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옛 우리 이야기

조선후기 완전 추락한 양반신분

구름위 2013. 6. 2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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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아버지께서 아마 8대독자인가 그랬을 것이다. 말이 8대독자지 8대에 걸쳐 형제 하나 없이 이어져 오다 보면 친척이고 뭐고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오죽하면 친가쪽으로 가장 먼 친척이 사촌형의 자식들일까? 그보다 더 멀어지면 그건 친척도 뭣도 아닌 그냥 족보만 같이 쓰는 남이다. 더구나 할아버지 자신이 어려서 조실부모하여 천애고아가 되셨으니 그 외로운 처지야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종가에 들어가 얹혀 살며 머슴살이를 하셨던 모양이었다. 

종가가 괜히 종가인 것이 아니라 당시 한 집안 가운데 살기가 어려운 이가 있으면 그것을 거두어 보살피는 것도 종가의 몫이었다. 덕분에 어려서 증조부모님을 여의신 할아버지께서도 그 집에서 머슴 비슷하게 지내다가 나이가 차서는 종가의 주선으로 할머니를 만나 결혼도 하셨다. 그리고는 어느날 문득 할머니와 함께 허위허위 먼 함경도까지 가서 거기서 사시다가 해방을 맞아 지금 큰집이 있는 강원도 강릉에 정착해서 거기서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돌아가셨다.

왜 이 말을 하느냐면, 그렇게 종가에서 머슴살이를 했어도 할아버지나 아버지형제분들이나 나나 종가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 일단 족보상으로는 양반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원래 양반이란 문반을 가리키는 동반과 무반을 가리키는 서반을 아우르는 말이다. 한 마디로 문관이든 무관이든 관직에 나선 이들을 양반이라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관직이라는 것이 특정 계급에게 독점되면서 그것은 관직에 나설 수 있는 특정한 계층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선조가 양반이었다는 이유로 설사 관직에 나설 수 없는 처지라 할지라도 스스로 양반을 자처하게 되었다. 바로 우리집안처럼.

한 마디로 양반이라고 다 양반이 아니라는 거다. 족보상으로는 양반이지만 우리집안처럼 머슴살이나 하며 양반으로 갖추어야 할 지식이나 교양, 심지어 관직에 나설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그런 경우가 오히려 더 많았다. 당연하다. 조선왕조 500년, 관직은 한정되어 있고 과거급제자도 한정되어 있는데 그동안 새끼치듯 양반의 수만 늘어나고 있었으니.

사실 조선의 양반은 매우 특수한 경우였다. 예를 들어 유럽의 귀족이나 일본의 사무라이의 경우 그 신분을 세습하는 건 상속권을 갖는 장자에 한정되었다. 차자는 대개 성직자가 되었고 삼남부터는 전사로서 그 집안의 가신이 되거나 따로 나가 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아니면 다른 집안으로 양자로 들어가 그 집안의 성을 계승하면서 신분을 유지하거나. 가문의 역량을 상속자를 중심으로 결집시키고, 특권적인 신분을 한정하고 특정함으로써 그 지위와 권리를 독점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그러나 조선은 아들 열을 낳으면 열이 모두 양반이었다. 서자가 아닌 이상 정부인에게서 낳은 아들은 죄다 양반이었다.

유럽에서나 일본에서나 그런 노력을 기울이고서도 결국에는 도태되어 귀족으로서의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부시로서 최소한의 삶조차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물며 자식을 낳는 족족 양반을 만들어 버리고 나면 양반이라는 특권적인 신분이 계속 특권적인 신분으로 남기엔 그 수가 너무 많아지게 된다. 수가 많아지는 만큼 양반이기에 주어지는 특권 역시 한정되고 특정될 수밖에 없고.

3년에 한 번 치르던 과거를 기회가 될 때마다, 아니 이유를 만들어서까지 시시때때로 보게 되었음에도 과거에 급제하는 경우는 전체 양반 가운데서도 일부에 불과했다. 그 일부 가운데서도 다시 관직에 진출하는 경우는 또 극히 일부였다. 아예 나중에는 관직은 포기한 채 과거에 급제했다는 타이틀 하나만을 노리고 과거공부를 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아니 그쪽이 더 많았다. 모두 양반의 수가 너무 늘어난 때문이다. 양반이 너무 많으니 과거에 급제하기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가기도, 그래서 과거를 보고 관직에 얻는다고 하는 양반으로서 그 정체성을 유지하기도 힘들어지게 된 것이다.

더구나 농경사회에서 한 사회가 보유한 부라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양반이 양반으로서 특권을 누리자면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 부는 한정되어 있고, 양반은 늘어나고, 그런데 양반으로서의 특권을 누리자면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고, 그러다 보니 이름만 양반이지 우리 할아버지처럼 어디 가서 머슴살이 하는 양반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양반이라는 타이틀이 갖는 가치가 그들로 하여금 양반의 이름을 고집하게 되었으니 양반이되 양반이 아닌 자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조선후기 양반의 수가 늘어난 것은 바로 이러한 양반의 분화와 관계가 있다.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도 있고 경제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과거에 전념하여 급제자도 내고 인맥을 통해 관직에도 진출하는 말 그대로의 양반과 그럴만한 경제적 기반도, 정치사회적인 인맥도 없는 몰락한 양반과. 그리고 그러한 몰락한 양반들은 상민이나 다름없어 그들을 통해 양반의 지위는 크게 확대되었다. 양반을 사서 양반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더 이상 양반이 아니게 된 이름만 양반들이 상민과 통혼하는 가운데 상민이 양반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양반인 모모 집안과 상민인 모모 집안이 사돈을 맺는다. 그러면 상민인 모모 집안도 양반인 모모 집안의 본과 성을 가져다 쓴다. 양반이 상민을 사위로 들이거나, 상민이 양반을 사위로 들이거나, 아니면 상민이 양반의 딸을 며느리로 들이고서도 양반의 성을 가져다 쓰는 경우도 있었다. 아예 돈을 주고 슬쩍 남의 족보에 이름을 끼워 넣거나. 아무래도 볼 것 없는 상민보다야 양반이 보기에도 좋으니 어떻게 해서든 이유를 만들어 양반을 칭하게 되었던 것이다. 양반의 족보를 살 여건이 안되는 사람 가운데서도 양반을 자처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된 것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였다.

다시 말해 조선후기 양반의 양적인 팽창은 양반의 질적인 분화를 동반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워낙 양반의 족보에 이름만 올리면 양반으로 여겨지다 보니 양반의 수는 계속 팽창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양반으로서 누려야할 특권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러한 현실의 괴리가 양반으로서의 특권을 누리는 양반과 그러지 못하는 양반을 나누고, 그러지 못하는 양반을 추락시켜 피지배계급과 동화되도록 만들었다. 양반이라고 권력을 누리는 양반이 있는 반면, 아무것도 없이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하는 자칭양번도 있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양반이라고 다 같은 양반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돈을 주고 양반을 산 경우는 물론이려니와 양반의 후손으로서 대대로 양반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도 그만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인적 기반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더 이상 양반이라 할 수 없었다. 몇 대에 걸쳐 과거에 급제자를 내지 못하고, 경제적인 기반이 취약하여 향촌사회에 제대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게 되면 이름만 양반일 뿐 그 삶이란 일반 상민과 다르지 않았다. 단지 양반이라는 타이틀이 갖는 장점이 그러한 가운데서도 양반이라는 이름을 고집하게 했고 양반으로서 상민에 수렴하는 대신 상민으로 하여금 양반에 수렴되도록 했을 뿐이다.

양반이라고 다 같은 양반이 아니다. 그 말은 곧 양반이라고 양반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서만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조선후기는 양반의 양적인 팽창과 더불어 그 안에서의 계급적인 분화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전제하여 접근하지 않으면 양반이라고 하는 피상적인 이미지로서 당시를 보게 된다. 양반이 어떻고 저떻고 그리고 그것이 당시를 오해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양반이 하나가 아닌데 그것을 하나로서만 뭉뚱그려 보려 하니 말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 역시 우리집안 족보를 믿게 되었다. 설마 양반 하지고 종가집 머슴살이 하던 것까지 꾸미려 했을까? 그리 대단할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집구석에서 굳이 그렇게까지 해가며 족보를 살 이유도 없는 것이고. 그래서 일단 우리집안도 양반이 맞구나 하는데... 아마 그런 경우 적지 않을 것이다. 족보도 가짜가 아니고 조상도 양반은 맞는데 과연 양반이 맞는가 하는 경우가. 하긴 그런 게 이제 와 뭔 상관인가 싶기도 하지만서도. 옛날 이야기 아닌가. 별 대단할 것도 없는.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양반은 관용적인 의미에서의 양반이다. 원래 양반이라 하면 앞서 말한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간 - 최소한 과거에 급제하기라도 한 사람들을 뜻한다. 따라서 3대에 걸쳐 급제자가 나오지 않으면 양반의 지위는 잃게 된다. 다만 그렇게 양반의 지위를 잃고 나서도 그들 자신은 끝까지 양반이기를 고집했다. 한 마디로 양반 족보만 있으면 죄다 양반이라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다. 양반이라고 다 양반은 아니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