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한국전

백두산 호랑이.....

구름위 2013. 1. 1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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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 호랑이 새낍니다
                        ---- 괴물 김 종원 국장 일화



6.25 동란은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을 배출했다. 영웅도 있었고 악당도 있었고 기인도 있었고 매력남도 있었고 엽기남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 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서 현재의
경찰청장급인
전 내무부 치안국장 김 종원 씨가 있었다.

그는 원래 육군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하였다.
일본군 지원병 출신인 그는 해방이 되자 육사 1기로 입교하여 단기 교육을 받고 임관했었다.

부지런함과 책임감으로 순조로운 승진을 거듭해서
6.25 사변 중에는 연대를 지휘했고 헌병 사령부 부사령관을 역임했다.

성격이 호방했지만 부하들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던
그의 엄격함은 백두산 호랑이라는 별명을 갖게 만들었다.


                                          김 종원


그의 사진을 보면 부리부리한 눈매며 전체적인 생김새가
호상이라고 할만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의 과격한 성격은 전쟁이라는 난세의
극한 상황에서
가끔 잔인성으로 돌변했다. 부하들에 대한 즉결처분과 과도한 토벌로 양민들을 많이 희생시켰고 그 뒤에도 여러 사건을 일으켜 구설수에 시달렸다.

그가 경남지구 계엄 민사부장이었을 때 거창 양민 사건이 터지고
여론이 들고 일어나자
국회에서 현지로 조사단을 파견한 일이 생겼다.

김 종원은 이를 방해하고자 공비로 가장한 부하들을 거창의 피해지역인
신원면 가는 길에
매복시켰다가 조사단 차의 행렬에 총격을 가하게 하였다.

결국 이 치졸한 음모는 세상에 알려졌고 김 종원은 군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김 종원을 무척 충직한 사람으로 보고 있었던
이 승만 대통령은 그를 경찰로 보냈고, 지전사[지리산 지구 전투 사령부] 사령관을 시작으로 전북 도경 국장 등의 여러 요직을 거쳐 전국 치안의 총수인 치안국장까지 되었다.

하지만 경찰로 변신했음에도 그 괄괄한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폭언과 폭행을 마구 휘두르는
기행을 버리지 않았었는데 지리산 일대 군경 합동 공비 토벌 작전시 그는 군 연대장이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지휘봉으로 두들겨 패는 비상식적인 짓을 했다.

국군 연대장이 육사 후배가 되니 우습게보고 그렇게 했겠지만
도가 넘는 월권행위였다.

그의 폭행을 맛 본 사람 중에 연대장 같은 고위 간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국군 사병들도 있었다.

김 국장은 말타기를 좋아해서 치안국장이 되어서도
말을 타고
출근하는 일이 많았었는데 승마 출근 중에 그에게 경례를 하지 않은 군인을 보면 여지없이 채찍으로 후려쳤다.

군인이 경찰에게 경례하라는 규정이 없었는데도
재수가 없었던 군인은 날벼락같은 엉뚱한 채찍질로 휴가 기분을 망쳐야 했다.

원체 호랑이 같이 난폭하게 구니 부하들은
그를 진짜 호랑이 보다 더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치안 국장 시절의 이야기다.
그의 부하 중에 통신과장인 모씨가 있었는데 성격은 좋았지만 무척 겁이 많았었다. 특히 그는 백두산 호랑이를 두려워해서 결재를 받으러 갈 때는 전쟁에 나서는 병사처럼 비장한 모습으로 임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힘든 결재를 받으러
간 일이 있었다. 치안 국장의 방은 이층에 있었는데 그가 결재를 받으러 부속실로 올라간 순간에 난데없이 김 종원의 방에서 폭언이 터져 나왔다. 전화로 부하에게 해대는 김 종원 특유의 거친 욕지거리였다.

자기 보고 한 폭언이 아니었는데도 공포에 질린
통신과장은 결재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바람처럼 날아 1층으로 도피했다. 그 모습은 맹수에게 쫓기는 토끼의 모습보다도 더 날렵해서 치안국의 오랜 화제가 되었다.

코미디 같은 일화도 있었다.

한번은 전북 도경의 간부 모씨가 김 종원에게
자기 아들이 경찰에 입문하여 서울에 배치를 받았으니 잘 지도해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김 종원을 모시던 사람이었다.

그 간부는 편지에서 옛 선비들 예절 식으로
자기 아들을 낮추어 돈아[豚兒]라고 썼다

* 돈아[豚兒]- 돼지 새끼라는 뜻으로 자기 자식을 한층 낮추어 표현한 것이다. 가아(家兒)라는 말도 쓰지만 돈아가 더 겸손한 표현이다.

무식했다는 평을 받던 김 종원은 이 돈아를 문자 그대로
직설적으로 해석했다. 진짜 돼지 새끼로 안 것이다. 김 종원은 즉시 비서를 불렀다.

“야! 전주에서 새끼 돼지 한 마리 올라온 일 있냐?”

비서가 알아 보니 돼지 같은 것은 보내 온 일이 없었다.
그는 보고했다.

“아무 것도 안 올라왔는데요.”

김 종원은 버럭 화를 냈다.

“어떤 놈이 가로챘군 ! 이 편지를 봐!”

잘 배운 비서가 전주에서 보내온 편지를 보니
위의 '돈아'라는
어려운 한자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령좋은 비서는 그 의미에 대해서 입을 열지 못했다. 진실을 말하면 호랑이의 무식함을 면전에서 폭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중에 적당한 말을 꾸며대서 김 종원의 무식을
무마 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김 종원은 회의 중에 국민들이 인플레 때문에 큰 고통을
받고 있다는 보고를 받자 즉시 특명을 내렸다.

" 그 인플레라는 놈을 체포해와라!"

그러나 항상 토픽을 몰고 다니는 김 종원 일화의 압권은 저 먼 전북 남원의 운봉 지서에서 터졌다.

당시 운봉은 공비의 창궐지역이라서 부족한 인원을
시골 청년들로 구성된 의용 경찰이라는, 거의 자원 봉사자 개념의 지원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다.

* 당시 지리산 주변 지서들은 지금과 달리 전투 경찰들과
의용 경찰들을 포함해서 수 백 명이 넘는 경찰이 지키는 군사요새 같은 곳이었다.

의용 경찰들은 그저 밥이나 먹여주고 잠만 재워주는 열악한
조건을 마다하지 않고
모든 궂은 일을 해야 했다.

어느 날 김 종원 국장이 순시차 나타나자 지서는 아연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 날 두 명의 의용 경찰들이 지서 내 어느 외딴 건물 뒤에서 햇빛을 쪼이며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긴장한 서내 분위기를 눈치 챈 한 녀석이 다른 녀석에게 물었다.

“누가 온디야?”

다른 녀석이 아는체하며 대답했다.

“백두산 호랑이가 온디야!”

그 순간 모퉁이를 돌며 김 종원이가 나타났다.
그는 자기 별명을 말하는 그 소리를 들었다.

김 종원의 호랑이 얼굴에서 이글거리는 눈빛이 두 놈을 쏘아봤다.

두 명은 까무라치게 놀랐다.
호랑이 앞에서는 넋을 잃어버리는 인간의 본성대로 넋을 놓기는 했지만 훈련 받은 본능대로 차렷 자세를 취했다.

김 종원은 먹이를 놓고 으르렁거리는
호랑이처럼 두 녀석에게
슬슬 시비를 걸었다.

“내가 누구냐?”

두 녀석 중 한 명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차려야한다는
옛 말씀은 되뇌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대답했다.

“넷! 백두산 호랭이십니다!”

재미있게 생각한 호랑이는 다시 물었다.

“그러면 넌 무엇이냐?”

그 의용경찰 녀석은 충무공이 말씀하신대로
사즉생[死卽生]
의 각오로 대답했다.

“넷! 백두산 호랭이 새끼입니다!”

순박한 시골 청년의 머리에서 나왔을까 의심스러운
기발한 대답이었다.
무시무시하게 빛나던 호랑이의 눈매가 함박눈처럼 녹아내리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하하하! 좋아!”

호랑이라는 자기 품에 마다않고 기어 드는 녀석이 귀엽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즉시 수행원과 지서장에게 명령했다.

"
이 녀석! 쓸만하군! 특채해서 순경으로 발령내!”

현대의 인기 개그맨이라 해도 60년 전 그 시골 청년의
순발력에는
미치지 못할 경우가 많을 것이다.

김 종원은 경찰이 남부군 사령관 이 현상의 사체를 확보하자
이를 가지고 경무대[현 청와대]를 찾아가서 이 승만 대통령에게 한번 보시라고 한 엽기적인 일화를 남겼었다.

[이 박사는 이를 거절했다.]

자유당이 몰락하자 그도 몰락했다.
그는 장 면 부통령 저격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복역 중 지병인 당뇨병이 악화 되어 40대의 젊은 나이로 이승을 하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