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전 비사-수송기 폭파 간첩의 공중 사살
몇 년 전 전사 편찬 연구소에서 발간한 6.25 전쟁 한국 첩보전 비사를 담은 내용의 책을 읽은 일이 있었다.
내용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북한에 비밀 공중 투하하던 아군 측 비밀 첩보원이 낙하 직전 갑자기 수류탄을 꺼내 조종실에 던지고 뛰어 내렸다는 내용이었다.
6.25 전쟁사에서 아주 귀중한 사진이다.
자주 이동하던 KLO 본부의 신설동 시절 사진이다. 앞 중앙에 앉아있는 코카사스 인종이 미 고문관 같이 보이겠지만 소련군 중좌다. 1952년 KLO부대가 함경북도에서 납치해서 공중 수송해왔다. 이하 사진들은 이 창건 박사님의 저서 'KLO의 한국전 비사'에 수록된 것이다.
수송기는 추락했고 탑승원들은 전원 전사했다. 북한 간첩이 남한 첩보 부대에 침투했었던 것이다. 읽고 보니 분통이 터졌다.
6.25 전쟁 중에 이렇게 적의 간교한 짓에 목숨을 잃은 국군들이 많았었다.
여순 사건 때 집에서 식사 대접 하겠다는 호의를 베푸는 여학생에게 사살당한 토벌대 군인의 경우라던가..
인천 상륙 후 김포에서 물 좀 달라는 포로(북한 부연대장)에게 인정을 베풀다가 얼결에 빼앗긴 칼빈 총에 죽은 해병 소대장의 경우라던가..
휴전 바로 전 훈장을 받고 즐거운 휴가를 가다가 동네 어귀에서 귀향 버스를 세운 공비에게 생학살을 당한 지리산 인근 출신 용사들이라던가..
그런데 공비가 던진 수류탄에 비밀 작전 중이던 수송기가 폭파되고 요원들이 몰살한 사건은 한층 더 화가 나는 경우였다.
보안이 어떻게 되었길래 KLO 부대 같은 첩보 부대에 간첩이 침투하게 되었을까?
맨 우측이 KLO 부대 최 규봉 대장이다.
내가 본 그 책에서는 수류탄을 던진 간첩의 신원이나 그 후의 진행에 대해서 언급이 없어서 유감스러웠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한 책을 발견했다. "KLO의 한국전 비사'다. 출판 된지 상당히 되었는데[2005년 발간] 게을렀던 탓에 책을 늦게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쓰신 분은 KLO 부대 출신으로 서울 공대 전기 공학과를 졸업한 이 창건 공학 박사이다. 우리나라 원자력 연구소 소장을 지내신 분으로 한국 원자력 연구의 기초를 닦으신 분이다.
같은 KLO 부대원 중에는 한국 외교계에서 아직도 아는 분이 많은 최 필립 대사도 있다.
백령도 백사장에 최초로 랜딩한 미 수송기.
대동강 입구 초도의 KLO 파견대장 이 영복씨다.
당시는 국가 존망이 위태로웠을 때라서 미래의 인재들이 이런 특수 부대에도 많이 지원했었다.
1952년 말 한국 특수 부대에서 우리 부대에 파견 나와 있는 A 대위가 자기 공작대원을 KLO 무전 팀[적지투입]에 넣어 달라며 협조를 요청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모처럼의 요청을 한 마디로 거절할 수가 없어 우선 어떤 사람인지 만나나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사람을 데려와 보라고 했다.
당시 중국서 공부했다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게 말하듯 그도 북경 대학 출신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첫 눈에 불길한 느낌이 들어 최 규봉[KLO대장] 대장은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자 A 대위는 미 고문관들에게 불평을 늘어 놨다. KLO가 정보를 계속 독점하려고 자기 요청을 거부한다며 떼거지를 쓰고 사정하는 바람에 드디어 그 공작원을 무전 팀에 편입시키게 되었다.
북에 투입되었다가 살아 돌아온 김 중호 대원. 좌측에서 두 번째.
그를 받아들인 후 KLO 인사부에서는 그의 이력서에 적혀있는 현 주소에 신원조회를 의뢰했다.
그는 군 입대 전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새벽 기도회에도 출석하고 헌금도 잘 낸다는 회신이 돌아왔다.
다만 직업이 없는 신분이었는데 평균 이상의 생활수준을 유지했고 저녁에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뭔가 공부하는 것 같다고 했다.
특이 사항이라면 자주 자리를 비운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교회 어른들의 신원 보증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럴즈음 미 육군 정보학교 졸업반의 적진 투입 현장 참관 실습이 있었다.
학생들의 교생 실습이나 의과 대학생들의 수술실에 들어가 교수의 집도 현장을 목격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이 실습 비행에는 28명의 미 정보학교 견습생이 참여하였는데 본부 요청으로 수행하는 현장 실습이었다.
수송기는 투하 요원 5명과 실습생 28명을 탑승시키고 여의도 비행장을 이륙하였다.
하지만 이 수송기는 돌아오지 않았는데.. 몇 달 뒤 적지에 투입한 대원들이 귀환하여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다.
늘 그랬듯 항공기가 목표 상공 지점에 이르자 작전관[점프 마스터 역할을 함]이 비행기 뒷문을 열고 맨 앞의 팀장을 밀어냈다.
곧이어 두 번째 공작원이 뛰어 내렸다. 공작원들이 짧은 간격으로 뛰어 내리지 않으면 첫 번째와 마지막 대원과의 낙하 지점이 멀어져 밤에 산속에서 서로 만나는데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한쪽은 산 등성이 남쪽에 떨어지고 다른 쪽이 북쪽이나 서쪽에 착지 하는 날엔 거리도 문제지만 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방황하며 애를 먹게 된다.
그래서 뛰어 내릴 때 머뭇거리는 대원이 있으면 작전관이 손으로 떠밀거나 발길로 차서라도 빨리 뛰어내리게 만든다.
그런데 세 번째 대원이 머뭇거리며 뛰어 내리려 하지 않았다. 셋째 대원이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문제의 인간이었다.
작전관은 그가 무서워서 그러는 줄 알고 등을 밀려고 하자 그는 작전관의 손을 뿌리치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서 핀을 뽑았다. 수류탄이었다.
간첩 추정자는 작전관이나 동료 대원들이 제지하기도 전에 조종석을 향해 던지고 뛰어 내렸다.
위기의 순간이었는데 그의 다음 순번인 4번째와 다섯 번째 대원들도 순발력있게 그를 따라 뛰어 내렸다.
수류탄 폭발로 수송기는 추락하고 조종사 두 명과 작전관, 미군 정보학교 실습생들이 몰살당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대원들은 자기들 보다 더 저공에서 낙하하고 있던 그 자에게 칼빈 소총을 연사해서 사살했다.
착지한 그들은 팀장과 둘째 대원을 만나 함께 세 번째 대원의 시신을 찾아냈다.
그 자의 주머니와 배낭에서 북한의 연락처와 몇 가지 수상한 기밀 문서를 찾아냈다.
나중에 귀환한 대원의 보고에 KLO는 그의 신원조사에 들어갔다. 그의 확실한 신원이 불분명했었고 저녁에 젊은이들을 모아 놓고 공부하는 것이 불온 문서를 교재로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KLO는 공중 침투뿐만 아니라 육상과 해상 침투도 했었다. 이 쾌속선은 자체 건조한 Q 보트로서 북한 원산에서 공산측이 페스트 환자라고 주장하는 환자를 납치 해올 때 중요하게 사용했었다. 확인 한 바 티프스 환자였다
이 불상사가 있은 후에 KLO에서는 각별히 대원 신원 조사에 신경을 썼다.
입대 전 교회에서 단 시일 내에 갑자기 열성적으로 봉사하며 연보도 많이 내고 새벽 기도회에 나가 울며 기도하는 수상한 자는 특히 받아 들일 수가 없었다.
'전쟁..... > 한국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진호 혈전장의 한국 전투 경찰대 -제2편- (0) | 2013.01.15 |
---|---|
장진호 혈전장의 한국 전투 경찰대 -제1편- (0) | 2013.01.15 |
미 해병의 전차 육탄 공격 (0) | 2013.01.15 |
공중 수송 작전의 첫 장을 연 펀치볼 전투 (0) | 2013.01.15 |
장진호 덕동 고개 전투" 이야기.. (0) | 2013.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