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는 진룡천자(眞龍天子)에 비유되었고, 그의 뜻에 거슬리면 바로 목을 치거나, 집안을 몰살시키거나, 구족을 멸했다. 사실 황제 본인도 항상 목이 달아날 위험을 안고 있었다. 황제가 사람을 죽인 일이야 통상적이지만, 황제가 피살당한 일은 얘기해볼 필요가 있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중국의 고대에 약 60명의 황제가 자기의 아들, 숙부, 부친, 모친, 처, 형제, 할머니, 할아버지, 장인과 대신, 환관에게 살해당했다. 아래에 언급한 것은 가족에게 살해당한 경우를 유형별로 나눈 것이다.
첫째, 아들이 부친을 죽인 경우
중국에서 신하가 임금을 죽이거나, 아들이 부친을 죽이는 것은 대역무도한 일이었다. 예로부터 아들이 부친을 죽인 가장 유명한 경우는 수양제 양광이다. 양광은 양견의 둘째 아들인데, 600년에 양견이 양광을 태자로 세운다. 양견이 중병이 든후, 야심이 큰 양광은 하루빨리 권력을 빼앗기 위하여 부황 양견을 병상에서 독살하고 황위를 빼앗는다.
당태종 이세민은 비록 부친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황위를 뺏는데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현무문정변을 통하여, 태자 이건성, 동생인 제왕 이원길 및 다른 황자, 황손을 모두 죽인다. 두 달후 부친은 이세민에게 황제위를 넘겨준다.
남조때의 문제 유의륭은 424년에 즉위하는데, 태자인 소에 의하여 살해당한다.
둘째, 형제간에 죽인 경우
황위를 빼앗기 위하여 형제간에 서로 죽이는 일은 자주 있었다. 16국때, 한황제 유연이 죽고, 태자 유화가 즉위한다. 그 동생인 유총은 불만을 가지고, 형인 유화를 살해하고 황제에 오른다.
오대십국때 남한의 군주인 유분이 즉위한 후, 다음 해에 동생인 진왕 유홍희에 의하여 살해당한다. 사료의 기재에 의하면, 유분은 씨름을 좋아했는데, 943년, 즉 남한 광천2년에 유홍희가 씨름꾼을 데려와서 보여주겠다고 한다. 유분은 아주 기뻐하며 바로 연회를 베풀고 여러 왕을 불러 함께 구경하도록 했다. 연회가 끝날 때, 유홍희는 유분이 대취한 것을 보고 기회라고 생각하여 씨름꾼에게 그이 앞가슴을 쳐서 목숨을 빼앗도록 하였다. 유분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이로써 동생이 형을 죽이는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셋째, 모친이 아들을 죽인 경우
역사상 모친이 아들은 죽이는 일도 적지 않게 발생했다. 그리고 이 모친들은 모두 역사상 유명한 독부들이다. 서한의 여후, 당나라의 무측천, 청나라의 자희가 모두 아들(혹은 외조카)를 죽이고 정권을 잡았다.
남북조시기의 북조인 북위에서 숙종 원익은 무종 원각의 둘째아들이었다. 6세때 즉위한 후, 모친, 태후 호충화에 의하여 독살된다. 528년 2월, 북위황태후 호충화는 사람을 보내어 자신의 19살된 친아들 효명제 원익을 독살한다. 사료의 기재에 의하면, 호충화는 젊어서 과부가 되었고 조정의 대권을 장악했다. 북위 효명제 원익은 모친에 불만이 있어서 모친을 몰아내고자 했다. 태후인 호충화는 권력을 잃기 실어서 자기 친아들에게 독을 쓰게 된다. 이 호태후는 문학적인 조예가 깊었다. 그녀의 대표작품은 <<양백화>>인데 북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넷째, 처가 남편을 죽인 경우
당나라의 위황후가 죽인 것은 자신의 남편인 당중종 이현이었다. 이현은 당고종 이치와 무측천의 사이에 태어났다. 28세인 이현은 이치가 죽은 후 황위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위후는 무측천처럼 황제가 되고 싶어했다. 이현은 어쩔 수 없이 위후에게 정치참여를 허용한다. 그러나 위후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안락공주와 독약을 음식에 넣어 중종 이현을 독살한다. 그리고는 섭정을 시작한다. 그녀는 당현종 이융기에게 주살당한다.
다섯째, 할머니가 손자를 죽인 경우
여치는 서한의 개국황제인 유방의 황후이다. 역사상 여후라고 부른다. 유방이 죽은 후 여후가 권력을 장악하여, 어린 황제를 세우려고 한다. 아들인 유영에게 자식이 없었으므로 여후는 궁녀의 아들을 궁으로 데리고 들어와 자기의 손자라고 하면서 황제로 세운다. 이 어린 황제가 말을 듣지 않자, 여후는 손자인 어린 황제를 독살하고 다른 어린 황제를 세운다. 그리고는 자신이 계속 권력을 장악한다.
여섯째, 할아버지가 외손자를 죽인 경우
수나라 양견은 남북조때 북조인 북주의 선제 우문빈의 장인이었다. 즉, 황후인 양씨의 아버지였다. 579년, 우문빈이 태자 우문연에게 황제위를 선양하고, 양견이 보좌한다. 양견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외손자로부터 황제위를 넘겨받는다. 우문연이 죽은 후 북주가 멸망한다. 양견은 수나라를 세우고, 나중에 양견은 아들 양광에게 살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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