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냐 정복자들을 생각해보라면, 우리는 코르테스와 피사로를 떠올릴것이다. 16~17세기 수많은 에스파냐 정복 및 탐험가들이 있었지만, 이 둘이 행한 것은 다른 정복자들이 행한 것보다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
만, 오늘날 코르테스와 피사로는 찬란하고 위대한 문명을 몰락시킨 악당으로 인식된다.
여기서 소개될 한 에스파냐 정복자는 코르테스나 피사로만큼 세계에 끼친 영향이 클뿐만아니라, 그들과 달리 영웅의 가면을 쓴 동시에 악인의 미소를 띄고 있다. 그의 이름은 에르난도 데 소토(Hernando de Soto). 데 소토가
행한 장대하고 위대한 원정길을 아는 분도 있을 것이고 모르는 분도 있을것이다. 데 소토는 4년 4개월의 북아메리카 원정동안 6,440km에 달하는 장대한 거리를 돌아다녔으며, 그가 횡단한 거리는 오늘날 미국 10개 주에 해당
된다.
데 소토는 이토록 장대하고 위대한 원정길을 행한 이유를 물으라면, 단 한가지 단어를 말하면 된다. 바로 황금이다.
다른 에스파냐 정복자들과 같이 데 소토도 오직 황금 제국을 찾기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는 되돌아갈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과하고 끝까지 황금 제국을 찾기에 고집을 부렸다.
데 소토는 북아메리카 원정길에 나서기 전, 권망높은 산티아고 기사단인 동시에 쿠바 총독으로써,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과거 잉카원정때 피사로(Francisco Pizarro)의 기병대장으로써 쿠스코를 함락시키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기도 하다. 데 소토는 잉카제국의 보물을 손에 넣음으로써, 또한 쿠바총독으로써 에스파냐 아니, 전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북아메리카 원정을 떠났던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욕심에는 한계가 없다듯이 데 소토의 욕심은 갈수록 부풀려 졌을 것이다(데 소토는 8년간 북아메리카에서 조난생활을 하다 구조된 카베사 데 바카에게 조언을 구
했다 한다). 1539년 5월 18일, 데 소토는 600명의 군대, 선원 130명, 240필의 군마라는 에스파냐 정복 역사상 엄청난 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플로리다에 상륙한다.
후안 오르티스(Juan Ortiz)라는 에스파냐 조난자출신의 통역사를 구한 데 소토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인 티무쿠아 족, 오시타 족, 오케일 족과 수많은 결전을 벌이며 -어디엔가 숨어있을- 황금 제국을 향해 나아갔다.
이미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에스파냐 인들이 천하의 썩을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1528년 판필로 데 나르바에스(Panfilo de Narvaez)의 원정대와 교전) 원주민들과 혈투를 펼치며, 남은 원주민 마을을 몰살시키는 데 소
토의 악행을 익히들어 알고 있었기에 원주민들은 -물론 데 소토에게 협조하는 부족도 있었지만-데 소토에게 번번히 저항했다.
데 소토 일행은 당시 북아메리카 남부의 최대 제국을 형성했던 쿠사에 이르렀다. 쿠사의 추장은 데 소토 일행에게 휴식처를 제공했지만, 이미 원주민들에게 배신을 당한 일이 많았던 데 소토는 그를 믿지 못했다. 데 소토는 부
락을 떠날때 추장과 그의 누이를 볼모로 잡아갔다. 그는 추장은 풀어줬지만, 누이를 풀어주지 않았다. 쿠사의 부족장들은 이 일을 알고 격노했다. 그들은 주변의 여러 원주민 부족들에게 서신을 보내 데 소토 일행은 천하의 악
당이라 소개하면서, 그들을 믿지 말라고 하였다.
데 소토 일행은 아무런 사실도 모른채, 남쪽으로 내려가 오늘날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지역에 거주했던 아타하치 부족을 만나게 되었다.아타하치의 추장 타스칼루사는 키가 2m에 가까운 장신에 용감하면서 두뇌회전에 빠른 인
물이었다. 그의 전사들은 현결같이 그를 따르면서 다른 원주민들에게 용맹하다고 소문이 퍼다했다.
타스칼루사는 처음부터 데 소토일행을 전부 몰살시키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는 익히 들어 에스파냐인들의 무기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었다. 에스파냐 무기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정면공격보다는 뒤에서 습격 해야 된다
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데 소토는 타스칼루사 아래에 있는 심복하나를 붙잡아 그의 앞에 보였다. 그는 타스칼루사에게 협조할껀지 죽음을 택할껀지 선택하라고 말했다. 타스칼루사는 데 소토 일행을 당연히 환영한다고 하면서, 아타하치 원주민들의
요새인 '모빌라'에서 편히 쉬라 했다. 에스파냐인들은 엄청난 강행군으로 많이들 지쳐있었다. 더군다나 타스칼루사는 에스파냐인들에게 '당신들을 기다리는 어여쁜 여자들이 모빌라에 잔뜩있다"고 하였다. 데 소토가 이끄는
에스파냐인들은 드디어 지옥끝에 천국을 만난듯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타스칼루사가 만든 지옥임을 데 소토 일행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아타하치 부족 데 소토가 이끄는 에스파냐 원정대
사령관: 타스칼루사 사령관: 에르난도 데 소토
병력
모빌라 주민: 1만 1천명 에스파냐인: 550명
군마: 240기
1. 타스칼루사는 데 소토에게 이곳 '모빌라'에 오랫동안 머물러 달라 청했다. 데 소토가 이를 거절하자 타스칼루사는 잠시 볼일을 보고 오겠다며 사라진다. 오랫동안 기다려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데 소토는 타스칼루사가
뭔가 일을 꾸미고 있음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2. 데 소토는 몰래 부하를 시켜 모빌라 요새를 염탐하라 했다. 부하를 통해 수천명의 아타하치 부족 전사들이 데 소토 일행의 목을 따기위해 대기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 그 말을 들은 에스파냐인들은 황급히 짐을 내
팽게 친채 도망갔고, 데 소토 또한 말을 타고 황급히 빠져 나갔다. 아타하치 전사들은 이때를 기다려 공격을 강행했다. 이 공격으로 5명의 에스파냐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 병사들도 부상을 입었다. 데 소토의 원주민 출
신 짐꾼들은 에스파냐 무기와 보급품이 담긴 짐을 꾸리고는 아타하치 부족의 요새 모빌라로 도망쳐 버린다.
3. 자신이 속았음을 알게된, 데 소토는 타스칼루사를 잡아 죽이겠면서 화를 냈다. 모빌라 요새에는 타스칼루사가 이끄는 수많은 원주민 전사들이 있었다. 데 소토는 모빌라요새에 대포공격을 강행함에 동시에, 불을 지르라 명한다.
4. 에스파냐인들이 멀리서 포격 공격을 가하자, 타스칼루사는 성문을 열고 다량의 결사대를 출전시켰다. 하지만, 이것은 데 소토의 계략이었다. 원주민 전사들이 다량으로 요새 밖에 나오자, 순간 매복해 있던 데 소토의 기병들
과 병사들이 그들을 닥치는 대로 살육했다.이 사건 이후로 아타하치 원주민들은 모빌라 요새에서 더 이상 나가지 않고 방어하는데만 열중했다.
5. 데 소토는 총공격을 강행했다. 아타하치 원주민들은 악착같이 저항했지만, 무기의 질면에서 너무나도 차이가 많이 났다. 에스파냐인들은 성벽에 올라가 불을 지르고, 닥치는 대로 저항하는 원주민 전사들을 학살했다.
6. 비록 에스파냐인들이 요새위로 올라가는 데 성공했으나, 원주민들은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다. 전투는 이대로 7시간이나 더 지속되었다 한다. 아타하치 전사들이 쓰러지자 여자와 아이들까지 에스파냐인들에게 저항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저항은 패배를 약간 늦추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했다.
7. 데 소토 일행은 모빌라 요새를 완전히 불태웠고, 주민들을 전원 학살했다. 이로써 아타하치 문명은 몰살되었고 데 소토의 피해도 어느 정도 컸다. 이 전투에서 데 소토가 얻은 소득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데 소토 일행의 피해
격렬한 전투중 데 소토는 왼쪽 엉덩이에 화살을 맞았다. 그는 그후(後) 원정동안 엉덩이에 난 상처때문에 고생했다 한다.
전사자: 22명
부상자: 250명
아타하치 원주민의 피해
모빌라 주민 전원 몰살
전투의 의의: 모빌라 전투는 에스파냐 정복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였다고 한다. 모빌라 전투 이후 데 소토의 장대하면서 위대한 원정을 계속 되었다. 그의 부하들은 이러한 피해가 계속되면서 서둘러 쿠바로 돌아가자고 부탁
했지만, 어딘가 -전에 정복한- 잉카제국 같은 황금제국이 숨어있을거라고 확신이 꼿힌 데 소토의 머리는 계속되는 원정을 요구할 뿐이었다.
모빌라 전투로 인해 비록, 아즈텍이나 잉카처럼 찬란한 문명은 아니었지만 또다른 북아메리카에서 번성했던 문명중 하나인 아타하치 문명이 완전히 몰살되었다. 코르테스나 피사로와 달리 데 소토는 한 문명을 몰살시켰음에
불구하고 그가 얻은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피해만 얻었을 뿐이었다.
데 소토는 미시시피강의 존재를 최초로 알리고, 북아메리카 원주민들과 계속되는 전투를 치룬다. 그는 강인한 체력을 지녔지만, 원주민들과의 여러 전투로 인해 그의 몸은 악화되었고 결국엔 열병으로 이어진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미시시피 강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데 소토가 열병으로 죽자 부하들은 처음에는 평탄한 지역에 그의 시신을 묻었지만 원주민들이 파헤칠것을 염려해 미시시피강에 수장시킨다.
데 소토의 북아메리카 원정은 장대하면서 위대했지만, 그의 속면은 원주민과의 계속된 전투외 문명의 몰락이라는 추악한 면이 숨어있다. 그의 북아메리카 원정으로 인해 유럽인들의 시각은 한층 더 발달되고, 이후 영국이나
프랑스등 수많은 유럽국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세우기 시작한다.
에스파냐 정복자 에르난도 데 소토의 북아메리카 원정은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그 뿌리가 박혀있기도 하다. 그가 횡단한 미국 10개 주에서 그의 이름을 딴 지명외 그를 기리는 축제가 플로리다에 열리기도 하고, 심지어 그의
이름을 딴 학교도 있다.데 소토가 북아메리카 원정을 하면서 수많은 원주민들을 학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300년 뒤 북아메리카에 건너온 앵글로 색슨인들도 수많은 원주민들을 학살했다.
데 소토의 북아메리카 원정로
데 소토는 피사로의 잉카침략에 참가했고, 후에 북아메리카 원정에 나선 남,북 아메리카 공동으로 활약한 정복자이다.현재 에스파냐 정복자 데 소토는 미국 남부에서 영웅으로 간주되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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