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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의 심리전 시도를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어떤 함정을 만들고 있다고 간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공세적인 나는 그것들이 적의 함정임을 알면서도 우리 지역에 마음대로 드나들며 우리의 표지판을 제거하는 따위를 내심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런데 당시 군단장이 3월 5일 사단을 방문하여 내가 신중론, 즉 적의 함정임을 설명하였으나 그는 0654번 표지판을 포함한 작업 강행을 지시하였다. 또한 군단 정보참모가 사단 정보참모에게 작업강행을 지시했다. 이리하여 3월 7일의 표지판 보수작업이 실시되었다. 그런데 이날 작업을 완료하고 귀대 도중 인민군은 아군 지역의 우리에게 기습사격을 가하여 황대위와 김하사 등 2명을 중상케 하는 무자비한 만행을 저질렀다.
나는 보고를 받자 예상대로 적의 함정에 빠졌음을 인식하고 인민군에 대한 응징책을 준비시키는 한편 마이크로 적측에 사격 중지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사격으로부터 발생하는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인민군 측에 있다고 수차 경고하였다. 그러나 인민군은 나의 경고를 무시하였다.
나는 인민군에게 합법적인 응징을 하리라 마음먹고 관측기를 상공에 띄워 포병 관측장교로 하여금 표적인 559 GP를 관측케 하여 사단 포병에게 사격을 명령하였다. 155밀리 곡사포, 105밀리 곡사포는 즉각 불을 뿜어 인민군 559 GP를 강타하는 한편 우리에게 불법사격을 가하였던 적 보병 배치선에 포탄을 작렬시켰다.
사격후 5분 만인 14시 20분, 한신 대장 후임 군사령관 최세인 대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지휘관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 현장에서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평소 신념에 따라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나 대신 새로 부임한 참모장이 전화를 받았다. 군사령관의 전화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상자에 구애받지 말고 과감하게 작전하라.」
군사령관 전화통화 10분 후인 14시 30분, 군단에서는 군단장 지시라며 군단 참모장이 사단 참모장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하였다.
「환자 구출을 위하여 무리하게 사격하지 마라.」
이 두 경우, 군단장의 지시는 부상자 황대위와 김하사를 버려도 좋다는 것이 아닌가. 아니 우리 지역에서 적이 휴전협정을 위반하고 우리에게 사격하여 생긴 불상사인데 부상 장병을 구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뉘앙스 풍기는 지시를 내리다니 될 말인가.
이날 밤 나는 김일성과 인민군을 골탕먹이기 위하여 사단내 전트럭을 동원하여 라이트를 켠 채 DMZ 남한한계선까지 진출시켰고 부분적으로 중앙분계선 남단까지 진출케 하였다.
후에 이 사건을 계기로 유엔군사령관은 전쟁방지를 위하여 해명 담화를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이번 사건은 북한측의 휴전협정 위반으로 일어난 것이고 유엔군은 부상병 구출을 위한 자위적인 작전을 전개한 것 뿐이다. 전투할 의사는 분명히 없다.」
백골부대를 떠나면서
1973년 4월 3일, 마침내 나의 사단장직을 해임한다는 통보가 내려왔다. 나는 담담한 심정으로 상부의 명령을 대기하였다. 나는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하였으므로 상부의 어떤 결정에도 따른다’는 신조였기에 마음은 홀가분하였다.
그런데 군단장은 사단장 이취임식 석상에서 장병들에게 내가 육군 본부로 영전하여 간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과연 그 뜻이 무엇이었을까?
4월 6일 사단장 이임식에서,
「북진통일의 성업을 완수 못하고 국민의 군인으로서 국민에게 죄를 짓고 사단장직을 떠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백골 부대 사단 장병은 나의 의도를 받들어 북진통일의 선봉사단 임무를 기필코 완수할 것을 당부하며 백골 사단의 건승과 장병의 무운장구를 기원한다.」
라고 간단히 이임사를 하고 단상에서 내려오니 장병과 그의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나를 배웅해 주었다. 내 마음 역시 눈물이 흘렀으나 꾹 참고 태연한 걸음으로 찝차에 올랐다.
「사단장님은 진정으로 팻튼 장군을 닮은, 조국을 사랑하는 장군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나를 위로하였다. 집에 도착하니 수행부관은 ‘장군님의 별은 하나지만 맥아더 장군의 5성처럼 빛나는 왕별입니다’라고 말하며 어디서 구했는지 5성의 별판을 나에게 선물하는 것이었다.
후일의 일이지만, 1985년 9월 20일 이산가족 평양방문단의 일원으로 함경남도 도민회 이상순 회장이 평양에 갔을 때 호텔로 정치보위부 고위간부가 찾아와,
「함경남도 신흥군 출신의 박가 성을 가진 요란한 사단장 요즘 뭘 하오?」
라고 질문하여 이 회장은 섬뜩한 생각이 들어 상세히 설명 안하고 태연하게,
「나는 사업가니까 군 관계는 전혀 모르오.」
라고 대답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그 공산당 간부의 표정으로 보아 3·7포격사건으로 박정인 장군에 대해 상당히 원한이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 포격사건이 적측에 안겨준 충격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가히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예비역 준장 박정인 회고록 '풍운의 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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