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발단
(1) 미국 공화당(Republican Party)의 출범과 대통령 링컨(Lincoln, Abraham / 1809 ~ 1865)
종이와 펜이 없어서 삽에다가 숯으로 글씨를 썼고 학교라고는 문앞에도 가보지 못했으며 아홉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열한 살 때 계모(繼母)가 들어와 살림을 맡았고 1824년 열 다섯 살 나이에 정치집회에서 연설했고 1834년 스물 다섯 살에 일리노이 하원의원, 2년 뒤인 36년 변호사 자격 취득, 47년 연방하원의원, 56년 공화당 입당, 60년 공화당후보로 대통령 당선, 61년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남북전쟁 발발, 64년 재선(再選)에 성공, 65년 극장에서 연극관람 중 배우가 쏜 흉탄에 쓰러짐,......
이상은 애브라함 링컨(Lincoln, Abraham / 1809 ~ 1865)의 간단한 약력이다. 여기에 몇가지를 더 보태면 태어난 시기는 1809년 2월, 태어난 곳은 캔터키의 호젠빌에서 남쪽으로 십리쯤 떨어진 외딴 오두막, 태어나 2년 후 이웃 마을 노브크리크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성장, 정치적 기반을 닦은 곳은 일리노이 주의 스프링필드, 그의 아버지 토마스 링컨은 1637년 잉글랜드에서 매사추세츠로 삶을 찾아 어렵게 대서양을 건넌 가난한 도제(徒弟)의 후손이었고 생모(生母) 낸시 행크스는 야윈 가슴에 허리가 굽은 꼬부랑 할머니 같았으나 신앙심이 매우 깊었으며, 새 어머니 새러 부시 존스턴 링컨은 딸 둘과 아들 하나가 딸린 과부였지만 애브라함을 친 자식 이상으로 사랑하여 그의 성장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과 아내 메리 토드는 허영심과 낭비벽이 심한 사치스런 여인이고 명문가의 출신이라는 것,.... 등등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대통령이 되기 까지 그에 관한 일화는 너무도 많다.
다만 당시의 미국 사회는 팽창일로에 있었고 서부개척은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 링컨 역시 국토의 확장과정에서 일리노이 주의 스프링필드에서 꾀 똑똑한 동료와 동업으로 시작한 변호사로서의 일이 순조롭게 잘 풀려 큰 돈을 모을 수 있었고 이것이 그의 정치적 기반이 되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신생국가 미국이라고는 하지만 이름없는 벽촌의 한 젊은이가 대통령이 되기까지에는 시대적인 격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링컨이 세상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858년 상원의원이라는 매력적인 자리를 두고 이른 바 캔자스-네브레스카 법안을 기초한 더글러스(Douglas, Stephen Arnold / 1813 ~ 1861)와의 일곱차례의 선거 논쟁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더글러스는 어떤 인물이고 캔자스-네브레스카 법안이란 무엇인가? 더글러스가 태어난 곳은 버지니아주의 브랜든이고 활동한 곳은 일리노이주의 잭슨빌이다. 버지니아라는 노예주에서 태어나 일리노이라는 자유주에서 활동한, 그래서 그에게는 "남부적 북부 사람"이라는 묘한 뉘앙스가 따르고 있었고 이런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심을 가지게 되었던 그런 인물이다.
그래서 그가 제안 한 것이 이른 바 캔자스-네브레스카 법안으로서 그 내용은 앞글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부연하면 대략 이런 것이다. 이때까지 준주(準州)로 있던 캔자스와 네브레스카를 장차 연방에 편입시킬 때 노예제를 두느냐 않느냐는 이 두곳의 주민들 자신이 투표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 1820년 미주리 타협에서 북위 36도 30분 이북에는 노예제를 두지 않는다는 약속과 달라지게 된다. 당연히 북부로서는 맹렬하게 반대를 했지만 격론끝에 1854년 3월 이 법안은 가결되었다.
같은 해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북부 사람들이 중심의 되어 만든 것이 미국 공화당(Republican Party)이다. 당시까지는 미국의 정당은 민주당과 휘그당이 있었다. 민주당은 그 뿌리가 1792년 토마스 제퍼슨과 그 추종자들이 만든 것이고 휘그당은 1834년 이런 민주당에 대응하기 위해서 헨리 클레이 등이 만든 것이다.
노예제에 대해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던 휘그당은 이때 해산되었고 노예폐지론자들을 중심으로 휘그당의 일파와 반남부적 민주당의 인사들이 가세하여 공화당이 조직되고 북부와 서부의 자본가, 농민, 노동자 등을 포함하여 폭 넓은 지지층을 확보하게 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영향으로 피의 캔자스(Bleeding Kansas)라고 불리는 유혈사태가 5년간(1854 ~ 59)이나 지속되었는데 특히 당시의 캔자스 주도(州都) 로렌스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링컨은 원래 휘그당에 소속되어 있다가 1856년 수 많은 휘그당원들과 함께 공화당에 입당했고, 이를 계기로 링컨이 공식적으로 노예제를 반대는 했지만 그 심각한 부작용을 염려해서 폐지까지는 주장하지 않았고 다만 극단적인 폐지론자들과 흑인 공포증에 사로잡힌 백인들 사이의 대립 감정을 조정하는 방책의 하나로 노예제의 확대만은 반대했다.
1858년 일리노이주의 상원의원자리를 두고 더글러스와의 선거 논쟁에서 링컨은 이렇게 주장했다. "조각난 집은 서있지 못한다. 미국이 절반은 노예주, 절반은 자유주란 상태로 영구히 갈 수는 없다. 나는 미국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미국이 둘로 갈라져 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링컨이 주장한 것은 노예제의 찬반보다는 연방국가 미국이 깨어지는 것을 막아야하는 국가 지상주의의 입장에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간에 양보가 타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지만 이 선거에서 링컨을 패배했다. 그러나 당시 정계의 거물 더글러스와의 한판 승부와 뛰어난 그의 웅변술은 일약 그를 스타덤에 올려 놓았다.
그로부터 1년 뒤가 되는 1859년 10월, 극단적인 노예폐지론자인 존 브라운(John Brown / 1800.~1859)라는 사람이 그 일당을 거느리고 하퍼스페리(Harpers Ferry)에 있는 연방 무기고를 급습, 순식간에 무기고를 장악하고 그 지역의 지도급 인사 60여 명을 인질로 잡는 어처구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존 브라운은 평소에도 아들과 사위들을 거느리고 다니면서 노예제를 찬성하는 사람이면 살생도 서슴치 않았는데 하퍼스페리의 무기고를 습격해서 약탈한 무기로 남부흑인들을 무장시켜 벌떼처럼(蜂起)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이런 무모한 행동을 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붙잡혀서 교수형을 받았지만 그 영향은 많은 미국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러다간 정말로 미국이 두조각 세조각으로 나뉘지는게 아닐까하고 북부건 남부건 서부건 많은 사람들이 걱정에 휩쌓였을 때, 1860년 공화당에서는 링컨을 대통령후보로 내세웠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미국이 독립이래 주도권을 장악하고 미국사회를 움직인 것은 미국민주당이다. 그런데 이때 민주당은 북부민주당과 남부민주당으로 갈라져 각각의 후보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야단 법석을 떨었다. 이런 덕분에 결과는 링컨을 내세운 공화당의 승리,....
그 순간 링컨이 그렇게도 걱정했던 남부의 이탈이 현실로 나타났다.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시작으로 7개 주가 연방에서 탈퇴를 선언하고 이듬해인 1861년 2월에는 앨라배마(Alabama)의 주도(州都) 몽고메리에서 아메리카연합(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을 결성하고 데이비스 제퍼슨(Davis, Jefferson / 1808 ~ 1889)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합중국이라는 연방은 주와 주의 결합에 불과하고 따라서 각주는 형편에 따라 연방에서 탈퇴하고 독립된 국가를 얼마든지 세울 수 있다는 것이 아메리카연합을 세운 남부인들의 이론적인 주장이다. 이에 반해서 북부에서는 헌법 전문(前文)에 "우리들 합중국 인민"으로 되어있고 그 헌법은 인민과 인민사이의 계약일 뿐 주와 주 사이의 계약은 아니기 때문에 연방에서 이탈할 수 없다는 주장을 세웠다.
남부인들의 생각대로 라면 연방에서 탈퇴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인 동시에 권한이고 북부에서는 연방탈퇴는 곧 반란이다. 법리적인 논쟁이야 어떻든 최종결정은 힘이 좌우한다. 1861년 4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턴항에 자리잡고 있던 섬터요새(Fort Sumter)의 포격을 신호로 남북전쟁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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