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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Holocaust) (1)

구름위 2013. 5. 1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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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Holocaust) - 쇼아(Shoah)

[신에게 바치기 위해 태운 제물]

 

비엔나의 시내 중심가에 있는 유태광장(유덴플라츠). 광장 한가운데에는 쇼아(홀로코스트)에 의해 희생당한 오스트리아의 유태인들을 추모하는 기념비(네모난 조형물)가 있으며 오른쪽의 기념상은 독일의 사상가이며 시인인 레씽으로 그는 독일인들이 유태인들에 대하여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홀로코스트는 일반적으로 2차대전중 히틀러의 주도아래 나치가 약 6백만 명의 유럽 유태인들을 집단 학살한 것을 뜻하는 단어이다. 홀로코스트(Holocaust)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의 ‘전체’(whole)라는 홀로스(holos)와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태운’(burnt) 제물을 뜻하는 카우슬로스(kauslos)가 합성된 것이다. 즉, 제물을 모두 태웠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2차 대전 중에 그들이 나치 독일로부터 당한 참혹한 집단학살을 표현할 때에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보다는 히브리어의 쇼아(Shoah)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를 선호한다. 홀로코스트라는 단어가 우상을 섬기는 그리스인들의 의식에서 비롯된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홀로코스트보다는 순수 히브리어인 쇼아가 더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성서에 나오는 쇼아라는 단어는 ‘재난’(Calamity) 또는 ‘재앙’(Disaster)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핍박을 받은 것도 쇼아에 해당한다. 쇼아라는 단어는 구약시대로부터 사용된 단어이지만 홀로코스트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부터였다. 그리고 실제로 홀로코스트라는 단어가 나치에 의한 유태인학살을 의미하는 단어로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1978년이다. 그 해에 미국 NBC방송이 ‘홀로코스트’라는 타이틀의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방송하고 부터였다. 메릴 스트립(Meryl Streep)등이 출연한 NBC의 ‘홀로코스트’는 유태인 학살의 실상을 상세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그후로부터 원래는 ‘신에게 바치기 위해 태운 제물’이라는 뜻보다는 나치에 의한 유태인 대학살을 의미하게 되었다.

 

비르샤바 게토에서 길바닥에 쓰러져 죽어가는 유태인 어린이. 이 아이의 부모도 이미 나치에 의해 희생이 되었을 것이다. 지나가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듯 바라만 본다. 누가 이 어린아이를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학자들은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히틀러에 의한 유태인 학살에만 국한하면 안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나치가 유태인 이외에도 조직적으로 살해한 수백만명의 다른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었다. 나치는 필요에 따라 가톨릭교도, 폴란드의 소수민족, 집시들을 중심으로한 루마니아인들, 소련의 민간인, 소련의 전쟁포로, 정신질환자(미친사람들), 지체부자유자(불구자들), 공산주의자, 동성연애자, 여호와의 증인 신도, 정치범, 종교적 반대론자 등을 집단적으로 학살하였다. 그러므로 홀로코스에 유태인뿐만 아니라 이들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되면 나치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은 6백만명의 유태인을 포함하여 최소 1천1백만명에서 1천7백만명에 이른다. 인류역사상 이만한 규모의 사람들을 단기간 내에 학살한 경우는 히틀러의 나치에 의한 경우 이외에는 없다.

 

다하우를 해방한 미군들이 유태인 희생자들의 시신이 마차에 실려 나가는 것을 보면서 참담해 하고 있다.

 

[조직적이고 단계적인 홀로코스트]

유태인 집단학살은 조직적이며 단계적으로 수행되었다. 법을 좋아하는 독일인들은 우선 유태인을 규제하는 법부터 마련했다. 즉, 독일은 이미 2차 대전이 발발하기 몇 년전에 유태인들을 독일사회에서 추방하는 법률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유태인들을 강제로 체포하였으며 이들의 재산을 몰수하였고 이들을 제한된 주거지인 게토에 들어가서 지내도록 했다. 그후 나치에 의한 인종청소 작전이 본궤도에 오르자 나치는 게토를 파괴하고 유태인들을 화물열차에 태워 주로 동구에 새로 만든 아우슈비츠 등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수많은 루마니아인들도 인간쓰레기인 집시라는 이유 때문에 유태인과 마찬가지로 인종청소의 대상이 되었다. 나치는 전쟁 이후 독일 제3제국의 영토가 확장되자 주로 동유럽의 여러 곳에 점점 더 많은 강제수용소를 설치하였고 이와 함께 인체실험실, 집단처리실(가스실), 화장장을 만들었다.

 

크리스탈나하트 이후 체포되어 부헨발트 수용소에 끌려온 유태인들. 죽을자와 살자를 구분하여 호명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게토에서 끌려나와 화물열차를 타고 동쪽으로 가던 유태인들은 화물칸 안에서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부지기수로 죽었다. 다행히 살아남은 유태인들은 강제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예전에 자기들의 선조들이 애급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보다 더 심하게 핍박을 받으며 중노동을 하며 지냈다. 이들은 결국 제대로 먹지 못하고 중노동에 시달리다가 죽었으며 그렇지 않으면 폐렴, 이질, 장질부사 등 질병에 걸려 수도 없이 죽었다. 나치는 특별히 훈련된 대체부대(아인자츠그룹펜: Einstatzgruppen: 정규 국방군을 대체하여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를 강제수용소에 배치하여 유태인들과 정치범들을 무더기로 총살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화물열차를 타고 도착한 유태인들을 목욕을 해야 한다고 속여 곧바로 가스실로 보내어 죽였다. 이러한 집단학살에는 나치의 중요 부서들이 거의 모두 관련되었다. 예를 들어 군수부서는 가스실에서 죽은 유태인들의 시체를 이용하여 비누를 만들어 군인들이 사용토록 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독일이라는 나라는 나라 전체가 인종청소를 위해 조직된 거대한 폭력조직과 같다고 말했다.

 

[홀로코스트/쇼아 = 파이널 솔루션] - 나치의 엔드뢰중(Endl?sung)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물을 태운다는 뜻의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는 18세기부터 인간을 대량학살 한다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20세기 초반에는 유태인이 아닌 다른 민족에 대한 박해와 학살도 포함하는 단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1차대전 중에 터키가 아르메니아인들을 인종청소하기 위해 대량 학살하고 박해하였던 것도 홀로코스트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주로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을 뜻하는 단어로 제한되었다.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이스라엘에서는 홀로코스트라는 표현보다는 쇼아라는 말을 더 합당한 것으로 인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사실상 히브리어의 쇼아를 홀로코스트로 번역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부터였다. 예루살렘에서 발간된 책인 Sho'ah Yehudei Polin을 ‘폴란드 유태인에 대한 홀로코스트’(The Holocaust of the Jews of Poland)라고 번역한 것이 쇼와 대신에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사용한 첫 번 케이스일 것이다. 그 전에는 쇼아를 ‘혼돈’(Catastrophe)이라고 번역한 일이 있다. 예를 들어 1934년 카임 봐이츠만(Chaim Weizmann)은 시온주의집행위원회에서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것은 아마도 새로운 세계대전과 같은 예상할수 없는 혼돈을 불러오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히브리어신문이 독일어의 Katastrophe를 Shoah라고 번역했었다.

 

류블린 게토에서 나치 경찰과 아인자츠그루펜이 유태인들을 체포하고 있다. 라인하르트 작전이었다.

 

1942년 예루살렘의 역사학자인 벤 시온 디누르(Ben Zion Dinur)는 그의 저서에서 폴란드의 유태인을 말살하려는 것을 쇼아라고 정의하고 영어로는 Catastrophe(혼돈)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Catastrophe라는 단어는 유럽에 있는 유태인들에 대한 집단 박해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에서 홀로코스트를 쇼아로 부르기로 한 것은 1951년으로 Yom Ha-Shoah Ve Mered Ha-Getaot를 National Day of Holocaust Remembrance(홀로코스트 기념일)로 번역하면서부터였다. 한편 다른 나라에서는 Holocaust 라는 단어를 Disaster(재앙)로 번역하여 사용하였다. 특히 주로 핵전쟁과 같은 가공할 요소로부터 인류가 받을 재앙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Holocaust 라는 단어를 유럽의 유태인에 대한 집단학살을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사용하고 있다.

 

나치시기에 유태인들을 말살한다는 뜻의 용어는 상당히 점잖은 표현인 Endl?sung der Judenfrage(엔드뢰중 데어 유덴프라게: Final Solution of the Jewish Question: 유태인문제의 최종해결)이었다. 그래서 독일과 영국에서는 홀로코스트라는 단어 대신에 ‘최종해결’(Endl?sung: Final Solution)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2차 대전이 끝난후 독일의 역사학자들은 V?lkermord(?커모르트: Genocide)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인종학살이라는 의미이다. 요즘에는 독일에서 홀로코스트라는 단어 대신에 히브리어인 쇼아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오스트리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비엔나의 유덴플라츠(유태광장)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물의 명칭도 쇼아기념물이다.

 

 

[다른 민족에 대한 나치의 홀로코스트]

홀로코스트가 되었던 쇼아가 되었던 또는 엔드뢰중(최종해결)이 되었건 이는 나치가 유태인을 말살하기 위해 저지른 만행을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나치가 유태인만 말살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이나 집단들도 말살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에 따라 희생된 사람들도 홀로코스트의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안한 일이지만 기왕에 홀로코스트에 대한 탐구를 하는 마당이므로 좀 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사전에는 어떻게 설명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컬럼비아백과사전에는 홀로코스트를 ‘나치 독일이 유럽 유태인들을 박해하고 말살한 사항을 말하는 명칭’이라고 되어 있다. 콤팩트 옥스포드잉글리쉬 딕셔너리와 마이크로소프트 엔카르타(Microsoft Encarta)에도 비슷하게 정의를 내려놓았다. 엔사이클로피디어 브리타니카는 ‘2차 대전중 나치 독일과 그 동조자들이 6백만명에 이르는 유태인 남자, 여자, 어린이들을 조직적인 국가 지원으로 살해한것’이라고 표현했다. 한편, 학자들은 홀로코스트라는 명칭을 적용하는데 대하여 두가지 의견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유태인들만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유태인뿐만 아니라 로마니(Romani: 로마와 신티: 집시를 말함), 폴란드인, 러시아군 전쟁포로, 슬라브인, 남자동성연애자, 여호와의 증인, 불구자, 정치적 반대론자 등을 죽인 것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후다 바우어(Yehuda Bauer)와 같은 학자는 홀로코스트라는 용어를 유태인 학살만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치가 목표로 삼은 것은 유태인 모두를 말살하는 것이었으며 다른 민족에 대하여는 일부만 해당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다른 여러 학자들도 이 주장에 동조하였다.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기념하는 야드 바셈(Yad Vashem)과 같은 기구들도 홀로코스트라는 용어는 당연히 유태인에게만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홀로코스트가 유럽에서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어 온 반유태인 정서에 기본을 둔 것이므로 이를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라츨로 텔레키(Laszlo Teleki)와 같은 학자는 유태인이야 당연히 홀로코스트의 대상이 되지만 이와 함께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수많은 로마니(Romani: 집시)들도 포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홀로코스트라는 용어는 2차대전중의 유태인 학살에만 국한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데이빗 스태너드(David Stannard)는 5천만명 이상의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학살한 미국의 경우는 분명이 ‘아메리칸 홀로코스트’라고 불러야 하며 크메르 루즈에 의한 캄보디아에서의 대학살도 ‘캄보디아 홀로코스트’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4년 르완다에서의 민족학살도 ‘르완다 홀로코스트’라고 불러야 하며 아울러 아프리카 식민지의 흑인들을 노예로 팔아먹은 마파(Maafa)는 ‘아프리카 홀로코스트’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뉴클리어 아마겟돈’(Nuclear Armageddon)은 ‘핵 홀로코스트’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