 헬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정찰팀장은 항상 마지막 헬기를 타는 것이 불문율)
그 랜딩존은 로프 사다리를 사용하기에 딱인 랜딩존이었다. 로프 사다리에
대원이 끝까지 올라 기내로 들어가면 헬기는 계속 전진기지까지 가지만, 못
올라가면 가까운 미군 기지에 내려서 다시 탑승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불안정하지만 좌석 시트가 있는 맥과이어 릭은 30미터 로프에 매달려 보통
기지로 바로 직행한다.
우리는 계곡 아래에서 접근하는 첫 번째 헬기소리를 들었다.
고지 옆을 돌면서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매우 낮게 나무를
스치며 올라오고 있었다.
(위험하지만 위치를 감추는 방법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갑자기 상공에 나타났다.
곧바로 헬기는 랜딩존 정중앙의 75피트 위에 섰다. (22미터 정도)
그리고 델타의 구출하사관(Recovery NCO)이 왼쪽문을 통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샌드백이 달린 맥과이어 릭 세 개를
정확하게 랜딩존 중앙에 떨어트렸다.
그리트. 데이브, 그리고 한 명의 남베트남 대원이 우리 방어선을 떠나
랜딩존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세 개의 군장을 엮어서 맥과이어
릭 시트에 깔고 고리에 몸을 넣었다. 그리고 원형 손목끈에 손을 걸어
돌렸다. 그리고 구출하사관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들어 올리란
뜻이었다. 30초도 걸리지 않아 헬기는 이들을 매달고 상승을 시작했다.
우리는 계속 엄호사격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방어는 3명으로 오그라들었다.
나와 2명의 남베트남 특전대원.
산 허리에는 적어도 베트콩 1개 중대가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이때가 가장 불안한 시점이다. 우리 셋은 의지하고 경계를 해야
했다. 처번째 헬기는 부드럽게 날아갔다. 그리고 2분 정도가
지나서 잊을 수 없는 일을 겪게 된다.
첫 번째 헬기가 세 명을 태우고 이륙하자, 다른 한 대가 다가왔다.
앞의 헬기가 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계곡으로 들어왔다. 헬기는
랜딩존 정 중앙에 서더니 밑으로 점차 내려왔고, 결국 35피트짜리
로프 사다리를 밑으로 던졌다. (10미터)
난 위를 올려다봤고 구출하사관(Recovery NCO)인 조니 산토라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총알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헬기
뒷 부분 50미터 부근에서 월맹군들이 소총을 쏘고 있었고, 그러자 왼쪽 기총수가
기관총으로 응사를 하기 시작했다. 난 총알들이 헬기를 때리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헬기는 풀 피치로 상승해서 자리를 떠난다는 것을 예상했다.
우리는 남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헬기는 후미에 총을 맞으면서도 그대로 있었다.
보기에,
조종사는 우리를 두고
떠나지 않는다는 결심을 한 것 같았다.
우리는 사격 속에서 사다리를 올라야 했다.
난 전방을 완전히 볼 수 없었다.
조종사는 총격을 받고 있었지만
사다리를 던진 상태 그대로 있었다.
꼭 데리고 갈 테니 올라타란 의미였다.
그것은 은혜였다.
그것은 구출하사관 쟈니 산토라의 결심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로프 사다리를 바로 끌어올리더니 바로
세 개의 맥과이어 릭 삭구를 로프와 함께 던졌고, 그것은
우리 앞 쪽에 떨어졌다. 나와 두 명의 베트남 특전대원은
나무에서 나와 랜딩존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 높이에서 로프 사다리는 지상에 닿지 않는다)
소음으로 귀가 멀 지경이었다. 바로 위의 휴이 엔진의 굉음과 함께 양쪽
기총수들이 M-60을 난사하고 있었고, 이 소리의 혼합은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로프 사다리로 탈출을 결심했던 나는 당황을 했지만, 두 명과
뛰어가 급하게 맥과이어 릭으로 들어가 결속했다.
영원처럼 흐르는 시간이었다.
앞 조는 우리가 엄호했지만, 우리는 엄호자 없이 30초 이상을 허비해야 했다.
나는 결속을 끝내고 산토라에게 엄지를 들어 올렸다. 헬기 내의 모든 근무자가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그들은 곧바로 상승했다. 로프가 탱탱하게 당겨지면서
우리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어쨌거나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지상의 적과 헬기 중간에 있었다.
조종사는 급하게 출발을 시도했고,
우리 세 명에게는 나무들이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
수평으로 끌려가면서 나무와 출동하는 것이 맥과이어 릭 자체의 커다란 공포
그 자체였다. 어디 하나 불러지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손 발은 그렇다
해도 늑골을 때리거나 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30미터나 되는 길이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우리 장비와 군장들이 나뭇가지에 얼키고 설켜서 때리기 시작한다.
나무와 가지들에 충돌하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 문제는 로프가 끊어지거나
나무와 엉켜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구출하사관을
임명된 사람들은 만도를 휴대하고 있다. 만약 로프가 끊어질 위험이 생기면
더 높은 고도로 올라가기 전에 만도로 로프를 끊어주어야 한다. 우리가 그런
위험에 처했다.
우리는 45미터 상공에 있었고, 로프는 손상을 입었다. 만약 아래 대원의
사인이 없을 경우 구출하사관은 본인이 판단하여 만도로 로프를 내리쳐야
한다. 나무들이 우리를 긁어대고 있고, 밑에서는 적들이 총을 쏴대고 있고,
정말 악몽 그 자체였다.
결국 나무 끝 높이로 우리가 벗어났으나, 우리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로프 사다리 탈출을 예상하고 있었다. 맥과이어 릭이 아니었다.
맥과이어 릭을 탈출할 경우 나는
내 CAR-15 소총을 LBE (Load Bearing Equipment)하는 장치에
결속해서 총구를 정면으로 거취 해야 한다. 그러나 당시 나는
내 총을 550-낙하산 끈으로 목에 걸고 있었다.
로프 사다리에 오를 때는 총을 몸에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에 강하게 묶어야 한다. 로프 사다리에 매달린 채 있으면,
총기 끈으로 대충 걸치면 총이 부유하기 때문에 힘들어진다. 그리고
사다리에 걸려서 오르지 못하고 옴짝달싹 못할 수도 있다.
두 가지 탈출방법에는 총기를 관리하는 방법이 달랐다.
나무들과의 충돌이 끝나고 위로 올라갔을 때,
550끈으로 결속된 내 CAR-15는 밑으로 늘어졌고,
나는 ‘내 목이 당겨지고 있다. 부러질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뭇가지들과 충돌하면서 느슨해 진 것 같다.
내 강력한 낙하산끈은 내 목을 조였을 뿐 아니라,
내 팔과 다리도 끊어질 듯한 고통을 느끼게 했다.
이 끈은 550파운드의 압력을 버틸 수 있는 끈이었다.
이 끈으로 인해서 나는 숨을 쉬지 못했다. 끈으로 군장과
총을 사다리에 오르기 위하여 결속한 것이 내 목과 수족을
부러트리려고 하고 있었다.
강한 그 끈이 끊어질 일은 전혀 없었다. 그 고통을 잊고 싶어서
차라리 손과 발이 잘라져 버렸으면 하는 희망을 품었다. 온 군장이
밑으로 늘어지면서 나를 조이고 있었고, 차라리 군장이 떨어져
나갔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결국 숨이 막힌 상태에서 기도가 응답했다. 군장이 하중을 못 이기고
떨어져 나간 것이다. 하나가 끊어지자 다른 부분도 끊어졌다. 나는
그 순간 내 목에는,
이제 평생 아무 것도 걸지 않겠다고 내 자신에게 약속했다.
그 약속은 현재 40년 넘게 지켜오고 있다.
정말 길게 느껴진 시간이었다. 그러나 헬기가 랜딩존의 중앙에
오고 나서, 우리가 달려가 매달리고 뜬 시간은 모두 합해서 30초를
넘지 않았다. 그러나 총격을 받고 있었고, 매우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우리 세 명의 나무와의 문제에서 풀려나자 헬기는 급하게 고도를 높였고
우린 30미터 아래 매달려 푸 바이 발진기지로 향했다. 헬기에 매달려서
떠날 때, 난 어 샤우 계곡을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보지 않기를 기원
했다. 그 외에 어떤 곳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 샤우 계곡은 여전히
내 마음속 리스트의 맨 위에 들어 있다.
내가 돌아온 2일 뒤, 델타는 푸 바이 발진기지를 닫았고,
다시는 어 샤우 계곡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 구역이
MACV-SOG CCN의 책임 정찰구역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큰 성과 없이 희생자만 늘었다.
델타가 어 샤우에 다시 들어가지 않은 것은, 나 개인적으로 감사한 일이다.
(몇번 올렸던 로프 사다리로 라오스에서 탈출하는 SOG CCN 정찰대원들.
세 명중 한 명은 올라서고 있다. 정 힘들면 그 자리에서 안전링으로 사다리에 걸어 버린다.
로프 사다리는 굵은 로프로 결속한 알루미늄 봉으로 만들어졌다...)
<아래 사진은 델타 전속 281헬기중대 근무자가 촬영한 사진이다.
1969년 어 샤우 계곡에서 퇴출 중, 헬기로 달려오는 델타 정찰팀>
(교전 상황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미군 대원의 안도의 표정이 역역하다...)
(침투와 퇴출은 박모 아니면 여명시고, 퇴출은 대부분 여명시에 한다...)
데이브 레인지는 부상에서 회복하자 다시 정찰팀으로 들어와 내
부팀장이 되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서너번의 정찰작전을 안 호아에서
나갔다. 그리고 내 추천에 의하여 마이 록에서는 정찰팀장이 되었다.
그는 훌륭한 팀장이었고, 4년간 베트남에 참전하면서 성공적인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와 바로 제대했다.
이후 데이빗 레인지는 로스 엔젤레스 경찰국에서 15년간 근무를 했고,
이 민간인 생활에 낙담한 그는 다시 육군의 그린베레로 돌아왔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년 전, 포트 캠벨의 제5특전단의 A-팀에서
화기하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윌리엄 포메로이 주니어 (그리트)는 1년 후에 내 정찰팀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1970년 7월 델타의 임무가 끝날 때까지 있었다. 그는 나와 1년간 같이
작전했고, 현재도 매우 가까운 친구로 남아 있다.
존 G. 산토라 주니어 (Johnny G)는 매달린 우리를 어 샤우 계곡의 나무
들에 끌어버린 것에 책임감을 느꼈고, 나를 볼 때마다 근 1년간 사과를 했다.
나는 그의 실수가 아니라고 거듭 확인해 주었다. 사실상, 그날 우리가 사다리
대신 맥과이어 릭으로 탈출한 것은 우리 팀 전체의 생명을 구한 일이었다.
만약 사다리를 썼다면 헬기가 더욱 낮게 내려와야 했고, 그랬다면 헬기는
지상사격에 노출되어, 아마도 헬기는 추락했을 것 같다. 그랬다면 헬기는
바로 우리 머리위에서 떨어지는 것이고, 아마도 우리 모두 죽었을 것이다.
어 샤우에서의 14년이 지난 어느 날,
존 산토라 주니어 상사는 온두라스와 니카라과
국경 근처에서 블랙호크 헬기가 추락해서 사망했다.
평화 속에서 휴식하기를, Johnny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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