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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술병에 술만 담지 않고 의미도...

구름위 2013. 1. 3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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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은 동서를 막론하고 신성시되었기 때문에 제사 등 의식에 사용되었다. 술잔의 원시적인 모양이 짐승의 뿔모양이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술, 술병, 술잔이 주술적인 뜻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건배!' 할 때의 '쨍-'하는 소리도 실은 소리로써 악귀를 물리치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술병이란 신성한 의식에 사용하는 술을 담는 그릇이니 예사롭게 만들지 않았을 것은 뻔한 이치이다. 주술은 의식을 수반한다. 술병이 의식과 관계있다면 출생, 결혼, 장례 등 통과의례의 의미와 관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술병의 가짓수도 통과의례의 가짓수만큼 많을 것이다.


병의 모양으로는 죽순 모양, 대나무 모양, 석류 모양, 참외 모양, 심지어는 원숭이 모양도 있다. 병의 표면에 무늬를 넣은 것에는 국화 모양이 있다.

술병이란 술을 담는 부분과 술을 따르는 부분, 병을 세우는 부분과 병을 잡거나 사용하기에 편리하게 한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도 여유가 있다면 병을 아름답게 장식하면 모든 조건을 다 갖추게 된다.


'담는 부분'과 '따르는 부분'을 중시하는 형태는 실질을 숭상하는 시대에, 손잡이와 무늬를 강조하여 만드는 형태는 대개 화려하나 퇴폐 문화가 도사리고 있는 시대에 유행하였다. 이렇듯 술병에도 그 사회의 명암이 나타난다.

고려청자의 술병은 그 기형이 다양한 것으로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술병으로서의 실용성과 장식성을 모두 갖추었다.


기하형이 전혀 없이 모두 자연물의 모양을 본 따 만들었다는 점이 특이하고, 술병 모양을 이렇게 기기묘묘(奇奇妙妙) 다양하게 만든 것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어지간히 자연주의자들이었거나 화려한 것을 좋아했나 보다고만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렇게 원숭이까지 만들 양이면 못만들 모양이 없을 것 같은데 사실은 이렇게 몇 가지에 한정되어 있는 점이 이상하다.

죽순(竹筍)은 전국 시대 효자 맹종(孟宗)의 상징이다. 맹종은 병든 어머니가 한겨울에 죽순요리가 먹고 싶다는 바람에 대나무 밭에서 며칠을 울었더니 눈물이 떨어진 곳에서 죽순이 돋아 나와 어머니께 드릴 수 있었다는 유명한 그 효자이다.

 

죽순은 독음이 축손(祝孫)과 통하므로 손자 본 것을 축하한다(爲祝見孫)는 말이 된다. '위축견손'과 '효자맹종'이 두 가지 뜻을 합하면 '효행이 높은 자식을 두라는 의리'가 된다. 장손을 장가 보낼 때 이런 의미가 더 클 것 같다.

결혼식장에서 사용하는 술병이 죽순형이었다면, 석류형도 같은 목적에 사용하는 술병이었을 것이다. 석류는 주머니 속에 예쁜 씨앗이 가득 들어 있으므로 자손이 많음(多子)을 의미한다. 자식을 많이 두는 일은 농경 사회에서 가문을 번창케 하는 일이다. 그래서 '다남자'가 오복의 하나로까지 여겨졌으며 오복(五福 : 壽, 富, 康寧, 悠好德, 考終命 혹은 壽, 富, 貴, 多男, 悠好德) 중에 결혼의 축하 의미로 가장 적당한 말이다.

죽순이 아니고 대나무 모양으로 만든 병은 회갑 잔칫상의 술병으로 어울린다. '축(祝)'을 뜻하는 대나무(竹)가 60년만에 꽃이 핀다고 알았던 시절에 회갑 축하로는 제격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따져 보면 '참외형 술병'도 장수를 축원하는 의미가 있다. 참외를 한자어로는 지과(地瓜 : 땅오이)라 한다. 이 지과가 '천장지구(天長地久)'의 지구(地久)를 뜻하고 덩굴에 마디마디 열매가 달리는 생태를 통하여 '연속적으로 장구하게'의 의미를 나타낸다. 역시 장수를 비는 뜻의 술병 모양이다. 그러므로 어렵지 않게 회갑연에 쓰는 술병 디자인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원숭이는 무엇인가?


원숭이라는 말은 원성(猿猩)이에서 온 말이다. 긴팔 원숭이 종류를 후(侯)라고 부른다. 이 후라는 원숭이의 '후'자가 제후(諸侯)의 '후(侯)'와 음이 통하므로 제후에 오르라는 뜻이 된다. 필시 과거에 급제하여 여는 잔치인 '춘연(春宴)'에 사용하는 술병이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과거가 3월에 있었으므로, 이때 피는 꽃인 살구꽃이 3월의 상징이자 과거급제를 뜻하게 되었다. 마침 3월 삼짇날에는 강남 갔던 제비가 날아드는데 제비 '연(燕)'자가 잔치 '연(宴)'자와 독음이 같으므로 과거 급제의 잔치(즉, 춘연(春宴)을 뜻함)를 의미하게 되었다.

과거급제는 일신에는 물론 가문에도 매우 영광스런 일이다. 그러므로 등과를 의미하는 무늬로 버드나무 아래 한 쌍의 오리가 노니 는 장면을 상감한 청자가 있다.

 

오리 '압(鴨)'자를 파자하면 갑(甲)이 나오므로, 오리 두 마리는 '장원을 두 번하다(이갑(二甲))'는 뜻하고, 버드나무의 '유(柳)'자가 다남자를 뜻하는 석류(榴)와 음이 같으므로, 자식을 많이 두고 그 자식들이 장원급제하기를 비는 뜻이 된다.

이렇듯 모양이나 문양이 다양하던 술병이 조선시대가 되면 술병에 손잡이가 달린 것을 찾기 어려워지고 이름 그대로 병이 된다.


술병의 모양도 복잡한 기형보다는 병 표면에 그림을 그려 넣는 정도로 만족하는 것 같다. 이 시대를 리드해 간 선비들이 성리학의 영향으로 간결명료함을 숭상하는 가치를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술병에는 주로 한 떨기 국화를 그려 넣는다.

술병에 그려진 국화는 여느 사군자의 국화와는 달리 '남양국수(南陽菊水)의 고사'에서 따온 국화이다. 남양국수란 강이름으로서 중국 하남성(河南省)남부 도시인 남양(南陽)의 내향현(內鄕懸)에 있는 백하(白河)라는 강의 지류 이름이다. 본시의 이름은 국수(鞠水)였다.

 

이 강기슭에 자라는 국화에 맺힌 이슬이 강물에 떨어져 물맛이 특히 달고, 이를 마시고 사는 고로 이 지방 사람들이 장수(長壽)한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서 유래한 '국수'란 '술'을 미화하는 말이 되었다.

술병에 한 떨기 국화를 그려 넣고 주둥이에서 떨어지는 술을 남양의 국수에 비유한 선비들의 운치가 새삼 정겹게 느껴진다.

 

 

<출처>

https://www.sportsnine.com/life01/health_read.php?life_idx=4&main_cate=9&list_idx=238

출처 : 와인레이디의 와인향기
글쓴이 : 와인레이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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