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틀 특공대는 고도 50미터의 초 저공 비행고도를 유지하며 예정 된 일본 본토의 목표지점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비행 중 이들 비행대는 수차례 일본 정찰기들과 마주치는 위험한 순간도 있었으나 중형 쌍발 폭격기가 항공모함에서 출격하였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일본군이 이를 아군기로 오판한 실수에 힘입어 별다른 요격 없이 비행을 계속 할 수 있었다.
작전 중인 B-25에서 촬영한 동경만의 극적인 모습
만일 이때 일본 전투기의 요격을 받았다면 대항 할 자위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속절없이 죽음의 길로 빠져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그들에게는 행운이 함께하고 있었다. 긴장어린 장시간의 비행 끝에 예정대로 13기의 B-25 비행대는 도쿄에 접근하였고 여기서부터 나머지 3기는 나고야로 비행경로를 바꾸었다.
수동식 육안 폭격에 의존 할 수밖에 없었던 비행대는 공장으로 보이는 산업시설을 골라 분노의 폭격을 개시하였다. 순간 엄청난 폭발음과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마른하늘에 번개를 맞은 일본인들은 순식간에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1기당 단 4개의 폭탄을 일본에 떨 구는 것만으로는 커다란 전술적인 폭격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두리틀 비행대는 일본의 심장부에 분노의 폭격을 개시하였다.
하지만 비행대는 그들의 임무가 미국민에게 엄청난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폭격을 무사히 마친 비행대는 곧바로 중국을 향해 서쪽으로 기수를 돌려 탈출 길에 올랐다. 이런 계획은 항공모함으로 착함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었으나 결과론적으로는 그들의 운명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다.
진주만의 미국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얼떨결에 폭격을 당한 일본은 상당히 놀랐으나 곧바로 요격기를 출동시켰는데 폭격을 마치고 도망간 미군기들이 항공모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일본군은 태평양방향, 즉 동쪽으로 도망갔을 것이라 판단하여 두리틀 특공대가 달아난 정반대 방향으로 대거 요격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두리틀 비행대는 폭격 후 곧바로 중국을 향하여 탈출하였다.
에드워드 요크(Edward York)대위가 지휘하는 1기의 폭격기가 일본의 요격에 피해를 입었으나 다행히도 격추를 면하여 예정된 중국이 아닌 가까운 소련의 연해주로 피신하게 되었다.
행운을 거듭하며 서쪽으로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 나머지 15기의 두리틀 비행대는 연료가 모두 소모되고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 동중국 해안지역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도 결코 안전한 지역은 아니었다.
중국의 해안지역은 일본군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내륙 깊숙이 날아간 비행대는 기체들을 불시착 시키거나 추락 전에 낙하산으로 탈출했다. 당시까지 동맹국은 아니었어도 중국은 일본과 교전 중이어서 승무원들은 중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3명이 전사하였고 탈출 도중 8명의 대원이 일본에게 체포되어 그중 3명이 처형되고 1명이 옥사를 당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탈출 과정 중 중국인들의 도움을 받는 두리틀 비행대원들의 모습
이들 16기의 B-25들이 투하한 폭탄은 총 64개에 불과하여, 사상자 363명, 건물파괴 300여동의 미미한 전과만을 얻었다. 전세가 곧바로 역전 된 것 또한 아니었고 오히려 무모해 보이는 이 작전을 위해서 승무원들과 16기의 귀중한 폭격기를 소모하고 이들을 이륙시키기 위해 최대한 보존하여야 할 항공모함을 위험지역까지 출동시키는 모험도 감수하여야 했다.
하지만 이들의 전과는 결코 숫자로만 계량화 할 수 없는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의 언론매체는 미군이 일본의 본토를 폭격했다는 뉴스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비록 전술적으로는 효과가 없었지만 B-25 비행대의 특공작전은 이처럼 전쟁 개전 후 심리적으로 계속 압박을 받고 있던 미국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은 전략적 효과를 발휘했다.
비행대의 성과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기폭제가 되었다.
반대로 그동안 승전만 거듭해온 일본인들은 백주대낮에 그들의 중심부가 폭격을 당하자 언제 어디서 또 다시 미군의 폭격기들이 날아오지 몰라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진주만에서 미국의 항공모함세력을 제거하지 못해 찜찜해 하던 일본군 수뇌부는 미국의 잔존세력을 없애기 위한 건곤일척의 싸움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 된 1942년 6월의 미드웨이 해전은 일본의 괴멸로 막을 내리고 이를 기점으로 결국 일본은 패망에 이르렀다. 돌아올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고도 무서운 용기를 내어 결연히 일어나 맞은바 임무를 다한 두리틀 비행대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며 이들을 안전하게 이함 시킨 미 해군의 용기가 이룬 전환점이었다.
일본의 조급함을 유발시켜 미국은 미드웨이의 승리를 이끌어 내었다.
비록 국민들과 정치인들의 요구에 따라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여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이룩한 어쩌면 너무나 무모한 작전이었고 전술적 효과도 극히 미미하였지만 두리틀 비행대의 용기 있는 도전은 전략적으로, 심리적으로 엄청난 대성공을 거둔 전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특공작전이라 할 것이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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