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중국 이야기

중국 방면군의 항복 2

구름위 2013. 1. 4. 20:31

패전이 결정된 8월 15일, 중국 파견군 사령부는 발칵 뒤집혀 있었다.
충혈된 ダ� 병사들, 창백한 장교들, 눈물짓고 있는 장군들의 얼굴이 총사령부의 현관을 들락거리고 있다.

오까무라 총사령관 방에는 고바야시 총참모장, 이마이 참모부장, 오가와, 혼다, 하시지마, 마에가와 참모 등 파견군 막료들이 오까무라 대장을 빙 둘러싸고 회의를 열고 있었다.
전선으로부터 지시를 요청하는 연락 전보가 연신 날아들었다. 파견군은 독자적인 항전을 계속해야 된다는 전보도 들어왔다.

어수선한 가운데 총사령부 수뇌부는 일본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처사로서 숙연히 투항, 무장해제 명에 복종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날 오후 총사령부에 중경 제3전구 사령장관 고축동 대장의 군사가 나타났다. 일찌기 상해로 잠입해 들어와 있던 장숙평 장군과 당유임의 형인 당망 두 사람이었다.

장 장군이 휴대하고 온 고축동 대장의 총군에 대한 지시는 「즉시 오까무라 대장의 대리를 강서성 옥산으로 파견하라」는 내용이었다.
총군은 이마이 다께오 총참모부장을 오까무라 대장의 대리로서 파견하게 되었다. 이마이 총참모부장은 17일 아침 참모인 하시지마 요시오 중령, 마에가와 구니오 소령, 통력 기무라 다쓰오 등 세 사람을 대동하고 항주로 날아갔다.

옥산 비행장은 착률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전혀 알 길이 없다. 고축동과의 직접 연락도 안된다. 평소 고 대장과 연락을 유지하고 있던 정묵촌도 옥산 회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 이마이 소장은 정묵촌을 통해서 곧 고축동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나 고 대장으로부터 18일 낮에 이르러서야 옥산 비행장은 파괴되었으니 호남성 지강으로 가라는 연락이 있었다.

이마이 소장 일행은 18일 밤 늦게 상해로 돌아와서 밀사 장숙평과 회견했다. 장 장군에게는 벌써 장개석 위원장으로부터 오까무라 사령관 앞으로 지시가 와 있었다.
오까무라 대장의 대표를 호남성 지강으로 파견하라. 21일 오전 10시(중경시간) 상덕(동정호 서안) 상공으로 비행기에 빨간 풍향기를 달고 나타나라는 것이었다.

오까무라 총사령관은 수석 대표에 이마이 다께오 소장, 수행원으로 하시지마 요시오 중령, 마에가와 구니오 소령, 통역에 기무라 다쓰오를 각각 지명했다. 일행은 20일 아침, 총사령관 전용기인 MC형 수송기로 상해를 출발, 한구로 향했다.
21일 오전 10시, 빨간 풍향기를 단 MC형 수송기는 지정된 시간에 상덕 상공에 나타났다. 그러자 P34형 전투기 6대가 갑자기 나타나 대표기의 전후, 좌우, 상하를 둘러쌌다. 적기의 호위로 날으기를 한 시간 반, 산간에 있는 지강 비행장에 착륙했다.

대표일행이 비행기에서 내리자 미, 중국의 신문사, 통신사의 카메라 플래쉬가 일제히 대표에게 향해졌다.
그러자 진이라고 자칭하는 두 사람의 소령이 사진반을 해치면서 나타나 대표 일행을 맞이했다. 그 중 한 사람의 진 소령은 이마이 소장과 구면인 사이다.

이마이 소장이 북경 대사관부 무관 보자관 당시 신문기자로 있던 사람이다.(1963년이라고 해서 연도는 뺐습니다. 죄송합니다.)

대표 일행은 두 대의 찦차에 실려 전후에 경호를 받으며 군용 바라크 숙사에 도착했다. 두 진 소령이 접대역이었는데 네 사람은 보이가 딸린 따로따로의 방, 침대 그리고 새 침구가 주어졌다. 목욕실도 서둘러 만들어져 있었다. 식사도 특별한 배려가 되어 있었고 헌병이 숙사를 경비해 주고 있었다.

21일 오후 4시부터 드디어 정식 회담이 시작되었다. 장방형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見뗌� 소장 좌우에 하시지마, 마에가와 참모, 기무라 통역. 건너편에 마주보고 중국측 육군 총사령부 참모장 소의숙 중장을 중심으로 하고 좌우에는 부참모장인 냉흥 중장, 중국 전구 미군 작전사령부 참모장 파틀러 준장, 통역인 왕무 대령 주변을 50, 60명의 미, 중 양국의 신문, 통신사의 기자가 둘러싼다.

소 중장: 본관은 중국전구 최고 통수 장 중경 각하의 명을 받는 하응흠 각하를 대표하여 귀관을 접견하는 참모장 소의숙 중장이다....

중국측 각 대표가 소개되고 소 중장이 다시 입을 연다.

소 중장: 일본군 대표인 신분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소지하고 있는가, 제시하라.

이마이 소장: 요하시는 증명서는 소지하고 있지 않다.

이마이 소장은 대담하게 선뜻 말했다.
소, 냉, 파틀러 각 대표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어 이마이 소장은 일본측 각 군사를 소개한 다음,

"본관의 임무는 정전 협정의 체결 준비를 위한 예비 교섭이다. 따라서 협정과 조인 등의 임무는 부여되지 않았다. 장 위언장에게 신속히 연락하는 것은 패자의 예의로 알고 자주적으로 이곳에 날아온 것이다."

중국측은 뜻밖이라는 표정이다. 회담은 예사롭지 않은 공기로 가득해졌다. 잠시 후,

소 중장: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나?

이마이 소장: 연락 임무를 받은 일본군 작전 명령의 사본을 가지고 있다.

소 중장: 작전 명령은 신분증명서를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인정한다.

벽두에서 시간을 소비한 신분증명서 문제는 이것으로 겨우 일단락되었다.

소 중장의 요청에 의하여 이마이 소장이 중국, 대만 북위 16도 이북의 베트남에 있는 일본군의 전투 서열, 병력, 배치 및 지휘계통 관계 서류를 제출한 후, 소 중장은 오까무라 대장에게 보내는 「중국 육군 총사령부 비망록」 제1호를 중, 일, 미 3개 국어로 낭독하고 이마이 소장에게 수교한다. 하응흠 대장으로부터 오까무라 야스지 대장에게 교부될 비망록 제1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1. 나는 중국전구 중국 육군총사령의 지위로써 중국 전구 최고 통솔 특급상장 장 중장의 명령에 의하여 중화민국(요령, 길림, 흑룡강 3성, 대만, 월남 북위 16도 이북의 지구 포함)에 있는 일본 고급지휘관 전부, 육해공군 및 그 부속 부대의 투항을 접수한다.

2. 일본 주중 최고 지휘관 오까무라 야스지 장군은 비망록을 접수한 시간부터 본 총사령의 규정을 검행해야 할 것이며, 대만 및 월남의 북위 16도 이북에 있는 일본군도 이 규정에 의할 것을 오까무라 장군이 책임을 지고 동항 일본군의 투항을 지휘할 것임

3. 오까무라 야스지 장군은 비망록을 접수한 후, 다음 사항에 관하여 일본군 육해공군에 대해 필요한 명령을 하달할 것.

① 본 총사령 소할 구내에 있는 전 일본 육해공군 및 소속부대에 대해 즉시 적대행동을 정지시킬 것.

② 본 총사령 소할구내의 전 일본 육해공군 및 소속부대는 각 주둔지와 지정된 지역에서 명령을 대기할 것. 장 위원장 및 본 총사령관이 지휘하는 군외에 일본은 그에 투항하거나 또한 여하한 물자도 교부할 수 없음.

③ 본 총사령 소할구의 전 일본 육해공군 및 소수부대의 탄약, 항공기재, 선박, 교통 공구, 비행장, 해항 부두, 공장 등 일체의 군사 건축, 사건관계 서류, 정보 자료는 책임을 지고 보관하며 이동시킬 수 없음. 오까무라 야스지 장군은 그 전 책임을 지고 본 총사령의 접수에 일임할 것.

④ 본 총사령 관할구의 전 일본 육해공군 및 소속부대는 소재지구에 있어서 책임을 지고 양호한 질서를 유지하여야 하며 이는 장 위원장 및 본 총사령과 책임 장관의 접수시까지 행해질 것임. 이 기간내에 행정기관을 장 위원장의 명령 아닌 관리 및 대표 인원에게 이행함을 절대로 금함.

⑤ 본 총사령 소할구의 연합군 포로 및 거류민은 자유를 회복하여 충분히 의식, 의약을 공급하는 외에 지정 지구로 운송할 것.

⑥ 일본군으로 하여금 본 총사령의 명령을 집행시키기 위해 본부로부터 냉흠 중장을 1차로 남경에 파견, 총지휘부를 설치할 것이며 대개 냉흠의 요구하는 바는 즉각 처리되어야 할 것임

 

21일부터 23일까지 회담은 몇 차례에 걸쳐 개최되었다.
이마이 소장은 중국에 잇는 일본군은 자위 행동을 제외한 전투를 전부 중지한 사실, 무기, 군수품, 군용, 공용 시설 자재는 일체 파괴소각을 엄금하여 완전한 상태로 중국측에 교부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한 다음 비망록 및 일본의 자위행동에 대하여 중국 대표와의 문답이 행해졌다.

이마이 소장: 일본군은 천황폐하의 대명으로 행동한다. 따라서 그 비망록만으로 일본군은 행동할 수가 없다. 또한 월남과 대만, 만주지구는 파견군 총사령관의 권한 밖이므로 대본영으로부터 대명을 받아 권한을 부여받지 않으면 예속(완전 직속) 이외의 부대를 지휘할 수가 없다.

채문치 소장: 마닐라에서 진행중인 협정이 결정되면 각각 필요한 요견을 귀국 대본영에서 지시할 것이다. 따라서 귀관의 설명 사항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이마이 소장: 중공군은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무력으로 강요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일본군은 자위를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또한 남경에서는 이미 주호라고 칭하는 자가 국민정부군의 전선 지휘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임원도(남경정부 해군부장)는 장개석 위원장의 명령을 받았다고 자칭하고 남경지구 선견군 사령으로서 행동을 개시하고 있다. 이들에 대하여 어떻게 처리하면 좋은가?

소 중장: 하응흠 총사려관이 명령을 받은 자 이외에 대해서는 여하한 부대에서의 무장 해제의 요구, 기타 교섭이 있어도 이들 무장 단체는 토비에 속하는 것으로 일본군으로서는 자위행동을 취해도 할 수 없다.

이마이 소장: 화포, 중기류 따위의 부대장비 병기는 따로 하더라도 개인 장비인 휴대 병기를 조급히 박탈하는 것은 제국군인으로서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채 소장: 우리는 일본의 무사도정신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본관은 휴대 무기의 취급에 관하여 직답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상사에게 보고하겠다. 당면한 문제로서는 귀국군이 점령하고 있는 거점에 진주하기까지 기ㅜ국군이 그 거점을 계속 확보하며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마이 소장: 우리 편이 지금 관리 운영하고 있는 교통선을 완전히 유지하는 것은 일본군의 철퇴, 귀국군의 진주에 모두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우리 군은 교통선을 확보하고 파괴장소는 예의 수리중에 있다. 교통선의 양도 후에도 우리측으로서는 운전, 수리 등에 대하여 기술적 원조를 제공할 용의가 있다. 또한 일본군 환자의 치급에 대해서는 병원, 약품, 식료품 등 인도적 입장에서 배려해 주기를 바란다.

채 소장: 환자의 건은 승낙하겠다.

이마이 소장: 군사 문제는 아니나 일본측 지구에서 오늘날까지 귀측의 의사에 반하여 일본측에 협력을 한 귀국인이 있는데(남경정부의 요인들), 귀측의 그들에 대한 감정으로서는 증오감을 가질 것은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평화지구 민중의 행복을 도모하고 치외법권의 철폐, 그조계의 회수 등에 대해 적지 않은 공헌이 있다. 그들의 죄는 일본측이 져야 할 것이다. 그들에 대한 차후 취급에 있어서는 각별한 관대를 베풀어 달라.

채 소장은 이에 대해서 대답이 없다.

파틀러 준장: 재중 미군 포로들의 상태는 어떤가?

이마이 소장: 본관 및 수행원 중에는 포로 사무에 정통한 자가 없다. 따라서 남경 귀환 후 즉시 조사를 명하겠다.

파틀러 준장: 미군은 포로에 관한 기록을 제출할 것을 요구한다. 미군은 이에 의하여 일본군의 포로취급에 관하여 철저한 조치를 취할 바임이다.

이마이 소장: 남경귀환 후 보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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