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아주 오랫동안 아편과의 전쟁을 치러왔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얻을 수가 없었고,
오히려 사회문제를 심화시키는 결과만 초래하였다.
게다가 일반인에서부터 귀족에 이르기까지 사회 각계각층이 심한 중독상태에 빠져 있었다.
특히 청나라의 10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였던 선통제(宣統帝)의 아내 완정황후조차
아편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녀는 19살에 처음으로 아편을 흡연하였는데,
문제의 아편은 톈진에서 일본인들에 의해 공급되던 것이었다.
선통제(宣統帝)와 완정 황후
황후의 중독은 일본인들에 의해 널리 선전되었으며,
일본 스파이였던 집사는 황후의 일거수일투족을 일본에 낱낱이 알렸다.
1938년 7월 10일부터 1년 간 황후는 장수를 위한 연고라고 불렀던 아편을 740온스나 흡연했는데,
그녀가 피운 아편의 양은 하루에 2온스 가량으로 이 정도면 중독되지 않은 흡연자에게는
치사량에 가까운 분량이었다.
이후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하자 그녀는 더 이상 상아로 된 파이프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으며
그토록 원하던 아편도 구할 수가 없었다. 중국 공산당 군대는 그녀를 아편 입수가 금지된
지린성(吉林省)에 있는 독방에 감금하였고, 그녀는 금단 증상에 빠졌다.
일본 황실의 먼 친척이며 감방 동료였던 사가 히로는 완정황후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선통제의 동생 푸제와 사가 히로의 결혼식
공산당 군인들과 호기심 많은 농부들이 그녀를 보려고 감방 앞에서 떠들고 웃자
황후는 아편을 달라고 비명을 질러댔다. 오죽하면 같이 수용된 죄수들이
그녀를 조용히 시키라고 고함을 지를 정도였다.
그녀는 끊임없이 구경꾼과 간수들에게 아편을 달라고 애걸했고,
그렇지 않을 때는 자금성에 돌아온 것으로 착각하고 자신을 목욕시키거나 음식을 대령하라고 소리를 쳤다.
감방은 그녀의 소변과 대변 그리고 토사물로 더럽혀졌고, 간수들은 그녀에게 먹을 것을 주거나
씻기는 일은 물론 심지어 더러운 감방 안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완정황후는 영양실조와 금단증상으로 죽음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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