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증기 왕복 기관
증기 왕복 기관은 증기 기관차의 증기기관과 마찬가지로, 증기의 힘으로 피스톤을 왕복시키고 크랭크 축을 통해 회전 운동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증기기관 중 가장 최초로 실용화된 증기 왕복 기관은 20세기 초 증기 터빈으로 대체될 때까지 오랫동안, 폭넓게 쓰였습니다. 하지만 왕복 기관은 고속 운전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고속 운전을 위해서는 피스톤의 왕복 횟수를 늘여야 했는데, 무거운 피스톤이 매초 수번씩 왕복하면서 발생했다 사라지는 막대한 운동량은 기관에 큰 무리를 줄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회전수를 늘리는데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증기 왕복 기관을 사용한 전함들의 최고 속도는 18-9노트 정도에 불과했고, 그나마 실제 전투 상황에서 낼 수 있는 속도는 이에 크게 못미쳤습니다. 예를 들어 14노트의 전대 속력으로 8시간 이상 항해하면 기관 이상이 발생하는 함정이 나오곤 했고, 통상 4시간의 전력 운전 후에는 베어링 등의 조정, 교체를 위해 약 열흘간 도크에서의 수리가 필요했을 정도였으니 최대 속도는 단지 시험 항해때나 가능한 속도였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왕복기관을 전력 운전할 때의 기관실은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의 소음, 자욱한 증기와 바닥에 철벅대는 윤활유로 아수라장이었고, 배 전체가 진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결국 증기 터빈이 도입되자 왕복 기관은 군함에서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구조가 간단하고, 익숙하다는 등의 이유로 상선에서는 이후에도 사용이 계속되어, 2차대전 당시 리버티 쉽도 증기 왕복기관을 사용했습니다.
2. 증기 터빈
보일러에서 만든 고온고압의 증기를 노즐로 뿜어내어 터빈 날개을 돌리는 것이 증기 터빈입니다.(한마디로 바람개비를 연상하면 됩니다) 증기 터빈을 도입한 최초의 전함이 유명한 드레드노트로, 증기터빈은 동일 대구경 주포와 일제 사격술과 함께 노급 전함을 구성하는 삼각대의 세 다리였습니다.
직선 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꿔야 하는 증기 왕복 기관과는 달리, 증기 터빈은 처음부터 회전 운동이 발생하므로 진동이나 소음 문제도 없이 장시간 동안 고속 운전이 가능했습니다. 왕복기관 시대 당시 17-18노트 정도였던 전함의 최고 속도도 증기 터빈의 도입으로 단숨에 20노트 이상으로 증가했고, 도거뱅크 해전 등에서 보듯이, 최대 속도로 장시간 항해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습니다.(사실 석탄연료 시대에는 보일러의 재를 비워야 하기에 최대속도로 항해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었습니다만, 이는 왕복기관과는 비교할바가 안되는 사소한 문제였죠)
하지만 초기의 증기 터빈은 효율 면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증기 터빈은 수천-수만 회전에서 가장 효율적인데, 스크류는 분당 수백 회전만 넘어도 캐비테이션이 발생해 추진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결국 스크류에 맞춰 수백 회전 정도로 운전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 경우 터빈의 효율은 상당히 떨어졌습니다. 더구나 순항 속도에서는 더욱 회전수가 떨어지기 때문에 증기 왕복기관보다도 더 비효율적일 정도였습니다.(이런 이유로 광활한 태평양을 주전장으로 상정했던 미국은 증기 터빈의 도입이 상당히 지지부진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 것이 기어드 터빈(Geared Turbine)이었습니다. 터빈과 샤프트를 직접 연결(Direct drive)하지 않고, 그 사이에 감속 기어를 설치하는 단순한 방법이지만, 터빈은 훨씬 효율적인 회전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스크류는 캐비테이션을 발생시키지 않는 속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어드 터빈은 2차대전 당시까지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3. 터보 일렉트릭 기관
초기의 다이렉트 드라이브 방식의 증기 터빈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해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어드 터빈이 군함의 기관으로 사용되었지만, 유독 미국만은 터보 일렉트릭(Turbo electric)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증기 터빈을 사용해 발전기를 돌리고, 여기서 얻은 전기를 사용해 모터로 스크류를 돌리는 이 방식은, 이론적으로는 더 많은 전환 과정을 거치므로 비효율적일 수 밖에 없지만, 실제로는 터빈과 스크류, 모두 이상적인 회전 속도를 유지할 수 있으므로 오히려 더 효율적이었습니다. (특히 순항속도 영역에서)
더구나 터빈과 샤프트가 하나의 덩어리로 연결되어야 하는 통상적인 증기터빈과는 달리, 터빈-발전기와 모터-샤프트가 분리될 수 있으므로(전선으로만 연결해 주면 되니) 훨씬 철저하게, 자유자재로 수밀구역을 나눌 수 있었고, 전류 방향만 바꿔주면 전속 전진과 똑같은 출력으로 전속 후진이 가능하다는 등의 장점도 있었습니다.(터빈의 경우 역방향 운전이 힘들고, 출력도 떨어지며, 장시간 운전도 힘들었습니다)
타국에 비해 전기기술이 크게 발전해 있던 반면, 기어 제작에 필요한 정밀 가공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미국에서 실용화 된 터보 일렉트릭 기관은 1910년대-20년대 초까지 다수의 함정에서 폭넓게 사용되었습니다. 태평양을 건너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미해군에게 터보 일렉트릭 기관의 우수한 효율은 대단히 매력적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워싱턴 조약이 터보 일렉트릭 기관의 운명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워싱턴 조약에서 정한 '기준 배수량'은 연료를 뺀 중량이었기 때문입니다. 터보 일렉트릭 기관은 기어드 터빈보다 연료 효율은 좋았지만, 기관 자체가 무겁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1만해리를 항해할때 기어드 터빈은 기관 5000톤에 연료 8000톤이 필요하고, 터보 일렉트릭 기관은 기관 6000톤에 연료 5000톤이 필요하다고 가정하면, 만재 배수량 기준으로는 총중량 2000톤이 가벼운 터보 일렉트릭 기관이 이익이지만, 기준 배수량으로는 기관 중량 1000톤이 가벼운 기어드 터빈이 더 이익이었던 것입니다. 약간의 기관 중량 증가로 훨씬 많은 연료를 아낄 수 있는 터보 일렉트릭 기관이었지만, 기준 배수량이 엄격히 제한된 상황에서 불과 수십톤을 짜내기 위해 갖은 수가 동원되는 마당에, 터보 일렉트릭 기관은 도태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2차대전 당시, 호위 구축함의 양산 과정에서 감속 기어의 공급이 달리자 터보 일렉트릭 기관을 사용한 호위 구축함도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기어드 터빈과 터보 일렉트릭의 사용예 ::
기어드 터빈 기관을 사용한 전함 아이다호.
붉은 바탕선은 터빈, 파란 바탕선은 보일러를 나타낸다.
터보 일렉트릭 기관을 사용한 전함 콜로라도.
붉은 바탕선은 터빈, 파란 바탕선은 보일러, 자주색 바탕선은 모터를 나타낸다.
기관부만을 볼때, 터보 일렉트릭 기관 쪽이 훨씬 더 철저하게 수밀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각 파트의 배치도 훨씬 자유롭다.
4. 석탄에서 석유로.
증기 기관은 먼저 물을 끓여 고압의 증기로 만든 후 여기에서 에너지를 뽑아내는 방식입니다. 석탄과 석유의 문제는 물을 끓이는 에너지원이 무엇이냐의 문제였죠.
20세기 초까지도 가장 일반적인 에너지원은 석탄이었습니다. 가장 흔하고, 웬만한 국가에서도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이었지요. 또 석탄고는 충격과 파편을 흡수하는 방어구역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석탄에는 단점도 많았습니다. 먼저 석탄을 배에 싣는 것부터가 대단히 힘든 노동이었습니다. 기중기로 석탄을 갑판으로 실어 날라 석탄 투입구를 통해 석탄고로 집어넣는 일은 오로지 인력에만 의존해야 했습니다. 작업 시간도 긴데다 작업이 끝나면 작업원 뿐만 아니라 온 배에 석탄 가루가 뒤덮혔죠.(대양 여객선들의 선체가 검은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당연히 해상 보급은 그야말로 실험적 레벨에서나 실시되었습니다.
일단 석탄을 배에 실어도 어려움은 남았습니다. 보일러에 석탄을 넣는 것도 인력에 의존해야 했고, 석탄고의 위치도 보일러 주위로 제한되는데다 석탄을 부릴 작업 공간도 더 필요했습니다. 그나마 연소를 시켜도 무게당 에너지가 석유보다 작았습니다. 같은 중량을 태워도 출력이 덜 나오는 것이고, 같은 연료량이라도 항속거리가 짧다는 것이죠. 더구나 일정 시간마다 보일러에서 타고 남은 재를 치워야만 했기에 전속 운전을 오랫동안 계속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여기에 비하면 석유는 문자 그대로 꿈의 에너지원이었습니다. 파이프를 사용하므로 적재도 신속, 용이했고 해상 보급도 가능했습니다. 연료탱크에서 보일러까지 파이프로 연료 이송이 가능하므로 보일러 담당 인원도 크게 줄어들었고, 연료탱크의 설치 위치도 훨씬 자유로왔습니다. 석탄에 비해 점화가 쉬우므로 항상 보일러에 불을 넣어둘 필요도 없었고, 열량도 높아서 더 작은 보일러로도 더 높은 출력이 나오는데다, 같은 중량의 연료를 실어도 항속거리가 더 길었습니다. 또 재를 치울 필요도 없어서 최대 속도를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석유가 막 도입될 무렵에는 연료탱크가 방어상의 취약점으로 인식되어 가장 안전한 함 밑바닥에 연료탱크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실은 그 반대임이 드러남에 따라 나중에는 어뢰방어를 위해서 연료탱크가 적극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석유는 석탄만큼 흔하지 않다는게 문제였습니다.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었던 미국은 별 무리없이 석유로 전환이 가능했지만, 다른 주요 해군국들은 자국내에서는 석유가 거의 생산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영국은 해군 대신이던 처칠의 노력으로 중동에서 안정적인 석유 공급선을 확보한 후에야 석유 전용 보일러만을 장비한 고속전함 퀸 엘리자베스를 건조할 수 있었습니다.(소형 고속함의 경우에는 석유 보일러의 도입이 더 빨랐습니다) 하지만 후속함인 로얄 사브린 급에서는 다시 석탄 보일러로 돌아갔고, 실제 1917년, 지중해에서 독일이 적극적인 잠수함 작전을 전개하면서 석유 재고량이 거의 바닥나는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독일은 결국 안정적인 석유 공급원을 확보하지 못해서 석유 전용 보일러만을 장비한 전함은 건조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관계로 1차대전 당시까지는 석유 전용 전함은 전함은 많지 않았습니다. 단지 석탄 보일러에 일시적으로 화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석유 분사장치를 설치하는 정도의 개량은 폭넓게 실시되었고, 1차대전 후에는 석유 사용이 보편화 되면서 석탄 보일러를 사용하던 전함들도 개장을 통해 석유 보일러로 바꿔 나갔습니다.
::석탄 보급의 어려움::
오른쪽 위에 기중기로 석탄을 실어나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갑판 위에도 석탄이 쌓여 있습니다.
작업이 끝나면 온 사방에 석탄이 흩날리게 됩니다. 더럽혀진 작업원들의 옷과 갑판에 널려있는 석탄을 보시길.
작업을 끝낸 후의 한컷.
유명한 미국 함정사진 아카이브인 Navsource에서 구한 사진을 적당히 크롭했습니다.
5. 내연기관
가솔린 기관과 디젤 기관도 20세기 초에 등장했습니다. 증기 기관에 비해 가볍고 간단한 내연 기관들은 소형선이나 잠수함 등에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먼저 실용화 된 가솔린 기관은 디젤 기관보다 기관 중량이 가볍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휘발유로 인한 화재 문제 때문에 그다지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디젤 기관은 훨씬 장점이 많았습니다. 연료의 인화성 문제도 없는데다 연비도 매우 우수했기에 잠수함 등에서는 디젤 엔진이 빠르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대출력 디젤 기관의 신뢰성이 낮았기에 대형함에서는 디젤 엔진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유일한 예외가 디젤 엔진의 본가인 독일로, 도이칠란트 급 포켓전함과 H급, O급 전함 등에서 항속거리를 극대화하기 위해 디젤 엔진이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도이칠란트 급에서도 초기엔 디젤기관에서 문제가 속출했습니다)
도이칠란트는 디젤 기관을 사용해 20노트로 10000해리라는 장대한 항속거리를 얻을 수 있었지만 최대 출력이 제한되는 관계로 최대 속도가 26노트에 불과했고, O급은 33.5노트의 최대 속도를 얻기 위해 증기 터빈과 디젤 기관을 혼용해서 항속 거리와 속도를 겸비하고자 했습니다.(현대의 CODAG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6. 기관의 배치
증기 기관을 사용할 경우, 보일러와 기관을 어떤 식으로 배치해야 할지가 문제가 됩니다. 가장 최초로 사용된 방법은 보일러-기관 식의 배치였습니다. 기관이 뒤에 위치한 이유는 샤프트의 길이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방식에서는 단 한발의 포탄이나 어뢰 만으로도 보일러 전체나 기관 전체가 파괴/침수되어서 추진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위험을 줄이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이 보일러-기관-보일러-기관 식의 쉬프트 배치입니다. 길이 방향으로 배치가 되므로 어느 한두구역이 파괴/침수가 되더라도 절반의 추진력은 남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샤프트가 길어지고, 연로나 연통 배치가 까다롭고, 중량과 공간 면에서의 손해는 감수해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한단계 더 나아간 것이 샤프트 하나당 기관과 보일러를 한 덩어리로 묶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의 경우 샤프트 길이나 연로 문제는 가장 복잡해지지만, 생존성도 가장 우수하기에 대형함에서는 이런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보일러와 기관(터빈)을 각각 묶어서 배치한 중순양함 빈센스
보일러와 터빈을 쉬프트 배치한 경순양함 샌디에고. 선수쪽 보일러의 연로가 크게 꺾여있다.
보일러와 터빈을 쉬프트 배치한 대형 순양함(CB) 알라스카.
기관과 보일러를 하나로 묶어서 배치한 전함 사우스다코타
[참고자료]
Battleship Design and Development 1905-1945, Norman Friedman, Mayflower Books
Battleships: United States Battleships, 1935-1992, William H. Garzke, Robert O. Dulin, Naval Institute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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