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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자 본받고자 하는 이상형 그자체이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그는 혼란의 시대를 평화와 안정의 시기로 전환시키고자 자신의 일생 전부를 betting했던 인물이다. 물론 그 목표달성에 이에야스만의 권력에 대한 욕심과 경쟁의식이 개입되었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이기적인 사심(私心)때문에 그의 업적 자체를 폄하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도쿠가와 막부의 영구적 통치를 위해 때때로 무자비할만큼 이익에 도움이 안되는 사람을 제거했던 것도 사실이나, 그 과정이 어찌되었건 이에야스는 전국시대의 혼란한 과정을 잠재웠고, 통일 이후 일본의 정치적-경제적 고도성장을 가져온 국가적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이기성에 모든 책임과 비난을 부과할 만큼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은 과연 몇이나 될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태어난 시기는 1542년 12월 26일로, 당시 일본은 중앙정부의 통제력을 잃고 각지에 군웅이 할거하여 갈기갈기 찣겨진 분열과 모순의 시대였다. 여기서 모순이라 함은, 조정으로부터 파견된 여러 지방의 다이묘들이 겉으로는 천황과 쇼군에 대한 예(禮)를 다하면서 속으로는 영지확대와 가문의 명예를 위해 언제든지 명분보다는 실익을 취할 실리적인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은 단순무식하게 총과 칼을 들고 상대를 제압하는 무력 뿐만 아니라 치밀하고 노련한 정치적인 수완이 함께 요구되는 사무라이들을 창출했다.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여타의 다이묘들 중 유난히 경쟁력이 있었고 전국시대의 패권을 장악했던 것은, 그러한 강한 무력과 정치력을 넘어 일본통일에 대한 남다른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가문과 정파를 초월하여 '한 국가로서의 일본'이 유수의 강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기위한 국가경영인으로서의 사고다. 이 세 영웅들은 물론 가문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 때로는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전략을 취했지만, 항시 궁극적인 통일의 목표를 국가경제안정과 실추된 중앙정부의 권위확립에 두었고, 이는 곧 백성들이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 각자의 생업과 가정활동에 안정적으로 종사할 수 있게하기위한 수단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경우 인성적으로 치명적인 결함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의 목표가 말년에 변질되고 이에따라 주변사람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노부나가의 급진성과 포악함은 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 몰라도 잠재운 다음의 일들을 처리하기 위한 바람직한 성품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세력을 확대시키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피를 많이 흘리고 특정 부하들을 차별했다고 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성격을 감안할 때 그 비위를 맞추는 부하들의 두려움과 노력이 아마 다른 다이묘들의 가신보다 배가 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결국 노부나가는 부하의 배신으로 천하포무의 기치를 올리지 못한 채 죽고만다. 반면에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와 판이한 성격의 인물이다. 비천한 출신답게 어느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친근함을 지녔고, 상당히 약삭빠르고 재치가 있어 전략과 외교에 있어 가히 천재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밑바닥에서 자란 사람답게 이후 권력을 얻자 그 욕심이 광폭적으로 자라나게 되고 조선침략이라는 불필요한 야욕까지 부리게 되었으며, 임진왜란때 출병한 다이묘들의 부인들을 수청이라는 명목으로 일일히 동침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말년의 엽기적인 행각은 세상이 보았을 때 전국을 경영할만한 자질을 갖춘 인물이 아님을 쉽게 증명하는 예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권력에 대한 욕심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따라올 자가 없다고 본다. 그는 권력을 잡기위해 처자를 죽이고 자신을 보살핀 다른 가문마저 쉽게 배신하는 인물이다. 단, 이에야스의 매력은 이러한 권력추구의 과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상당히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그 와중에 다른 사람들의 신뢰까지 얻게하는 탁월한 정치력이다. 바로 그러한 정치적 수완이 그의 최대의 경쟁력이라 할 수 있다. 국가적 측면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노회한 인물이 권력추구의 목적을 사익 뿐만 아니라 공익에 두었다는 점이 훗날 일본의 성장을 가져온 행운적 요소가 되었다고 본다. 한 국가의 지도자란 결코 간디나 테레사 수녀와 같은 성인이 아닌 국가발전을 위해 필요한 자질, 예를 들면 타 국가를 상대로 한 실리외교나 정치적 안정을 위한 파벌세력 제거와 같은 영악하고 무자비한 성품도 함께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쿠가와 이에야스 하면 그냥 일본을 통일한 사람 또는 두견새와 관련한 일화 또는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나마 소설이 절찬리 시판되어 이에야스의 비전과 위대함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독자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네이버 인물검색에서는 이에야스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일본 에도 막부[江戶幕府]의 초대 장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세키가하라전투에서 그의 지지세력을 제거하고 지방 제후를 압도하여 일본 전역의 실권을 장악하고 에도에 막부를 개설, 패자의 지위를 합법화했다. 여러 가지 정책으로 일본 근세 봉건제사회를 확립했다."
이제 이러한 불명확하고 지나치게 압축된 서술이 아닌 비교적 자세한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쓸 예정이다. 그의 일대기는 정말 high-risk, high-return의 공식을 철저히 따른, 모험과 반전이 가득한 소설이다. 편안함보다는 위험이 동반된 발전을 추구한 그의 삶을 보면서 배울 점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나오길 염원하면서 글을 쓴다.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자 본받고자 하는 이상형 그자체이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그는 혼란의 시대를 평화와 안정의 시기로 전환시키고자 자신의 일생 전부를 betting했던 인물이다. 물론 그 목표달성에 이에야스만의 권력에 대한 욕심과 경쟁의식이 개입되었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이기적인 사심(私心)때문에 그의 업적 자체를 폄하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도쿠가와 막부의 영구적 통치를 위해 때때로 무자비할만큼 이익에 도움이 안되는 사람을 제거했던 것도 사실이나, 그 과정이 어찌되었건 이에야스는 전국시대의 혼란한 과정을 잠재웠고, 통일 이후 일본의 정치적-경제적 고도성장을 가져온 국가적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이기성에 모든 책임과 비난을 부과할 만큼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은 과연 몇이나 될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태어난 시기는 1542년 12월 26일로, 당시 일본은 중앙정부의 통제력을 잃고 각지에 군웅이 할거하여 갈기갈기 찣겨진 분열과 모순의 시대였다. 여기서 모순이라 함은, 조정으로부터 파견된 여러 지방의 다이묘들이 겉으로는 천황과 쇼군에 대한 예(禮)를 다하면서 속으로는 영지확대와 가문의 명예를 위해 언제든지 명분보다는 실익을 취할 실리적인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은 단순무식하게 총과 칼을 들고 상대를 제압하는 무력 뿐만 아니라 치밀하고 노련한 정치적인 수완이 함께 요구되는 사무라이들을 창출했다.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여타의 다이묘들 중 유난히 경쟁력이 있었고 전국시대의 패권을 장악했던 것은, 그러한 강한 무력과 정치력을 넘어 일본통일에 대한 남다른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가문과 정파를 초월하여 '한 국가로서의 일본'이 유수의 강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기위한 국가경영인으로서의 사고다. 이 세 영웅들은 물론 가문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 때로는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전략을 취했지만, 항시 궁극적인 통일의 목표를 국가경제안정과 실추된 중앙정부의 권위확립에 두었고, 이는 곧 백성들이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 각자의 생업과 가정활동에 안정적으로 종사할 수 있게하기위한 수단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경우 인성적으로 치명적인 결함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의 목표가 말년에 변질되고 이에따라 주변사람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노부나가의 급진성과 포악함은 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 몰라도 잠재운 다음의 일들을 처리하기 위한 바람직한 성품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세력을 확대시키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피를 많이 흘리고 특정 부하들을 차별했다고 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성격을 감안할 때 그 비위를 맞추는 부하들의 두려움과 노력이 아마 다른 다이묘들의 가신보다 배가 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결국 노부나가는 부하의 배신으로 천하포무의 기치를 올리지 못한 채 죽고만다. 반면에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와 판이한 성격의 인물이다. 비천한 출신답게 어느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친근함을 지녔고, 상당히 약삭빠르고 재치가 있어 전략과 외교에 있어 가히 천재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밑바닥에서 자란 사람답게 이후 권력을 얻자 그 욕심이 광폭적으로 자라나게 되고 조선침략이라는 불필요한 야욕까지 부리게 되었으며, 임진왜란때 출병한 다이묘들의 부인들을 수청이라는 명목으로 일일히 동침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말년의 엽기적인 행각은 세상이 보았을 때 전국을 경영할만한 자질을 갖춘 인물이 아님을 쉽게 증명하는 예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권력에 대한 욕심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따라올 자가 없다고 본다. 그는 권력을 잡기위해 처자를 죽이고 자신을 보살핀 다른 가문마저 쉽게 배신하는 인물이다. 단, 이에야스의 매력은 이러한 권력추구의 과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상당히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그 와중에 다른 사람들의 신뢰까지 얻게하는 탁월한 정치력이다. 바로 그러한 정치적 수완이 그의 최대의 경쟁력이라 할 수 있다. 국가적 측면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노회한 인물이 권력추구의 목적을 사익 뿐만 아니라 공익에 두었다는 점이 훗날 일본의 성장을 가져온 행운적 요소가 되었다고 본다. 한 국가의 지도자란 결코 간디나 테레사 수녀와 같은 성인이 아닌 국가발전을 위해 필요한 자질, 예를 들면 타 국가를 상대로 한 실리외교나 정치적 안정을 위한 파벌세력 제거와 같은 영악하고 무자비한 성품도 함께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쿠가와 이에야스 하면 그냥 일본을 통일한 사람 또는 두견새와 관련한 일화 또는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나마 소설이 절찬리 시판되어 이에야스의 비전과 위대함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독자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네이버 인물검색에서는 이에야스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일본 에도 막부[江戶幕府]의 초대 장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세키가하라전투에서 그의 지지세력을 제거하고 지방 제후를 압도하여 일본 전역의 실권을 장악하고 에도에 막부를 개설, 패자의 지위를 합법화했다. 여러 가지 정책으로 일본 근세 봉건제사회를 확립했다."
이제 이러한 불명확하고 지나치게 압축된 서술이 아닌 비교적 자세한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쓸 예정이다. 그의 일대기는 정말 high-risk, high-return의 공식을 철저히 따른, 모험과 반전이 가득한 소설이다. 편안함보다는 위험이 동반된 발전을 추구한 그의 삶을 보면서 배울 점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나오길 염원하면서 글을 쓴다.
출처 : 日本戰國時代物語
글쓴이 : Shogun21c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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