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함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분이시라면, 아마도 영국 해군 최후의 전함이자 사실상 전함이라는 함종의 마지막 세대에 속하는 배인 ‘뱅가드’에 대해 알고 계실겁니다. 그리고 이 뱅가드란 배가 전쟁이 끝나버린 후인 1946년에 준공되어 별반 활약도 해보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내다가 1960년에 해체되어 버린 것도 아마 잘 알려져 있을겁니다. 과거에 전함이라는 함종이 갖던 무게와 영향력을 감안해보면 이 배의 함생은 그야말로 ‘안습’이라 할 수 있을테죠.
이런 뱅가드가 걸어온 이력 중에는 특이하게도 ‘왕실 요트(Royal Yacht)’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요트’라는 표현 때문에 배수량 40,000톤을 초과하는 대형함으로서의 위신은 사라져버리고 유람선 취급을 받는가 하면, 전함이 폐물 취급을 받는 시대의 대표적 사례로써 종종 회자되기도 하더군요. 저도 상세한 내력을 몰랐을 때는 ‘전함이 저렇게까지 땅에 떨어지다니 안습’ 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뱅가드의 함생에 대해 상세히 다룬 책을 우연히 읽다 보니 이 ‘왕실 요트’의 실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나와 있었습니다.
1. 왕실 요트로서의 활동 내역
1) 배경
2차대전 종전 후 1년가량이 지난 1946년 중순, 영국 국왕 죠지 6세는 전쟁이 발발하기 전이었던 1939년 이래 6년만에 처음으로 해외 순방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상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었는데, 이는....
①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수상이었던 얀 스머츠 경의 요청.
② 전후 식민지와 영연방 국가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나고 있던 상황 속에서, 본국과 영연방 국가와의 결속을 돈독히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노동당 정부의 의향.
③ 2차대전 기간 동안 영국을 위해 헌신한 남아공 국민들을 직접 방문해서 감사를 표하고 싶다는 국왕의 개인적 의사.
④ 엘리자베스(오늘날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되는)와 마가렛 등 2명의 공주들을 국제무대에 데뷔시켜야 할 필요성.
등등의 이유 때문이었죠.
아직까지 대양을 넘나드는 장거리 항공 여행이 그다지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영국과 남아프리카를 오가는 여행은 당연히 배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이런 임무에 이용되곤 했던 기존의 왕실 요트 ‘앨버트&빅토리아’ 호는 1901년에 건조되어 선령 40년을 넘어가는 노령 선박이었던데다가 2차대전이 발발한 이후로는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본 일이 없었죠. 설비의 노후는 둘째치더라도 이 순방의 주목적 중 하나가 영연방 국가인 남아공의 국민들에게 영국이 아직도 죽지 않았다는 것을 과시하는데 있었던 만큼, 영국 정부 당국자들과 왕실 의전 관계자들 사이에는 이대로 앨버트&빅토리아 호로 해외 순방을 진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낡고 볼품없는 작은 배를 내세워서 영국의 건재를 과시한들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진 않았을테죠.
[이전의 왕실 요트 HMY Albert & Victioria III. 외관만 보자면 딱히 임팩트가 있다고는...]
그래서 각계의 관계자들이 토의에 토의를 거듭한 결과,
“병기로서의 실효성은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역시 일반인들에게 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은 전함만한 것이 없지” → “그럼 어떤 전함을 내보내지?” → “마침 지난 달에 건조돼서 내내 놀고 있는 배가 하나 있잖아?”
...라는 결론이 나서 마침내 뱅가드가 국왕 일가의 남아프리카 순방시 좌승함, 즉 ‘왕실 요트’로 선택되게 되었습니다.-_-;
2) 남아프리카 순방 (1947. 2. 1 ~ 5. 12)
왕실 요트 임무로의 투입이 결정된 후 가장 먼저 행해진 것은 국왕 일가가 거주하는데 필요한 설비와 인테리어를 설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철판과 파이프가 그대로 드러나 있던 군함의 격실은 순식간에 대양 여객선의 1등실처럼 육지의 호화로운 저택에 준하도록 개조되었고, 그 안에는 선대의 왕실 요트인 ‘앨버트&빅토리아’ 호에서 빼내온 가구들이 자리를 채웠습니다. 그래도 사진으로 보자면 호화로운 가구에 비해 아무리 개조를 해도 어딘가 어색하고 삭막한 벽과 천장이 뒤엉켜 묘한 분위기를 낳고 있죠.
국왕 일가가 뱅가드에 승선했던 1월 31일은 이른 아침부터 눈이 내리고 기온이 30년 만에 사상 최저를 기록하는 혹독한 날씨였다고 합니다. 덕분에 수병들은 국왕 일가가 도착할 때까지 갑판과 장비에 눈이 쌓이지 않도록 계속해서 밀대질을 했다고 하네요. 높은 사람이 올 때면 병사들이 고달퍼지는건 저 때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1월 31일 16시 경에 포츠머스 항에 도착한 죠지 6세가 뱅가드의 수병들을 사열하는 장면입니다.
뱅가드는 다음날인 2월 1일 오전 7시 경에 포츠머스 항을 출항하여 남아프리카로의 장도에 나섰습니다. 한편 11시 즈음에는 사진에서 보듯이 후부갑판에서 헬기의 착륙 실험이 행해졌습니다. 오늘날에야 항모가 아닌 구축함이나 프리깃 등에서도 헬기를 운용하는게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저런 실험을 거침으로써 비로소 헬기 운용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을테죠.
영불 해협에 도달한 뱅가드는 전함 넬슨·듀크 오브 요크, 항모 임플라케이블, 기타 소함정 수 척으로 구성된 본국함대와 프랑스 측의 전함 리슐리외 등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사진은 항모 임플라케이블)
국왕 일가. 우측 사진의 여자가 현재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입니다.(당시 20세.) 개인적으로 항상 나이든 시절의 모습만 봐와서 처음 봤을 때 저 모습이 전혀 매치가 안되더군요.
뱅가드의 마스코트인 고양이 미니를 데리고 노는 엘리자베스와 마가렛 공주.
항해가 거의 절반쯤 지난 2월 10일에는 뱅가드가 적도를 통과하면서 적도제가 열렸습니다. 사진은 1~2번 포탑 사이의 갑판에 마련된 행사장에서 용왕과 그 신하들(..으로 분장한 수병들)과 국왕 일가가 자리한 모습입니다.
적도제는 범선시대의 의례에서 기원한 해상 이벤트의 하나로써, 적도를 통과해본 경험이 없는 ‘풋내기’들을 곯리는 일종의 통과 의례 같은 행사입니다. 이 당시 취역한 후 별다른 활동이 없었던 뱅가드에는 유독 ‘풋내기’들이 많은 편이었는데, 이 점에서는 공주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다만, 같은 풋내기라도 공주들은 예의상 매우~ 관대하게 다뤄지긴 했지만요. 사진의 장면은 ‘용왕의 이발사’ 라고 해서 보통의 선원들은 구정물을 뒤집어 쓰고 강제로 면도를 당하는 체험 등을 하게 됩니다만, 두 공주들은 그냥 간단히 발목만 적시는 수준에서 끝났다고 합니다.
뱅가드는 영국 출항 후 2주를 조금 넘긴 2월 17일에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에 도착했습니다. 이후 국왕 일가는 상륙한 후 남아프리카를 순회하면서 4월 22일까지 약 2개월에 걸쳐 공식 방문 일정을 가졌고, 뱅가드측은 그쪽대로 승조원들에게 10~14일에 걸친 상륙 기간을 준 후 나머지 기간은 해상에서의 기동과 레이더 & 사격 훈련 등을 하면서 보냈다고 합니다.
국왕 일가의 케이프타운 상륙 장면.
부두 옆에 설치되고 있는 환영식장과 국왕 일가의 시몬즈타운 방문.
해상에서 기동훈련 중인 뱅가드.
귀국 항해 도중에 찍은 기념사진.
4월 22일에 남아프리카를 떠난 뱅가드는 대서양의 세인트헬레나 섬과 아센션 섬 등을 거쳐 5월 12일에 영국에 도착했습니다. 사진은 전체적인 항해 개요 및 귀국 후 국왕 일가의 하선에 대해 작별을 고하는 뱅가드 승조원들.
2. 마치며...
군함의 기능에는 병기로써 전투에 참가하는 것 이외에도 국가의 힘과 위신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으로써 작용하는 것, 즉 'Flag Showing' 이 있습니다. 뱅가드가 왕실 요트로써 남아프리카까지 국왕 일가를 수행했던 것도 저런 시현효과를 의식한 정치․외교적 차원의 연장선상에 있던 것이었고, 결코 ‘요트’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영국 왕실이 뱃놀이 가는데 쓰거나 한 것은 아니었죠. 게다가 왕실 요트로 있으면서 무장이 해제되거나 한 것도 아니라 정상적인 편제와 승조원을 유지한데다가 전투력 유지에 필요한 훈련까지 제대로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즉, 뱅가드가 전후에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저런 임무를 맡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 역시 전함이라는 함종이 일반적으로 갖는 영역 안에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순방에서 돌아온 뱅가드가 여전히 영국 해군 안에서 존재 의의를 갖지 못하고 천덕꾸러기로 지내다가 결국 1960년에 해체돼버리긴 했지만, 적어도 저 왕실 요트로서의 3개월까지 그런 천덕꾸러기로서의 임무는 아니었지 않겠습니까?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Neil McCart, HMS Vanguard 1944-1960 : Britain's Last Battleship, Maritime Books, 2001
- http://www.hms-vanguard.co.uk/
- http://en.wikipedia.org/wiki/HMS_Vanguard_(1946)
- http://en.wikipedia.org/wiki/Elizabeth_II_of_the_United_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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