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옛 우리 이야기

조선 후기 자주국방의 산물---수뢰포

구름위 2013. 2. 2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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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에 개발된 수泯�(水雷砲)는 수중에 설치, 적 군함을 폭파시키는 무기다.

잠수부가 수중에 설치한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폭발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시한폭탄형 무기라고 할 수 있으며, 현대 무기체계와 비교한다면 기뢰(機雷)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수뢰포를 만들게 된 계기는 병인양요(丙寅洋擾) 때문이다.

1866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점령하고 한강 하류에 진입, 수도 한양을 위협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프랑스 함대는 조선군의 완강한 저항에 견디지 못하고 철수했지만 조선군도 프랑스의 신무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

병인양요에 참전했던 천총(千摠) 양헌수(1816~1888)는 ‘프랑스군이 사거리가 길고 화승을 사용하지 않는 뛰어난 성능의 총을 사용했다’는 경험담을 그의 일기인 ‘병인일기’에 남기고 있다.

조선 수군의 함선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강력한 프랑스의 군함들도 경악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서양 강대국들이 압박을 가해오는 현실 속에서도 조선의 실권자 대원군은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양의 장점인 과학기술을 도입, ‘서양 오랑캐’를 제압코자 했다.

대원군은 1866년부터 76년 사이에 신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물 중의 하나가 바로 수뢰포다.

서양 군함을 격파할 신무기로 수뢰포를 개발한 것이다. 그 점에서 수뢰포는 대원군 시대의 자주적 근대화 노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수뢰포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핵심기술과 장치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폭발하도록 만든 시한지연 장치이고, 둘째는 화약과 점화 장치로 물이 스며들지 않는 방수기술이며, 셋째는 폭파하게 하는 점화 장치였다.

시한지연 장치는 일정량 이상의 물이 수뢰포 내부에 차오르면 수압에 의해 작동되도록 만들어 해결했다. 기름과 횟가루 등을 이용, 방수도 해결할 수 있었다. 점화 장치는 쉽게 제작할 수 없었는데 중국산 뇌관인 동화모(銅火帽)를 수입해 장착했다. 핵심부품은 외국에 의존했던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867년 가을훈련대장 신관호가 수뢰포를 제작, 노량진에서 실험을 실시했을 때의 기록이 남아 있다.

“강 가운데에 떠 있던 조그만 배는 수뢰포를 맞고 10여 길을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가 부서지면서 떨어졌다. 많은 구경꾼들은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고 신기하게 여겼다.”

이렇게 실제 제작실험까지 거쳤지만 실전에서 사용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며 실물 유물도 없다. 하지만 수뢰포의 상세한 설계도는 ‘훈국신조군기도설’(訓國新造軍器圖說)이라는 책에 남아 있다.

이 책은 대원군 집권 당시 훈련도감이 제작한 신무기에 대한 설명을 담은 책으로 현재 육군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목판본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쓴 필사본으로 단 1권만 남아 있으며, 수뢰포뿐만 아니라 대원군 집권기에 제작된 각종 신무기 설계도를 담고 있는 귀중한 서적이다.

<출처:국방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