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수송 작전의 첫 장을 연 펀치볼 전투
헬리콥터 공수 작전은 월남전에서 대대적으로 전개되었었고 그 뒤에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는 현대 전략의 중심이 되었다.
헬리본 작전[공중 강습 작전 - AIR ASSAULT]은 2차 세계대전 때는 아직 선을 보이지 않고 있다가 1950년 6.25 전쟁 때 최초로 등장하였다.
헬리본 작전의 최초 구상자는 미 해병 로이 가이거 장군이었다. 그가 헬리콥터를 상륙 작전에 사용하는 구상을 하였고, 그로인해 헬리 본 작전의 실험 중대인 HX-1 중대가 탄생되었다.
그 기본적인 개념 즉 공중 강습작전이 한국전쟁 때 펀치 볼에서 실행되었다.
☛ 전사는 적지에 가한 최초의 공중 강습 작전을 미 해병대가 1956년 레바논에서 했다고 쓰고 있지만, 그 원형이 되는 작전은 이미 한국의 펀치볼에서 있었다.
펀치볼은 헬리본 작전이 있던 최초의 한국 전쟁터 중 하나이다. 펀치 볼은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의 지명으로서, 지형이 마치 서양 화채인 펀치를 담는 사발 같이 사방이 높은 산으로 병풍같이 둘러싸인 오목한 곳인데 한국의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들다. 굳이 비슷한 곳이 있다면 한라산 백록담이 될 것이다.
이곳은 까마득한 옛날 운석[隕石]이 떨어져서 생겼다고 한다. 오랫동안 호수였다가 물이 다 빠져나가고 현재는 경치 좋은 산간 지방이 되었다. 이 펀치볼의 북방 능선이 6.25전쟁 중 피아간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한국군은 물론 프랑스군도 이 펀치볼에서 목숨을 걸고 공산군과 혈전을 벌였고, 험준한 고지인 이곳에 미 해병대와 한국군 해병대도 배치되어 격렬하게 싸웠었다.
한국 참전이래 낙동강 전선의 오봉리 전투와 인천 및 서울 탈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었고 장진호 전투를 거쳐 중부 전선에 배치된 정예 미 해병 1사단에 헬리콥터 항공대가 있었다. HMR-161이라는 명칭을 가진 항공대였다.
HMR-161 항공 부대는 1951년 1월 15일 미국 캘리포니아 엘 토로에서 창설되어 같은 해 8월 15일 한국 전선으로 파견되었는데 HMR-161은 세계 최초로 편성된 수송 전문 헬리콥터 항공대였다.
부대는 해병 5-6명을 수송할 수있는 시콜스키 HRS-1기 15기로 편성되었고, 43명의 장교와 244명의 부대원들로 운영되었는데 부대장은 조지 헤링 중령이었다.
♦ HRS-1 헬리콥터는 미 공군과 해군도 사용했던 H-19 헬리콥터의 해병대 고유 명칭이다. 이 헬리콥터는 한국 공군도 오랫동안 사용했었다.♦
HMR-161 항공대는 1951년 9월 2일 부산항에 도착하였다. 마침 그 때 동부 전선의 펀치 볼에 배치된 해병 1사단은 대대적인 공격 작전을 개시했었다.
전방으로 이동한 HMR-161은 해병 사단의 기존 정찰 항공대인 VMO-6와 같이 펀치볼 천도리에 있는 임시 비행장을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그들 조종사로부터 많은 비행과 작전 정보를 입수하였는데 향후 작전과 부대 운영의 귀중한 참고자료가 되었다.
1951년 9월 12일. 항공대는 해병 1 상륙 대대 장병들에게 헬리본 작전에 관한 기본 교육을 시켰다. 그 다음 날은 첫 작전인 윈드밀 작전의 군수품 공수에 대비한 준비가 진행되었다. 각 군수품들은 헬리콥터가 운반하기 좋게 800파운드 크기로 분리되어 공수 물품으로 팩킹 되었다.
그날 오후 15:50분. 7기의 HRS-1 헬리콥터들은 기체 아래 보급품을 달고 7마일을 날아 전선에서 기다리고 있는 2대대에게 운반하였고, 보급품을 내려준 후 전투 부상자들을 싣고 기지로 돌아왔다.
이 신속한 수송으로 해병들은 부상후 단 30분 내에 야전 병원으로 후송되어 신속한 치료를 받아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다.
윈드밀 작전에서는 28회의 출격이 있었고 18,848 파운드의 보급품과 74명의 부상자들을 수송하였다.
1951년 9월 20일. 해병 1사단이 전개하고 있는 서미트 작전의 첫 헬리콥터 공중 강습[헬리 본] 작전이 개시되었다.
미래전의 첫 장을 여는 역사적인 작전이었다.
펀치볼의 짙은 안개에도 불구하고 HMR-161 항공대는 224명의 완전 무장한 해병들을 목표인 884 고지에 투입했다. 전체 출격횟수는 65회였는데 HMR-1 헬리콥터는 병력 이외에 17,772 파운드의 보급품을 수송하였다.
이 첫 해병대 헬리본 작전을 통해 헬리콥터가 전술과 수송에 한 분기점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51년 9월 27일. HMR-161 항공대는 세계 최초의 헬리콥터 야간 공수 작전을 전개하였다.
이 작전의 이름은 블랙버드 작전이었다.
블랙버드 작전은 완벽히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작전에서 아주 귀중한 경험을 취득할 수가 있었다. 그때의 해병 작전 평가 보고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 야간의 헬리 본 작전은 주간에 목표 지역과 접근로 및 철수로에 대한 치밀한 정찰과 연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작전 결과로 들어났다."
야간 헬리본 작전 역시 적지가 아닌 아군 영역에서만 실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블랙버드 작전은 한국전쟁 중 오직 한 차례만 실시된 야간 헬리콥터 공수작전 작전이었다,
1951년 10월 11일 HMR-161 항공대는 한국전 참전사에 한 획을 그을 대규모 작전을 전개하였다,
범블 비 작전이었다.
범블 비 작전은 오전 10:00 개시되었다. 공수 작전의 대상은 해병 7연대 3대대 병력과 장비와 보급품이었다. 작전 참가 헬리콥터는 12기였으며 수송 병력은 958명이었다.수송한 보급품 총 중량은 229,920파운드였다.
HMR-161 항공대는 해병 1사단을 부쉬 비터, 레빗 헌트, 스위치, 훼어웰 등의 전투 인원 수송 작전은 물론 뮬 트레인 같은 대규모 보급품 수송 작전이 있었다.
참전 1년이 지나자 HMR-161 항공대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장족의 발전을 하여서 해병들이 요청하는 어려운 지원 업무도 거뜬히 수행해 낼 수가 있었다.
1953년 2월 23일 HMR-161은 미래전에서 헬리콥터가 군 수송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규모 공중 수송 작전을 전개하였다.
헤이리프트 2작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작전에 투입된 헬리콥터는 단 12 기였지만 나흘간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물량을 수송했다.
헬기들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고지 후방 아래 보급품 집결지에서 고지 방어 진지로 인원과 물자를 실어 날랐다.
이들 12기의 헬리콥터가 수송한 물량은 시간당 31,589파운드였다. 이 물량 수송을 감당하기 위해서 한 기의 헬기들은 15마일 거리를 무려 27 회나 왕복을 했다.
헬리콥터 한 기가 나흘간 수송한 물량은 평균 11톤이었다. 만약 이 물량을 트럭으로 수송했더라면 수많은 트럭들이 필요했을 것이고 네 배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해병 1사단의 헬리콥터 항공대는 휴전이 될 때까지 부지런히 해병 지원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이는 아무 대가 없이 이루어 진 것은 아니었으며 헬기 사고로 조종사들을 포함한 9명의 전사자가 발생 하였다.
휴전까지 해병 1사단의 헬리콥터들은 23개월 동안의 활약을 통해서 60,046명의 인원과 7,554,336파운드의 보급품을 운반했으며 생명을 다투는 2,748명의 부상자들을 응급 수송했다.
한국전쟁에서 해병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헬리콥터들은 미래의 전쟁에서 귀중한 전쟁 수행 수단임을 증명하는 훌륭한 활약과 능력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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