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한국전

영 순양함 자메이카의 한국전 참전기

구름위 2013. 1. 1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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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빙양(북극해) 바렌츠 해전

1942년 12월 22일, 소련으로 원조되는 항공기와 탱크 등 전략
물자들을 적재한 영미 화물선 14척으로 구성 된 JW51B 해상 선단이 소련의 무르만스크 항을 향하여 영국 북해의 Loch Ewe 항을 출발했다.

이 해상 수송단을 호위하는 영국 호위 함대는 아이스랜드 북방에서
수송단과 도
킹해서 노르웨이 북쪽의 얼어붙은 바렌츠 해로 들어갔다.

호위함대는 구축함이 7척, 소형 함선이 5 척이었다.
호위함대 사령관은 노련한 로버트 st 빈센트 셔브룩 대령이었다.



                                 로버트 st 빈센트 셔브룩 대령


겨울의 북빙양은 영하 50도를 오르내리는 백야의 한 중간이었다. 이들이 폭풍에 흩어진 호송함대를 재 편성하던 1942년 12월 31일, 중순양함 히페르[14,050톤]와 구축함 6척으로 구성된 막강한 독일 함대의 습격을 받았다.

영국 함대는 필사적인 포격으로 저항하며 이들 독일 함대가
상선단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북빙양의 연합군 소련 원조 수송단
                                (호위 쉐필드 함에서 촬영한 사진)


호위함대의 소해정 브람블[BRAMBLE]과 구축함 아크베이트[ACHBATE]가 격침되고 기함 온스로우[ONSLOW]에 포탄이 명중하여 함대 사령관 셔브룩 대령의 광대뼈가 부서지고 안구가 노출되었다.


                          영 호위함대 기함 온스로우[구축함- 1,570 톤]


더구나 전투 해역에 늦게 진입한 독일 포켓 전함 루쪼우[26,050 톤]가 달려오고 있었다.

압도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도 영 함대는 상선단을 보호하며
전력을 다하여 반격했지만 작은 구축함대는 적 거함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호송함대의 전멸은 물론 상선단의 궤멸도 시간 문제로 보였다.

그 때 기적같은 구원군이 나타났다.
그 이전 함대를 호위하기 위해 소련 무르만스크로 들어갔던 영국 해군의 두 순양함이 마중을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영 순양함 쉐필드[11,350 톤]- 비스마르크 해전에도 참가했다.


영국 순양함 쉐필드와 자메이카였다. 북쪽 코스를 잡고 역항해해 오던 그들은 남쪽 바다에서 섬광이 간단없이 명멸 하는 것을 보고 최대 속도로 달려 와서 독일 함대에 덤벼 들었다.

두 순양함의 기세는 무서웠다.
두 척의 영순양함이 날린 강펀치에 독일 함대의 기함 히페르가 박살이 나서 거의 폐함이 되다시피하고 독일 함대 구축함 Eckboldt가 격침되었다.

       기습 독일 함대의 기함 히페르 함 [14,050톤]. 영 순얌함의 직격탄을 받아 대파 되었었다.


그렇지 않아도 영 구축함대의 사력을 다한 분투에 질려있던 독일 함대는 갑자기 나타나서 사자와 같이 물고 늘어지는 영 순양함의 사나운 돌격에 그만 전투를 기피하고 야간의 어둠속으로 슬금슬금 퇴각했다.


                                  영순양함 자메이카[11,017톤]


상선단은 단 한척의 피해도 없이 소련 무르만스크 항으로 입항할 수가 있었다.

세계 해전사는 이 북빙양에서 전개된 해전을
바렌츠 해전이라고
명명했다.

JW51B 해상 선단을 구출한 순양함 자메이카는 전쟁 동안 주로
얼음과 진눈깨비가 뒤덮은 북빙양을 오가며 어려운 호위 임무를 수행했었다.

자메이카는 1943년 12월 26 노르웨이 북방 노스 케이프 앞 바다에서
영 전함 듀크 어브 요크 함[47,000] 등과 함께 독일 샤른호르스트 함[38,100톤]을 격침시키는 해전에서 결정적인 주역을 하였다. 이 해전은 나중에 소개하기로 하기에 여기서는 길게 쓰지 않겠다.


인천 상륙 작전의 북한기 격추

바렌츠 해전 뒤 8년의 세월이 흐르고 1950년 한국전이
발발하자 영 순양함 한 척이 한국 해역으로 출동한다.

이 영국 순양함은 상선단을 구하기 위해서 전속력으로 들진해서
독일 함대에 불을 뿜었던 자메이카였다.

250 여 척의 인천 상륙 함대 중 한 척으로 인천 외항에서 초계를 하고 있던 자메이카는 1950년 9월 17일 오전 5시 50분 뜻 밖에도 두 기의 북한 공군기의 저공 기습을 받았다.

요격 임무를 맡고 있던 미 함대 초계기들은 북한기가 날아올 것으로 예상했던 북한 하늘을 탐색하며 인천항 북방 상공에서 초계 비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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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상륙함대를 공격했던 북한기의 기종이 북한 주력 전투기인 YAK-9 기라는 설과 공격기인 IL-10이라는 설, 심지어 소련의 대 독일전 주력기인 IL-2라는 설까지 여러 가지가 있어 갈피를 잡지 못했는데 여러 소스를 확인 한 결과 일단 여기서는 IL-10으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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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공군의 공격기 IL-10


그러나 두 북한 기는 육지 쪽, 즉 해가 떠오르는 서울 방향에서
날아왔다.

비록 북한이 점령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남한 땅에서 북
한 공군기가 날아오리라고는 함대 대공 방어요원들이 미처 예상치 못했었나 보다.

적기가 떠오르는 태양을 등에 지고 접근해오면
방어하는 측의 조종사나 또는 대공포 사수나 해군의 견시[見視]는 눈이 부시어서 쉽게 식별을 할 수가 없다.

두 기는 각기 네 발을 폭장[爆裝]했었다.
북한 기들은 순식간에 항내 외곽에 정박해 있던 미 순양함 로체스터에게 접근해서 폭탄을 투하했다.

로체스터는 8인치 포가 9문이나 되고 총톤수가 13,700톤이나
나가는 대형 중순양함이었다.

이 8인치 포들은 며칠 뒤 한강 반포에서 한강 건너
서빙고동과 보광동 방향으로 도강하는 부대를 지원하기 위해서 인천 앞바다에서 서울의 남산까지 장거리 지원 포격을 했었다.


                                  미 순양함 로체스터[13,700톤] 


선두기가 투하한 네 발의 폭탄 중 세 발은 로체스터의 함미를 빗나가 바다에 떨어져서 폭발했다.

한 발만이 함미에 설치된 수상 정찰기 회수용 크레인에 맞았지만
불발탄이었다. 불발탄은 그대로 튀어나가 바다로 떨어졌다.

다른 북한기도 네 발의 폭탄을 로체스터의 함수 쪽에 투하했다.
네 발 역시 함체는 한발도 맞추지 못하고 좌현(左舷)쪽의 수면에 낙하하여 요란한 폭발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단지 폭발의 충격파로 함수의 전기 장치에 약간의 손상이 있었지만
금방 수리가 될 만한 작은 피해였다.

함선을 공격하려면 적어도 1,000파운드에서 2,000파운드의 대형 폭탄을 사용하여야 효과를 볼 수가 있는데 이들이 투하한 폭탄은 인마 살상용이라 할만한
100파운드짜리 소형 폭탄들이었다.

한 발의 폭탄도 명중하지 않았지만 여덟 발의 폭발음은 함대를
경계상태에 돌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야크기들이 기습의 효과가 없어진 시점에서 함대 부근에서 더 이상 어른거리는 것은 우둔한 짓이었으므로 신속히 폭격 현장을 이탈하는 것이 노련한 조종사들이 다음에 바로 취해야 할
짓이었다.

그러나 폭탄들을 바다 속에 헛되이 던져버린 북한기들은
허전한 발걸음을 돌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가, 항외(港外)로 더 빠져나가 역시 욕심나게 커다란 목표에 덤벼들었다.

그 곳에 영 순양함 자메이카가 있었다. 하지만 자
메이카도 전투기 두 기가 어수룩하게 덤벼들 대상이 아니었다. 이 역전의 노병에게 북한기 중 한 기가 기총 소사를 하며 공격해갔다.

북한 기는 세 명의 영국 수병을 부상케 했지만
그 것으로 북한 조종사의 츨격은 끝이 났다.

이미 자메이카는 로체스터가 피습당한 것을 보고
비상 경계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기총소사를 하며 공격하던 북한기에게 자메이카의
대공포들은 우박 같은 포탄 세례를 퍼부었다.

겁 없이 돌진하던 북한 기는 자메이카 기관포 연사 포성의
여운이 먼 해상으로 퍼지기도 전에 불붙은 기체를 해면으로 향하고 추락하고 말았다.

다른 북한 기는 겁을 먹고서 도주해버렸다.
얕은 바다에 격추된 야크기는 나중에 온전한 형태로 인양되었다.

 북 어뢰정 격침


자메이카가 한국 해역의 실전에서 불을
뿜은 것은 이보다 두 달 전인 1950년 7월 2일 주문진 근해의 야간 해전에서 였다.

나는 이 해전을 국방부의 아 ! 6.25 블로그에서 이미 소개했었다.
북한이 발표한‘동해 해전의 승리’라는 황당무계한 발표 내용은 이러했다.[지금도 북한에서 이 해전의 대승을 지극히 당연한 사실로 믿어 마지않고 있다는 사실도 미리 말해둔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꼭 일주일이 된 1950년 7월 2일,
북한 고속 어뢰정 4척이 거진 앞바다에서 미 함대를 공격했다. [실제로는 주문진 앞 바다다.]

북한이 말하는 그 미국 함대는 세력이 대단해서 17,000톤짜리 순양함이 한 척, 12,000 톤급 순양함도 한 척, 그리고 여러 척의 3,500톤짜리 구축함들로 이루어진 막강한 위용을 자랑하는 함대였다.

북한 어뢰정 편대가 야음을 틈타 그 막강한 미제 놈들의 함대에
어뢰 공격을 가해서 몇 척을 침몰 시켰다는 것이다.

어뢰정 한 척은 적 포격으로 선체에 불이 붙자
적함에 돌진하여 장렬하게 자폭했다는 소리도 이 말 같지 않은 허풍에 양념으로 들어있었다.

70년대 까지만 해도 북한이 주장하는 격침 전과는
순양함 한 척만아니라 구축함 등 여러 척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거짓말이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요즈음 북한이 발표하는 격침함은 기함 급의 미 중순양함‘빨찌모르’ 한 척으로 슬그머니 줄어들었다.


                                미 순양함 발티모어[13,600톤]
                북한은 조금이라도 커야 전과가 커보이는지 17,300톤이라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기특하리만큼 용감했던
북한 어뢰정 부대의 전과는 뻔뻔한 거짓말이었다.

하여튼 이 뻔뻔한 거짓말의 실상을 기본부터 들여다보자.
북한이 격침 시켰다고 요란스럽게 떠들어 대는 '빨찌모르'라고 하는 미 함은 도대체 있기는 있었던 걸까?

실제로 있었다.
빨찌모르는 발티모어(Baltimore)라는 영어 함명을 러시아식으로 발음 한 것이다.

그렇다면 1950년 7월 2일 중순양함 발티모어는 정말
북한 해역에서 활동했던가?

천만의 말씀이다!

발티모어라는 이 중순양함은 1942년 미 함대에 취역하여
활동했다가 전쟁이 끝나고 1946년 7월 8일 잠정 퇴역하였다. 해전이 있었다는 1950년 7월 2일에는 미 서해안 워싱턴 주 브레멘 항에서 모든 무장을 풀고‘편히 쉬어’상태였다.

51년 다시 재 취역 했으나 6·25전쟁 동안 한국 영해에는
오지도 않았었고 지중해에서만 활동했었다.

6·25전쟁이 끝나고 한참이 지난 1956년 퇴역하였다.
함 이력에는 2차 대전 시 연안 포격이나 상륙작전 지원 같은 것을 한 적은 있었으나 적함과의 교전, 다시 말하면 해전 참가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러면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가?

동해에서 해전이 있기는 있었다. 북한의 어뢰정 네 척이 1950년 7월 2일 동해안에 출동했던 미국 함과 영국 함들로 구성된 함대에 겁없이 덤벼들었다가 3척이나 격침당하는 대 타격을 입은 것이 그 진실이다.

미국의 타임지와 영국의 해군 기록이 해전의 전모를
간략히 알려준다.
 

주문진 근해에서 북한 어뢰정들과 격돌한 연합군 함대는
영국 순양함 자메이카, 미국 순양함 쥬노와 역시
영국 구축함 블랙 스완으로 구성 된 미영 혼성 연합함대였다.[벨파스트였다는 다른 설도 있지만 잘못 된 것이다.]


                                  미국 순양함 쥬노[6,000톤 ]


미국 순양함인 쥬노는 영국 순양함 자메이카 보다는 작기 때문에 이 혼성 함대의 기함(旗艦)은 자메이카였다.

쥬노는 6.25일에 대마도 해협을 초계하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먼저 한반도 해역으로 달려왔다. 미국 기록에서 주문진 해전이라고 부르는 이 해전은 아주 간략하면서도 혼란스럽게 기록되어 있다.

하여튼 신빙성 높은 정보로서 정리해보자.
쥬노의 한국 출동 첫 성과는 별로 안 좋은 것이었다. 28일 한국 해역을 홀로 초계하던 쥬노는 29일 새벽 2시 30분, 레이다로 북위 37도 25분 전방 해상에서 두 척의 식별 불능 스컹크[미 식별 적성 물체]가 기동 중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모든 한국 해군의 함정들은 37도 아래로 긴급 이동하라는
지시를 이미 받았다는 정보를 알고 있던터라 쥬노는 즉시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 함정은 한국 해군의 LST 문산함이었다.
이 포격으로 한국 해군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부상하였다.

시간이 지나 새벽, 또 다시 오인 사격이 있어 한국 해군의
305정이 쥬노의 포격에 명중하여 8 명 전사에 4명 중상의 피해를 입었다.

305정은 일본 해군의 구잠정으로서 목선이었다. 전
후 미군이 일본 해군에게 압수한 것을 한국 해군에게 넘겨준 것이다.

대파된 305정은 철수 기지가 있던 포항으로 예인 도중
그날 오후 4시경 침몰하고 말았다.

작전 초기부터 실수를 한 쥬노는 면목을 일신하는
기회를 노리면서 목표를 찾다가 그날 29일 밤, 동해안 옥계 항에 집결해 있던 북한군을 포격하였다.

미 기록에는 목표가 bokuko do로 되어 있는데 이는
미군이 쓰던 일본 발행 한국 지도의 묵호를 일본 발음으로 표시한 것을 옮긴 것 같다.[북한은 이 포격을 미제가 동해안의 무고한 어민들을 포격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옥계 포격의 목표에 대한 기록은 여러 가지다.
포격 목표가 집결 병력이었다는 설에서 부두시설, 또는 병력을 내려놓고 귀항하는 북한 어선들이라는 설이다.


 

                                                                영 순양함  자메이카


이 옥계 포격 전후인 29일 쥬노는 홍콩에서 북상해온 영 순양함 자메이카, 영 구축함 불랙 스완과 합동하여 함대를 이루어 초계를 계속하였다. 한국 해역에 출동한 자메이카의 함장은 제스 D. 소웰 대령이었다.

자메이카의 한국 해역 도착과 함께 쥬노와 영함 두척은
임시 함대를 편성했고 함대 사령관은 상기 제스 d 소웰 대령이 맡았다.


 

                                 영 구축함 블랙 스완  1,200톤


미함 쥬노를 선두함으로 한 영미 함대는 계속 초계 중 7월 2일 심야에 해안에 붙어서 남하하는 여러 척의 선박을 레이다로 컨택했다.

[스컹크 발견]

한번 실수가 있었던터라 영미 연합 함대는 주의 깊은
확인 절차부터 거쳤다.

함대는 총원 전투 준비를 발하고 접근하면서 
조명탄을 주포로 발사하여 괴선박들의 정체를 확인했다.

열 척의 북한 어선들이 네 척의 어뢰정에게 호위되어
남하 중이었다.

볼 것도 없이 어선에는 6월 25일 침투시킨 병력을 지원하는
또 다른 병력 아니면 남하하는 북한군에게 지급할 보급품들이 적재 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탄약이라는 기록도 있다.]

함대는 총원 전투 준비를 발하고 접근하면서 조명탄을 주포로 발사하여 괴선박들의 정체를 확인했다.

북한 어뢰정 네 척은 미영 함대가 조명탄을 투하하자
전방에 적 함대가 출현 한 것을 알아채고 용맹하게 돌격해왔다.

선두의 미 순양함 쥬노와 뒤에서 후속하는 영 순양함 자
메이카는 즉각 조명탄 조명 아래 주포를 연속 발사했다.

어뢰정이 더 다가오자 긴 투광거리의 서치라이트가 조명되었다.
화망을 무릅쓰고 돌진했던 어뢰정들은 서치라이트에 조명당하고 40mm 보포스 트윈 건의 무지막지한 화력으로 집중 타격을 받았다.

쥬노의 승조원이 북 어뢰정들이 일으키는 큰 파도를
보았다는 것을 보면 이들 북한 어뢰정이 선두함 쥬노의 전방 수 킬로 내로 접근했던 듯했다.

그러나 북 어뢰정의 돌진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였다.
쥬노와 자메이카는 온 함이 포연으로 뒤덮여 승조원들이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로 모든 화기의 화력을 퍼부었다.

호기롭게 돌격하던 네 척의 북한 어뢰정 중 세 척이
연달아서 격침당했다.

수 십 문의 40mm 기관포들이 우박같이 퍼붓는 탄막을
뚫어 보겠다고 돌진 한 것부터가 경험 미숙에서 나온 만용이었다.




 

                                   미 PT 어뢰정.[50톤급]
북한 것보다 세배쯤 크고 어뢰도 네발이나 장비하고 있다. 그러나 야간에만 운행했고 강한 적 함과의 정면 대결 상황 시에는 신속 회피하도록 교육 받았었다.


세 척이 순식간에 격침되자 비로소 정신을 차린 어뢰정 한 척은 호위하던 어선들을 내동댕이치고 외해로 선수로 돌려 풀 스피드로 뺑소니 쳤다.

북한 발표대로 어뢰정 한 척이 불이 붙은 채 돌격해서
자폭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그래도 근거가 있다면 기관포탄에 연료 탱크에 불이 붙고 조타실이 날아간 어뢰정 한 척이 방향 전환을 못하고 그냥 미 함대쪽으로 직진하다가 격침 된 것을 도주했던 어뢰정이 목격하고 과장되게 보고했을 것이다.

미국측 기록에서는 어뢰정 편대의 뒤에서 후속하던 10척의
북한 어선에 대한 언급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찾아보니 영국기록에 이들 어선들에 대한 내용이 간단히
소개 되어 있다.

즉 어선 세 척이 격침되었다는 것이다.
앞의 해변으로 좌초한 세척의 어선이 결국 파괴 되고 나머지 어선들은 선두의 어뢰정들이 교전에 휘말린 것을 보고 모두 도주한 듯하다.

이미 오진우의 766 유격대의 침투를 알고 있었을
[옥계 포격이 이를 증명해줌] 이들 미 영 함대가 병력을 가득 실은 어선들을 그만 두었을 리가 없다.

물론 공격했을 것이고 이중 다급했던 어선 세 척이 해변으로
필사적으로 도주해서 해변에 배를 대고서 북한군은 모두 내륙으로 도주했을 것이다.

북한이 대승전을 거두었다는 동해 해전의 진상(眞相)을
앞에서 다 밝혔지만 한 발 더 나아가서 미국 중 순양함을 격침시켰다는 북한의 간 큰 거짓말이 어느 정도 황당무계한 웃음거리인지 어뢰전의 전문 지식으로 살펴보자.

한마디로 어뢰정이라는 것은 대형 함정들과 맞서 이렇게
당당히 해전을 벌일만한 능력이 없다.

어뢰정이 무장한 어뢰가 대형 함을 파괴 할 수 있는 어뢰이고
40노트의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엄청난 전력을 가졌다는 인상을 주겠으나 그 작은 선체는 적의 포격이나 총격에 아주 취약하다.



                                       자메이카의 포탑 
             승무원들은 뜨거운 화약 찌꺼기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두건을 쓴다.


구축함의 주포인 5인치 함포 한 발만 제대로 맞아도 격침되는 것은 물론 20mm 기관포 사격으로도 격침 시킬 수 있는 것이 어뢰정이다.

더구나 어뢰라는 것은 명중률이 아주 불량한 무기이다.
일본 해군의 어뢰전 최고 권위자인 하라 다메이치 대좌는 태평양 전쟁 발발 전에 많은 발사 실험을 통해서 거리 5,000미터에서 어뢰의 평균 명중률은 3%라는 결과를 얻었다고 회고 했었다.

40발을 발사하면 단 한발만 맞는다는 이론인데 개전 뒤 인도네시아
근해 수라바야 해전에서 일본 구축함대가 연합군 함대에 64발을 발사했는데 오직 한발만 명중했던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그래서 원거리 어뢰 사격의 불량한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서
일본 구축함이나 순양함들은 한번에 8 발씩 다량의 어뢰를 쐈었다.

두 발의 어뢰를 장착한 네 척의 어뢰정이 한꺼번에 어뢰를
발사한들 단 8개일 뿐인데 이것의 명중률은 앞의 일본 구축함의 성공 확률로 보아서 절대 명중탄이 나올 수 없는 발사 탄수이다.

더구나 북 어뢰정들이 미영 함대와 조우했을 때 이들 세 척의
대 함수는 북 어뢰정을 향하고 있었다.

어뢰의 표적이 극히 작았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경우,
최단거리가 아니면 단지 어뢰만 낭비하는 것이므로 설사 최근거리의 해중에 잠복한 잠수함들이라 해도 적함이 사거리에 들어올 때까지 발사를 삼가 한다.

그래서 어뢰의 명중률을 향상시키기 위해
북한 어뢰정은 아주 근거리로 접근했어야 했다.

잠수함은 그런대로 수중에서 은밀히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해서 근거리에서 어뢰를 발사해 명중률을 높일 수 있다지만 수상함이 어뢰의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서 적함에 접근하게 되면 반격이 격렬해지고 그 반격은 어뢰 외에 무장이 별 볼일 없는 어뢰정에게 치명적인 것이다.

한 증명 자료로서 북한 어뢰정들을 격침 시킨 미국과
영국 순양함들의 엄청난 무장 화력을 보자.

북한 어뢰정에 비하면 미 영 순양함의 화력은 가히
가공스럽다는 말 외에는 표현 할 수가 없다.

미 순양함 쥬노의 무장을 한번 보자.

5인치 포가 12문.
40미리 기관포가 24문.
4문의 20밀리 에리콘 포가 있었다.

더 큰 영함 자메이카의 무장은 더 강하다.
6인치 포 12문.
5인치 포 4문.
12문의 40미리 기관포.
3파운드 폼폼 건 3문[기관포 네 묶음을 한 포대로 묶은 것]
20밀리 기관포 12문.

[이 무장 외에 이들 순양함에는 어뢰정들의 움직임을
손바닥처럼 알 수 있었던 레이다가 장비되어 있었다.]

순양함의 화력은 어뢰정보다도 열배나 더 빠른 속도로 
비행 공격해오는 여러 기의 뇌격기 편대도 연속해서 격추해 버릴 수 있는 가공할 수준이다.

북한 해군의 허위 전과는 이것을 구성하고 발표한 인간들이
세계 해전사를 제대로 읽었다면 낯이 뜨거워서라도 하지 못할 무식한 거짓말이다.

거짓말을 해도 충분히 알고 해야 쉽게 들통이 나지 않는 법인데
어뢰정이 해군 전력으로서 얼마나 미미한 존재였는지도 몰랐던 북한 당국의 그 무지한 배짱이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북한의 어이없는 거짓말은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남한의 전쟁 기념관 같은 군사 박물관이 평양에도 있다. 이 박물관에 가보면 미 중순양함 빨찌모르를 격침했다는 어뢰정이 유들유들하게도 전시 되고 있다.



                                 평양 군사 박물관의 황당한 전시화.
             13,600톤의 미 순양함 발티모어가 꼼짝없이 북 어뢰정들에게 몰려 격침되고 있다.


북한의 이 황당한 전쟁 사기극은 지금 세계에 소문난 거짓말로서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주문진 앞바다에서 북 어뢰정들이 겁 없이 미 영 순양함들에게
덤볐다가 격침당한 해전은 6·25전쟁 중 유일한 해전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