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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방의 대폭발로 날아가버린 어느 나라 함대 이야기

구름위 2012. 12. 3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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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살펴 보면 영토가 어느 정도 육지에 걸쳐 있는 나라보다는 아예 다른 나라들과 따로 떨어진 섬나라들이 해군을 중시하는 경향이 대체적으로 강합니다. 물론 어떤 법칙이든 일부 예외는 있게 마련이어서 독일 제2제국이나 에스파냐의 무적함대와 같이 대륙에 위치하면서도 강한 해군을 보유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런 나라들에서는 강한 해군도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존재였습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대륙국가라는 한계 때문에 인접한 육군 강국들과 경쟁하느라 육군에도 대규모 투자를 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섬나라의 경우에는 외적의 침략을 막으려면 강력한 해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이렇게 강력한 해군을 보유한 섬나라의 대표적인 예가 영국이었어요. 이들은 모두 섬에 자리를 잡았으므로 육지에서 맞서는 적이 없었고, 생존을 위해 해외통상을 꼭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통상로를 지키기 위해서 강한 해군을 필요로 했지요. 그 결과 영국해군은 수백 년에 걸쳐 세계의 바다를 지배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에 이어 전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도 역시 일종의 섬나라라고 볼 수 있는 것이, 미국은 자국을 위협할 만한 육지로 이어진 강대국이 없기 때문에 그만큼 더 해군에 몰두할 수 있거든요.

그럼, 이런 식으로 해양 패권을 움켜쥐었던 섬나라들은 이들 뿐일까요?

천만에요. 인류가 배를 만들어 바다로 나간 것은 최소한 9천년 이전(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배가 기원전 7천년 경의 통나무배입니다)이고, 4천년 전에는 이미 활발한 해상무역과 함께 해전도 존재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그런 역사 속에서 형성된 최초의 해양 패권국은 가장 오래된 인류 문명의 발상지와 인접한 바다, 지중해에 존재했었어요. 그리스 신화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바로 그 나라, 미노아 문명이 자리잡았던 크레타 섬이 바로 최초의 해양제국입니다.


 


 

크레타 섬, 그리고 크레타 문명의 수도였던 크노소스 유적의 위치



이 미노아 왕국은 그리스 신화에서도 종종 언급됩니다. 그리스 신화 속의 크레타는 제우스 신이 태어난 신성한 곳임과 동시에, 막강한 함대와 수많은 용맹한 병사들을 거느린 제우스의 아들 미노스 왕이 통치하는 곳으로 묘사되지요. 크레타의 강대한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신화가 다들 잘 알고 계실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의 이야기입니다. 크레타를 지배하는 미노스 왕은 아테네에서 열린 운동경기에 참가했다가 사고로 죽은 아들의 복수를 위해 수많은 군선과 병력을 동원하여 아테네를 침공했고, 아테네를 멸망시키지 않는 대신 매년 7명씩의 소년소녀를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제공받는 조건으로 종전조약을 체결합니다. 역시 다들 아시는 이야기죠? 미노타우루스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나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이야기는 오늘의 주제에서 벗어나므로 생략.

물론 신화 자체가 곧 역사 그대로는 아닙니다. 하지만 신화라는 것의 형성 배경에 역사가 깔려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바꿔 말해 신화 속에도 일말의 역사적 진실이 담겨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미노타우로스야 상상 속의 존재라고 하더라도(인간과 소의 교잡종이란 것이 가능할 리가 없잖습니까? 황구라가 그 시절에 살았던 것도 아니고^^) 강력한 함대와 군대를 보유한 크레타라는 나라가 존재했다는 정황증거는 충분히 될 수가 있지요.


 

미노타우로스 전설의 원형이라고 일부에서 추정하는 크레타의 황소 등 타기 놀이.
크노소스 궁전의 벽화입니다.



가장 유명한 이 미노타우로스 전설 말고도 미노스 왕의 그리스 본토 침공에 대한 전설은 또 있습니다. 이건 좀 덜 유명한 신화인데, 아직 젊은 미노스 왕이 함대와 병사들을 이끌고 그리스의 메가라라는 도시를 공격하고 있을때의 이야기에요. 공성전이 수월하게 진행이 되지 않아 도시를 포위한 채 말을 타고 메가라의 성벽 주위를 돌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이때 메가라의 공주인 스킬라가 성벽 위에서 적군의 진지를 바라보다가 생전 처음 보는 얼짱(...)인 미노스 왕에게 반해버리고 맙니다. 결국 그녀는 사랑이냐 충성이냐의 문제로 갈등하다가 미노스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고 결심하고, 잠자는 아버지의 보라빛 머리카락 - 이 머리카락이 있는 한 메가라는 누구에게도 함락되지 않는 마법의 힘이 있었습니다 - 을 끊어가지고는 미노스의 막사로 숨어듭니다(낙랑공주는 그래도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호동왕자의 부추김 때문에 자명고를 찢었지만, 스킬라는 그보다 더하군요). 그리고 아버지의 마법의 머리카락을 내보이며 미노스에게 사랑을 애걸하지요.

여기에 대한 미노스의 반응은?

"이 요망한 것, 얼른 꺼져라! 나의 아름다운 크레타를 너같이 간악한 년의 발로 더럽히게 할 것 같으냐?"

그리고는 서둘러 메가라 왕 니소스와 관대한 조건으로 평화조약을 맺고 군대를 이끌고 크레타로 돌아가는 배의 돛을 올렸습니다.
.........스킬라 공주요? 당연히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버리고 갔지요. 맞습니다, 스킬라는 새 된 겁니다(먼산).

하지만 스킬라라고 이런 대우를 받고 가만이 참고 있을리는 없는 법.

"야 이 저주받을 놈아! 난 너 때문에 부모도, 조국도, 공주라는 지위도 모두 버렸어. 그런데 날 버리고 간다고? 네가 누구 덕에 싸움에서 이긴 줄이나 알아? 난 너와 함께 갈거야, 함께 가고야 말겠어!"

그리고는 바다에 뛰어들어 미노스가 탄 배의 키(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키 역할을 하는 큰 노)를 붙들고 늘어졌습니다. 그런데 배가 바다 한복판까지 나갔을 때 물수리로 다시 태어난 그녀의 아버지 - 너무도 분해서 자결한 - 가 하늘에서 내려와 노에 매달린 그녀를 공격, 바다에 빠트려 죽이고 말았지요. 익사한 그녀는 훗날 백로로 다시 태어났지만, 물수리가 된 그녀의 아버지는 그 옛날의 원한을 잊지 못해 지금도 백로만 보면 공격을 한다고 합니다.


얘기가 좀 많이 새기는 했습니다만, 위의 두 가지 신화로 보아 크레타 섬에 강력한 함대와 병력을 가진 왕국이 있었고 최소한 두 차례 이상 그리스 본토에 대한 침공을 감행한 사실이 있다는 방증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크레타에 강력한 왕국과 함대가 있었다고 할 만한 증거가 이 두 가지 신화에만 있는 건 아니에요. 신화는 어디까지나 정황증거만을 제공할 뿐, 직접적인 근거는 될 수 없습니다. 신화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확실한 증거는 충분히 신빙성 있는 문헌 기록이나, 말 그대로 삽질로만 얻어질 수 있는 법이죠(웃음).



 


 


위의 사진들은 줄기찬 삽질탐사 끝에 20세기 초 발굴된 크노소스 궁전의 유적입니다. 첫 번째는 발굴된 유적의 항공사진, 둘째는 발굴된 증거들을 바탕으로 복원한 크노소스 궁전의 복원도, 세 번째는 유명한 크노소스 궁전의 프레스코 벽화죠. 세련된 외모와 머리장식 등, 고대인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차림새 때문에 이 세 여성의 초상은 파리지엔느 - 파리의 여자 - 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답니다^^
이만한 대규모 궁전과 예술품을 가질 만한 나라라면 엄청난 부와 세력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는 점은 강조할 필요가 없겠지요? 오늘날 우리는 이 문명을 미노아 문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삽질의 결과입니다. 산토리니 섬 아시지요? CF같은 곳에 자주 나오는, 그 하얀 벽과 파란 지붕을 가진 새파란 바다 한가운데의 그림같은 그 섬이지요^^



 

산토리니 하면 이 이미지가 더 익숙하실까요?




위의 두 벽화는 산토리니 섬의 "아크로티리"라는 매몰된 옛날 도시의 지하에서 발굴된 거랍니다. 이 벽화는 기원전 1500년경에 일어난 대규모 화산 폭발로 섬이 완전히 매몰되기 이전 미노아 문명이 발달했던 동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그림에서 미노아 문명 사람들이 충분한 숫자의 배를 가지고 활발한 해상활동을 했다는 것이 확인되지요. 또한 지중해 일대에서 발견되는 많은 유물이나 문헌에서도 크레타에 강력한 해상제국이 있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많은 증거가 나왔는데 이 제국의 흔적은 기원전 1500년경에 급작스럽게 소멸됐습니다. 왜, 그 누가 제우스의 아들이 다스리던 그 강력한 왕국 크레타를 멸망시켰을까요? 그 누구도 바다를 넘나들 수 없게 하던, 크레타의 강력한 함대를 한 방에 날려버린 대폭발의 정체는?


답은 이미 위에 있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산토리니 섬의 위치를 한번 보도록 하지요.


저 동그라미 속의 섬이 산토리니 섬입니다. 모양이 좀 특이한데....확대시켜보도록 하죠.


자, 보시듯이 산토리니 섬은 고리 형태로 생겼습니다. 왜 이럴까요? 이미 답은 말씀드렸는데......?






 

네, 이게 답입니다^^



산토리니 섬은 화산의 대폭발로 인해 섬 가운데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화산 가운데가 산토리니 섬처럼 텅 비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정말 대폭발로 산이 통채로 날아가는 거고 다른 하나는 속이 비어 스스로의 무게로 함몰하는 겁니다. 전자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고, 후자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래 그림을 봐주세요^^



위 왼쪽 그림의 화산 아래를 보시면 지하에 마그마 저장소가 있습니다. 이게 천천히 새어나간다면 마그마가 맨틀로부터 꾸준히 보충되기 때문에 산의 모양이 변하지 않지만, 폭발이 아주 격렬하면 너무 급격한 분출로 인해 지하의 마그마 저장소가 텅 비어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산 가운데가 중량을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게 되지요. 내려앉은 자리에 바닷물이 흘러들어오면 위 사진의 산토리니 섬과 같은 지형이 남게 됩니다. 현재 산토리니 섬의 육지 부분에는 저때 나온 막대한 양의 화산재가 쌓여 있는데, 위 벽화의 발굴이 이루어진 아크로티리의 경우 쌓인 화산재의 양이 겨우 9미터라는 얇은 두께라서 발굴이 가능했다고 하더군요(먼산).

산토리니의 폭발은 정말 강력했어요. 분출된 화산재의 양이 얼마나 많았는지, 산토리니 섬에서 동남쪽으로 140km나 떨어진 해역의 수심 3000m 해저에서 2m 두께로 쌓인 화산재가 나왔고 소아시아와 팔레스타인, 이집트 연안까지 산토리니의 대분화에서 나온 화산재가 날려가 쌓였습니다. 화산이 터질 때 발생한 해일이 발생한지 30분 만에 크레타 해안에 도착했을 때는 파고가 무려 90m, 파도의 속도는 354km에 달했을 거라고 합니다. 이 파도가 크레타 해안을 휩쓸고 지나가자 해안에 있던 항구고 함대고 모조리 작살이 났고, 날려온 화산재로 섬 동부 지방의 농경지가 모조리 매몰되어 버렸습니다. 수도인 크노소스는 그나마 내륙에 있었기 때문에 해일의 피해를 직접 입지는 않았지만, 제국의 기반은 완전히 박살이 나 버렸죠.

역사에 제대로 기록된 것 중에서 이 산토리니 섬의 분화와 비견할만한 분화라면, 단 하나 크라카토아 화산의 폭발 뿐입니다. 1883년 8월 27일에 일어났던 이 폭발은 실로 전 지구적인 영향을 끼쳤지요.
크라카타우 화산이 폭발하자 섬 자체의 대부분인 해발 800미터의 바위산과 15.4세제곱킬로미터의 암석이 허공으로 날아갔습니다. 이때 형성된 화산재 구름의 높이는 성층권을 넘어가는 80km에 달했고, 화산 분출물로 이루어진 이 구름이 대기권을 떠돌면서 햇빛을 차단한 탓에 일종의 핵겨울 현상이 발생하면서 지구의 기온이 하강하고 세계적인 흉작이 초래되었습니다(화산재로 인한 지구 온도 강하는 최근의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분화에서도 관측된 바가 있지요). 이만한 충격을 준 폭발이니 소린들 또 오죽 컸겠습니까? 중국, 인도와 호주는 물론이고 인도양의 로드리게스 섬(크라카토아에서 4800km)에서까지 그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대략 5000km의 범위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네요.
그리고 여기서 발생한 지진파는 대기권을 네 바퀴나 돌면서 세계 각지의 지진계와 기압계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이때 발생한 35m 높이의 해일은 자바, 수마트라 일대의 165개 마을을 휩쓸어 36417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 프랑스 보르도 해안까지 미쳤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 크라카토아 화산의 위력이 산토리니 섬에서 있었던 화산의 그것보다 1/4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이지요. 35m 높이의 해일이 저만한 피해를 입혔다면 크레타의 90m 해일은? 그리고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해일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다른 재난의 사례가 하나 더 있지요. 모두들 지난 2004년의 동남아시아 쓰나미를 기억하시지요? 이때 발생한 쓰나미의 높이는 불과 30m였지만 무려 16만 3338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었습니다. 고대와 비교할 때 인구밀도의 차이라든가 등등의 차이점이 있긴 합니다만, 막대한 피해라는 점은 일단 분명해요. 그런데...

크레타는 무려 90m 짜리 파도를 맞은 거지요(먼산).

이걸 맞은 크레타 함대가 무사할 수 있었다면 그게 거짓말이겠지요. 항구에 있던 배들은 모조리 박살이 났고(그 당시 배는 솔직히 그리 튼튼하지가 못합니다만, 오늘날의 해군이라도 90m 파도를 맞고도 멀쩡할 수 있는 함대는 없을 겁니다) 크레타의 제해권도 동시에 안드로메다로 사라졌습니다. 상업기반, 농업기반, 군사적 기반 그 모든 것이 사라졌으니 이제 부와 권세를 자랑하던 미노아 왕국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만 거죠. 지중해의 제해권을 쥐고 있던 미노아 인들은 너무도 자신감에 넘쳐 수도를 지키기 위한 성벽 같은 방어시설을 하나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해군력의 보호가 사라지자 각지에서 몰려온 약탈자들에게 간단하게 먹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약탈자들의 주력은 그동안 미노아 인들의 해군력에 눌려 있던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상무적인 기풍을 가진 무사들이었으므로, 통상에 주력했던 미노아 인들과 달리 산적질과 해적질, 전쟁을 즐겨 각지를 쑥밭으로 만듭니다(대표적인 예가 트로이 전쟁입니다). 이들은 결국 북방에서 내려온 또다른 민족, 도리아인의 침략으로 소멸하여 이들의 이야기는 신화 속의 "영웅시대"로 남게 됩니다만 그것이 신화를 벗어나기까지는 수쳔 년이 또 걸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