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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 전쟁 - 제물포항에서 자결, 침몰한 러시아 함대

구름위 2013. 1. 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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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항에서 자결, 침몰한 러시아 함대

 

                                                              

(제물포항에 스스로 침몰한 바략함)

조선반도에서 모든 이권을 포기하고 손을 떼어 달라는 일본의 외교적 요청을 러시아는 빈번히 묵살하고 무시하였다.

시베리아 철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을 더 벌자는 지연술 이었다.

일본제국도 마찬가지- 시베리아 철도가 개설되기 이전에 끝장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군사적 발동이라는 최후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때 여순 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함대가 모두 서해상으로 출동하기 시작하였다는 청나라 주재 일본영사관으로부터 정보가 들어 왔다(1904.2.4)

그 함대의 움직임은 다만 해상훈련을 하기 위한 출동 이었으나 일본 당국은 혹시 일본에 대한 선제 무력행동이 아닌가 겁을 먹었다.

일본정부는 이 위협적인 사태를 방어하기 위해 어전회의가 열렸다.

일본정부는 페테르부르그에 있는 일본공사에게 모든 협상을 중지하고 철수하라는 통보를 내렸다.

전쟁을 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히 세워졌다. 개전 준비가 세워졌다. 드디어 칼집에서 칼을 뽑아 든 것이다.

 

2월5일 해군중장 도고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1848~1934)제독은 사세보에서 함장들을 소집하였다.

지도를 펼쳐 놓고 러시아함대의 위치와 특징을 자세히 설명한 다음

“내일 우리는 서해로 출동한다. 제물포와 여순에 정박하고 있는 러시아함대를 습격하는 것이다. 적들은 그 깃발을 내리게 될 것이다.”. 도고제독은 조선의 이순신 장군을 마치 군신(軍神)으로 숭앙하고 있어 그 일화가 유명한 인물이다.

도고제독은 제4 전투함대 사령관 해군소장 우리우제독에게 아사마함을 포함 4척의 순양함과 어뢰정 부대를 이끌고 제물포에 정박중인 러시아함대를 분쇄하고 그곳으로 상륙하는 일본 육군을 호위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여순항에는 제1, 2, 3전투 함대가 구축함과 함께

발진하여 야음을 타서 정박 중인 러시아함대를 공격하라는 작전명령을 하달하였다.

모두 6척의 전함, 14척의 순양함 그리고 35척 이상의 여러 어뢰정으로 구성된 일본 연합함대가 서해를 향해 닻을 올렸다(2월5일).

 

전쟁의 기운이 촉박해 지자 이에 앞서 1904년 1월 21일 대한제국은 “아국(我國)은 중립이외다”하고 모기만한 소리로 외쳐 보았지만 일본은 그런 소리에 아랑곳 하지 않고 2월 8일밤 일본군 3,500명가량을 제물포항에 상륙시켰다. 제물포에 사는 일본 거주민들이 횃불을 들고 나와 상륙군을 환영하였다.

이때 대한제국에는 군대 20,000여명과 해군 훈련함 청룡 1호가 있었지만 속수무책, 우두거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조선이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기게 되는 그 서막이었다.

 

이때 러시아 함대는 미국에서 건조된 신형 바략(Varyag)함과 소형 포함 카레이즈호 그리고 여객선 순가리오호가 제물포항에 자국 거류민과 공관원 보호라는 핑계로 이미 정박해 있었고 같은 항구에 이미 정박해 있던 일본 군함들이 이들을 예의 감시하고 있었다.

2월 8일 아침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모항인 여순항에 모종의 긴급사태를 알리려고 비밀 통지문을 가지고 항구 밖으로 빠져 나가려던 카레이츠호가 제물포 외항 팔미도 앞에서 일본의 함대가 접근해 오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게 도발해 오는 공격 함대인 줄 모르고 국제 해상 관례대로 인사를 나누는 신호를 보내었다. 그저 “안녕하십니까?. 별 일 없으시죠?” 하는 따위의 의미였다.

그러나 일본의 전투함이 앞을 가로 막고 주위로 다른 군함들이 포위하는 것을 보고 그때에야 당황해서 일본함대를 향하여 총을 쏘며 다시 제물포항으로 되돌아 도망쳤다.

이때 일본 함대에서 어뢰로 대응해 양쪽 함정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이때 제물포항에 머물고 있던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군함들이 불똥이 튈까 봐 위협을 느낀 나머지 항구 한쪽으로 피신을 하였다.

제물포 항에 머물고 있던 형님격인 러시아 바략함이 카레이츠호가 피해를 입고 돌아오는 꼴을 보고 보복하겠다고 항구 밖 일본함대를 향해 전진해 나아갔다. 이때 그 함상에는 사기를 돋군다고 해군 군악대가 러시아 애국가를 연주하며 출전을 하였고 주위의 다른 나라 함상에서도 응원으로 군악대가 행진곡을 연주해 주었다. 카레이츠함도 일본함대와 싸우러 뒤를 따라 나갔다.

큰 군함 바략함이 제물포 밖 해상으로 나가 보았으나 진치고 있는 14대의 일본 무장 함대를 쳐부시기에는 중과부족으로 어림이 없었다.

14대 2의 열세에서 공방전을 치루 워 보았으나 그 전세는 두 척의 러시아함대가 얻어 맞기만 하는 형세였다. 일본군 공격조 해군 전투병들이 러시아함 바략호에 기어 올라가 육탄전으로 러시아 수병들을 죽이기도 하고 둘레의 일본함정들이 대포와 어뢰를 퍼부어 두 러시아 함대가 큰 피해를 입고 다시 제물포항에 도망해 왔다.

 

제물포항은 소위 중립항이라고 열강들이 만들어 일본함대들에게 중립항 안에서 전투 행위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정박 중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함정들이 항의하고 나섰다.

그리고는 만신창이가 되어 후퇴해 온 러시아 두 함대로 부터 부상자들을 돌보기 위해

열강 함대들이 에워 싸 주었다. 그때에 국제 함정들의 뱃머리에 매달아 올린 적십자 깃발이 효험을 발휘하였다.

제물포 외항에서 진치고 위협하고 있던 일본함대로부터 계속 러시아함대에게 항복하라고 여러번 재촉이 왔다. 사실 일본 해군은 미국에서 건조된 신형 버략함을 전리품으로 끌고 가 일본 천황께 승전 기념품으로 보이고 자기네가 쓸려고 나포할 심산 이었다.

 

일본 함대는 러시아 함대에게 항복하라고 계속해서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략함 함장 루덴예프 대령은 항복은 없다, 최후의 한사람까지 싸우겠다하고 버텼다.

하지만 재기가 불가능하리만치 피해를 크게 입은 그의 함대로서는 도저히 전투를 벌릴 힘이 없어 패배를 느낀 나머지 결국은 자폭하기로 결심하였다.

2월8일과 2월9일 사이 러.일 함대의 격전에서 숨진 러시아 수병 40여명과 생존자 650명은 중립국이면서 친 러시아 편인 프랑스함대에 옮겨 실었다.

그리고는 진수한지 얼마 안 된 신형 바략함은 일본 해군에게 빼앗기느니 자폭하겠다고 결심하고 폭파, 침몰시켜 버릴 려고 하였으나 주위의 중립국 함정들에게 그 파편이 날라 와서 피해를 입힐까 봐 배수관의 문을 열고 바닷 용수를 침수시켜 가라 안치라는 다른 나라 함장들의 권고를 받아 들여 인위적으로 침수, 수장시켰다.

그리고는 소형 카레이츠함은 스스로 자폭, 격침시켰다.

적군에게 러시아의 자존심인 군함을 빼앗기는 수치는 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결의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비무장 여객선 순가리호는 불태워 버렸다.

 

큰 군함 버략함을 물에 갈아 안칠 때 좀 더 외항 쪽 깊은 바다로 끌고 가 갈아 안쳤더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수심이 낮은 내항에서 수장시켰기 때문에 한쪽이 바닥에 닿아 반 침몰 상태라서 훗날 일본 해군이 인양해서 수리한 다음에 일본 함정으로 쓰이다가 종전 후 러시아에 반환하였다. 수심이 너무 얕은 데에서 침몰시킨 것이 러시아 함장의 착오였다.

 

지금도 러시아에서는 자결한 이 두 함정의 최후 순국 투혼을 기려 추모하고 있다.

인천시에는 자폭, 침몰한 러시아 함대의 비통한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